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217화 (217/284)

#217

라이칸스로프 (2)

이 정도 스케일의 일을 벌이는 놈들이다.

당연히 실행 부대가 이 한 무리만 있지는 않을 터.

더 많은 수가 엘븐 킹덤 곳곳에, 어쩌면 대륙 여기저기에 퍼져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륙 전체야 감당할 깜냥이 안 되지만···.’

어쩌면 엘븐 킹덤의 영역 안에 있는 놈들 정돈 이쪽이 먼저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원래라면 이상을 보고한 직후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해리스입니다. 엘븐 킹덤 북쪽 산지에서 심연의 균열을 생성 중이던 라이칸스로프 무리를 발견···.]

현장 수습을 마치고 정신을 집중한 그는 「별의 관조자」를 통해 다른 하이 엘프들에게 이곳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추가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대로 외곽 수색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최상급 정령이 된 파스칼의 공기 침대에 축 늘어진 채, 감각이 이끄는 대로 이동하면서.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계를 강화해야겠군요. 혹시 모르니 주변국들에도 연락해 놓겠습니다.]

연락을 받은 엘프 여왕의 골치 아픈 듯한 한숨과 함께, 드라샤에서 세계수 네트워크에 접속한 하이 엘프들이 저마다 한두 마디씩 떠들기 시작했다.

[하하핫! 솔직히 어디서 대충 시간만 때우다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먼저 나설 줄이야. 역시 자네도 할 때는 확실하게 하는군! 이거 안심이야.]

[호루트 님? 아무리 은퇴까지 한 연장자시라지만, 해리스 님도 세계수께서 선택하신 분입니다. 존칭을 사용해 주십시오.]

[···흠흠. 저기, 그럼 저희도 외곽 수색에 나서면 되는 건가요?]

그래봐야 여왕과 세실리를 포함해 고작 넷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필 세 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무엇보다 세계수님의 안위가 최우선입니다. 섣불리 이곳을 비울 순 없어요. 추가적인 외곽 수색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도록 하죠.]

현재 엘븐 킹덤에 소속된 하이 엘프의 수는 모두 여덟이었다.

세실리와 해리스가 개안하기 전까지는 고작 여섯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한 명은 이미 대외 업무에서 은퇴까지 한 상황.

거기다 지금은 라포리와 리디아는 물론, 신전 건설 건으로 한 명이 더 이온 대륙으로 떠난 상태라 남은 여력이 많지 않았다.

‘에나멜 대륙은 안전하다고 방심하다 허를 찔린 셈이군.’

물론 그렇다고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드라샤에 있는 네 명의 하이 엘프를 제외하더라도 엘븐 킹덤의 강자들이 적은 건 아니었으니까.

잠재력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하이 엘프가 되지 못한 평범한 엘프들도 개별적인 수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었다.

“흐아암—.”

이후, 세계수 네트워크로 의견 조율을 마무리하고 연결을 끊은 해리스가 공기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포근하고 안락하며, 속도도 빠른 전용 이동 수단.

그는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럼, 나는 다시 수색을 시작해 볼까···.’

코앞에 닥친 문제도 해결하고, 세계수님께 후원도 받고, 엘프 사회에서 명망도 챙기고.

이 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외유였다.

···역시, 조금 많이 귀찮긴 했지만.

***

까드득— 까득—

입안에 들어온 뭔가를 열심히 씹어 삼킨 할리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육체에 생소하면서도 뭔가 익숙한, 굉장히 만족스러운 유전자 정보가 새겨지고 있었다.

‘역시 장군급이 껴 있어서 그런가? 최근엔 영 쓸 만한 놈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거 생각 이상으로 괜찮구만! 나랑 궁합이 굉장히 좋아.’

해리스가 보내 준 라이칸스로프의 결정들.

다른 이종족과는 달리 그들은 반쯤 마물이나 다름없던 만큼 심장에 마석과 흡사한 결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육체변이」를 비롯한 스킬들과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해 나가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녀석들이라 그런가.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군. ···그리고, 지금까지 내게 부족했던 게 뭔지 알 것도 같고.’

반쯤 마물에 가까우면서도 사냥감의 심장을 먹고 성장하며, 극한의 육체 능력은 물론 변이 능력까지 갖춘 존재.

라이칸스로프는 그와 공통점이 매우 많은 종족이었다.

‘누가 봐도 내가 더 상위호환처럼 보이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가 제법 오래 벽을 마주하고서야 깨달은 사실···, 자신에게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만 빼면.

