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173화 (173/284)

#173

규슈 크라이시스 (5)

한국 귀환자 협회 서울 남부 지부.

“흠흠흠~ 오, 이거 신작 나왔네? 이런 건 바로 질러 줘야지.”

지부장 윤지윤은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업무용 컴퓨터로 딴 짓을 하고 있었다.

한창 바쁘던 예전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호사였지만, 최근 여유가 좀 생기고 난 후부터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상이었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

“아, 김 비서 왔어? 그럼! 요즘엔 아주 살 맛 난다니까?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솔직히 그동안은 좀··· 그랬잖아?”

“하하하···. 부정할 수 없군요.”

씁쓸하게 웃은 비서가 그녀에게 새로운 보고서를 건넸다.

당연히 그녀가 바쁠 때마다 항상 함께 바빴던 그도 예전보다 지금이 마음에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흐음, 역시 일본 쪽에서 여러모로 난리네. 협회장님은 골치 좀 아프겠어. 이능관리국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하회탈이 한국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거참, 우리한테 뭐라 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데. 하여간 국가를 막론하고 정치하는 인간들은 건수만 나왔다 하면 지랄이라니까?”

다 읽은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은 지부장은 기지개를 켜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일단 보고서를 받긴 했으나, 이번 일에 한해서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지금까지와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역시 적당히 높은 자리가 최고야. 괜히 쓸데없이 고위직에 올라가봤자 신경 쓰일 일들만 수두룩한데. 지금도 그렇잖아?”

“하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군요.”

비서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서울 남부 지부장 윤지윤은 겨우 지금의 위치에 있을 만한 인사가 아니었으니까.

한국 공식 최강을 꼽을 때면 항상 세 손가락에 드는 그녀는 전송되었던 이세계에서 무려 백 년에 걸쳐 이어지던 대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위대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시차로 인해 이미 그녀가 귀환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이후 그 세계에 방문한 지구인들은 세계 곳곳에 남은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역사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것은 물론, 주요 도시에 세워진 거대한 동상과 위인전, 연극, 노래 등···.

심지어 그녀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전쟁고아들을 거둬 세웠던 ‘윤’가(家)는 이미 최고의 명문가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라고 하니, 간접적으로 그 대단함을 접한 지구인들은 귀환하고 나서 그녀를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황송스러워 할 정도였다.

그녀를 한 번 만나겠다고 일부러 외국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도 하회탈이 있으니까 범죄율이 줄어서 일도 편하고 좋은데 말이야. 하긴 일본은 우리랑 사정이 다르니 어쩔 수 없나.”

“그것 때문에 일부러 직접 나서지 않으셨던 겁니까?”

“으응? 아니, 사실 내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거기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었잖아?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는 거지. 뭐, 진짜 겁먹고 사린 녀석들도 꽤 있겠지만.”

그녀의 말대로 하회탈에 대한 추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지만, 정말 최상위권의 각성자가 직접 그를 잡기 위해 나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압력에 마지못해 나선 게 대부분.

그래도 하회탈이 워낙 신출귀몰했던 탓에 그들 간의 직접 충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하회탈 하는 거 속 시원해하는 이들이 한둘이야? 지금도 봐, 알아서 범죄율도 줄어들고 얼마나 편해? ···조금만 더 협조적이었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말이지.”

그것 때문에 무능하다는 등의 욕을 좀 먹긴 했으나, 지금의 평화를 생각해 보면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회탈이 정치권의 부패까지 싹 다 쓸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인데.’

하지만 그렇게 한국의 기득권층까지 직접적인 타깃이 되어 버리면, 이능관리국과 귀환자 협회도 그를 회유하려는 지금의 방침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마 하회탈도 그 사실을 아니 대놓고 강력범들만 노리는 것일 터.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와 사회의 자정 작용은 체제를 따르는 당사자들에게 맡기고 말이다.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땍땍거리는 정치판의 인사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주물렀다.

