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다가오는 손길
한국의 한 커뮤니티.
<그런데 일본에서 본 드래곤 나타난 이후로>
-이제 하회탈도 포기했는지 사진이나 동영상 찍히는 거 안 막는 거 같더라? 며칠 지났다고 갑자기 증거자료 겁나 쏟아지네ㅋㅋ 전부 일본에서 찍힌 거긴 하지만.
└그렇게 화려하게 데뷔해 놓고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웃기지. 근데 정작 그 본 드래곤은 왜 다시 안 꺼내냐고! 다시 보고 싶다고!
└하 형··· 언제 다시 한국 와···? 하 형 없으니까 밤길이 무서워ㅜㅜ
└그래도 하회탈 일본 갔다고 다시 하나둘 튀어나오던 빌런들이 요즘엔 금방 사라지던데? 드디어 가디언이 일하기 시작한 듯ㅋㅋ
하회탈이 규슈에서 본 드래곤을 공개하고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그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인터넷에선 연일 화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
물론 지금도 매일 같이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는 있다지만, 그때의 충격은 고작 며칠이 지났다고 사그라질 만큼 약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뇌리에 그 존재감이 강렬하게 때려 박힌 건 물론, 무려 해외 토픽에도 오를 정도였지 않은가!
타국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인들이, 얼굴에 한국의 대표적인 가면을 쓰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하회탈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저렇게 맘대로 설쳐도 됨?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나?
└팩트) 하회탈은 이미 한국에서도 맘대로 설친 범죄자다.
└근데 이거 따지고 보면 나라 망신 아님? 자국에서 잡지 못해서 놓친 범죄자가 국외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이러면 우리나라 입장이 뭐가 되냐고;;
└뭐 어때, 일본에서도 그 범죄자를 못 잡고 있는데.
그의 과격한 행보에 불편함을 느낀 이들의 수도 그리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마음대로 심판을 남발하는 범죄자라는 것, 거기다 악명이 자자한 흑마력을 사용하는 네크로맨서라는 것이 드러난 마당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또 하회탈의 소식이 전해진 해외에서 보이는 반응도 대체로 그와 비슷했다.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함께 깔린 은근한 거부감.
그런 면에서, 현재 실시간으로 ‘정화 작업’이 진행 중인 일본 내의 여론은 이런저런 의견이 섞여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 가면 쓴 다크 히어로가 어제 우리 동네에 다녀갔다. 오늘 보니까 거기 주변에 경찰들이 쫙 깔려있더라.
-그동안 경찰이건 가디언이건 신경도 쓰지 않던 놈들이라 무서워서 눈치만 보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제 좀 마음 놓고 지내도 되려나?
하회탈의 방문 이후 따라올 변화에 은근한 기대감을 보이는 이부터.
-나 후쿠오카 사는데, 확실히 체감되긴 하더라. 물론 얼마 안 가서 잔챙이들이 빈자리에 들어앉긴 했지만.
-그래도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달라서 전보다는 훨씬 나아. 이것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내가 사는 곳도 그래. 새로 들어온 애들은 일단 사리는 면이 있기도 하고. 지금 이렇게 세가 꺾였을 때 이능국이 확실하게 대처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 무능한 놈들이 제대로 일을 하길 바라는 것보다 그 가면 히어로가 다시 오길 기도하는 게 더 빠르겠지?
이미 그가 다녀간 후의 결과에 은근한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람.
-다들 저능아임? 한국인 범죄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일본인들을 학살하고 있는데, 대체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냐?
└내 말이. 이능국은 뭐 하는 거냐? 빨리 그놈 안 잡고!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그런데 그 하회탈, 야쿠자 같은 범죄자들만 사냥한다는데?
└야쿠자는 일본인 아니냐? 잡아도 우리가 잡아야지 왜 한국 놈이 나서냐고! 이거 한국에 배상받아야 한다.
└이미 죄다 유착관계라 안 잡으니까 문제 아닐까?
