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142화 (142/284)

#142

인재 영입 (2)

서서히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다그닥 다그닥—

도시의 대로를 달리는 마차 안에서 분홍색 머리와 자주색 눈을 한 아름다운 여성이 조용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 얼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내심은 결코 평안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건···.’

치미는 위화감에 그 여인, 시아나는 시선을 창밖에 고정한 채로 기감만을 퍼뜨려 주변을 탐지했다.

하나, 둘, 셋···.

전과는 달리 확연히 늘어난 유령체의 숫자들.

심지어 그중 몇은 그녀를 감시 대상으로 설정했는지 일정 거리를 두고 마차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그쯤에 이르자 그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꼬리가 밟혔구나!’

불사의 군대, 밴시 퀸 올리비아가 이쪽을 조사 중이란 것을.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들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작 유령체를 통해서는 철저하게 인간으로 위장한 자신의 정체를 간파할 수 없었을 텐데.

‘아냐, 아직 내가 그 시아나라는 걸 알아채진 못했을 거야. 조사가 시작된 건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만약 올리비아가 자신이 그 ‘서큐버스 시아나’라는 것을 알고 감시 대상으로 삼은 거라면, 이보다 좀 더 철저하게 움직였을 터였다.

지금은 마치 일반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정보전을 펼치는 것처럼 그녀를 대상으로 했다고 하기엔 좀 허술한 면이 있었다.

‘그럼 대체 어디서 꼬리가 밟힌 거지? 제국 귀족으로서는 아닐 테고··· 역천의 서약 활동? 올드만을 통해서?’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는 시아나의 본명은 물론, 그녀의 근거지가 제국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를 터였다.

그들은 애초부터 그 정도 수준의 협력 관계에 불과했으니.

‘탈라리아에 보냈던 녀석들의 연락이 갑자기 끊겼을 때부터 불안했건만. 설마 그 일과 연관이 있는 건가?’

결국 그녀는 곧바로 파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경로로 위치가 노출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 이렇게 관심을 산 이상 더는 여기에 있을 순 없겠어.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만 하니 당연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제리온 제국 귀족 신분은 상당히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어낸 자리이지 않은가.

하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올리비아가 관심을 가졌다는 말인즉, 불사왕의 시선도 이쪽으로 향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대로 지체했다간 다시 불사의 군대로 끌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또다시 입대라니! 죽어도 싫어!’

자리와 신분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불사왕에게 잡힌다면, 또다시 그가 토벌될 때까지 영원히 예속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래, 도망가자.’

그렇게 생각하자 확실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곧바로 몸만 숨기기엔 아쉬운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반을 닦아뒀는데!’

나중을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안배 정도는 해 놔야 하지 않을까?

새로 시작하기 위한 밑천도 어느 정도 챙겨야 할 테고···.

‘···설마 지금 바로 들이닥치진 않겠지? 불사왕정도 되는 거물이 몸소 나서지도 않을 테고.’

아마 나서더라도 올리비아를 비롯한 간부진들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제국의 도시 한복판에 있는 만큼, 그들만으로는 쉽게 일을 도모하지 못할 터.

그럼 그들이 찾아올 준비를 마칠 때까지 최소한 며칠 정도의 여유는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한 시아나는 자신을 합리화하며 일단 저택으로 향했다.

그녀가 챙겨야 할 유용한 것 중에는 물론 ‘앤드류 위버’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제약은 있지만, 앉은 자리에서 대륙 곳곳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는 그만한 능력이 또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덜컹!

마침내 저택에 도착하자 곧바로 문을 열고 내린 그녀는 자기를 마중 나온 사용인들의 인사를 무시하고 곧바로 앤드류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직행했다.

콰앙—!

망설임 없이 열어젖히는 손길에 커다란 소음을 내는 문짝.

하지만 지금은 겨우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앤드류—!”

“으잉? 누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

“지금 바로 이동할 준비를 하세요!”

“···오오! 역시 누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는···.”

“됐으니까, 바로 움직여요!”

안락의자에 널브러진 채 술독에 빠져 헤실거리던 앤드류가 그녀의 강압에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시아나는 흑마법으로 만든 아공간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며, 어떻게 손을 써 둬야 기반 손실이 가장 적을지 고민을 이어갔다.

