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총살(1)
「군형법 제3조,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총살로 집행한다.」
이른 새벽, 육군 교도소 뒷문이 열렸다.
열린 후문 앞에는 군 구급 차량 두 대가 시동을 건 채 세워져 있었다.
저벅저벅!
열린 교도소 후문 안쪽으로부터 발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짧은 스포츠머리에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두 명의 죄수가 걸어 나왔다.
양팔은 수갑과 포승줄에 묶였고 발목에는 쇠사슬로 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뒤이어 철모를 쓴 네 명의 군사경찰과 이송 책임자인 육준기 상사가 권총을 차고 있었다.
덜컹!
그때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의 뒷문이 열리고 육준기 상사가 짧게 말했다.
“승차!”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죄수는 주저앉았다.
“살려 주세요, 아아아!”
한 사내가 몸부림치며 승차를 거부했다.
“며칠만, 아니 몇 시간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무리 발버둥 치며 눈물로 호소한다 해도 소용없었다.
네 명의 군사경찰들은 구급 차량 두 대에 한 명씩 나눠 태웠다.
타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손과 발이 묶인 상태에서의 저항은 너무 초라했다.
탁!
구급차의 뒷문이 닫히고 육준기 상사는 맨 앞에 있는 지프에 올랐다.
지프차 뒤에 군사경찰(Military Police)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세 대의 차량은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의 어둠을 뚫고 사라졌다.
「2025년, 그동안 잠정 사형 폐지국으로 불리던 대한민국은 늘어나는 강력범에 대처하기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준을 비롯한 11명에 대해 전격 사형을 집행했다. 이에 맞춰 육군에서도
사형수들에 대한 집행 절차에 들어갔다.」
교도소를 떠난 지 50여 분.
차가 멈췄다.
상당한 길을 덜컹거리며 들어온 걸 보면 산속이라는 걸 짐작할 뿐 정확히 어딘지는 모른다.
단지 수도군단 어느 직할 사단 영내라는 것 정도다.
물론 교도소 안에서 전해 들은 얘기기 때문에 정확한지는 분명치 않았다.
‘인천 근처 어느 사단에 사형장이 있다지.’
문이 열리고 구급차에서 내린 유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산이었고 오른쪽 야트막한 봉우리에 경계초소가 보였다.
날은 이미 훤해져 있었다.
흠칫!
유태수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저만큼 사형장(杖)이 보인다.
즉, 자신들을 묶어 세울 기둥이다.
“수형자, 위치로.”
척!
처억!
등 뒤로 소총을 비껴 맨 군사경찰들이 유태수와 박낙진의 팔짱을 끼었다.
움찔!
박낙진은 가기 싫은 듯 잠시 버텼지만 모든 걸 포기한 듯 군사경찰들에게 이끌려 갔다.
사형장은 언덕 아래 세워져 있었는데 주위 흙이 뒤집혀 있는 걸 보면 오늘을 위해 며칠 전 세운 듯 보였다.
“포박!”
육준기 상사의 명령이 떨어졌고 네 명의 군사경찰들은 두 사람을 기둥에 묶어 세웠다.
“안대 준비!”
두 명의 군사경찰이 묶인 두 사람의 머리에 고무줄 안대를 끼웠지만 눈까지 가리지는 않았다.
“카악!”
그때 지프차에 동승해 왔던 중위 계급의 장교가 가래침을 뱉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쳐 들었다.
“유태수!”
“병장 유태수!”
유태수는 관등성명을 외쳤다.
“살인. 말년 휴가 중 형 유기태와 회사 경영 문제로 언쟁을 벌임. 형 유기태가 격분하여 골프채로 어깨를 내리쳤고 흥분한 유태수는 주먹으로 형 유기태를 때려 숨지게 함. 또한
동석한 숙부 유만출이 달려들자 그 역시 주먹으로 때려 전치 24주라는 심각한 중상을 입혔다.”
유태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서 있었다.
“죄책감에 극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응급실에서 깨어남. 그리고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됐으며 202x년 3월 18일 경북보통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8월 30일
육군고등군사재판에서 공소기각. 11월 20일 대법원으로부터 상고기각 판결을 받음으로써 최종 사형 확정.”
팔랑!
서류 한 장이 넘어간다.
“박낙진!”
“상병 박낙진!”
박낙진은 흐느꼈다.