그렇게 딴생각하는 와중, 갑자기 비서가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본 그녀가 슬쩍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뭔가를 따로 연락받았는지 심각한 얼굴로 태블릿을 확인하곤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듯한 기색.

덩달아 불안해진 윤지윤이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뭔가 사고라도 터졌어?”

“······.”

“자꾸 그러면 나 불안해지잖아. 왜? 무슨 일인데?”

그녀의 거듭된 재촉에 굳어있던 비서는 아무 말 없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한쪽 귀에 끼고 있던 무선 이어폰과의 연결을 해제하자···.

[캬아아아악——!]

스피커에서 새어 나온 굉음과도 같은 포효 소리가 굉음처럼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어? 이게 무슨···!”

윤지윤은 황급히 태블릿을 받아 들곤 다시 영상을 확인했다.

계속 반복되는 그 동영상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유리처럼 깨져 나가며 불길한 검은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CG로나 볼 수 있을 법한 괴물이 등장해 시커먼 기운과 함께 어느 야산의 상공을 유영했다.

멀리서 찍힌 영상이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굉장히 익숙한 인상착의의 인영을 그 머리 위에 올려둔 채로.

“잠깐, 이거 설마···”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 방면에서 찍힌 영상입니다!”

“···이게 현실의 지구에서 찍힌 거라고?”

그녀가 입을 떡 벌렸다.

자신이 다녀왔던 세계에서는 본 적 없는 생소한 괴물인 건 둘째 치고, 대체 그 격이 얼마나 높으면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만한 존재감이 느껴진단 말인가?

아니, 그 전에 지구에 이계의 존재가 나타나는 게 말이 되나?

“역시 이거, 하회탈이겠지?”

“···그렇겠죠.”

“하, 하하하··· 야단났군.”

태블릿을 책상에 내려놓은 그녀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정체를 꽁꽁 감추던 왕자님의 데뷔 무대가··· 이렇게 대형 뉴스로 시작하게 될 줄이야.”

그녀가 본 영상은 하나였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영상이 계속해서 범람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은 건 물론이고, 자동차의 블랙박스와 심지어 우연히 근방의 맛집을 소개하던 인터넷 방송인의 실시간 방송까지.

불과 조금 전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한국의 서울에 있는 그녀가 곧바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세계화 시대에서 이렇게 확실한 ‘증거’ 영상까지 있다면, 그 여파는 딱히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짐작대로.

이 사건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

폭발적인 반응.

일본에 등장한 본 드래곤 사태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었다.

그 관심은 이세계에서 돌아온 귀환자와 간접적으로만 이계의 문물을 접했던 평범한 시민들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고, 이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뭐야? 저거 뭐임? 드래곤이야? 본 드래곤?

-미친! 저게 왜 지구에서 튀어나와? 이거 합성 아냐?

└지금 올라오는 영상이 한두 개가 아니다. 전부 다양한 각도에서 찍힌 것들이야.

-이계의 언데드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지? 어떻게 법칙을 우회한 거야? 제발 나도 알려줘! 그것 때문에 힘들게 가져왔던 내 아이들은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헐ㅋㅋㅋ 네크로맨서 딱 걸렸네. 여기요 여기! 빨리 잡아가ㅋㅋ!

└?? 너 어디 사니? 해커 고용하는 데 얼마 안 한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이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소환사 계통의 귀환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능력에 대한 지구인의 적성은 최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좋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고만고만한 수준에 정체되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희소해졌다.

오죽했으면 환경적인 문제로 수가 적기로 유명한 정령사보다 더할 정도일까.

그렇게 ‘이계의 존재’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상황에서, 무려 본 드래곤이라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이거 보고 조작이라는 놈들은 뭐냐? 화면 너머로 보는데도 간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데.

└맞어, 그래서 영상 속에서 저거 직접 본 사람들 비명 지르고 난리 났잖아. 찍힌 거리랑 엄청 떨어져 있는데도.

└아 ㅅㅂ 장난으로 우리 집 개한테 틀어줬는데 갑자기 오줌 지림. 니들은 하지 마라. 어린애들한텐 절대 보여주지 말고.