국가 간의 감정에 무작정 거부감을 표현하는 유형과 그에 반론하는 이들까지.
아무래도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특정 조직으로 넘어가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바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 일본 내의 범죄 조직들과, 하회탈을 잡으려다 오히려 한방 먹고 물러섰던 번천회가 그 대표적인 이들이었다.
***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중국 내의 한 숙소.
지잉— 징—
머릿속에서 작게 진동하는 기계음과 함께, 휠체어에 앉은 삼십 대의 사내가 마치 로봇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일정하게 눈을 움직였고.
그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수집되어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들이 고스란히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정보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이 재미 삼아 분석해 인터넷에 올린 내용까지 철저히 검토해서 첨부한.
그야말로 지부의 총력을 기울인 정보수집의 결과물이었다.
“쯧.”
하지만 집무실 모니터에 띄워진 보고서를 전부 읽어 내린 사내, 율령자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불만스러운 혓소리를 낼 뿐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연신 눈 사이를 주무르면서.
“율령자~? 이거 참,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때 문득.
갑자기 들려온 경박한 목소리에 그의 몸이 움찔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이 방 안엔 자신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 눈가를 주무르던 손을 내리며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다.
“···닥터.”
역시 그곳엔 산발한 회갈색 머리와 지저분한 수염의 익숙한 중년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래, 새로 단 눈은 좀 괜찮습니까?”
“예, 덕분에.”
“푸햐햣! 그렇죠, 제 덕분이죠! 그래서··· 더 실망이지 뭡니까?”
언제 신나게 웃어 재꼈냐는 듯 한순간에 정색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끝을 올리는 닥터.
언제나처럼 이리저리 널뛰는 그의 분위기에 율령자는 그저 고개만 숙여 보일 따름이었다.
“일본에서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다면서요?”
“···면목 없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본 드래곤이라니! 저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친구더란 말이죠? 파햐햐햣!”
그렇게 광증이라도 도진 듯 다시 웃음을 터트린 닥터는 이내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자신이 찾아온 본론을 꺼내 들었다.
“회주가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회주의 동향은 극비사항이었다.
물론 율령자도 번천회의 발원지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부장인 데다, 주요 조직원들의 금제를 담당하는 만큼 절대 낮은 지위는 아니었다.
아마 그에게도 곧 소식이 전해졌겠지.
하지만 역시 회주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닥터보단 정보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회주도 그 본 드래곤을 보고 굉장히 흥미로워하더군요! 평소에도 원래 그런 특이한 걸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설마···?”
“그렇습니다! 이참에 그 스마일 마스크를 한번 직접 보겠다고 하지 뭡니까? 물론 저도 한자리 낄 생각이고 말이지요! 프힛!”
“회주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오라클은···”
그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율령자가 다른 이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자, 실실거리며 웃던 닥터의 표정이 못 들을 것이라도 들은 듯이 팍 구겨졌다.
“···흥, 어쩐 일인지 여자도 이번엔 영 확신이 없더란 말이지요? 그러니 뭐 어쩌겠습니까?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 그는 으스대듯 말을 이었다.
“뭔 일만 하려 하면 시끄럽게 땍땍거리던 여자가 입을 다무니 속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미래란 정해진 게 아닌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거지 않겠습니까? 회주도 참 그런 여자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들은 가진 능력과 성향상 서로 대척점에 위치한 이들로, 서로 간에 굉장히 사이가 나빴다.
닥터가 회주의 오른팔이라면 그녀는 왼팔.
아마 그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그들이 이렇게 한 조직에 있는 일도 없었겠지.
“그럼 회주는 지금.”
“우햐햣! 그 성격 알면서 뭘 물어봅니까?”
과연 그 말 대로.
뭔가를 예감한 율령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는···.”
철컥—
그때, 닥터의 말을 끊듯 예고도 없이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다들 오랜만이군. 율령자, 몸은 좀 괜찮은가?”
