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165화 (165/284)

#165

그 시각 서쪽에선 (1)

깡—! 깡—! 깡—!

찌는 듯한 열기 속에서 청량하게까지 느껴지는 금속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치이이익—!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그 박자는 이내 수증기가 터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집중해라! 쓸데없이 계산적으로 따지지 마! 불이 하는 말을 듣고 금속의 마음을 느낀 후 그대로 움직여라!”

이어서 어김없이 자오닉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교육 첫날부터 이어진 그의 호통 섞인 지도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워드는 스킬까지 생길 정도로 제법 사전 준비를 잘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드워프 장인인 자오닉의 눈에 그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애초부터 여기에 투자한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니, 가르침 도중 거친 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스파르타식으로 배우니까 확실히 빨리 느는 게 느껴지네. 그간 독학할 때와는 천지 차이야.’

그는 집게로 집은 금속을 눈으로 한번 훑은 후 다시 화로에 넣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자오닉의 가르침··· 즉, 드워프의 방식은 그간 그가 접했던 야금술의 기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본격적인 가르침에 들어가기 전, 하워드는 수준 파악을 위한 테스트에서 자신이 그간 익혀왔던 기본기를 완벽하게 선보였다.

현대 과학의 정확한 수치에 따른 체계적인 금속 가공 과정을.

하지만 나름 자신만만하게 선보인 시연이었음에도, 거기에 따라온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한 마디로 평하자면 ‘군더더기가 많다’였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인간다워서 드워프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물론 네가 지금껏 배워왔던 기술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기는 하니까. 물론, 네가 드워프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하워드도 익히 깨달은 바지만, 드워프가 가진 감각은 인간과는 그 결이 달랐다.

인간이 당연히 거쳐야 할 많은 과정을 생략하면서도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수학 문제를 풀 때 암산할 수 있으면 굳이 복잡한 공식이 필요 없는 것처럼.’

그리고 드워프는 그런 암산이 가능한 건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공학 계산기를 탑재하고 있는 부조리한 종족이었다.

그게 그들이 장인의 종족이라 불리는 이유이며, 다른 종족의 방식을 따라 하는 걸 비효율적이라고 단언하는 근거였다.

따라서 자오닉이 당장 중점적으로 가르쳐 준 것은 무언가의 비기 같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기초부터 가르칠 필요는 없겠구나.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건 단 하나! 바로 ‘드워프의 방식’을 제대로 깨우치는 것이다! 나머진 그다음 문제야!”

일단 드워프 장인으로서의 이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까놓고 말해 이전처럼 철저한 공정을 지켜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그냥 느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가까웠다.

‘거참,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결과물은 훨씬 더 좋으니 뭐라 할 말도 없고 말이야. 생각해 보면 원래 장인이라는 게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고···.’

그래, 과학적인 통계와 수치는 어찌 보면 그저 평균값에 불과했다.

다루는 금속과 불을 지피는 연료, 심지어 담금질에 쓰이는 액체까지 그 상태가 그때그때 미묘하게 다르며, 그걸 다루는 이의 컨디션도 일정하지 않다.

과학적 정량은 최소한 실패작이 나오진 않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런 양산품이 아니라 일정 선을 넘어 명품을 만들어 내는 진짜 ‘장인’이 되기 위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은 여러 잔재주보단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할 때라는 거지. 그럼 지구에서 가져온 고급 기술들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고서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겠군. 뭔가 아쉬운데···.’

까앙—! 까앙—!

그렇게 하워드가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자오닉은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놀라움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단하군. 학습 속도가 굉장히 빨라. 처음부터 쓸데없는 버릇이 조금 있는 걸 빼면 기본기 자체는 썩 나쁘지 않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그가 생각했던 수준을 넘어섰다.

하워드는 모든 가르침을 순식간에 흡수하며 하루하루 일취월장하고 있었고, 그에 자오닉도 신이 나서 더 적극적으로 가르침에 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계속 정감이 간단 말이야. 혹시 같은 조상을 가진 먼 핏줄인가?’

또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는 그런 감성적인 이유도 약간은 포함되어 있었다.

왠지 남 같지 않아서 자꾸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그가 그 이유를 깨달을 날은 영원히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따아앙—!

‘아?’

그리고 근 한 달간의 지도 끝에.

무아지경으로 망치를 휘두르던 하워드는 마침내 자신이 어떠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군. 이것이···.’

특별히 바뀐 건 없었다.

감각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손끝은 평소처럼 섬세하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타오르는 불꽃이 말을 건다.

여기서 화력을 조금만 더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피부에 와 닿는 금속의 진동에 공감한다.

그것이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선 어딜 어느 강도로 두드려야 할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신기하네. 진짜로 이런 기분이 들다니.’

잡생각은 거기까지.

하워드는 그 감각에 홀린 듯 무아지경에 빠져 불과 금속이 바라는 대로 순응했고···.

그렇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순간—.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수스킬「드워프식 창작논리」를 획득합니다.》

그제야 그는 진짜 드워프 장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거기다 그 사실을 축복하듯, 떠오른 메시지는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타이탄이 당신을 굽어봅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수스킬「불과 금속의 노래」를 획득합니다.》

그와 동시에 화로 안에서 얌전히 타오르던 불꽃이 거칠게 일렁이더니, 한 가닥의 불줄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그의 주위를 가볍게 휘감고서 사라졌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멈칫한 하워드는 눈만 껌벅거리다 기억을 되새겼다.

‘타이탄이라면···.’

드워프들의 신앙을 받는 존재, ‘불과 금속의 신’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 바로 그것이었다.

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불경하다고 여기는 그들의 문화상 평소 둘러 말하고는 있지만, 에나멜 대륙에 존재하는 드워프 국가의 이름도 ‘타이타니아’일 정도로 드워프 사회에선 경외 받는 이름이었다.