무엇보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요소는 바로 영상으로도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현실감이었다.

상당히 많이 희석되었음이 분명할 텐데도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그 생생함과 오싹한 포효는 많은 이들이 그것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 영상들이 여러 사람에 의해 순식간에 분석된 건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선 자’의 정체가 한국에서 한창 말이 많았던 ‘하회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게 왜 진짜임? 그냥 어그로성 괴담인 줄 알았는데;;

-으아아! 드디어! 진실은 승리한다! 이 더럽고 추악한 음해 세력들아!

-아ㅋㅋㅋ 망상증 어쩌고 하던 놈들 전부 닥칠 걸 생각하니 속이 편—안.

그에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무시에도 꿋꿋하게 하회탈의 존재를 부르짖던 이들이 환호와 함께 그의 업적을 부지런히 퍼 날랐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영상과 함께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조금 당황스럽게도.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과한데.”

그 사회 현상이나 다름없는 전개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하던 한성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내둘렀다.

하회탈의 존재가 증명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그동안 퍼진 업적까지 인정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의 인상에 깊게 남은 본 드래곤의 영상이 일종의 설득력이 되어, 지금껏 괴담처럼만 떠돌던 이야기에 강한 신빙성을 부여했으니—.

그로 인해 그를 지칭하는 말도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었다.

비공식 한국 최강, 한국의 밤을 지배하는 자, 범죄자들의 사신, 어둠 속의 수호자, 새벽과 함께 기어 오는 영원한 죽음의···.

‘아니, 마지막 건 아니군. 누구야 이런 장난을 친 게? 기어 오긴 누가 기어와.’

덤으로 최근에 추가된 별명으로는 ‘드래곤 라이더’와 ‘열도 폭격기’가 있었다.

“···뜻하지 않은 유명세를 타게 생겼네. 아니, 따져보면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간 증거 자료가 남는 것을 극구 피했던 것에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사회적 통념상 자신이 하는 일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리했었던 것일 뿐.

‘이제 와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게 철저히 감추지 않아도 됐는데.’

오히려 지금처럼 이름값을 더 높여 존재감을 키우는 쪽이 범죄를 예방하는 억제기로서 더욱 효과적일 터였다.

빌런놈들이 뭔가 일을 벌이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나저나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군. 번천회.’

헤라토스의 심연 브레스를 이용해 놈들의 이면 세계를 부순 직후.

한스는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곧바로 새로운 결계를 설치해 퇴로를 봉쇄했다.

지금 나돌아 다니는 동영상들이 그리 길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놈들도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공간이동으로 도망갈 줄이야. 그 전에 추가로 몇 놈을 더 잡긴 했지만, 영 수지가 안 맞아.’

아무래도 고유스킬은 결계로도 막기가 쉽지 않은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놈들도 고르고 골라 선별된 정예 인원이었으니, 급하게 설치한 결계를 뚫고 도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 이해 못할 일은 아니겠지.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면 공간을 사용했던 양복 남자를 집요하게 노린 끝에 결국 놈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 또한 드높은 격을 지닌 이였으나, 대부분의 능력이 고유스킬 쪽에 치중되어 있었는지 전투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스킬이 강제로 파괴된 여파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아니지? 생각해 보니 딱히 놈들을 놓쳤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잖아?’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앞마당에 쳐들어간 침략자는 한스였고, 놈들은 거점을 지키기 위해 마중 나왔던 요격 부대였다.

또 이제 고작 규슈 하나를 정리했을 뿐.

청소할 지역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놈들은 이미 패퇴한 상태이며, 한스를 몰아붙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인 ‘이면 세계’의 사용자도 사망한 상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망쳐 봤자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피식—

“어디, 집이 활활 불타는 데도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 있나 볼까?”

그렇게 한국의 한 방구석에서 음흉하게 울려 퍼지는 비웃음 소리와 함께.

하회탈, 한스가 일본의 다음 지역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놈들의 소굴에 불을 지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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