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뱀파이어 라이즈 (1)
파지지지직—! 파직—!
지금까지 일어난 것의 배 이상으로 맹렬한 스파크.
그 심상치 않은 반응에 시종일관 상대를 밀어붙이던 하인즈가 굳은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바이포와의 싸움은 생각 이상으로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와 하인즈의 계급은 같은 성혈.
그 안에서도 굳이 고하를 나누자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오바이포 쪽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인즈가 가진 압도적인 스펙은 그 정도 차이쯤은 가뿐하게 무시하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다른 여러 스킬의 영향은 차치하고서라도, 「혼혈진화」를 통해 높아진 종으로서의 격이 아예 둘을 같은 종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 났으니까.
뱀파이어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성혈끼리 비교했을 때도 두 배 이상의 간극이 있을 정도로.
‘이 정도면 오히려 지는 게 이상할 정도지.’
그런 스펙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인즈는 철저하게 오바이포를 몰아붙였다.
의념과 혈마력이 쉴 새 없이 맞부딪쳤으며 동시에 육체적인 충돌도 반복되었다.
그대로 계속 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난하게 놈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파지짓—! 콰앙—!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두 성혈이 재차 맞부딪치며 주변으로 강한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갔다.
오바이포를 중심으로 팽창하는 의념에 그의 영역이 밀려나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2페이즈인가.’
아무래도 놈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크으으— 나, 오바이포야말로 이 세상 모든 뱀파이어의 왕이 될 몸이다···! 어째서 네놈에게 원류의 ‘피의 권위’가 먹히지 않는지는 모르겠다만···.”
충돌이 거듭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치밀어 오르는 힘.
그에 늙은 뱀파이어는 전신을 꿈틀거리면서도 일그러진 얼굴로 낮게 읊조렸다.
“아니, 잠깐···. 네놈 설마···.”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탄식을 토하고는, 이내 가늘게 뜬 눈으로 앞에 선 하인즈를 노려보았다.
“···그래, 넌 반역자로구나. 확실히 들어본 적 있다···. 갑자기 등장한 녀석이 한순간에 브로코슬락 클랜의 지배권을 집어삼키고 정상에 올랐다고 했었지···.”
다시 한 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그 와중에도 무섭게 폭증한 그의 기세는 이미 기존의 다섯 배가 넘어가고 있었으니.
그 여파에 무리가 간 육체가 조금씩 파괴되고 있었으나, 그것조차 끝이 아니라는 듯 힘의 증가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랬군, 그랬어···. 어떤 방식인지는 몰라도 넌 핏줄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손에 넣은 모양이구나···. 이번엔 그 능력으로 이 왕위마저 찬탈하려 드는 것이냐···?”
뭔가에 홀린 듯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오바이포.
하지만 열심히 의념의 영역을 사수하던 하인즈도 그 말에 문득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아,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더라니.’
싸움에 집중하던 것도 있고 너무 미약한 반응이었던지라 전투의 고양감이었나 싶어 딱히 신경 쓰진 않았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그것이 놈이 말하는 ‘피의 권위’에 영향을 받은 부분인 듯했다.
“그렇군. 이 기운은, 모두 열인가? 그럼 남은 혈맥 전부로군. 설마 다른 혈맥의 힘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을 줄이야.”
“크흐흐··· 이제 눈치챈 것이냐? 그래, 나야말로 원류의 혈맥을 잇는 자···. 열두 혈맥 중 열 개의 주인이 바로 이 오바이포이니라···!”
그의 몸에서 계속해서 팽창하는 무지막지한 기세와 함께 하인즈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원래라면 한 데 담길 수 없었을 그 힘들이 억지로 끌어올려져 오바이포의 격을 한층 드높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다른 혈맥, 그중에서도 성혈이 남긴 정혈을 억지로 사용하다간 단순히 정신 오염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텐데.”
