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전문가들
일주일 후, 인사팀장 오도석이 비서실로 들어섰다.
비서실 직원이 다른 임원들과 말씀 중이라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남자 직원이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아침에 출근하여 제가 직접 내린 것입니다.”
“오호! 잘 마실게요.”
오도석은 웃음을 지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향도 좋고,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소파에 앉아 있는 오도석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때 회장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임원이 걸어 나왔고 오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는 체를 했다.
“두 분 이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오 팀장.”
서로가 악수를 나누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크레믈린 기분이 생각보다 안 좋은데. 글쎄, 무슨 일인지 넌지시 물어도 알 것 없다고 뭉개버리고.”
크레믈린, 영문 표기로는 크렘린(Kremlin).
냉전 시대에 미국 백악관과 대척점에 있었던 세계 권력의 축이며 러시아(당시 소련)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상징이다.
크레믈린은 임원들 사이에 불리는 유장풍의 별명이다.
유장풍의 기분이 생각보다 좋아 보이지 않으므로 조심하라는 귀띔인 것이다.
비서의 안내로 오도석은 회장실로 들어섰다.
유장풍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계속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정부 쪽은 내가 얘기해 놓을 테니까 그쪽 근로자들 입단속 잘 시켜.”
그리고 전화를 끊는다.
오도석은 조심스럽게 소파 한쪽으로 앉았다.
“어떻게 이번에는 야무진 놈들 좀 있나?”
“글쎄, 작년보다는 똘똘해 보이는 몇 놈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면서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유장풍은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서류를 꺼내 살폈다.
이번 면접시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다섯 명을 선발해 가져온 것이다.
“으으음!”
일단 출신학교부터 살피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학력은 마음에 든다는 의미였는데 갑자기 마지막 장을 보던 유장풍이 인상을 구겼다.
“이게 뭐야, 잘 나가다 국도로 빠지면 어떡해. 동남대? 우리나라에 그런 대학도 있나?”
“서울에 있습니다.”
팔랑!
유장풍은 서류 한 장을 넘긴다.
“뭐, 까라면 깐다고?”
유장풍이 살짝 웃었다.
“요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지녔더군요. 뭐 회사나 가정이나 상명하복의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흔들리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데.”
“틀린 말 아니지.”
탁!
유장풍은 서류를 힘있게 내려놓았다.
“그런 놈은 무조건 합격이야. 딱 마음에 드는구만.”
유장풍은 놓았던 서류를 다시 한번 들춰 살핀다.
“배석대.”
이름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어서는 오도석을 향해 유장풍이 말했다.
“앉아봐. 바쁜 일 없잖아.”
오도석이 주춤하며 다시 앉았다.
방금 전까지 환했던 유장풍의 안색이 굳어진다.
“이라크 현장에 사고가 생겼어.”
“무슨 사고?”
“천만 달러를 내놓으라는 거야. 아 글쎄, 어떤 미친놈들이 일꾼 두 명을 데려가 버렸어.”
그러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했다.
납치(拉致)사건.
태천건설 직원 두 명이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다.
아직 언론보도는 없다.
유장풍이 언론사의 입을 일단 틀어막았을 것이다.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에서의 사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중동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곳곳이 지뢰밭이다.
미국과의 전쟁이 끝났다고 중동이 평온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전히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변함이 없고, 종교와 정치적 이유로 인한 크고 작은 테러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 진출한 다른 나라 기업 거의 전부가 민간군사기업의 도움을 받는다.
아카데미(구 블랙워터), 다인코프 등 세계 최대 용병회사들과 경비 계약을 맺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을 한다.
- 우리도 PMC의 협조를 얻어야 합니다.
- 그렇게 돈이 넘쳐나? 그놈들 몸값이 얼마인 줄 알기나 해?
특수부대 출신들이 대부분인데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만큼 몸값이 비싼 건 당연했다.
한국에서처럼 현장을 지키는 자체 경비인력 말고는 없다.
또한 외출할 때는 반드시 세 명 이상씩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안전대책의 전부였다.
“쳐죽일 놈들!”
유장풍은 씩씩거렸다.
***
합격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스타일의 대답을 했으니 당연히 합격할 줄은 알았다.
이제 태천건설의 엄연한 사원이 된 것이다.
