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제국의 난 (2)
툴크 왕국의 타라크 시는 오늘도 분주한 사람들로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북부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의 수가 줄고, 강철의 성채 주변에 대규모 병력이 상주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지만···.
아직 사태가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 보니 거리 곳곳에 용병들은 물론 상인들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어느새 타라크 최대 규모의 상단 중 하나로 성장한 휴버트 상회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럼 그 일은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고, 이전에 맡긴 보석의 감정 결과는 어떻게 됐소?”
휴버트 상회가 들어선 커다란 건물의 상회주 집무실.
얼마 전에 장기 요양을 마치고 돌아온 휴버트가 서류를 뒤적거리다 한 간부에게 시선을 던졌다.
“예, 타라크의 귀금속 조합과 세 곳의 마탑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전부 회주님의 예상대로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암암리에 이미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휴버트였으나, 그는 그것들이 모두 헛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복귀와 동시에 곧바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전에 생각했던 ‘지구산 합성 보석’을 유통하는 것.
한창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때 무슨 귀금속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원래 가진 자들에게는 시기를 가리지 않는 것이 이런 물품이었다.
‘오히려 다른 자산을 정리해 보관이 용이한 귀금속으로 바꿔 은닉하려는 자들이 많을 테니, 지금이야말로 이 사업을 시작할 적기라고 할 수 있지.’
그가 가져온 합성 보석은 큐빅 같은 겉만 비슷한 모조품이 아니었다.
고온, 고압의 실험실 환경에서 순도가 높은 물질로 만들어져 물리적, 화학적, 광학적으로 완벽한 보석이었다.
그런 만큼 오히려 천연 보석보다 내포물이 적어 매우 깨끗한 것이 특징이었고, 이 아우테리카에서 그것은 이질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파격이었다.
귀금속 조합의 감정사들이 일제히 혼란에 빠질 정도로.
‘사치품의 가치는 그 물품이 얼마나 희귀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법. 마법의 매개체로 사용할 수 없다는 약점은 있지만, 그것 또한 독특한 세일즈 포인트가 될 거다.’
그를 증명하듯 마법사들도 이것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에겐 실용성이 하나도 없는 예쁜 돌멩이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였던 것이다.
아무리 확인해 봐도 보석은 틀림없는데, 그것이 품고 있는 특성이 지금까지 봐 왔던 물건들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
“···그래서 마탑은 물론 귀금속 조합도 적극적으로 구매를 타진해온 상태입니다. 그 희소성 때문인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있긴 했습니다만.”
결국 지구산 합성 보석의 첫선은 매우 성공적이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너무 많은 물량을 풀 생각은 없었으나, 어차피 이 세상에서 이걸 본격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일 테니 너무 꽁꽁 싸매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을 통해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지. 첫 거래인만큼 조금 할인해 주는 선에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시오.”
소량씩 판매하게 될 이 프리미엄 상품은 앞으로 휴버트 상회가 규모를 키우는 데 쏠쏠한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 희귀한 보석은 뇌물용으로도 최적이었으니까.
‘물론 그 전에 이 땅의 주인인 아오니아 백작가에 진상할 필요도 있겠지.’
할리 때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간 여러모로 편의도 많이 봐주었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로 얻을 이득에 비하면 보석의 원가야 그리 비싼 편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마빈?”
“예! 상회주님. 부르셨습니까?”
회의가 끝나기 직전, 휴버트의 나직한 호명에 수염이 무성한 사내가 얼른 대답했다.
그간 갖은 노력을 통해 동쪽 국경 너머의 제국과도 작게나마 교역을 성사한 공로가 있는, 상회의 동부 방면 확장을 맡은 담당자였다.
“제국 쪽과 관련해 할 말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제국··· 말씀이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작은 기회라도 있으면 놓치지 않는 게 상인의 올바른 자세.
그렇게 휴버트는 오늘도 열심히 상인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
긴 시간 이어졌던 대륙 정상 회의가 마침내 종료되었다.
