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재집행
구급차와 지프가 다시 나타났다.
육군 xx사단 정문을 통과한 두 대의 차량은 사단 본부로 올라가는 길을 피하고 외곽로를 택했다.
한참을 달리자 신병 교육대가 나왔다.
이미 병력 통제가 이뤄진 탓에 영내 훈련은 없었다.
차는 자동화기 사격장을 지나고 멀리 공용화기 사격장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거기서부터는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휘날렸다.
쾅!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무장군인이 공용화기 사격장 출입문을 소리 내어 닫았다.
덜컹!
덜커덩!
차는 비포장 길을 한참 올라갔다.
움푹 들어간 계곡 입구에 멈췄고 지프 문이 열리며 육준기 상사와 안철곤 중위가 내렸다.
“흐으흐흠!”
안철곤 중위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뒤이어 구급차 문도 열리고 군사경찰들이 유태수를 데리고 내렸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침묵하던 유태수가 입을 열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 뭐냐?”
안철곤 중위가 바라보았다.
“박낙진 상병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다. 이미 군의관으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았고 내일쯤 유족에게 인계될 것이다.”
“사형수 유언도 들어줍니까?”
멈칫!
누군가 사형수가 죽으며 남기는 말을 기억은 할 수 있지만 뭘 해달라는 부탁일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들어주든 들어주지 않든 마지막 떠나는 사람의 입까지 막을 필요는 없었다.
“내 시신을 기증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무도 예상 못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불가하다!”
육준기 상사가 단호히 말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러니 더 이상 묻지 마라.”
씨익!
유태수는 알았다는 듯 짧은 웃음을 짓더니 돌아섰다.
두 명의 군사경찰이 그를 양옆에서 끼고 다시 언덕을 올라 사형장(杖)에 묶었다.
타탁!
군사경찰 한 명이 왼쪽 심장 부위에 흰색의 테이프를 붙였다.
“안대 채워.”
슥!
안대로 유태수의 눈을 가렸다.
“사수, 위치로!”
두 명의 군사경찰이 메고 있던 총을 풀어 사선에 섰다.
안철곤이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인다는 것.
언젠가 신문을 통해 이란의 한 사형수가 살아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12분간 줄에 매달렸고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까지 받았는데 다음 날 시신을 넘겨받기 위해 유족들이 관을 열자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고 이란 사법부는 재집행을 명령했다.
그러자 사형수 가족들은 물론 이란의 인권변호사들과 엠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한 사람을 두 번 목매다는 일은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들까지 한 번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일 수는 없다고 해석을 내놓아 끝내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사였다.
‘악랄하다.’
법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오늘 사건을 대입한다면 하나의 사건은 앞선 집행으로 종료되었기에 죽여서는 안 된다.
‘좆같군.’
왜 자신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유태수가 나쁜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그저 안타깝고 새삼 법이야말로 정말 잔인한 물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스스슥!
주일 학교 때 성당을 다닌 후 나이 스물여덟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안철곤은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미안하다, 유태수.’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돌아서 버렸다.
“사수, 사격 개시!”
육준기 상사가 명령을 내렸다.
꽈앙!
엄청난 굉음에 안철곤은 깜짝 놀라 도로 돌아섰다.
절대 총소리가 아니었다.
안철곤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까지 서서쏴 자세로 서 있던 두 명의 군사경찰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오발.’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안철곤 중위는 육준기 상사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글…… 글쎄, 나도 잘!”
“씨발, 좆됐다!”
다다다닥!
안철곤 중위와 다른 두 명의 군사경찰들이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야, 김철수! 장길준!”
반응이 없다.
동료 병사 둘이 재빨리 경동맥을 만져보더니 소스라쳤다.
“맥이 없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 사이 육준기 상사가 구급차에 실린 제세동기를 가져와 작동시켰다.
필사적인 노력이 통했는지 두 사람의 심장이 다시 돌아왔고 안철곤은 두 병사를 구급차에 태워 이곳 사단 의무대로 보냈다.
육준기 상사가 동승하여 떠났고 현장에는 안철곤 중위와 앞서 박낙진을 총살한 박준태 하사와 오만석 하사가 남았다.
부르르!
세 사람 모두 몸을 떨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르쳐 준다.
안철곤 중위는 빨리 총 잡지 않고 뭐하냐는 시선으로 둘을 봤지만 그들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싫다는 뜻이다.
꿀꺽!
잠시 말뚝에 묶인 유태수를 노려보던 안철곤이 바닥에 떨어진 있는 K2 소총 한 자루를 집었다.
탁!
탄창을 꺼낸 뒤 노리쇠를 당기자 약실에 한 발이 들어가 있다.
철컥!
노리쇠를 밀고 유태수를 바라보았다.
무슨 영문으로 두 병사가 쓰러졌는지 알 수 없지만 큰일 날뻔했다.
어쨌든 멀쩡한 부하들이 쓰러졌고 인공호흡까지 실시하여 가까스로 살려놨다는 사실에 갑자기 욱하며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짜증이고 분노다.
