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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2화 (2/122)

2화 총살(2)

사복 차림의 사내들이 병원을 에워싸고 있었다.

모두가 정장 차림이었는데 짧은 스포츠머리와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은 그들이 평범한 사내들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앞가슴 깃에 소형 무전기를 부착했고 수시로 경비 상황을 공유해가며 살피고 있었다.

병원 현관에는 긴급사정으로 인해 오늘 하루 휴무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끼이익!

그때 한 대의 승용차가 다가와 멈추더니 육군군사경찰단장 임유식 대령이 차에서 내렸다.

순간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가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몇 층이야?”

“3층입니다!”

병원을 에워싸고 있는 사내들은 군사경찰소속 특임대원들이었다.

지휘자는 대위 조문학.

“그 자식은 어딨어?”

“누구 말입니까?”

“누군 누구야? 그 군종장교라는 자식.”

“체포하여 모처로 이동 중입니다.”

계단을 통해 3층에 오르자 사복 차림의 특임대원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충성!”

“충성!”

법무관 중위 안철곤과 호송 책임자였던 육준기 상사가 거수경례를 했다.

“자네들 각오해.”

임유식 대령은 매섭게 쏘아 본 뒤 두 명의 특임대원이 지키고 있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실에는 환자복 차림의 한 사내가 누워 있었는데 오른팔에 링거를 꽂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서던 임유식 대령이 걸음을 세웠다.

움찔!

누워 있던 유태수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들어서던 임유식 대령과 눈이 마주쳤다.

임유식 대령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바라보는 유태수의 눈빛이 너무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의 눈빛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온유했다.

임유식 대령이 다가오자 유태수가 허리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됐어, 인마.”

일어날 것 없다고 쏘아붙인 임유식이 유태수의 심장 쪽을 보았다.

“단 한 방도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철곤은 경황이 없어 몰랐다가 나중에 병원에 도착해서야 유태수의 몸이 깨끗하다는 걸 알았다.

- 정신적 충격이 좀 있는 것 말고 외상은 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안철곤 중위와 육준기 상사는 기절초풍하고야 말았다.

현장에 있었던 네 명의 군사경찰을 불러다 유태수의 멀쩡한 몸을 보여주자 그들도 소스라쳤다.

- 분명히 쐈습니다. 박낙진은 죽었잖습니까?

사수들에게는 실탄 한 발씩 주어지는데 박낙진은 죽었다.

두 명이서 한 명을 맡는다.

왼쪽 두 명이 박낙진을 쏘고, 오른쪽 두 명은 유태수를 조준했다.

총알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다.

사형집행에 동원되는 대원들은 명사수들이다.

그리고 오늘을 대비해 특별히 사격훈련까지 마쳤다.

임유식은 병실을 나왔다.

일 층까지 내려온 임유식이 담배를 피워 물자 특임대 지휘관 대위 조문학이 재빨리 라이터 불을 켜준다.

“골치 아픈 놈이야. 알지?”

“예!”

“태천그룹.”

“재판 때는 물론이고 수감 중에도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형을 죽였는데 누가 오겠어? 그것도 가장 똑똑하고 유장풍 회장이 자기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점찍어 놓은 둘째 유기태를 죽였는데.”

“연락을?”

조문학이 눈치를 보았다.

“연락? 무슨 연락?”

“아…… 아닙니다.”

“쟤는 죽은 시체야. 사망 처리된 놈이라고. 그런 놈을 가족에게 알린다는 게 말이 돼? 그들도 반기지 않을걸, 어쨌든 입 조심해.”

지이잉!

그때 전화가 울리자 임유식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낸다.

“예, 총장님!”

육군참모총장 차금락이다.

“예! 예!”

계속 예, 예 하는 임유식의 얼굴이 검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부르르!

전화를 내리는 임유식의 손이 떨리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툭!

“다…… 단장님!”

“돌아버리겠네. 주…… 죽이래.”

“네에?”

조문학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임유식은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어금니를 물며 뱉어내는 담배 연기가 흔들렸다.

“야!”

그러다가 버럭 하며 병원 경계 근무 중인 특임대원 한 명을 불렀다.

“하사 임찬우!”

새카맣게 탄 사내가 재빨리 뛰어왔다.

“너 가서 안 중위와 육 상사 내려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특임대원이 재빨리 병원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뻑!

뻐버벅!

임유식의 담배 피우는 속도가 거칠고 빠르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조문학 대위는 신중해졌다.

엄청난 사건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초대형 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다.

카악!

임유식은 가래침을 뱉고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다.

“단장님!”

안철곤 중위와 육준기 상사가 급히 다가왔다.

처억!

두 사람은 더욱 부동자세를 취했다.

“현장에서 끝냈어야지. 도대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한 두 사람의 시선은 전방 상향 15도, 양발 뒤꿈치를 동일선상에 붙이고 발 안쪽 내각은 45도를 유지했다.

자칫 옷을 벗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숨도 쉬지 않았다.

“총장님께서 우리 선에서 정리하라는군.”

“정리하라 하시면?”

안철곤이 묻는다.

“자네 짬밥 배부르라고 먹어? 그게 무슨 뜻이겠냐고? 육 상사와 자네가 최종 책임자니까 처리하게.”