‘방금 일을 계기로 뭔가 관심받을 조건을 만족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지금 타이밍에 자신을 드러낼 리가 없을 터.

어쨌든 새로운 후원자의 등장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짝짝짝—

“축하한다, 하워드! 설마 벌써 그걸 깨우칠 줄이야! 게다가 화로의 축복이라니, 신께서도 네 재능을 눈여겨보시는 것 같구나.”

자오닉이 박수를 치면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퍽퍽 두들기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유망한 드워프들은 몇 번씩 겪게 되는 현상이라는 것 같았다.

화로 앞에서 뭔가 의미 있는 물건을 만들거나, 신의 마음에 드는 장인이 벽을 넘어서 성장 할 때 주로 나타나는 관심의 표현이라고.

하워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공방에 가득 찬 열기가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호흡에 딸려 들어오는 화기(火氣)가 한결 친숙하게 느껴졌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근방의 금속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놓여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불과 금속의 노래」는 말 그대로 두 속성에 대한 친화력을 끌어올려 주는 스킬인가. 숙련도가 오르면 뭔가가 더 있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지금은 그 정도가 한계로군.’

어떤 식으로든 스킬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그가 수련의 성과를 만끽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좋아! 드디어 기본을 갖췄으니 이제야 제대로 된 가르침을 줄 수 있겠구만! 이제 안 봐줄 테니 잘 따라오라고! 으하하핫!”

여전히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 있던 자오닉이 그 말과 함께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자, 하워드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딱히 봐준 것 같진 않았는데.’

하지만 어떤 가혹한 환경이든 대수롭지 않게 따를 수 있는 그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바라고 할 수 있을 터.

제작은 경험이 중요한 만큼, 다른 분야보다 시간적인 측면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었고—.

그 한계를 넘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남들보다 몇 배나 되는 노력이 필요했으니까.

“자, 그럼 곧바로 시작해 볼까?”

“예! 어르신!”

그렇게 변방의 한 공방에서 드워프 장인 하나가 스승의 인도하에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심연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카르마 도핑으로 강화된 강철 같은 육체를 가지고서.

***

탈리아 왕국 브라이트 공작가 심처.

똑똑—

“로드, 테오도르입니다.”

“들어와라.”

뮬로에게 대륙 정세에 관한 보고를 듣던 하인즈는 슬쩍 고개를 돌려 집무실로 들어오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옆에 자리해 있던 뮬로와도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한때는 적대 클랜이었다가 이제는 ‘하이브리드’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되었으나, 전면전이 벌어졌던 것이 얼마 전이었던 만큼 아직 서로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경지와 지위도 모두 비슷한 입장이라 또다시 라이벌처럼 엮이기도 했고.

물론 둘 사이의 그런 미묘한 사정 따위야 윗사람인 하인즈가 알 바 아니었다.

“그래, 테오도르. 일은 전부 끝났나?”

“예, 조만간 오기로 예정된 아이들이 각 지역에서의 마지막 인원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는 녀석들을 제외하면, 곧 유페르쉬의 잔존 세력이 모두 탈리아 왕국으로 집결하게 되지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던 유페르쉬 클랜의 이주 작업.

대륙 전체에 퍼져 활동하던 최대 규모의 뱀파이어 집단이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 면이 있었다.

“수고했다, 테오도르. 그동안 고생이 많았군.”

“아닙니다. 로드께서 다시 주신 기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또 이 또한 저희 뱀파이어 모두를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기회가 오자마자 곧바로 아부를 곁들이는 테오도르.

클랜 로드 출신이라 지금도 다소 딱딱한 뮬로에 비해, 이전에도 이인자로서 보냈던 사회생활의 관록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다시 은밀한 기 싸움이 시작되건 말건, 하인즈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로써 「정제혈정」으로 하이브리드의 전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지배 체계를 확고히 다지는 작업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혈정이 소모되었지만, 다행히 잔뜩 비축해 뒀던 드래곤의 피 덕분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번에 올 놈들에게도 「정제혈정」을 주입하면 첫 번째 단계는 끝이란 말이지. 그럼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군.’

하인즈 2세가 가진 목표.

처음에는 대륙 전역에 걸친 정보 조직을 꾸리는 것이 전부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한 가지가 더 생겨 버렸다.

‘드디어 전면으로 나설 준비가 되었군.’

바로 뱀파이어라는 종족을 양지로 끌어올려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다른 종족, 그중에서도 수가 많은 인간에 기생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종족이었다.

당연히 대륙에서의 인식도 엘프나 드워프 등의 이종족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노릇.

‘사실 정상적인 종족이라고 보기에도 힘들지. 피를 먹는 거야 그렇다 치고, 자체 번식이 불가능해서 감염으로만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그래서 뱀파이어는 존재 자체가 인류의 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인즈도 직접 겪어봤지만 피에 대한 갈증은 개인의 의지로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인간 또한 역사적으로 오랜 천적이었던 그들을 항상 경계했다.

그렇게 서로 마주하게 되면 반드시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이니, 막강한 세력을 가진 뱀파이어들도 언제나 숨어서 인간을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공존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있다면 말이지.’

내부적으론 철저한 규율과 통제, 외부적으론 대륙 정세와 정치적인 협상까지.

이 세상에서 오직 하인즈 2세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둘 다 그만하고 자리에 앉아라. 브리키가 오면 곧바로 회의를 시작하지.”

“예! 알겠습니다.”

“제가 마실 걸 내오도록 하지요.”

“······.”

그렇게 이온 대륙 극서부의 변방에서 오랜 세월 어둠 속에 살아가던 뱀파이어들이 조용히 태동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클랜 연합,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또한 대륙의 역사를 바꿀 커다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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