물론 모든 논의가 끝나지도 않았고 이제 고작 첫 번째 모임이 마무리된 것에 불과했지만, 그간 불협화음만 내던 각 세력이 뜻을 모아 의견을 합치했다는 데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대신전의 게이트를 통해 돌아가기 시작한 각국의 대표들.
하지만 그중 교단으로부터 뜻밖의 제지를 받은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아제리온 제국의 황태자, 사이먼 카르테 아제리온이 이끄는 사절단이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지금 우리더러 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아,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그저 지금 돌아가시면 위험하실 수도 있다는 주의를 드리려는 겁니다.”
“허어— 저희가 향할 곳은 아제리온 제국의 수도 제론입니다. 그 말은 제론이 위험하다는 뜻인데, 도대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근거가 뭡니까?”
황태자의 보좌관으로 함께 따라온 귀족이 그들의 발길을 붙잡은 대신전의 주교를 채근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고, 그는 뒤쪽에서 언짢은 듯 이쪽을 바라보는 황태자의 눈치만 살피며 입술을 핥았다.
“으음, 성자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제론에서 뭔가 변고가 있을 것 같다고 말이지요.”
“예? 그러니까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저희에게···.”
“한 사람이 아니라 성자님이십니다. 그것도, 주신께 직접 계시를 받으신 분이시지요.”
황당하다는 듯 무심코 내뱉은 말에 시종일관 조곤조곤 설득하던 주교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
“흠흠···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저희는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그런 의미로···.”
그 예상 이상의 반응에 보좌관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다시 입을 열던 그때.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뒤에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황태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나는 제국의 황태자고, 수도 제론은 내게 안방과도 같은 곳이오. 문제가 생겨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거니와, 정말 변고가 생긴다면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서 직접 대처해야 마땅한 일. 교단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오만?”
황태자 사이먼은 지금의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공국 파견군에 대한 교단의 간섭이 심해졌다는 보고를 들은 참인지라, 그들이 지금 보이는 모습 또한 무언가의 정치적 공작으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교단과 성자라는 이름값이 있는 이상 그 경고가 완전히 빈말은 아닐 것이다.
뭔가를 감지하긴 했으니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그가 발길을 멈추고 안전한 곳에 숨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가 된다.
‘정상 회의의 참여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자칫하다간 라일리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는 일.’
거기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그는 수도의 방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제국은 얼마 전 대신전 습격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그 후부터 지금까지 총력을 기울여 황성에 철통같은 방비를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교단의 세가 강하다고 해도 아제리온 제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영토의 넓이와 자원, 그리고 인구수는 교단과 차원이 달랐고, 그 국력이 집중된 수도의 방비는 그야말로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 상대가 설령 불사왕이더라도 말이지. 놈이 불사의 군대를 통째로 끌고 오지 않는 이상, 대신전을 습격했을 때처럼 소수로는 어림도 없다.’
사이먼 황태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안전이었으니, 교단의 경고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 평소 이상의 경비를 자국에 요청하고, 수도 방위군에 압력을 행사에 추가 호위 병력까지 차출한 후.
약 하루의 시간이 지나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서야 게이트를 넘어 제론 대신전으로 이동했다.
···그 모든 노력 또한.
이미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 있을 뿐이었지만.
***
[오호— 과연, 제국의 수도라 할 만하군.]
발밑에 가득 펼쳐진 구름바다 위.
온몸에 어둠을 두른 한스가 빛조차 빨아들이는 깊은 눈으로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심연의 눈」으로 보이는 제국의 수도, 제론의 방비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도대체 자원과 인력을 얼마나 쏟아 부었는지 황궁이 있는 중심부는 온갖 술법이 빼곡하게 도배되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은 결계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도 근방에 대한 색적 능력도 상정한 것 이상이야. 이거 여기서 조금만 더 가까이 접근하면 아무리 기운을 은폐하더라도 금방 들통나겠는데?’
