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하회탈 라이즈 (1)
“최근 뉴스도 그렇고, 사건 사고가 준 것이 확실히 느껴지네.”
“진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말이야.”
요즘 서울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확실히 체감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국내의 치안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는 것.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해외의 소식과 비교했을 때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그 현상은 이제 모두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물론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 기관인 이능관리국도 열심히 뛰어다녔고, 귀환자 협회 휘하의 가디언들도 범죄자 검거에 많은 성과를 올렸으니 그 공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마땅히 그들의 이름 위에 올라가야 할 존재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솔직히 하회탈 아녔음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개판이었다. ㅇㅈ?
-가디언도 열심히 한 건 맞는데, 그래도 하회탈 등장 전후로 너무 차이가 심하니까 어떻게 커버 쳐 줄 수가 없음.
-근데 진짜 하회탈은 정체가 뭐임? 역시 여럿이서 한 사람인 척하는 거겠지?
언제부턴가 등장해서 서울의 밤을 평정하고 마침내 한국 전역에 출몰하기 시작한 괴인, 하회탈.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그에 대한 소문은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유명인들의 SNS와 TV프로 등에도 심심찮게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나 있었으니···.
<하회탈 목격 지역 정리>
<연예인들 하회탈 언급 링크 모음>
<바로 앞에서 그분 영접한 썰 품>
바로 ‘하회탈’의 팬 사이트인 ‘새벽의 서낭당’이었다.
하회탈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와 주로 한밤중에 활동하는 그의 행적에서 따온 이름으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으며 그 세가 급격히 커지는 중이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 현대의 다크 히어로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은 일반 대중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능관리국 범죄수사과 하회탈 수사팀.
“으아아—! 언제까지 이렇게 되도 않는 꼬리잡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이제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냥 잘하는 일 하게 내버려 둡시다!”
“저 새끼 저거 또 병 도졌네. 야! 막내 약 먹을 때 지났다!”
“예, 팀장님. 에라이—! 이 자식아. 우린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냐? 위에서 시키는데 뭐 어쩌겠냐.”
퍽퍽—!
선배 요원들이 CCTV를 돌려보다가 발광하는 강태산의 뒤통수를 치며 기꺼이 매를 선사했다.
이 막내는 주기적으로 맞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병이 있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요놈 이거 오늘따라 뒤통수가 손에 착착 달라붙네.”
“아, 악! 선배님! 정신 차렸슴다! 선배님!”
“그래, 임마. 어쨌거나 각성자의 범죄를 파악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사감은 넣지 말고 일하자고.”
“···으윽,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회탈의 뒤를 추적하기 위한 정부 기관의 손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한국 귀환자 협회 서울 남부 지부.
“쓰읍, 역시 혈맹이랑 하회탈이랑 연관 있는 것 같은데. 특히 헤테로시스 쪽 파벌이랑.”
“헤테로시스라면 요즘 급부상한 혈맹 내 정예 전투 집단이 아닙니까? 하인즈라는 가명의 8레벨 흡혈귀가 리더였죠?”
“그래. 강경파를 몰아내고 나서는 상당히 평화적으로 나와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눈감아 주고 있었는데···.”
어차피 지하 조직이라는 곳은 아무리 뿌리 뽑아도 잡초처럼 다시 자라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지금의 혈맹처럼 치안에 협조적인 단체에 힘을 실어주어, 그들을 자체적으로 단속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인 일.
실제로 지금까지 그 효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혈맹의 통제와 하회탈에 대한 공포심까지 겹쳐 그들의 관할 구역은 제법 훌륭한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거, 하회탈이 독자적인 행보에 더해 혈맹 쪽에서 따로 정보를 받고 움직이는 거 같아.”
“정보라면, ···살생부 말씀이십니까?”
“뭐,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
비서와 대화하던 지부장 윤지윤이 미간을 찌푸리다 그대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섣불리 파고들기에는 하회탈이란 존재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어지간한 세계의 마왕급이라 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
괜히 그를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선을 잃고 폭주라도 하게 된다면, 말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재앙이 강림하게 될 것이다.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볼까.”
결국 그녀는 눈을 감고 사태를 좀 더 관망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능관리국과 귀환자 협회.
이렇게 대표적인 조직들 외에도 수많은 정보 조직이나 범죄 집단, 거기다 번천회까지도 은밀히 하회탈을 조사하고 있었다.
