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144화 (144/284)

#144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1)

땅—! 따앙—! 땅!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이익—

쇠를 두드리는 단조와 급격히 식히는 담금질, 다시 가열하는 뜨임 등.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공정들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후우···.”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공정이 끝나고.

연마 작업까지 마친 예리한 검날에 미리 만들어둔 손잡이를 연결해 한 자루의 검이 완성된 순간.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야금술」을 획득합니다.》

···드워프 하워드는 시스템으로부터 ‘대장장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오호라, 드디어 나왔구만! 으허헛—!”

수련을 통해 하나의 기술이 ‘스킬’이 되었다는 것은, 그 행위에 쌓인 업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이후 관련된 일을 할 때마다 추가 보정을 부여해 좀 더 원활한 성장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각성자의 특권 중 하나.

그런 것을 휴버트 상단의 업무와 병행하면서 고작 몇 주 만에 이뤄낸 것이다.

하워드는 망치를 쥔 자기 손을 바라보며 천천히 감각을 되새겼다.

드워프의 예민한 감각에 망치를 쥔 손아귀의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좀 더 정교하게, 좀 더 효율적이게, 좀 더 자연스럽게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으음, 좋군. 「장인정신」과의 시너지도 상당하고. 이것도 쌓인 숙련도에 따라 성장하는 스킬이니, 시간이 갈수록 효과는 점점 더 강해지겠지.’

스킬을 얻은 타이밍도 매우 적절했다.

때마침 내일이 타라크에 돌아온 할리를 통해 드워프 자오닉을 소개받는 날이지 않은가.

‘이제 전과는 달리 강철의 성채 쪽 상황도 많이 안정되었으니까.’

광기 사태 발발 직후 위험한 지경까지 몰렸던 강철의 성채는, 시간이 흐르고 하나둘 지원 온 병력이 늘기 시작하며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또 로한 공국 방면의 영향인지 최근 몬스터 범람이 크게 줄면서 뜻밖의 여유까지 생긴 상황.

그래서 그는 이참에 그간 미뤄왔던 일을 한꺼번에 해치워버릴 생각이었다.

‘할리가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떠나기 전에, 하워드를 자오닉에게 소개하고 새 도끼도 받아야지.’

일전에 아오니아 백작이 그에게 새로운 무기를 약속한 적이 있었다.

자오닉도 할리가 쓸 무기라는 말에 별다른 반발은 하지 않았고, 곧바로 타라크의 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겨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주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그 도끼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원래는 자오닉이 직접 무기를 챙겨 강철의 성채까지 운송해줄 예정이었지만···.

‘때마침 신전에서 전해진 소식도 있으니, 그냥 내일 할리가 직접 타라크에 방문해 수령하기로 했지. 덤으로 하워드도 소개하고.’

그래서 지금 「야금술」을 얻은 것이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에게 기본도 안 되었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테니.

그렇게 기대 속에 하루가 지나고.

평소처럼 상회의 업무를 마친 하워드는 할리와 함께 타라크 시 소유의 중앙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래도 이제 휴버트가 복귀할 때까지 며칠 남지 않았군. 한스를 이리저리 이동시킨 것 때문에 상당히 지체된 감이 있었는데.’

물론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대책도 수립해야겠지만, 지금은 일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웅성웅성—

“어이, 저기 좀 봐봐.”

“아— 요즘 유명한 할리로군. 타라크로 돌아왔나 보지? ···응? 그런데 저건···.”

“드워프?”

위풍당당하게 대로를 거니는 그들에게 몰리는 시선들.

2미터가 훌쩍 넘는 덩치의 할리와 그의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키의 하워드가 나란히 걷는 모습은 상당한 주의를 끌었으나, 이제 이 정도 관심은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장간에 도착한 그들은 미리 잡힌 약속대로 곧바로 안쪽으로 안내되었고.

마침내 할리는 자오닉과 오랜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으하핫! 오랜만이군, 자오닉! 그간 잘 지냈나?”