“다…… 단장님!”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처음 사형을 집행할 때와 죽지 않은 사형수에게 다시 총을 겨누는 건 차원이 다르다.

앞선 일은 엄정한 법을 집행하는 일인 반면 이번 일은 살인이다.

더욱이 총살 현장에서 살아난 죄수를 다시 죽인다는 건 소름 끼치고 비정한 일이다.

자신들이 왜 그런 짐승만도 못한 일을 해야 하는가.

「내 손에 오십 명이 넘게 죽었다. 그들은 꿈속에 나타나 내 목을 조르고 울부짖었다. 사형집행관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서울구치소에서 30년 동안 사형수들을 집행해온 어느 교도관이 쓴 ‘잘가’라는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사람으로서는 할 짓이 못 된다.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난 30년 동안 모든 의식과 정상적인 사고가 굳어버린 살인마였다.」

***

임유식은 군복을 유심히 살폈다.

유태수가 입었던 군복이었는데 왼쪽 가슴에 붉은 명찰이 붙어 있으며 사형수를 의미하는 색이다.

“이 자식들 애먼 데 쏜 것 아냐?”

왼쪽 붉은 딱지 위로 붙은 흰색의 테이프.

사형집행 직전 심장을 쏘기 위해 그곳에 붙여 놓았는데 총알 자국이 없다.

아무리 살펴도 말끔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복 어디에도 총알구멍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육준기 상사가 네 명의 군사경찰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총알 어디로 갔어? 유태수 쏜 놈 누구야?”

“하사 김철수, 하사 장길준!”

두 명의 병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너희들 총알 빼돌렸지?”

“아닙니다!”

“찾아봐.”

화락!

임유식이 옷을 던져 주었다.

두 사람은 이미 가슴에 맞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는 척했지만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도무지 총알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분명히 가슴을 쐈다.

가늠자 가늠쇠에 정확히 걸렸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멈칫!

이제 막 들어섰던 군사경찰들과 육준기 상사는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을 데리러 올 줄 알았다는 듯, 유태수는 링거를 뽑아 버리고 환자복 차림으로 침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스으윽!

유태수는 수갑을 채우라며 양손을 내밀었다.

꿈틀!

육준기의 눈이 좁혀졌다.

‘놈!’

사실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시가총액 537조의 거대기업 핏줄이라는 것도 수형생활 내내 신경이 쓰였지만 중요한 건 침묵이었다.

도무지 말이 없다.

또한 교도소에서 말썽이라고는 일절 피우지 않았다.

교도소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사회적 배경이 짱짱한 죄수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태수야말로 제왕으로 군림해도 누구도 거부 못할 배경이었다.

더욱이 고등학교 때까지 미들급 복서로 활약했다.

특히 전국체전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면서 더욱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한 풋워크와 번개처럼 파고들어 날리는 좌우 연타는 일품이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도 빙긋 웃는데 하나같이 포스에 지린다.

독서와 침묵으로 하루를 거의 채우고, 교도관들을 볼 때마다 깍듯하게 묵례로 인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조금씩 유태수를 어려워했고 예의 넘친 행동에 숨이 막혔다.

오늘 아침 사형장으로 이동할 때도 박낙진은 계속 울고불고했지만 유태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죽다 살아났으니 한 번쯤 버틸 수도 있고, 살려달라고 사정한들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데 스스로 협조한다.

“환복!”

벗어 놓았던 군복을 던져 주었다.

유태수는 환자복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철컥!

수갑이 채워졌다.

이어 양팔과 겨드랑이로 포승줄이 거미줄처럼 휘감겼고 마지막으로 족쇄가 채워졌다.

“야, 구급차 바짝 대라고 해.”

육준기 상사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딸칵!

군사경찰 한 명이 문을 열었고 유태수는 병실을 걸어 나갔다.

싸륵!

싸르르르!

족쇄가 시멘트 바닥을 긁으면서 조용한 3층 복도를 울렸다.

지키고 있던 특임대원들이 이중삼중으로 에워싸며 계단을 내려갔다.

두 명의 군사경찰이 양팔을 끼었고 유태수는 아무런 말 없이 걸어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자 닫힌 현관문이 열려 있고 구급차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태워!”

육준기의 명령에 군사경찰들이 유태수를 떠메다시피 하여 열린 구급차에 던져 버렸다.

꽝!

문이 닫히고 육준기 상사는 재빨리 지프에 올랐다.

비상 라이트를 켜고 구급차와 지프가 병원을 떠났다.

병원 창문이 열려 있고 의사 김계성이 사라지는 구급차를 바라보았다.

“입도 뻥긋 말라고?”

김계성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내 장사를 완전히 망쳐 놓고 고작 뱉어낸 말이 주둥이 닥치고 있으라는 얘긴가.”

“원장님, 모두 떠났어요.”

간호사가 들어왔다.

“송 간호사, 나 오늘 뭐 했지?”

김계성은 창밖에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진짜 어이가 없네.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뭐 저따위 새끼들이 있어?”

김계성은 이마를 찡그렸다.

“오나가나 군바리 새끼들은 재수가 없어.”

카악!

창문 밖으로 가래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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