‘이건 꼭 챙겨야 하고··· 이 건은 포기하기엔 그간 들인 공이 아까운데. 어떻게 현상 유지만이라도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저건···.’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야반도주를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이던 와중.

사아아—

싸늘한 감각이 목덜미를 스쳤다.

‘아?’

그녀는 이 감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택에 빼곡하게 설치된 보안 결계를 뒤덮는, 불가해할 정도로 짙은 압도적인 힘을.

깊고 어두우며, 무겁고도 끈적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심연 같은 죽음.

설마 했던, ‘그’의 존재감이었다.

‘아아악—! 그냥 다 버리고 튈걸!’

결국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시아나는, 그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

‘토베아 시··· 대도시 급이라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작은 곳도 아니지.’

그리고 이만한 규모의 도시는 그 나름대로 온갖 이상 상황에 대한 방비도 철저하기 마련이었다.

그 말인즉슨, 처음부터 조용히 잠입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아무리 철저하게 은폐 결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그 마력의 여파를 온전히 감추긴 힘들다는 소리였다.

조용히 일만 보고 떠나긴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준비했다.

위잉— 위이잉—!

콰아앙—!

“으악! 갑자기 뭐야?!”

“꺄아악—!”

도시 곳곳에서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지고 그에 맞춰 폭음이 터져 나왔다.

화려한 저택과 허름한 뒷골목을 막론하고 시작된 그 폭발은, 점차 어둠에 잠겨가던 도시를 한순간에 혼란으로 몰고 갔다.

‘자, 그럼 가 볼까?’

조용히 움직이기 힘들다면 소란 속에서 움직이면 될 일이다.

한스는 부하들이 활동을 개시한 틈을 타, 미리 펼쳐두었던 결계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결계 속에서 마주한 평범한 귀족 저택 하나.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그 내실은 비범하기 그지없었는데···.

‘과연, 상당히 신경 썼는데? 어지간한 이들은 이 보안 장치들을 인지하지도 못했겠군.’

「마도의 길」과 「마력 지배」를 비롯한 능력들이 연달아 발동하며 저택에 걸린 마법들을 숨 가쁘게 분석했다.

인식 왜곡부터 시작해 기운을 은폐하는 것과 침입자를 배제하는 결계들까지.

하나같이 수준 높은 술법들이었던지라 이걸 정상적으로 파훼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콰지직—!

파직!

물론 압도적인 힘을 가진 불사왕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저 한껏 기운을 끌어올린 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에 깃든 압도적인 밀도의 흑마력에 보안 결계의 복잡한 마력 구조물이 짜부라지며 무력화되었다.

‘어디 보자, 그럼 일단···.’

우우웅—

그렇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존재감을 발산하며 순식간에 내부로 들어선 한스의 몸에서, 마력을 품은 파동이 저택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저택 내부에서 하나둘 기절해 쓰러지는 이들의 기척이 느껴지고—.

곧바로, 그것에 저항한 이들이 포착되었다.

[거기 있었군.]

그리고 다음 순간.

한스는 이미 그들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히··· 히익···!”

그곳에 있는 것은, 갑자기 허공을 찢고 나타난 그를 보고 격하게 몸을 떠는 탁한 금발의 사내 하나와···.

[음? 너는?]

어느새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하고 있는 분홍 머리칼의 여성 하나였다.

“아아—! 왕이시여, 드디어 오셨군요. 소녀, 왕께서 다시 강림하시길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누, 누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무조건적인 복종.

그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옆에 있던 남성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으나, 지금 그녀는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호호··· 왕께서 좀 더 편히, 확실하게 대륙을 정복하실 수 있도록 소녀가 그간 열심히 준비했답니다? 인간들 틈에 은밀히 숨어들어 오랜 세월을 오직 왕을 향한 충심으로 버티며 기회를···.”

분홍 머리의 여성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불사왕, 한스는 그녀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악마족 서큐버스, 시아나.’

대주교급 성직자라도 긴가민가하게 여길 정도로 완벽하게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모든 마(魔)를 탐지하는 그의 「심연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전대 불사왕 휘하에서도 10위권에 가까운 녀석이었던 거 같은데.’

