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대탈출(2)
45구경 권총이 지급되었다.
일곱 발들이 탄창 두 개씩, 이인 일조로 일반 차량 열 대가 막사 앞에 대기하고 있다.
“주목!”
일반 사복 차림의 특임대원 20명이 굳은 얼굴로 서 있고 그중 사형집행 때 출동했던 김철수와 장길준, 박준태와 오만석도 보인다.
“죽여라!”
육준기 상사의 입이 열렸다.
“놈은 사형수다. 너희들은 분명한 징벌권을 갖고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특임대원들이 차렷 자세를 취하며 대답하고 다시 열중쉬어로 돌아갔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작전이다. 적을 제거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특급 작전, 암호명 쥐새끼 사냥.”
“질문 있습니다!”
한 특임대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뭔가?”
“유태수의 집안이 태천그룹 아닙니까?”
“부담스럽다는 뜻인가? 그건 염려 마라. 그들과 공조가 이뤄지고 있으니까.”
“가족들도 유태수를 잡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까?”
“물론이다. 다시 말한다. 유태수를 죽이든 살리든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출동!”
육준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명씩 승용차에 탑승했고 일제히 부대를 떠나기 시작했다.
부우웅!
육준기는 부대를 떠나는 승용차들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돌아버리겠군.”
연금을 받으려면 4년여의 기간이 남았다.
만 20년부터 연금 혜택이 돌아간다.
만약 유태수를 잡지 못하면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게 될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
남산을 등지고 멀리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남대교가 보인다.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완벽한 저택이다.
“저건 또 뭐야?”
벤츠가 저택 앞에 도착했고 차 안에 앉아 있던 유장풍이 창밖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장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회사 직원들 아닙니까?”
“누가 그걸 몰라? 왜 저렇게 많은 거야.”
그러고 보니 평소에 비해 두 배는 넘어 보일 듯 보안요원들이 우글거리다시피 했다.
그그긍!
차고 문이 열리고 차가 안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유장풍은 지하 차고를 걸어 맞은편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계단이 있지만 혹시라도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질 것을 우려해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엘리베이터는 마당과 연결되어 있는데 금세 멈췄다.
문이 열리고 유장풍이 내리자 보안요원 책임자인 마낙철이 정중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해?”
항상 조용하던 집이다.
그런데 유장풍이 목소리를 높인다는 건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다.
딸칵!
마낙철이 현관문을 열어준다.
뒤이어 수행비서 장민혁이 재빨리 안쪽 원목의 유리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유장풍과 비슷한 또래의 닮은 사람이 서 있었다.
둘째 동생 유동풍이다.
“언제 왔나?”
“조금 전에 왔습니다.”
“대문 밖에 서 있는 아이들, 자네 솜씨인가?”
유장풍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상사태 아닙니까? 태수가 도망을 쳤다는데 보나 마나 여길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를 강화했죠.”
그때 가정부가 시원한 냉수를 잔에 받쳐 가져다 놓고 돌아갔다.
유장풍은 몹시 목이 마른 듯 소리 내어 냉수를 마셨는데 그걸 바라보는 유동풍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보는 유장풍은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다.
바늘로 찔러도 절대 피 한 방울 안 나온다.
사람인지 돌부처인지 좀체 감정의 굴곡이 없는 그였다.
그런 그의 물 마시는 소리가 거칠다는 건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감정이 분노냐, 아니면 기쁨이냐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디 갔어?”
누굴 찾는가.
“아줌마, 사모님 안 계십니까?”
장민혁이 안쪽 주방을 보며 말했다.
쉰 초반 가량의 가정부가 재빨리 달려 나와 말했다.
“절에 가셨습니다.”
와당탕!
바로 그때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태수가 도망치다뇨? 정말이에요?”
들이닥친 사람들은 유장풍의 자녀들이었다.
원래는 칠 남매였다.
하지만 둘째 아들 유기태가 유태수의 손에 사망하면서 육 남매가 되었다.
첫째 아들 유종태 마흔여덟.
둘째 딸 유상주 마흔둘.
셋째 딸 유오주 서른다섯.
넷째 아들 유국태 서른둘.
다섯째 아들 유망태 서른.
그리고 여섯째 아들 유태수 스물여섯.
오 남매에 사위와 며느리까지 더해지면서 넓은 거실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자식 성질에 반드시 집으로 올 텐데.”
넷째 유국태가 눈을 빛냈다.
“작은아버님, 보안요원들 더 증원해서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동풍이 바라보는 유국태를 향해 말했다.
“스무 명이다. 지가 아무리 복싱을 했다고 해도 저들도 무술 유단자들이야. 더군다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많은 장비까지 준비했으니 집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모두가 한쪽에 서 있는 수행비서 장민혁을 바라본다.
“아줌마, 엄마는요?”
또다시 가정부가 쪼르르 나와 다소곳이 말했다.