튕겨졌던 몸을 간신히 추스른 하인즈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자신은 정신 오염에 면역이었던 만큼 진즉에 부하들에게 수색을 지시한 상태이긴 했다.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단 하나도 찾지 못하긴 했지만.
‘이미 이놈이 전부 회수한 상태여서 그랬던 건가.’
어쩐지 다른 클랜의 잔당들을 모조리 흡수했음에도 그 행방에 대해 아는 놈이 하나도 없더라니.
살인멸구까지 철저히 했던 모양이었다.
파지짓—! 촤아악!
그리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
「존재부정」까지 사용해 회피를 했음에도 하인즈에게 제법 커다란 유효타가 나왔다.
절단 직전까지 갔던 허벅지의 상처는 눈 깜짝할 새에 재생되긴 했으나, 아직도 계속해서 놈의 기세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이건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아아··· 이제야 일이 제대로 흘러가는 것 같구나···!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느냐···. 이 몸이 바로 모든 뱀파이어의 위에 설 왕이기 때문이니라···!”
그 자화자찬에 하인즈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놈은 제대로 답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으나 그에게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오바이포 클랜의 뱀파이어를 흡혈했을 때 얻은 능력이 「융화」였지. 「혼혈진화」에 흡수된 걸 보니 그 비슷한 하위 능력인가. 대충 그것과 연계해서 고안한 비전인가 보군.’
타 차원에서 부르는 혈계 능력 정도는 아니었으나 각 혈맥마다 약간의 특기 분야 같은 게 있었다.
유페르쉬 클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혈문’과 유별난 정신계 능력으로 나라 하나를 집어삼킨 브로코슬락 클랜도 그 일환이었고.
파직—! 콰아앙!
이번엔 타격이 상당히 컸다.
쇄골을 비롯한 어깨 부근이 통째로 날아갔다가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역시 서둘러서 뭔가 수를 쓸 필요가 있었다.
“너, 반역자야···. 원류의 뜻을 거스른 너에겐 나의 신하가 될 자격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명백한 자신의 우위에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묻은 피를 핥는 오바이포.
애초에 신하가 될 생각도 없었건만 저 혼자 설레발치고 있었다.
그보다, 지금 그거···.
“큽! 커헉—!”
주르륵— 철퍽!
한순간에 얼굴이 창백해진 그가 이내 한 무더기의 피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거칠게 밀어붙여 오던 의념의 영역이 휘청거리더니 다시 순식간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아, 역시. 저건 뱀파이어들의 습관인가. 하긴 상대를 파악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니까.’
이미 몇 차례 겪어본 적 있었지만 「정제혈정」으로 걸러지지 않은 그의 피는 뱀파이어에겐 맹독··· 아니, 방사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다른 힘을 억지로 끌어오느라 상당히 무리하는 도중에 마셔 버렸으니.
“푸흐윽— 퉷! 이, 이게 대체 무슨···! 넌 대체 뭐냐···! 브로코슬락? 유페르쉬? 아니, 아니다···. 이만큼 원류에서 벗어난 힘이라니···?”
이젠 숫제 입뿐만 아니라 코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 때문이었구나···, 혈맥의 권위가 통하지 않은 이유가···! 이 얼마나 부정한 피란 말인가···? 이건 반역자를 넘어선 이단이다···!”
“말이 너무 심하군. 그저 조금 개성이 강할 뿐이다. 나의 뿌리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
그 말대로.
하인즈의 뱀파이어로서의 근간은 브로코슬락 혈통이었고, 성혈에 이르게 된 계기는 유페르쉬의 정혈을 갈취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를 구성하는 부분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약 40퍼센트 정도?
물론 그나마도 대부분이 여러 요인으로 변이되어 초기 상태의 순수한 부분은 그리 많이 남지 않긴 했다.
‘그건 대략··· 5퍼센트는 되려나?’
놈에게 향하는 몸속의 반응을 보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원류란 말이지.’
최초로 탄생한 시작의 혈맥을 하나로 아우르는 위대한 하나.