그녀는 인접 차원인 마계에서 소환되어 온 악마로,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불사의 군대에 합류하게 된 케이스였다.

그의 뇌리에 남은 정보를 뒤적여 보니 무력은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지만 올리비아처럼 그 외의 방면으로 더 유용한 인재라는 평이 있었다.

‘하긴, 악마 주제에 정체를 숨긴 채 제국 귀족 행세를 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 확실히 수완이 대단하긴 한 것 같군.’

신전을 비롯한 최상위권 강자들의 눈까지 속였다는 뜻이니, 뒷공작에 있어선 그야말로 최고의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잠적했다 딱 걸린 전(前) 간부일 뿐이었지만.

[크크큭, 보아하니 그동안 정말 편하게 지낸 것 같구나?]

“그, 그렇지 않습니다! 소녀는 오직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런 것 치곤 꽤 공들여 숨어있었던 것 같은데.]

“호, 호호··· 그간 미처 연락드리지 못한 점, 굉장히 송구하게 생각···.”

다시 그녀의 변명이 시작되었으나, 더 이상 그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더욱 철저하게 임무를 완수하려는 마음으로, 제 사리사욕을 채운 건 절대 아니···.”

[시아나—]

“흐익?!”

우우웅—

그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기묘한 울림이 퍼지며 시아나의 몸속으로 파고들었고.

그와 함께 삼백 년 전의 강제 계약이 재차 갱신되며 새롭게 덧씌워졌다.

“아아···.”

그 여파로 어느새 뿔이 튀어나온 것도 모른 채,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불사왕의 기운에 신음을 흘렸다.

다른 언데드 간부들과는 달리 그녀는 죽음의 힘에 영향을 받아 전보다 더 강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기어코 다시 입대해 버렸구나.’

그녀가 불사왕에게 다시 종속되는 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또르르—

원치 않았던 재입대에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아, 아? 그,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이것이야말로 제 충심의 발로가 아니겠습니까? 오호호홋···.”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생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입을 놀렸다.

그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한스의 시선이, 이번엔 아직도 딱딱하게 굳은 채 쭈뼛거리는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이놈은 뭐지? 몸에 마나는 충만한데 마법도, 오러도 배운 흔적이 없군.’

탁한 금발의 방탕해 보이는 사내는 그 눈길에 그대로 굳어버렸지만, 한스는 그러든 말든 포식자가 먹이를 훑듯 찬찬히 그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수련을 한 흔적은 없는데 신체 능력은 기이할 정도로 좋아. 이건 마치···, 어? 설마?’

정상적인 단련을 통한 성장이 아닌, 외부의 영향으로 인한 육체 강화.

그는 이런 현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왕께서 이 아이에게 관심이 생기셨나 보군요? 앤드류! 어서 인사를 올리도록 하세요.”

“예, 옙! 안녕하십니까! 전 앤드류 위버라고 합니다. 그··· 잘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바리한 태도를 보이는 금발의 사내, 앤드류.

하지만 지금 한스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의 정확한 정체였다.

그리고 어느새 세기의 간신으로 빙의한 시아나는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앤드류 또한 제가 대업을 위해 구한 인재랍니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유용한지 왕께서도 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그간 그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말미에, 마침내 그가 원했던 정보가 튀어나왔다.

“···또 한 가지 놀랄만한 사실은, 그가 바로 이계인이라는 점이죠! 마계도, 정령계도 아닌 전혀 다른 차원계 출신이라고 하네요. 오호호.”

[···호오? 다른 차원이라?]

한스가 안광을 번뜩이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아나가 멋대로 자신의 개인 정보를 누설하고 있었지만, 앤드류는 뭐라 항변조차 하지 못하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예, 예··· 불사왕님. 저는 그, 지구라는 곳에서 왔습니다요. 헤헤···. 이제 곧 있으면 9년이 다 되어갑죠, 예옙.”

그리고 그의 대답은, 한스에게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나 말고 다른··· 지구 출신의 각성자.’

아우테리카 차원에 전송되어 온 지도 2년이 가까워져 가는 지금.

처음으로 동향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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