낮은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 기묘한 공기를 두른 한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 보면 평범한 것 같고, 다시 보면 숨 막힐 듯한 위압감을 풍기면서도, 제대로 보려고 하면 흐릿하게까지 느껴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
“네, 걱정해 주신 덕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크~ 악마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맞춰 왔군요, 회주!”
암중에서 전 세계의 이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가적 범죄 조직, 번천회의 수장.
모종의 일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던 그가 마침내 다시 중국 땅을 밟았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하회탈을 직접 잡기 위하여.
***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쿵—
평소대로 집안 체육관에서 루틴을 이어가던 나는 육중한 바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열심히 귀를 후볐다.
‘씁,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런 걸로 따지자면 짚이는 바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허리를 숙여 바벨을 집어 들었다.
“후읍—!”
아무래도 한스는 이래저래 욕먹는 포지션일 수밖에 없었다.
이세계에서야 따로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엔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도 공개적으로 활동하게 되며 한창 말이 많이 나오는 시점이지 않나?
당연히 그런 여론의 추세는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론에 따라 행동 방침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일본을 뒤엎는 과정에서 번천회의 함정을 깨부쉈고, 역으로 놈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지금까지의 경험대로라면 당하고서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니, 아마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있을 터.
자신은 그저 그때를 대비하며 지금까지 하던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가면 될 뿐이었다.
‘놈들의 거점을 완전히 불태우는 작업을 말이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이 공들여 세웠을 탑을 무너뜨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첫 충돌 이후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놈들에게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래도 설마 일본을 완전히 버릴 생각은 아닐 테니 그 기한이 그리 길지도 않을 거야.’
당연히 두 번째에는 좀 더 철저히 준비해서 오겠지만, 번천회가 어떤 준비를 해 오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젠 거리낌 없이 꺼내 쓸 수 있게 된 본 드래곤 헤라토스와, 새롭게 합류한 어비스 레버넌트 살마는 물론···.
‘여차하면 그냥 튀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소환 해제라는 궁극의 도주기 또한 언제든 준비되어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지구는 됐고. 아우테리카 쪽 상황은 좀 복잡하지만··· 뭐, 이만하면 그럭저럭 순조로운 편이겠지.’
쿵—
다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벨이 바닥에 놓였다.
그렇게 훈련 세트를 끝마친 나는 어깨를 풀며 슬쩍 옆쪽을 바라보았다.
“후욱! 훅—! 훅!”
전신에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과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은 거친 호흡.
그곳엔 어깨에 바벨을 걸친 채 스쿼트로 하체를 단련하는 가벼운 차림의 훤칠한 청년이 있었다.
‘음, 역시 잘생겼군.’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 정체는 이번에 새로 생성할 수 있게 된 아바타, ‘휴고’였다.
언제나처럼 생성된 직후부터 극한의 하드 트레이닝 모드에 들어갔던 것.
다만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이라면··· 이번엔 특별히 외모를 수정하지 않아, 초기에 만들었던 분신들처럼 이쪽과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커스터마이징」의 외모 수정은 나중에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그런 휴고가 지금 맡고 있는 임무는 이런저런 잡일들과 함께,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 대역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걸로 최근 「개체 투영」을 사용해 자주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생기는 공백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
물론 그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터이나, 원래 만사가 불여튼튼인 법이었다.
‘흠, 그보다···.’
어깨에 수건을 걸친 채 샤워실로 향하는 길.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이세계 쪽의 상황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잠깐 저쪽에 좀 더 집중해 볼까?’
아우테리카에서도 나름 의미 있는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니까.
***
푸른빛이 소용돌이치는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하인리히가 가장 먼저 마주한 이는 그에게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서 오세요, 성자님.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주변의 빛을 산란시키는 밝은 은발과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
등장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지는 후광을 두른, 리에스타 세인트 하티아누스 성녀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용사 일행을 반겼다.
“로셀리아 대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침내 하인리히가 긴 외유를 마치고, 2차 대륙 정상 회의의 참여를 위해 성지의 대신전에 도착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