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타라크에서 (2)
<개체 정보>
-개체명 : 하워드
-종족 : 드워프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괴력」, 「신경과민」, 「혜안」, 「제노글로시」
-개체 특성 : 「장인정신」, 「드워프식 창작논리」, 「불과 금속의 노래」, 「장인의 혼」, 「야금술」, 「정밀 세공」
-특이 사항 : 수습 단계를 넘어 한 사람의 어엿한 드워프 장인이 되었다. 불과 금속 두 속성에 강한 내성을 가진다. ‘성장의 비약’의 영향으로 모든 행위에 추가적인 성장 보정이 가해지고 있다.
자오닉에게 배운 드워프의 비의, 「장인의 혼」.
쉽게 말해서 그것은 평범한 제작을 넘어서 좀 더 특별한··· 즉, 마도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었다.
이렇다 할 마법 회로나 주술진 따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순수한 제작 과정을 통해 물건에 마나를 때려 박아 신비를 새기는 힘.
물론 그것도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나 가능한 일인지라, 아무렇게나 마도구를 펑펑 찍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는 남들보단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편하게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역시 세계수의 가지. 성능 확실하군.’
불을 피우는 연료로서는 그야말로 끝판왕.
그 불길에 닿는 것만으로도 재료가 되는 금속은 특별한 힘을 품게 되고, 그것은 그대로 「장인의 혼」을 사용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으니.
괜히 수준 높은 장인들이 세계수의 가지에 환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능 전투용 전신 슈트? 에잉, 거 그냥 전신 갑옷 아닌가?”
다르다!
아무튼, 아주 다르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해 봐야 제대로 납득시킬 수 없겠지.’
역시 결과로 보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하워드는 완성된 팔 파츠를 들고 「정밀 세공」으로 만들어진 내부 부품을 살펴보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오닉의 가르침을 몸에 새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학습 중이던 지구의 지식으로 만들어져— 서로 연계되듯 맞물려 조립된 부품들.
당연하게도, 그 부품들 하나하나엔 모두 「장인의 혼」이 깃들어 특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아직은 사용된 재료의 수준도 떨어지고 재현할 수 있었던 기술도 그리 많지 않지만.’
겨우 프로토타입일 뿐이니 여기서 더 발전할 여지는 충분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온갖 공학 지식을 포함해 여러 세계의 기술이 집대성된 설계를, 이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현지화하여 현실로 만드는 것.
그가 그렇게 결심을 다지는 와중에도 자오닉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뭐, 그렇게 완성된 다음 강화 인챈트까지 더해지면 끝내주는 갑옷이 만들어지기야 하겠군. 그리 참신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듣자 하니 제국 근위 기사단은 전원이 그런 갑옷으로 무장했다던데.”
그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로셀리아 대신전에서 수리 중인 하인리히의 갑옷, 영광의 수호 역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사실상 이 세계의 정상급 갑옷은 다 그런 공정으로 제조되는 것이었다.
“거, 두고 보십쇼! 내가 아주 그냥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걸 보여줄 테니까!”
“오호?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아, 당연한 소릴!”
하워드는 툴툴거리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완성된 파츠를 곱게 챙겨 넣었다.
이제 고작 팔 한 짝.
나머지를 모두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마법 공정과 에너지원 연결 등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긴 했지만···.
‘차근차근 하자, 차근차근. 원래부터 금방 완성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어차피 시차 덕분에 시간적 여유야 충분했으니, 굳이 너무 서두르다 일을 그르칠 필요도 없었다.
이상과 현실이 맞물린 상황 속.
타라크의 한 공방에서 그의 자그마한 꿈이 순조롭게 그 실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가득한 넓은 침실 한복판.
“후우— 하—.”
그 중심에 놓인 커다란 침대 위에서, 대여섯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가 심호흡과 함께 연신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확실히 대단하네.’
그 꼬마, 호루스가 이 세계로 넘어온 지도 벌써 이틀째였다.