오바이포가 말하는 원류는 그런 것이었다.
열둘로 갈라져 나오기 전의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근간이 되는 가상의 혈맥.
그것을 완성해 온전히 하나로 만든다면 모든 뱀파이어를 지배하는 왕이 되는 것은 물론, 불사왕조차 넘어설 힘을 손에 넣게 될 거라는 환상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하!’
그러나.
하인즈 입장에서, 그것은 그저 웃기는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아우테리카에서나 모든 혈맥의 시작이며 근원이지, 차원적인 규모로 따지자면 고작해야 무수히 많은 흡혈귀 분파의 한 갈래일 뿐이니까.’
흡혈인자를 힘의 근간으로 삼아 타인의 피를 갈취해 강해지고, 철저한 계급 체계를 가지며 감염을 통해 세력을 불려 나가는 종족.
그런 흡혈귀는 많은 세상에서 전염병이나 병균 따위로 취급받는 이들이긴 했으나, 인간이나 엘프, 드래곤 등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원에서 제법 흔하게 발견되는 종족이기도 했다.
‘차원끼리의 정보를 주고받는 신적인 존재들의 네트워크가 따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들은 그 특이한 생태 구조 때문인지 여러 종족 중에서도 유독 차원에 따른 변화가 극심한 편이었다.
마치 진짜 바이러스가 환경에 적응해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처럼.
“자칭 왕이라더니. 고작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는 건가?”
“크으, 네놈···!”
고개를 치켜들고 가소롭다는 비웃음을 머금은 하인즈가 애써 몸을 추스르는 그를 깔아보며 조롱을 던졌다.
그가 말하는 원류라는 것이 뱀파이어의 원형이자, 여럿으로 나뉜 갈래를 하나로 묶어 그 모든 강점을 취한 것을 뜻한다면.
그리고 그 주인 된 자를 ‘왕’이라 부른다면.
단순히 아우테리카만이 아니라 전 차원에 파생된 수많은 흡혈귀 계파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 그는 뭐라 불러야 할까?
이미 원류를 넘어서 가장 완성에 가깝게 진화한 존재인 그, 하인즈 2세는?
이 경우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은···.
“푸흐— 그래, 그렇다면 나는 황제라 불려야 마땅하겠구나.”
역시 그것밖에 없었다.
농담처럼 뱉어진 한 마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실에 한없이 맞닿아 있는 수식어이기도 했다.
“개소리를···!”
물론, 오바이포에게는 그저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분노로 부들거리는 몸을 추스르던 그가 돌연 몸을 멈추더니.
“크흐흐··· 아아, 그래··· 황제란 말이지···?”
이내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라고 했던가···? 지금 이 도시에 네 부하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처음 하인즈와 함께 출발한 정예는 백 정도에 불과했으나, 혈문을 통해 들어온 추가 병력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몇 배로 불어났다.
그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오바이포 클랜과 공화국의 수비군을 교란하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어디, 황제의 권위를 한 번 보자꾸나···!”
그렇게 말한 직후.
오바이포는 곧바로 고개를 치켜들며 하늘을 향해 기묘한 울림을 담은 포효를 터트렸다.
[“하이브리드의 아이들아, 이곳으로 오라—! 와서, 너희들의 가짜 왕을 죽이고 진정한 왕을 맞이하라—!”]
오직 뱀파이어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막강한 혈마력의 파동이 한순간에 울레토르 시 전역를 휩쓸고 지나갔다.
범위 내에 있다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통제력을 품고서.
‘저 돌연변이 같은 이단 놈이야 어쩔 수 없다만, 그 부하들은 다를 터···! 어디 철석같이 믿던 부하들을 네 손으로 직접 죽여 봐라···!’
또다시 무리하느라 재차 속이 뒤틀리긴 했으나 그로 인해 나올 결과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딱히 큰 손해도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외침을 토한 오바이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하인즈를 바라보았고—.