전 대륙을 범위로 두고 있는 성녀의 탐지야 어떻게든 회피할 수 있었으나, 저 도시에 펼쳐진 결계처럼 일정 범위를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형태는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불사왕이 가진 기운 자체가 워낙 광포해서 이 이상 기운을 숨기는 건 도저히 무리였으니.
‘위성 도시였던 토베아와는 차원이 다르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수도 수비에 공을 들인 걸지도 모르겠군. 하긴 근방의 도시가 털린 게 불과 얼마 전이니 당연한가.’
거기다 추가로 하인리히를 통해 교단 이름으로 전해진 경고 또한 한몫했으리라.
어찌 보면 자승자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스는 그것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도 평소 이상으로 많은 준비를 했으니까.’
이번 일은 상당히 중요한 시나리오인 만큼 그간 모아왔던 것들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데는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슬슬 때가 되었군.’
마찬가지로 타이밍 또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으나, 그것 또한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 시작해 볼까.’
구름 위에 떠 있던 한스가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삐이잉! 삐이이잉—!
땡땡땡땡—!
그와 동시에 도시에서 시끄러운 경보음들이 울려 퍼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빨리 가속했다.
우우웅!
한순간에 도시 전체를 감싸고 휘도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그것은 눈 깜짝할 새에 수많은 술법들을 작동시켰고, 마치 연쇄 작용이라도 하듯 퍼져나간 빛무리는 도시를 아름답게 물들였다.
콰아앙—!
직후, 한스의 몸이 수도를 감싼 결계와 그대로 충돌했다.
[크흐흐흣— 제법 신경 쓰긴 했다만, 고작 이런 결계로 이 몸을 막기엔 어림도 없지.]
그는 스파크를 튀기는 결계를 가볍게 찢고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삐이이잉—! 삐이잉!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빽빽하게 발동한 술법들로 어느새 철옹성이 되어 버린 도시 중심부의 거대한 황궁이었다.
마법과 주술, 연금술 등의 온갖 이능이 한데 뭉쳐 시너지를 이룬— 아우테리카 차원을 대표하는 신비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대체 돈을 얼마나 갖다 바른 건지···. 제대로 발동한 모습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장관이네. 아무리 한스라도 저걸 부수려면 시간이 제법 필요하겠어.’
애당초 그의 목적은 황궁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기껏 이렇게 수도까지 와서 저걸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인사 정도는 해 주는 게 도리겠지.’
그래야 저들이 돈을 들인 보람이라도 느낄 테니까!
그렇게 한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따뜻한 배려심을 마음에 품은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아, 나오너라. 엔트라시오, 헤라토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뒤덮은 어둠이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해 나갔고···.
그 안에서 거대한 두 그림자가 공간을 찢으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쿠오오오——!]
[캬아아아——!]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포효하는 두 마리의 본 드래곤.
하지만 그들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그럼 올리비아, 다른 놈들의 통솔은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맡겨만 주시옵소서···. 소녀, 최선을 다해 왕의 명을 이행하겠나이다···.]
하나둘 그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불사의 군대 간부들과···.
쿠우웅—!
“으아아악!”
퍼엉—!
“빨리 피해!”
도시 곳곳에서 폭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리 잠입했던 노예··· 아니, 엑스트라들이 한스의 침입을 신호로 동시에 일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도 시작됐군. 역시 수도라 그런지 토베아보다 털어버릴 곳도 많더란 말이지. 뭐, 일이 끝나면 알아서 살아남아야겠지만.’
물론 그렇게 생존한다고 해도 남은 것은 다음 현장에 투입될 미래뿐이겠으나, 운이 좋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원래 희망이란 게 다 그런 법이었다.
[크후후— 아아, 좋구나! 이것이야말로 파멸의 전주곡일지니! 필멸자들이여, 내 이름을 기억하라! 내가 바로 불사왕, 한니발 스트라우스이니라! 크하하핫—!]
그렇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자기 어필과 함께.
마침내 불사왕이 제국의 수도, 제론을 직접 침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