그동안 그가 한 것이라고는 줄곧 휴버트의 저택에 틀어박힌 채,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폴리모프」를 반복해 두 육체에 적응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원래 드래곤이 이런 걸까, 아니면 그만큼 비약의 효과가 대단한 걸까.’
아마 둘 다겠지.
그는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강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만물의 군림자」의 영향으로 호흡과 함께 폐 안으로 빨려 들어온 마나가 체내를 휘돌고는 그대로 심장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로 흡수된다.
그 과정에서 심장에 품은 에너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골드 드래곤」이 제공하는 육체 보정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적응하는데 더 힘들기도 했지.’
그렇지 않아도 그간 경험했던 이종족과는 차원이 다른 드래곤의 육체인데,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감각이 어긋나는 바람에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말았다.
“웃챠—!”
하지만 그것도 불과 방금 전까지의 이야기.
호루스는 누운 자세에서 가볍게 허리를 튕겨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여전히 겉모습은 초기의 어린 상태 그대로였으나, 완벽히 통제하에 들어온 육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효율 면에서 이전과 차원이 달라졌다.
‘아직 드래곤 상태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평소엔 인간 모습으로 지낼 거니까 상관없겠지.’
멸종했다 알려진 드래곤, 그중에서도 새끼인 해츨링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대륙에 적잖은 파장이 일 터.
물론 그것도 카르마를 벌어들이기엔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나, 확실한 힘을 갖기 전에 나서는 건 귀찮아질 소지가 다분했다.
‘전면에 나서는 건 확실한 힘을 가지고 난 후에 하자. 이왕이면 외양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나서.’
이제 겨우 아우테리카 진입 이틀 차.
아직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처음 드래곤 아바타를 떠올렸을 때는 등 뒤에 용사 하인리히를 태운 채,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탄 불사왕과 대적하는 장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언제가 되어서야 그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역시 빠르게 힘을 얻기 위해선 마법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그게 「용언 마법」과의 시너지도 좋을 테고. 그렇게 힘을 키우다 보면 어떻게든···.’
그렇게.
호루스가 짧은 상념에 젖어있던 찰나—.
“과연, 틀림없는 해츨링이군.”
분명히 그 혼자만 있던 방 안에서, 갑자기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엑?!”
그 소리에 진심으로 깜짝 놀란 호루스가 펄쩍 뛰고.
그는 서둘러 소리가 난 방향에서 몇 걸음 물러나며 자세를 낮추고 그곳을 경계했다.
‘언제?’
이곳은 휴버트의 거주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에도 온갖 마도구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본인 이상으로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결계와 마도구를 몇 겹이나 중첩으로 발동해 설령 극의에 오른 이라도 절대 쉽게 침투할 수 없는 곳이거늘.
그런데 그 모든 방비를 무시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내부로 들어와, 완벽하게 인간 아이로 변한 호루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다니.
그는 긴장한 기색으로 눈앞의 침입자, 칙칙한 금발에 노란 눈을 한 30대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호루스의 날카롭게 치뜬 동그란 눈매와 피곤한 듯 흐릿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시선이 한데 뒤엉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라?’
그를 마주한 순간부터 느껴지던 간질간질한 기분에 좀 더 상대를 자세히 살펴본 호루스는.
이내 본능적으로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드래곤!’
오랜 세월 대륙의 역사에서 모습을 감춰, 이제는 멸종했다고 알려진 드래곤.
그것도 그의 동족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드 드래곤이 그의 앞에 있었다.
“결계 내부에 있기에 갇혀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조용히 들어오길 잘했군.”
그 정체불명의 드래곤이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시선을 다시 호루스에게 향한 그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며, 억지로 다정함을 끌어올린 듯한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골드 일족의 엘더 드래곤, 슈리하트겐이다. 어린 해츨링이여,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엘더 드래곤이라면 평범한 성룡보다는 위, 최고참인 에이션트보다는 아래 단계인 이들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역사의 산증인이자 그만한 무력을 겸비하고 있는 재해와도 같은 존재.
“···호루스.”
“호루스?”