“박낙진 상병은 202x년 1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문동, 일명 박스고개에서 택시에서 내린 김영칠을 구타하여 쓰러뜨리고 현금 150,000원과 신용카드를 탈취 후 도주, 또한 두
번째 휴가 중 노래방 도우미 김인숙을 강제로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 경기도 보통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 3월 3일 공소기각, 7월 1일 대법원 상고기각으로 사형
확정.”
중위는 서류를 모두 읽은 듯 밑으로 내리고 물었다.
“이상 있나?”
“이상 없습니다.”
유태수는 여전히 덤덤했다.
그러나 박낙진은 소리 내 울었다.
“마…… 맞습니다. 엉엉!”
그때 지프 한 대가 먼지를 내며 달려오더니 멈추고 중위 계급의 군인이 내렸다.
“미안합니다. 수송대에서 차량 지원이 늦어져서.”
군종장교다.
“시작합니까?”
완전 폐지될 것 같던 사형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집행되는 첫 수형자들이다.
어젯밤, 과거에 사형이 시행되었던 시절의 군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속 시원한 내용은 없었다.
성직자는 사형수를 위해 엄숙하게 기도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예!”
군종장교의 질문에 법무관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종장교는 군사경찰들과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깊숙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양손을 들어 올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두 아들이 오늘 죄를 짓고 죽어가지만 여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우리들은 이 두 사람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사악한 생각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도를 끝낸 군종장교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태수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지만 박낙진은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안대 채워!”
스윽!
군사경찰들이 두 사람의 머리에 올려진 안대를 내려 눈을 가렸다.
“표적지 설치.”
두 명의 군사경찰이 흰색 테이프를 두 사람의 왼쪽 가슴, 심장에 붙였다.
탁탁!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인다.
심장을 쏘라는 뜻이다.
“사수, 사격 위치로.”
네 명의 군사경찰은 10여 미터 뒤로 물러 나오더니 매고 있던 K2 소총을 풀어 쥐었다.
“사수, 탄창 삽입!”
타타탁!
네 명의 군사경찰은 윗주머니에서 탄창을 꺼내 삽입했다.
“사수, 사격 준비.”
네 명 모두 어깨에 총을 대고 서서쏴 자세를 취했다.
멀리 붉은 태양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사격 개시!”
탕!
타타탕!
총성이 계곡 깊이 울렸고 군종장교는 몸을 돌려 버렸다.
***
벌떡!
육군군사경찰단장 대령 임유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 지금 뭐라고 했나? 사…… 사형수가 안 죽다니? 자세히 말해봐!”
임유식은 핸드폰에 대고 소리 질렀다.
전화를 받은 임유식의 표정이 검다 못해 노랗게 떠버렸다.
“말이 되는 소릴 해 인마, 사람이 어떻게 총을 맞고 안 죽어?”
[정말입니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진짜 살았어. 숨을 쉬냐고?”
[네, 단장님! 숨을 쉽니다.]
“이런.”
임유식은 벙찐 얼굴로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가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이 실제 일어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가만, 가만!”
임유식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탁!
책상 위에 올려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출근길에 사서 온 스타방스 커피다.
우욱!
목구멍이 찢어질 것 같았다.
뜨거운 걸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마셔 버린 것이다.
팟!
목구멍이 익어버릴 것 같은 고통에 주먹으로 가슴을 치다 말고 눈을 빛낸다.
“법, 법대로 해.”
[법규대로 집행했습니다.]
“인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사형수가 죽지 않으면 지휘관이 권총을 뽑아 즉결 처형하잖아.”
[그런 법은 없습니다. 더구나 이미 늦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뭐가 늦어.”
[군종장교가 놈을 싣고 병원으로 가버렸습니다. 강력히 가로막았지만 육군 법규에 죽지 않은 사형수를 다시 쏘라는 규정은 없다면서…….]
“이런 미친 새끼!”
임유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급기야 명령체계 맨 끝에 있는 참모총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
참모총장 차금락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랐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비서실장 정학성 준장도 얼어붙어 버렸다.
“으음!”
참모총장은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 장군, 우리 군 창건 이래 이런 일이 있었소?”
“대략 살펴봤지만 전무합니다. 해방 이후 약 일백여 명 가까운 병사들이 총살을 당했는데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미군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뇨, 아뇨. 일단 장관께 보고를 하는 것이 우선일 듯싶소. 장관께서 어디 계시는지 알아보시오.”
“예! 총장님!”
비서실장이 나가고 혼자 남은 차금락 육군참모총장은 중얼거렸다.
“오늘이.”
그러면서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2월 14일.”
차금락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