하인즈 또한 시큰둥한 태도로 그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곳으로 찾아오는 하이브리드의 뱀파이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어째서···?’
오바이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직접 그 피를 접한 만큼 하인즈에게 그의 통제가 통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휘하의 뱀파이어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고작 저 정도 수준의 놈들에게마저 내 명령이 통하지 않는다고?’
이쯤 되니 정말 자신이 계산한 대로 모든 혈맥을 아우를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야망을 이룰 근간과 그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왜? 생각대로 되지 않는가?”
귓가에 하인즈의 조롱이 아른거렸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그것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이것을 위해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쏟아부었던가?
유산을 모으기 위한 여정은 물론 그것들을 연구해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험하는 것도 불사하며 수천 년을 매진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그간 노력했던 수천 년의 세월이 무의미하게 스러졌다는 생각이 치밀자, 마음속에 피어오른 작은 절망이 몸집을 키워 독소처럼 퍼져나갔다.
“흐··· 흐흐흐···.”
고개를 푹 숙인 오바이포가 연신 몸을 들썩이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과는 별개로 몸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힘이 그를 한없이 고양시키며 집중이 흐트러진 육체를 보호하고 있었으나···.
‘의미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힘의 밀집에 무너지던 그의 육체는 하인즈의 피에 담긴 독성과 거듭되는 무리한 행보에, 이제는 한눈에 보일 정도로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살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이 힘을 끌어내려 안정을 취해야 했으나, 그렇게 되면 그에겐 일말의 승산도 남지 않을 터.
부서져 내리는 자신의 육체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바이포의 허망한 시선이 다시 하인즈에게로 향했다.
‘탈리아 왕국의 군주이자 뱀파이어 클랜 연합 하이브리드의 지배자, 하인즈 하이브리드 2세.’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혈통이 뒤섞인 핏줄.
감히 원류를 거부하고 변혁을 꾀한 이단의 몸.
그리고, 궁극에 가까운 완성도와 최상의 격을 품고 있는 신체.
강한 힘의 격류에 계속해서 부서지고 있는 그의 몸뚱이와는 달리 그야말로 원류를 담기에 가장 적절한 그릇이었다.
‘···그래, 인정하마.’
너의 육체가 품은 격은 이 나를 훨씬 상회한다.
내 비루한 몸에 담기엔 버거운 힘도 너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된다면 정말 원류의 권위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러니까—.
그 몸을, 내게 다오!
파지지지직—!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스파크가 맹렬하게 일렁인 순간.
오바이포가 무너지는 자신의 육체를 무시하고 하인즈에게 저돌적으로 짓쳐들었다.
남은 생명을 도외시하며 모든 것을 불사른 그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혁명가에겐 감사해야겠군.’
그의 ‘융화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각기 다른 혈맥의 힘을 하나로 묶고 동시에 발현할 수 있게 해준 미지의 힘.
그게 없었다면 이런 방식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
실시간으로 기억이 사라진다는 공포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버티게 해 준 ‘야망’의 성취 여부가 불분명해진 순간부터,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콰득—!
마침내 오바이포의 손이 하인즈의 이마를 움켜잡았다.
그 과정에서 연달아 허용한 공격에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몸 상태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황제여, 내기를 하자···.”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모험이 따르긴 하겠지만.
그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자신이 있었다.
“판돈은 서로가 가진 모든 것···.”
자신은 만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끊임없이 수행을 거듭한 자.
거기다 아무리 기억을 소거했다고는 하나 남은 기억만 해도 천 년을 넘어선다.
그런데 기껏해야 좀 특별한 몸을 가지고 몇백 년 남짓 살았을 상대에게 질 리가 없지 않은가?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갖는다···. 그 육체와, 영혼까지도!”
그렇게.
오바이포는 미지의 힘을 빌려 보무도 당당하게 하인즈의 정신세계로 침투했고.
[뭐야··· 이건?]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저도 모르게 맥 빠진 소리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