하회탈을 빼놓고는 작금의 한국 정세에 대해 도저히 논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우우웅—
[크흐흣— 아직도 이런 짓을 벌이는 놈이 있다니. 간덩이가 부은 녀석이구나. 한번 배를 갈라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이건, 진법인가? 너는 누구냐!”
한스는 오랜만에 신선한 반응을 마주하고 있었다.
요즘 뒷세계에 충분한 공포를 심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놈을 잡으러 왔더니 저런 태도였던 것이다.
“···네놈이 그 하회탈이란 녀석인가. 요즘 위명이 자자하다지? 과연 흉악한 마기로군.”
심지어 그를 마주하고도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우기까지.
단순히 귀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무지에서 비롯한 만용이 아니었다.
아무리 한스가 심장의 기운을 최대한 감추고 있다지만, 이렇게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저리 당당할 수 있는 이는 절대 많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고오오오—!
과연 그의 예상대로 한순간에 상대의 몸에서 무거운 기세가 흘러나오며 점점 존재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기운이 섞인 듯 지저분하고 혼탁한, 하지만 묵직하고 위압적인 기운이 한스가 쳐둔 결계 내부에 가득 퍼져나갔다.
‘타인의 생명력을 갈취하며 쌓은 기운인가? 특이하군. 이런 불안정한 기운을 가지고도 폐인이 되지 않고 저만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니.’
어쩌면 그와 관련된 고유스킬이라도 있을지 모를 일.
놈이 가진 기운의 밀도는 명백히 아제리온 제국의 근위 기사단장 콘웰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 보아하니 그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설마 하회탈이란 놈이 강시일 줄은 몰랐는데, 뭔가 특이한 대법이라도 완성한 모양이지?”
지금의 한스는 온전한 하회탈을 쓰고 해골을 감추고 있었으나, 저 정도 강자에게 온전히 기운을 숨기기란 무리였다.
물론 지구엔 다종다양한 고유스킬이 있었으니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말이다.
[크크큭, 이렇게 당당하게 나에게 맞서는 놈은 오랜만이라 굉장히 신선하군. 아주 재밌어.]
“흐— 그 재미가 언제까지 가나 한번 볼까?”
콰지지직—!
말이 끝나기도 전.
거친 파열음이 지척에서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흑마력 방벽을 꿰뚫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격.
하지만 피격 순간에 한스에게서 뻗어 나온 수십 가닥의 ‘심연’ 때문에 놈의 기습은 후속타로 이어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쪽의 반격 또한 큰 효용을 보지 못했지만.
심연의 뱀이 근방에 있던 놈을 꿰뚫으려던 순간, 그 찰나 만에 상대는 이미 저 멀리 떨어져서 경계의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빨라. 역시 대인전에 특화되었다는 무림계 출신인가. 그래도 이만한 경신법을 사용하는 상대는 처음인데.’
쾌속의 일격과 이탈.
경신법은 무술과 내공이 주가 되는··· 통칭 무림계 차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애용되는 수법으로, 마법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뭐지, 그건? 평범한 마기가 아니군. 그토록 음습하면서도 순수한 기운이라니. ···천마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는데.”
마귀의 손을 닮은 검붉은 강기를 양손에 덧씌운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자신만만했던 이전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심연의 기운을 직접 마주한 그는 극도로 경각심이 치솟은 모습이었다.
‘그걸 지금 깨달아 봐야 이미 늦었지만.’
투웅—
한스의 가벼운 발 구름 한 번에 음습한 파동이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동이 지나간 자리에서, 빛조차 빨아들이는 짙은 심연이 피어올라 그들을 감싼 결계를 뒤덮었다.
즈즈즉! 즈즉!
기존의 결계는 놈을 잡아두기에는 불안한 감이 있어 좀 더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그것을 보강하는 작업이었다.
놈이 그 기동성으로 결계를 부수고 달아나면 상당히 곤란했으니까.
“···하! 이 몸을 상대하면서 느긋하게 진법이나 만지고 있었단 말이지? 이 천살마제 님을 앞에 두고?”
그런 한스의 모습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기세를 날카롭게 벼리던 상대가 이를 갈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휘황찬란한 자신의 별호를 당당하게 밝히면서!
‘어우, 자기 입으로 유치하게 천살마제가 뭐야···. 부끄럽지도 않나?’
지켜보는 자신이 다 민망할 지경 아닌가.
