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제론의 고난 (4)
불사성 내부의 거대한 대전.
좌우로 수많은 데스나이트들이 도열한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검은 드레스의 귀부인이 왕좌에 앉은 이를 향해 예를 갖춰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하명하신 대로, 대륙 침공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옵니다···. 여전히 성자의 예지 때문에 기습의 이점은 크지 않사옵니다만···. 이번엔 저들의 준비가 미흡한 틈을 타, 압도적인 전력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요···.]
이어서 그 반투명한 귀부인, 밴시 퀸 올리비아가 이번 작전의 성과를 차근차근 나열했다.
불사왕의 명에 따라 구성된 습격 부대가 십여 곳이 넘는 장소를 일제히 타격했고, 그중 용사 파티가 개입한 곳을 비롯해 몇몇 장소 외엔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언데드 군세는 이후 각국의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처음부터 소수의 지휘관을 제외한 병졸들은 모조리 소모품이었으니 딱히 손해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언데드야 이 불사성 근처에서 넘쳐나는 것이었으니까.
[크흣— 수고했다, 올리비아. 감히 이 몸을 상대하면서 그런 안일한 대처라니. 한동안 놀아주었다고 이쪽이 아주 우습게 보였나 보군.]
그녀의 보고가 마무리되자 해골과 뼈로 이루어진 왕좌에 앉은 한스가 작은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는 성 인근에서 바글바글하게 느껴지는 언데드들을 잠시 가늠하다가 차오르는 아쉬움을 속으로 삼켰다.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수가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대륙을 뒤집을 수 있었을 터인데. 며칠간 준비하고도 십여 곳을 공격하는 게 한계라니.’
당연한 얘기지만, 병력으로 쓸 수 있는 언데드들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들을 침략 지점까지 옮기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애초에 그 정도 대규모 군세를 대륙 전역에 파견하는 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그나마 이 몸 정도나 되니 가능한 일이지.’
본디 마법사란 존재는 철저한 준비가 갖춰진 환경에서야말로 최고의 능률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흑마법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불사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대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을 촉매로 불사성을 거대한 마법진의 핵으로 삼는다. 거기다 이 몸의 무한에 가까운 흑마력까지 공급된다면···.’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성 한 편에 마련된, 언데드에 한해 대규모 운송을 가능하게 하는 포탈이었다.
불사성이 오롯이 그의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는 궁극 마법 ‘영겁의 미궁’이었기에 가능한 일.
굳이 이 포탈의 단점을 하나 꼽자면, 기본적으로 보내는 쪽에 특화된 일방통행이라는 것이었는데.
어차피 귀환할 수 있는 건 소수의 지휘관 개체뿐이었으니, 그 정도야 리치라도 몇 대동하고 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또한 전에 명하셨던 조사도 진행하고 있사옵니다만···. 송구스럽게도 남부의 핵심 인사에게 접근하는 것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옵니다···. 다만, 동부에 소재한 오바이포 클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사온데···.]
그는 올리비아의 추가 보고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외부와의 모든 교류를 단절한 남부 부족 연맹.
마치 탈리아 왕국의 경우를 답습하는 것처럼 공화국의 정국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동부의 오바이포.
‘놈들이 이 시기에 한꺼번에 움직인 게 우연일 리 없다.’
추가로 이번에 제국에서 있었던 황녀 암살 미수와 해리스가 한창 수사 중인 에나멜 대륙의 이상까지.
하나같이 전부 의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놈들을 방치하는 쪽과 처리하는 쪽. 어느 쪽이 더 이득일까.’
물론 그는 단순히 놈들이 문제를 일으키기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이 진행 중인 ‘대륙 침공 계획’으로 막대한 카르마를 벌어들이는 것밖에 없었으니.
‘일단 놈들이 있으면 대륙을 무너뜨리는 덴 더 용이하겠지. 단기적으로야 그쪽이 카르마 수급량이 더 클 테지만···. 장기적으론 안방극장의 변수가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불사왕 한니발 스트라우스는 자신과 연결된 다른 아바타들의 상황을 쭉 훑어보다가 이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래, 아무래도 한 번쯤 직접 나설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앞으로 다가올 대형 사건을 암시하는 한마디를.
***
스타브가 발톱 형상의 단검을 들어 올렸을 때.
‘아··· 이렇게 끝인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의외로 라일리가 느낀 죽음의 공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해 온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놓아야 할 인연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컸으니까.
‘세아 언니, 많이 슬퍼하겠지?’
특히 가족 이상의 친분을 다져왔던 이세아를 떠올리자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자신을 위해 줄곧 여러모로 노력해준 그녀에게 보답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하고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니.