“절에 가셨습니다.”
“절에?”
질문을 한 셋째 유오주가 이마를 찡그린다.
***
일흔을 가리켜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삶에 있어 칠십이 드물다는 뜻이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칠십은 그냥 하나의 나이일 뿐이지만 그래도 육체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모두 상실한 일몰이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백팔배(百八拜).
칠십의 채무령은 주지 대공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백팔배에 나섰고 지금 막 백 번째 절을 부처님께 올리고 있었다.
뚝뚝!
춥지 않다지만 겨울인데도 그녀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천수천안 관음보살 광대하고 원만하며)
무애 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걸림없는 대비심의 다라니를 청하옵니다.)
계수관음대비주.
(자비하신 관세음께 절하옵나니)
한쪽에서는 대공스님이 결가부좌하여 큰 소리로 독경을 하고 있었다.
뚝!
목탁을 치던 대공스님의 오른손이 멈췄다.
채무령이 백팔배를 마치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사르륵!
흰색 바탕에 나비와 푸른 산이 수놓아진 한복차림이다.
나비는 영혼을 의미한다.
채무령의 한복에는 죽은 영가가 청산으로 날아가 천년만년 광명 속에 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바깥으로 나간 채무령은 지키고 서 있던 수행비서가 건네준 커다란 수건으로 다시 한번 땀을 닦고서 오른쪽 샘가로 다가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다.
‘썩을 놈!’
채무령이 한숨을 내쉰다.
“나무관세음보살!”
몸을 돌리자 대공스님이 다가와 서 있다.
“훌륭하십니다. 백팔배 내내 마음 졸였습니다.”
채무령은 살짝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참회할 악업이 너무 많습니다.”
“미움이 사라지면 죄업도 깨끗하게 씻겨 나가지요. 방에 드셔서 차 한잔하시면서 잠시 피로를 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다음에 마시겠습니다.”
채무령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렇게 십여 미터 가까이 걸어가던 채무령이 걸음을 세우고 배웅을 위해 나란히 걷는 대공스님을 돌아보았다.
“말씀하시죠.”
“일천금(一千金) 사천노해(四天怒解) 말입니다?”
“예!”
“정말로 네 분 천왕께서 화를 풀고 수미산을 오르게 할까요?”
수미산은 불가의 중심이다.
그 수미산을 지키는 네 명의 왕을 사천왕이라고 하고 악업이 깊으면 그곳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천왕들이 가로막는다는 얘기다.
산 밑에는 팔열지옥이 있다.
수미산 정상은 곧 극락을 의미하고 산 아래는 지옥을 뜻한다.
일천금을 사천왕에게 바치면 수미산을 오를 수 있다.
그건 곧 악업이 씻겨진다는 의미.
일천금에 대한 액수가 분분하지만 대체로 일천 원, 일천만 원, 일천억 원 등으로 해석한다.
망자의 입 안에 넣어 저승길에 사용토록 하는 반함의 구슬과는 또 다른 뜻이다.
반함의 구슬이 망자에게 주어진다면 일천금은 죽을 자에게 보내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걱정 마세요.”
채무령은 다소 안도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공스님은 차에 오른 채무령을 향해 허리를 구부려 합장하며 배웅했다.
“나무관세음보살!”
부우웅!
절을 내려가는 승용차를 한참 내려다보던 대공스님이 몸을 돌린다.
채무령은 뒷좌석에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다.
“흐으음!”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채무령은 나직한 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렸다.
“남 비서!”
“예! 사모님!”
비서이자 운전기사 노릇까지 하는 남정욱이 룸미러를 보며 대답했다.
“지금쯤…… 아니야. 운전이나 잘해요.”
채무령은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남정욱은 채무령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짐작했다.
지금쯤 유태수에 대한 총살이 집행됐을 것인지 묻는 것이다.
군대는 다녀왔지만 그런 군법 집행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니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툭!
채무령이 핸드백을 열더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유오주」
딸로서는 둘째다.
언니 유상주와 달리 애교도 많고 아직 미혼이다.
[엄마?]
“어디니?”
[엄마, 엄마. 들었어? 태수가 도망쳤대.]
“뭐어어!”
[태수가 총살당하기 직전 도망을 쳤다고, 지금 태수 잡기 위해 난리가 났어.]
“그…… 그게 무슨 말이니? 태수가 어떻게 도망을 쳐?”
[몰라, 아무튼 모두 집으로 모였으니 엄마도 빨리 와.]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차 좀 세우게.”
남정욱이 깜빡이를 켜고 차를 오른쪽 길가로 세웠다.
산길이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차량은 없었다.
“사모님!”
차 안이 조용하다.
유오주의 다급한 목소리를 일부 들었기에 남정욱 역시도 얼굴이 굳었다.
‘오오! 부처님.’
채무령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탁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