그에 호루스는 어린애처럼 뻗대고 싶어 하는 치기 어린 본능을 애써 억누르고,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의 이름을 툭 내뱉었다.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오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긴장을 놓고 편하게 대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장하고 있던 덕분에.
“···이상한 이름이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슈리하트겐이 툭 내뱉은 한 마디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네 이름이 더 이상해!’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치미는 거야 어쩔 수 없었지만.
***
예상했던 대로 슈리하트겐은 순전히 호의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명맥이 끊겼을 거라 생각했던 일족의 마지막 해츨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뜻하지 않게 의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군. 이 또한 드라카리온께서 은혜를 베푸신 거겠지. 휴레이오네까지 놈들에게 당하고 난 후엔 이제 골드 일족도 끝이라고 생각했거늘.”
그렇게 그는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일족의 비사를 늘어놓았다.
오랜 전쟁 끝에 기어이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어린 해츨링마저 희생되었던 순간을.
‘휴레이오네?’
그리고 호루스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뇌리를 스친 과거의 기억에 그것을 어디서 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골드 드래곤 해츨링 휴레이오네의 드래곤 하트 (910,000)』
‘아, 그거···.’
호루스 자신의 매개체가 되었던 드래곤 하트.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 주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왠지 민망해지는 기분에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딴청을 피웠다.
“···내 아이는 아니었다만, 일족의 모든 이들이 그 아이를 귀여워했지. 장난기만큼 애교도 많은 녀석이었기에 혼을 내다가도 저도 모르게··· 아, 이런.”
그에 한창 추억에 잠겨있던 슈리하트겐은 그런 호루스의 반응을 보고 말을 멈추곤, 이내 뭔가를 오해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군. 너를 보니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떠올라서 그만. 이렇게 미련을 가져 봐야 양쪽 모두에게 실례겠지.”
사과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노룡(老龍).
그 성실한 모습에 호루스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 그는 다시 입을 열며 하던 말을 이었다.
“사실 네가 어디서 왔든, 그 정체가 무엇이든.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역시 그도 호루스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긴 했던 모양이다.
하긴, 조금 전에 막 마지막 해츨링이 사망한 이야기를 마친 직후이지 않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또 다른 해츨링이 갑자기 튀어나온 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게 잠시간 서로 눈을 마주하는 두 드래곤 사이로 잠시 적막이 스쳤다.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닫고 있는 호루스 대신,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슈리하트겐이었다.
“다만 넌 지금 이 세상에 남은 골드 일족의 마지막 해츨링임에 틀림없고···”
그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호루스와 시선을 맞추며—.
“무엇보다 드라카리온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셨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이내 뭔가를 선언하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 호루스를. 골드 일족의 마지막 후계로 인정한다.”
마지막 후계.
우우웅—
그 말이 끝나는 즉시, 언어에 담긴 의미가 호루스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세상과 공명하듯 드래곤 하트가 떨리기 시작하고—.
저도 모르게 취한 듯 비틀거리던 그는, 이내 자신이 이 세상의 무언가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진짜 용언(龍言)인가?’
아직 「용언 마법」의 성취가 낮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어쩐지 큰일이 지나갔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렇게 후계자를 보내주시다니. 덕분에 의무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만···. 과연, 신께서는 짓궂으시군.”
그 알 수 없는 의식의 여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호루스를 바라보던 슈리하트겐이 너털웃음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골드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일족의 유산 관리를 대행하는 자.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의 죽음과 함께 그것들 모두가 아직 살아남은 다른 일족에게 전해졌겠으나.”
그리고 호루스는 그제야 피곤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 담긴 것이 피로가 아니라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골드 드래곤 일족은 정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때마침 나타난 자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가만? 그렇다면 설마.’
마침내 그가 남긴 말들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이내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자, 호루스는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해 눈만 끔벅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흐릿한 미소를 지은 슈리하트겐이, 하던 말을 마저 끝맺었다.
“···이젠 모두 너의 것이다.”
···그렇게 호루스는 그 ‘의무’라는 것과 함께.
난데없이, 수만 년간 이어져 내려온 어마어마한 명문가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