‘괜히 복수한다고 무리하지 말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갔으면 좋겠네.’
그다음으로 떠오른 이는 이세아와 같은 지구인인 헤스페론이었다.
사실 그와는 그리 길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일이 터지기 직전부터 그 존재감이 선명하게 인식되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혼자서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단이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꺼내 배신자들과 싸우는 와중, 점차 강해지는 연결을 통해 어렴풋이 느껴진 그의 감정.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로 뭔가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었다.
‘그냥 혼자라도 도망치라니까···.’
아까부터 몇 번이나 그렇게 속으로 외쳤으나 그는 그저 묵묵부답으로 하던 일에만 열중할 뿐.
솔직히 잠깐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도 이젠 정말 끝이었다.
휘익—!
마침내 스타브의 손에 들린 기괴한 단검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으니.
라일리는 차마 그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고···.
동시에 헤스페론과의 ‘통로’에서 순간적으로 뻗어진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강하게 움켜잡았다.
쿨럭—
그 직후, 뭔가 익숙함을 느끼고 다시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담긴 것은.
“어우 씨, 아슬아슬했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로도 감춰지지 않는— 눈부시게까지 느껴지는 자신만만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아!”
그리고, 라일리가 눈을 번쩍 떴다.
늘 봐 왔던 익숙한 천장.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낯설게까지 느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꿈인가···.”
그녀는 부드러운 비단으로 감싸인 이부자리에서 부스스 상체를 일으키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윤기가 흐르는 금발이 사르르 넘어가며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눈부시게 산란시켰다.
“아.”
아직도 그때가 생생했다.
하긴, 그때라 해봐야 고작 하루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그녀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곤 서둘러 채비를 갖춰 밖으로 나섰다.
당연하지만, 황녀 습격 사건은 제론에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가져왔다.
웬 피투성이의 사내에게 안긴 그녀가 황궁의 정문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을 때, 허가되지 않은 공간 이동에 부리나케 달려온 경비대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이미 황태녀 자리까지 내정된 현 황위 제1 계승권자를 암살하기 위해 수도에 테러까지 벌였으니 난리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흉수가 황가의 사람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황실 수호대장이라지 않나?
덕분에 황실 수호대는 대대적인 조사를 위해 업무가 마비되기에 이르렀고, 그 일을 위해 제국 감찰부와 황궁 마탑은 물론 오직 황제만을 위해 움직이는 근위 기사단마저 나섰을 정도였다.
아마 연일 계속되는 불사의 군대의 습격이 아니었다면, 또 그녀가 자신은 무사하다는 전언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세아도 가만있지 않았을 터.
당연히 당사자인 라일리 황녀 또한 그와 관련해 오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오셨습니까, 황녀님.”
“간밤에 별일은 없었나요?”
헤스페론이 입원해 있는 황실 병원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잠들어있는 그를 바라보며 옆에 선 병원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몇 차례 고열이 있긴 했으나, 금방 회복되어 지금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마법사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몸이 단련되어 있더군요. 사실 그게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정도로 버티지도 못했을 겁니다.”
황궁 외곽에 자리한 이곳은 사후 세계의 대척점이라 불릴 정도의, 그야말로 제국 최고의 의료진들이 한데 모인 초호화 병원이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약을 다룰 수 있는 약사, 외과 시술로 잘린 신체마저 완벽하게 봉합할 수 있는 의사, 포션은 물론 인공 장기 배양마저 가능한 연금술사, 치료 마법만을 전문적으로 익힌 고위 마법사, 심지어 주신교단에서 초빙해 상주하는 주교급 사제까지.
그 성녀가 있는 성지의 로셀리아 대신전 병동과 쌍벽을 이룰 정도란 말까지 돌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으나···.
“꽤 공들여 치료했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다만, 앞으로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 건 각오를 해야겠지요.”
“···장애···라니, 어느 정도의···?”
당연히 이곳에서도 불가능한 건 있었다.
라일리의 떨리는 목소리에 황실 병원장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대꾸했다.
“오른쪽 눈은 스스로 제물로 바쳐 힘으로 바꾼 탓에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습니다. 그만한 수준의 마도구는 대부분 엄중하게 관리될 텐데,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군요.”
하다못해 그냥 외상으로 인한 손상이었으면 어떻게 재생 시술을 하든, 아예 새로 배양한 안구를 이식하든 할 텐데.
그 손실이 특정 의식의 대가로 치러진 것이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오른손 또한··· 심연과 뒤섞여 변질된 저주가 깊게 파고든 탓에 완치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는 있으니, 지금처럼 저주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봉인으로 억누르는 게 최선이지요.”