불입호혈(不入虎穴) 부득호자(不得虎子)라고 했다,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인데 일단 태천그룹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가장 먼저 형의 죽음에 대해 훑어볼 생각이다.
술이 깨고 나니 자신은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태천건설 이라크 모술 공사 현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신입사원이라고 하여 나라 밖에서 근무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유태수를 포함한 신입사원 다섯 명에게 모술 파견 근무가 떨어졌는데 출국을 준비하라는 인사팀으로부터의 통지였다.
“자네들은 호랑이 새끼들이야.”
느닷없는 호랑이 새끼라는 말에 모두가 인사팀장 오도석을 바라보았다.
“우리 회장님이 어떤 분인가. 물건이다 싶으면 처음부터 가혹하게 가르친다고, 즉 자네들은 야훼 하느님에게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라니까.”
개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도석의 말은 사실이다.
아버지 스타일은 싹수가 있다고 판단되면 어느 정도 힘든 단련을 시킨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지는 않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다른 직원들에 비해 앞서가는 건 사실이다.
최소한 직원급 최고위직인 부장 팀장까지는 동기들보다 앞서 도달한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다.
‘임원은 실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아버지 경영철학에 주춤하게 된다.
임원부터는 정치를 하는 자리다.
지금까지는 실력을 보여줬다면 임원이 되면 바깥에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사하여 오로지 회사 일에 목숨을 걸어온 그들이 무슨 수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을 만나 로비를 하겠는가.
그건 배우지 못한 전혀 다른 길이다.
당연히 사표를 쓰고 떠난다.
“돌아 버리겠네.”
“입사하자마자 퇴직하라는 건가?”
이라크 파견이 결정 난 다섯 명의 신입사원들이 생맥주집에 앉아 대책을 논의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네 명 모두 SKY 출신이었고 유태수만 D대 출신이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태천그룹이다.
고시 합격생도 부러워한다는 태천그룹 사원이 되었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투덜거린다.
인사팀장 오도석은 특공대라는 표현으로 다섯 명의 미래가 밝다는 사인을 주었지만 그건 먼 훗날 얘기다.
불만을 제기하기는 해도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라크라는 나라가 정치적 종교적으로 너무 불안하다는 게 그들이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였다.
여전히 치안이 어지럽고 잊을 만하면 이라크 재건 사업에 뛰어든 각국 노동자들이 테러에 희생되고 있었다.
작년에 국내기업 중 태천보다 한발 먼저 재건 사업에 뛰어든 H건설사 노동자가 납치된 지 보름 만에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배 형은 뭐 할 말 없어요?”
술좌석이 시작된 지 한 시간 가까이 되도록 말 한마디 없는 유태수를 향해 술이 불콰하게 오른 송만술이 물었다.
“없습니다.”
너무 간단한 대답에 모두가 놀란다.
“그럼 배 형은 이라크에 간다?”
“안 가면요?”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하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실소를 터뜨렸다.
간다.
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국내로 들어오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아잣!”
다섯 명의 신입사원들은 큰 소리로 외치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라는 제목으로 교육이 시작되었다.
초빙된 강사들은 대학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교수들과 중동의 역사학자, 그리고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서 나온 카림이라는 서기관이었다.
우선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온 건 술에 관한 것이었다.
“술 마시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강사는 빙긋 웃었다.
“공식적으로는 안 됩니다.”
“하면 비공식적으로는 된다는 것입니까?”
“국가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제외한 국가에서는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죠. 이집트와 요르단은 마십니다. 이라크도 쿠르드 자치주에서는 술이
허용되고 우리나라 맥주를 수입하기까지 하죠.”
강사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예를 들고 코란의 내용까지 설명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강사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점령군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 재건에 투입된 기업들을 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일부 급진적인 사람들은 개발을 빌미로 서방 기업들이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 간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반이슬람적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한 예로 몇 가지를 말해주었는데, 코란에서는 강제적 개종을 금지한다. 즉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성전(聖戰)으로 알고 있는 지하드는 왜곡된 해석이다.
지하드는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결심과 의지를 공고히 하는 행위다.
기독교 문화가 비틀고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슬람은 개인에 의한 사회정의 실현보다는 법의 지배를 강조하는 종교다.
코란은 이슬람의 성경이다.
알라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신이 아니라고 말했다가는 죽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다섯 사람의 눈은 반짝거리며 강사의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목숨이 걸린 얘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