“···어? 어어! 그래, 이거 오랜만이야. 그동안의 활약은 들었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만!”

그런데 그가 보이는 태도가 뭔가 이상했다.

정확히는 할리가 데려온 하워드와 마주한 순간부터 뭔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맞아, 이쪽이 자네가 소개해주고 싶다던 그 드워프인가? 확실히 상당히 어려 보이는 친구로군.”

그리고 정신이 딴 데 팔린 듯 할리와 대화하던 그의 고개가 다시 하워드에게로 돌아갔다.

신경 쓰이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흠흠! 반갑습니다. 어르신! 하워드라고 합니다.”

“···그래, 반갑군. 난 자오닉 스틸스톤이라고 하네.”

텁수룩한 수염이 무성한 사내 둘이 나누는 대화치곤 위화감이 굉장했지만, 같은 드워프의 눈으로 봤을 때는 하등 이상할 것 없는 대화였다.

다른 종족인 할리의 눈에나 그들이 서로 비슷한 연배의 털북숭이로 보일 뿐, 하워드의 눈에 비친 자오닉은 상당히 완숙해 보이는 인상의 멋들어진 중년이었다.

반대로 자오닉의 눈에는 그가 파릇파릇한 애송이로 보일 터.

‘아까부터 좀 이상하네. 부정적인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미묘하군.’

지금 그의 반응은 단순히 오랜만에 마주한 동족이라서 보이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뭐랄까, 그보다는 좀 더 밀접하고 감성적인···.

“흠흠,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때, 자오닉이 헛기침과 함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어디서 날 본 적 있는가?”

“음, 제가 어려서부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지만 같은 종족을 마주한 건 어르신이 처음입니다.”

“그럼 역시, 양친은···.”

“예,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줄곧 저 혼자 지냈습니다. 할리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죠.”

그들의 대화가 거기까지 이어지자, 할리는 그제야 자신이 나서서 ‘할리의 대모험’ 5막 2장, ‘떠돌이 드워프와의 만남’ 편을 늘어놓으려 했으나···.

“···그래, 그런가. 그렇겠지.”

여전히 자오닉은 혼자 상념에 잠긴 채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 미안하네. 왠지 자네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야. 이건··· 그래, 먼 길을 떠났던 자식이나 손자가 되돌아온 것 같군. 물론 난 독신이지만 말일세! 후하하핫!”

“아, 그러셨군요. 으허헛!”

“크하핫! 난 또 이별한 가족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도중에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침체된 것을 알아챘는지 자오닉이 억지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무안하지 않게 하워드와 할리도 함께 웃어 주었지만, 내심으로는 순식간에 지금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거 설마···. 엘린느의 영향인가?’

드워프 자오닉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냈고,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자식처럼 아껴왔던 곡괭이계의 신병이기(神兵利器) 엘린느.

그것이 바로 하워드 탄생의 밑바탕이 된 매개체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손자가 맞긴 하지.’

역시 그도 장인인 만큼, 자신이 빚어낸 창조물과 관련된 하워드에게 뭔가 느낀 게 있는 것 같았다.

“후우— 미안하구만. 괜히 혼자 감상에 젖어서 그만. 아차! 일단 도끼부터 줘야겠군. 이리로 와 보게나.”

하지만 곧 그는 마음을 다스리듯 머리를 털고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무기의 인계를 위해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도착한 작업실의 안쪽에 ‘그것’이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든 도끼지. 자네의 주문대로 오로지 내구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흑마강을 통째로 가공하고, 날 부분에는 무려 아다만티움까지 씌운 걸작이라네!”

그가 가리킨 곳에 놓여있는 전체가 검은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끼 하나.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무거워서 실전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점일까? 휘두르기는커녕 들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겠지만··· 자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2미터가 넘는 굵고 긴 손잡이에 걸맞은 커다란 도끼날과 창끝, 반대편의 날카로운 갈고리까지.