드래곤을 비롯한 온갖 괴물들의 유전자 정보를 강탈하고, 수많은 거인을 해치워 광기로 배를 채웠음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존재와는 달리, 여타 연구자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스가 만들어낸 키메라인 그는.

생명체로서 치명적인 설계상의 문제가 있었다.

‘신’이 직접 개입하여 만든 종족인 라이칸스로프와는 다르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그는 절대 초월에 이를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지!’

라이칸스로프의 결정을 모조리 먹어 치우고 쩝쩝 입맛을 다신 할리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낄낄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방금 그 ‘신’의 설계도를 훔쳐본 셈이었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이로써 보다 완전한, 궁극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결핍이 채워지지 않았는가!

‘후흐흐, 이럴 땐 고기 파티지!’

그렇게 만족감에 젖은 할리가 잔뜩 꺼내든 고기로 혼자만의 자축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역시··· 이 거인, 단순히 광기의 하수인이 아닌 것 같네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린 그가 리에스타 성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기다리던 일이 이제야 끝난 모양이었다.

“소환의 매개체가 광기였던 탓에 어쩔 수 없이 그것만 가지고 나온 거겠죠. 다른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하며 강해지는 건··· 굳이 말하자면 원래의 힘을 되찾는 과정일 테고요.”

그녀는 이미 토벌되어 부스러지고 있는 거인 앞에서, 신성력을 손에 두껍게 두른 채 놈의 핵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하아, 당장 세상에 퍼진 광기도 신경 쓰이는 마당에. 이러다 정말 멸망하는 나라가 더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대륙 전체에 퍼진 광기의 농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젠 단순하고 다혈질인 사람이라면 인간조차 그것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처음 대륙에 퍼진 광기의 양엔 한계가 있었으나, 그것은 몬스터의 체내에 들어가 끊임없이 숙주를 자극하며 서서히 몸집을 부풀렸다.

그렇게 늘어난 광기는 설령 숙주가 죽더라도 다시 대기 중에 퍼지거나 더 강한 포식자의 몸속으로 들어갈 뿐이었고, 자연스레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킁! 그거 다 봤으면 이제 먹어도 되나? 빨리 안 먹으면 그것도 흩어져 버린다고!”

“···여기 있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아 물론이지! 내가 지금껏 먹은 게 몇 갠데! 으하하핫!”

그런데 그 와중에 광기를 직접 먹어 치워 통제할 수 있는 할리라는 변수가 떡하니 나타나지 않았나!

어쩌면 그의 존재가 광기 사태를 종결지을 열쇠일지도 모르는 만큼, 결국 그녀는 찝찝하게 여기면서도 애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리에스타가 구슬을 냉큼 입안에 털어 넣는 그를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던 순간.

움찔!

갑작스럽게 뭔가를 느낀 그녀가 당황한 기색으로 어느 방향을 돌아보았다.

···역시, 심연의 경계를 타고 다수의 거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성녀님?”

한동안 굳어있던 그녀는 옆에 있던 하인리히가 조심스럽게 몇 차례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인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상당히 많이. ···다섯?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그 생각 이상의 심각한 사안에 조용히 휴식을 취하던 이세아와 지오스, 리디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인은 단 한 개체만으로도 약소국 정돈 휘청이게 만들 수 있는 재앙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이 한꺼번에 다섯 이상이라면, 그것은 제국조차 당장 전력을 다해 나서야 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놈들이 더 강해지기 전에 서둘러 제거하지 못하면 정말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었으니까.

“성녀님! 일단 가장 취약한 곳부터 좌표를 공유해 주세요! 일단 그곳부터 최대한 빨리 정리를···!”

그렇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도 계속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리에스타를 이세아가 연신 재촉했다.

공간 이동을 준비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최대한 빨리 이동하기 위해선 머뭇거릴 틈이 없었는데!

하지만 그 독촉에도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은 그녀는 목에 걸린 성표를 쥐고 눈을 감으며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번엔 저희가 나서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세아 님이라도 곧바로 대륙을 건너는 건 힘드시겠죠?”

“네? 그거야 그렇지만··· 설마?”

“후우, 일단 대신전에 연락해서 라포리 님을 통해 소식부터 전해야겠네요. 왜 또 이런 일이···.”

그간 소란과 한 발 동떨어져 있던 에나멜 대륙에 등장하기 시작한 백색 거인들.

그것도 처음부터 다섯 이상에 달하는 개체의 동시 침공이다.

제때 대처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겠지.

-해리스 : 아, 이건 또 무슨···.