하지만 그는 상대의 언행을 한심스러워하는 내면과는 달리, 평소 배려가 몸에 밴 신사답게 놈이 머쓱하지 않도록 장단을 맞춰주었다.
[크흐흐흣— 기껏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자아,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꾸나!]
당연하게도, 이미 마모된 양심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
콰아앙!
“크헉! 이 끈질긴 놈이!”
그렇게 약 1시간.
싸움은 생각 이상으로 길게 이어졌다.
사실 상대의 무력도 대단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 기동성 때문에 영 까다로웠던 것이다.
중간부터 놈이 도주를 시도하며 흔들린 결계의 손상도 상당했는데, 사전에 보강해 두지 않았으면 정말로 놓쳐버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슬슬 끝나가는군. 다행히 「개체 투영」 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겠어.’
쉬아아악—!
앞쪽으로 뻗은 그의 손을 중심으로 심연의 기운이 그물처럼 퍼지며, 놈의 퇴로를 차단하듯 사방을 뒤덮었다.
“젠장! 뭐 이런 거지 같은 기운이!”
곳곳의 상처를 통해 죽음이 육체를 침식하는 와중에도 놈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거세게 반항했다.
‘확실히 자신만만할 만했네.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마법사와의 전투 경험도 얼마 없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저 천살마제에게 일반적인 흑마법은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몸을 뒤덮은 호신강기는 강대한 항마력을 부여했고, 날카롭게 정련된 마귀의 손은 공격적인 마력의 흐름을 가닥가닥 끊어 놓았다.
그걸 이용해 어지간한 흑마법은 마력의 흐름을 따라 쳐내기도, 흘리기도, 아예 갈라버리기도 할 정도였으니, 평소보다 더한 수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
[하지만 그것도 심연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하필 그의 기운은 심연과의 상성이 극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탁하고 불안정했던 내공이 그것과 마주할 때마다 빠르게 오염되며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주 공격해서 쳐내든, 호신강기로 막아내든 꾸준히 대미지가 누적된다.
그로서는 미칠 수밖에 없을 지경.
하지만 사실 이것조차도 아우테리카에서의 위용에 비하면 한스의 전력이 상당히 약화된 것이었다.
‘흑마력과는 다르게 심연의 기운은 지구에서 효율이 반감된단 말이지. 마치 신성력처럼···. 기운에 따라 뭔가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군.’
그동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강자를 상대로 전력을 투사하다 보니 그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래도 이것에 관해서도 여러 기운을 통해 비교하며 실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은 할 수 없는 방법이었으나 그는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는 간단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아무리 아우테리카에서 보다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냥 흑마력만 운용하는 것보다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에 맞서서 이렇게 오래 버티는 상대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였지만···.
푹! 푸북! 푸화악!
그 반항도 이제 끝이었다.
“커헉!”
마침내 놈이 피하지 못한 심연의 줄기가 하나둘 그 몸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굶주린 맹수처럼 죽음의 침식이 그간 혹사당한 육체를 게걸스럽게 파고들었다.
[아주 훌륭하구나. 너라면 대단한 언데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다. 뜻밖에 횡재했군.]
“크아악! 개소리하지 마라! 나는 강환계의 공포로 군림한 천살마제다! 현경(玄境)에 오른 내가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것 같으냐!”
고오오—!
요동치는 강대한 내공과 함께 거친 손짓으로 심연을 뜯어내는 마귀의 손.
하지만 몸이 이 지경인 이상, 아무리 내공이 많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강환계··· 확실히 차원에 대해 알아보다가 얼핏 본 기억이 있어.’
그런데 한 차원의 공포라고까지 불렸다니, 한스랑 상당히 비슷한 타입이지 않은가?
상대가 동업자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촤르륵!
“끄윽!”
천살마제가 다시 사방에서 짓쳐 드는 심연에 구속된 채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스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강환계의 공포라··· 나와 비슷하구나. 이것도 인연인데 특별히 너에게만 알려주도록 하마.]
상대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에 답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렇게 칠흑 같은 심연의 결계로 뒤덮인 공간 안에서.
이 세상의 모든 부정함을 한데 모아 빚어낸 것 같은 부조리한 존재가 한 인간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몸이 바로 아우테리카에 강림한 공포이자 대륙의 절망, 죽음의 지배자인 불사왕이시니라.]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이 녀석에겐 말해봤자 의미도 없을 테니까.
이윽고 한스의 손에서 뻗어 나온 심연이— 천살마제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