그것은 ‘도끼’라기 보단 ‘도끼창’에 가까운 외형을 하고 있었으나, 또 단순히 그리 간주하기엔 굉장히 커다란 날을 가지고 있었다.

“오오— 이건! 굉장히 크고 아름답군!”

그리고 그 게임 속 거대 몬스터들이나 다룰 법한 흉악한 무기는, 그야말로 할리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냉큼 도끼가 놓인 곳까지 달려간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후웅—

그저 바닥에 놓인 걸 들어 올렸을 뿐인데도 공기가 움직이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압도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었지만···.

“제법 묵직하기도 하고! 역시 무기는 이래야 제맛이지! 크하하핫!”

물론 할리에게는 딱 적당한 무게감일 뿐이었다.

부웅— 붕—!

넓은 작업장 한편에서, 한 손으로 가볍게 휘젓는 도끼에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일었다.

“일단 이름은 ‘자이언트 킬러’라고 붙이긴 했네만,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도 상관없네.”

“아아, 그걸로 충분하지! 딱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고! 카하핫!”

마음에 드는 무기를 손에 넣자 저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과연 드워프제 무기답게 이 도끼는 심미적인 부분도 굉장히 뛰어났는데, 그저 가지고만 있어도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는 고급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이걸 직접 마주할 이는 명품에 대한 감탄보단 체념에 가까운 한탄이 먼저 튀어나오겠지만.

“그런데··· 자네 정말 괜찮겠나? 내 작업이 끝나고 소식들을 듣자니, 그간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던데.”

그렇게 할리의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자오닉이 문득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대신전을 습격한 불사왕이 로한 공국을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얼마 전엔 제국의 토베아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지?”

아무나 알 수 없는 세계정세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그도 나름 영주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이 정도 정보를 입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이건 딱히 기밀이랄 것도 없이 대륙적으로 떠들썩한 커다란 사안이지 않은가.

“그런데 난데없이 결사대에 추천이라니···. 물론 자네가 부족하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갑작스러운 감이 있구만.”

그가 추천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추천을 한 이가 있다는 소리다.

그건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지만, 할리는 그들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용병 길드와 부족 연맹 쪽이었지.’

길드 측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이상할 것 없었으나, 남부에 있을 부족 연맹이 좀 의외이긴 했다.

아무리 그가 남부 전사를 표방하고 있다지만, 제대로 된 접촉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핫!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이 도끼로 죄다 골통을 부숴버리면 될 뿐!”

어떻게든 신상 도끼를 빨리 써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할리가 연신 콧김을 뿜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북부 산맥으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자오닉, 내가 부탁했던 건 생각 좀 해 봤나? 오늘 직접 보니 어때?”

“음··· 저 친구에게 가르침을 좀 줬으면 한다는 거 말이지?”

그의 말에 자오닉은 심각한 표정으로 하워드를 힐끔거리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조언 몇 마디가 아닌, 좀 더 제대로 된 가르침에는 그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의 비전(秘傳)’이라고는 불리기는 하지만, 그게 모든 드워프에게 무조건 공개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장인이라는 이들이 자격도 없는 이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할 리가 없으니.

물론 다른 종족들처럼 폐쇄성이 짙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기술은 보통 가족이나 부족 단위로 전수되는 면이 있었다.

아무리 할리의 부탁이라도 오늘 처음 본 이에게 전수할 만한 지식은 아니라는 소리.

하지만···.

“···그래, 어차피 내가 그간 쌓아온 것들을 영원히 묵히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이온 대륙에서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겠지.”

자오닉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시원한 승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친구, 아무리 생각해도 남 같지가 않아. 허참— 신기한 노릇이군.”

“하, 하하핫! 이게 다 운명 아니겠나! 암, 그렇고말고!”

엘린느를 납치한 장본인인 할리가 어색한 웃음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마침내 하워드는 자오닉에게 정식으로 ‘드워프의 비전’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일을 끝마친 할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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