안타깝게도 거리가 너무 멀어 리에스타도 제대로 된 출현 좌표를 알 순 없었으나, 그래도 사태를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엘븐 킹덤 외곽을 비행하던 해리스가 다시 급하게 하이 엘프들에게 소식을 전파하고 있을 때···.

“끄응— 속이 영 더부룩한데.”

거인의 핵을 삼킨 직후, 일행들의 심각한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져 있던 할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물론 강철조차 씹어 먹고 소화할 수 있는 그였으니 정말 소화불량 따위의 문제는 아니었다.

“으읍! 꺼어어억—!”

요란한 트림 소리와 함께, 마치 굴뚝처럼 그의 입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자욱한 수증기.

그와 동시에 그에게서 극명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입을 포함한 칠공과 전신 모공에서 자욱한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건 물론, 그의 몸이 달군 쇠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초고온의 열기에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어? 할리 씨? 갑자기 왜 그러시는···.”

“잠깐! 뒤로 물러나십시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광란의 야수」와 「광룡의 심장」, 「광기 제어」가 합쳐져 「광기의 폭군」으로 진화합니다.》

그것은 그저, 언젠가 일어났어야 할 일이 생각보다 일찍 터진 것일 뿐이었다.

설마 조금 전에 혼자 낄낄거렸던 게 이렇게 금방 돌아올 줄은 미처 몰랐지만.

이전까지 존재하던 ‘결핍’이 사라지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부피만 키우고 있던 광기가 압축되며 일정 농도를 넘어섰고.

그에 영향을 받은 스킬들이 진화함과 동시에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며—.

마침내, 그의 육신이 자신을 제한하던 벽을 깨부수고 한 단계 위로 도약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돌연변이」와 「육체변이」, 「거대화」가 합쳐져 「궁극의 진화 생명체」로 진화합니다.》

할리에겐 무에 대한 깊은 고찰도, 진리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도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생명체로서의 끝’과 ‘무한한 진화’라는 모순적인 목표.

《특수스킬「궁극의 진화 생명체」가 하위능력인 「초재생」과 「괴력」, 「신경과민」을 흡수하고 더욱 강화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온 무수한 생명체의 정보와 가능성.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세포 단위의 분석과 조율.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쌓아 올린 집념 어린 업은···.

그의 육신을 한계 너머로 ‘초월’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러서세요! 지금 다가가면 위험합니다!”

“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역시 아까 그 거인의 핵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한순간에 광기를 포함한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할리를 피해 서둘러 뒤로 물러난 일행이 얼굴을 굳혔다.

그들의 안력으로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자욱한 수증기 안에서 연신 뼈가 뒤틀리는 살벌한 소리가 나고 있으니 당연한 노릇.

그들의 모습에 내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하인리히가 차분하게 웃으며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저건 그냥 단순히···.”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카하하핫하하——!”

공간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

할리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아! 기분이 상쾌하고 좋긴 한데, 배고파서 짜증 나기도 하고! 역시 일단 뭔가 먹어야겠지? 그런데···.’

그러다 문득, 자신의 몸에 새겨진 각인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예술 작품과도 같은 아름다운 근육 위에 새겨진 갖가지 신비로운 문양들.

“쓰읍, 이거 영 성에 차지 않는데.”

자신은 최고이자 최강의 생명체였다.

당연히 자신을 표현하는 것들도 모조리 최고여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할멈이 뭐라고 했더라? 뭔가 끝내주는 걸로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났다.

부족 연맹의 문제를 해결하면 투왕의 각인을 새겨주기로 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대륙 전체에서 여러 문제가 터짐과 동시에 남부와의 교류도 끊겨, 함부로 그쪽으로 향하지 못하고 따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교단 측에서 한참 달래보려고 시도하는 참에, 용사 파티가 그걸 무시하고 무작정 쳐들어가 봤자 싸우자는 소리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지?’

그냥 다 때려 부수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그 전대 대족장이라는 놈이 원인일 텐데, 그놈만 해치우면 단교고 뭐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 가자, 바로!’

강한 것뿐만 아니라 현명하기까지 한 자기 자신에게 감탄하며, 그렇게 마음을 정한 할리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입에 문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우물거리는 채로.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던 하인리히는 조용히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성자님? 괜찮으세요?”

평소처럼 고기를 씹으며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리를 보고 안심하던 동료들이 의아한 듯 말을 걸었으나.

그는 그것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아, 주신이시여···.’

본의 아니게, 또라이가 하나 더 늘어버렸으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