그러나 그는 곧 힘을 과하게 사용한다면 오른손에 봉인된 저주가 다시 날뛸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스테이터스가 강화되었다지만 헤스페론은 고작 갓 하급을 벗어난 마법사였다.
그런 그가 수많은 고위 기사와 맞상대한 건 물론 극의에 달한 기사의 발목까지 잡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무리한 힘의 행사에 아무런 대가가 없을 리 없었다.
그나마도 하인리히의 신성력이 아니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겠지.
“아, 이쪽은 아예 절단한 후 새로운 팔을 이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재활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부작용 때문에 이전만큼의 힘을 낼 순 없겠습니다만, 앞으로 마법사로만 살겠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요.”
평생 위험한 봉인을 달고 살면서 이전의 힘을 유지하느냐, 전보다 약해진 팔을 새로 다는 대신 아예 화근의 싹을 잘라버리느냐의 양자택일.
라일리는 깊은 잠에 빠진 헤스페론을 떨리는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깨어나면··· 스스로 선택해야겠지.
이 사내의 넘치는 재능을 알고 있는 그녀로선, 지금 상황이 못내 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흠, 이거 너무 무능한 소리만 한 것 같아 송구스럽군요. 그래도 과도한 흑마도구 사용으로 손상된 원기와 생명력은 어떻게든 원상복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재료들을 상당히 많이 사용했지만, 황녀님의 생명의 은인이라니 그 정도는 해야겠지요.”
그 뒤를 이어 병원장의 감정 없는 말이 추가로 이어졌으나, 라일리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헤스페론만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러자 병원장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신조였지만, 그게 눈치까지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스윽—
그렇게 병원장이 나간 직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던 그녀가 천천히 한 손을 뻗어, 빼곡하게 룬 문자가 각인된 붕대에 감싸인 그의 오른팔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손길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 잠든 것처럼만 보이는 그의 오른쪽 눈가로 향했다.
“···또, 빚을 졌네.”
아직 전에 입은 빚도 다 갚지 못했는데.
혼자 도망갈 수 있었으면서도 자신을 구하겠다고 무리하게 위험한 물건들을 꺼내 쓰던 그였다.
아마 사용자인 본인도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겠지.
‘···바보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선택했다.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녀를 구한 걸로 만족한다는 듯 후회 없는 미소를 지으며.
울컥—
라일리는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에 황급히 그에게서 손을 떼고 숨을 골랐다.
그러고도 잠시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다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몸을 돌려 병실 밖으로 나섰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아직 그녀에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렇게 병실 밖으로 나선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얼어붙고, 마침내 병동을 완전히 빠져나왔을 땐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느껴지는 기세가 풍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됐죠?”
“도주한 스타브 경은 현재 추적 중입니다만,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아 곧 잡히리라 예상됩니다.”
“낙오된 자들은 이미 전원 구속을 마쳤으며, 추가로 협력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심문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사건이 벌어지기 전, 이상 행동을 보인 이들의 명단을 작성 중입니다. 오늘 내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직이 중얼거린 그녀의 말에, 어느새 하나둘 그림자처럼 뒤에 달라붙은 수행원들이 저마다 몇 마디씩을 덧붙였다.
“특급입니다. 그 배후까지 확실하게. 아시겠죠?”
“네, 모든 인원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선제공격을 당해 잔뜩 독이 오른 철혈 황녀가 보복을 위한 이빨을 드러냈다.
그간 모아왔던 세력의 힘과 제국의 협력까지 한데 끌어모아서.
***
에나멜 대륙 엘븐 킹덤의 변방 지역.
알 수 없는 직감을 따라 수색에 나선 지 나흘째.
해리스는 마침내 그 원인으로 파악되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저건 또 뭐야···.’
이족 보행에 짐승의 머리를 한 그들은 수인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가진 기운은 판이한, 그동안 그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던 종족이었다.
뱀파이어와 비슷할 정도로 배척받으며, 보는 순간부터 본능적인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늑대 인간, 라이칸스로프.
그런데 그들을 보자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직접 시선을 두지 않으면 기감만으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흐릿했다.
그것 때문에 그도 놈들을 발견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지 않았나.
아마 느낌에 따라 대략적인 위치를 정하고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그라도 이렇게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중대한 사실마저도 지금 당장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심연의 균열이 왜 여기에 있어···?’
그들의 앞에서 아주 예쁘게 뻥 뚫린, 빛조차 빨아들이는 새카만 구멍의 존재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