악인은 마지막까지 꼬장을 부린다는 말이 떠오른다.
측은하던 감정은 씻은 듯 사라지고 안철곤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유태수를 쏘아 보았다.
“잘 가라!”
척!
총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고 조준해 쏘려다 말고 멈칫했다.
처음 총을 쐈을 때 맞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 사격을 하려던 두 명의 병사가 이유 없이 심정지로 쓰러졌다는 생각에 주춤한 것이다.
「교도관 맥콜은 그날 밤 퇴근길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즉사했다.」
「1922년 영국의 의사 리네커의 부인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이 침대에 반듯이 누워 숨져 있었다고 했다.」
「미국 오하이오 교도소 사형집행관 캠벨은 퇴근길에 급사했다.」
오늘 사형집행이 있기 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외국의 사형집행 사례를 찾아보았다.
그들 말고도 많은 사형집행관들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으스스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까지 떠오른다.
“야, 총 잡아!”
박준태와 오만석은 잠시 주저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총을 잡았다.
안철곤은 사형장(死刑場) 밑으로 내려갔다.
“사수, 사격 준비!”
두 사람은 서서쏴 자세를 취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으악!”
“컥!”
오만석과 박준태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박 하사, 오 하사!”
안철곤이 뛰어 올라왔다.
두 사람은 의식이 있고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쯧쯧쯧!”
그때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이들.”
홱!
누군가 있는 게 이번에야말로 분명했으므로 안철곤이 고개를 돌렸다.
“헉!”
돌아선 안철곤이 소스라쳤다.
열 살 정도로 보인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결코 초등학생은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소년이 우뚝 서 있었다.
위아래는 검은색 양복에 빨강 나비넥타이를 했고 검정 헌팅캡을 눌러쓴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미국 영화 속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고 찾아온 아이 복장이었다.
“너 여길 어떻게 왔어?”
그러면서 안철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산이고 더욱이 군사작전 지역이며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다.
“눈(目)이 바보라고 우리 삼촌이 그랬는데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어.”
안철곤은 뜨끔했다.
소년은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있다.
소년의 말인즉, 철조망이 있고 군부대라고 해서 들어오지 못할 건 없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멍청이!”
안철곤을 면전에서 멍청이라고 부른다.
“저기 형 죽으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만 돌아가 봐.”
안철곤 중위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꿈이 아니다.
이건 지금 자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여긴 육군 교도소 사형장이다.
“가기 싫어? 맘대로 해.”
소년은 성큼성큼 언덕을 올라갔다.
사형장으로 올라선 소년은 묶여 있는 유태수에게로 다가가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벗겼다.
스윽!
정면으로 태양이 비추자 눈이 부신 듯 잠시 이마를 찡그리던 유태수가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역시!”
소년이 씨익 웃더니 기둥에 묶인 줄을 풀어버렸다.
“난 네오라고 해.”
슥!
네오가 손을 내밀었다.
그야말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다.
유태수는 손을 뻗어 네오의 작은 손을 살며시 쥐었다.
“아차!”
네오는 뭔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는 듯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형이 이거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담배 생각이 절실했기에 유태수는 재빨리 한 개비 피워 물었다.
딸칵!
후우우!
토하듯 빨아 당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연기에 담아 쏟아 내려는 듯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꼼짝 마!”
네오가 돌아섰다.
쓰러졌던 박준태와 오만석 하사가 K2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형! 강호에서 이럴 때 뭐라고 하지? 거 있잖아. 무림 고수들이 어깨에 잔뜩 힘주고 하는 말 말이야.”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
“그렇지.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멍청이들……. 성질 같아서는 그냥 콱.”
네오는 금방이라도 한 대 때릴 듯 주먹을 쥐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박준태와 오만석이 본능적으로 총구를 돌리려고 했지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멍청이들!”
네오는 총을 빼앗아 유태수에게 주며 말했다.
“형! 당겨버려!”
유태수는 두 사람의 총을 받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허공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자루의 총은 이젠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가자, 형아!”
네오가 앞장서 언덕을 내려가자 유태수가 말했다.
“네오, 이대로 가면 이 사람들 영창 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는 거지.”
언덕을 내려간 네오가 돌아서서 바라보았다.
“듣고 보니 그렇네.”
“이들로서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거로 남겨야 조금은 더 편해지지.”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했다.
군인으로서 군대의 질서와 규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자신과 박낙진을 죽이는 총살집행도 저들은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무너진 군인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
“죽이라고?”
흠칫!
안철곤 중위까지 깜짝 놀란다.
“아직 한 번도 사람 죽여본 적이 없는데. 아, 이렇게 하자. 형 복싱했잖아. 저 멍청이들을 피가 나게 두들겨 패는 거야. 아니다. 그 방법은 안 되겠다. 보나 마나 셋이서 한
놈을 못 당했냐고 더 미운털 박힐 수도 있잖아.”
세 사람에게 최대한의 피해가 적게 가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군요. 중위님께서 알아서 시나리오 짜십시오.”
뒤처리를 맡긴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