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14화 (14/122)

14화 재벌집의 반란(2)

“영장이 나왔다고?”

퇴근해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 유장풍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 채무령이 우편으로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내밀었다.

“보세요!”

통지서를 받아 읽던 아버지의 눈이 커졌고 대번에 2층을 향해 소릴 질렀다.

“태수야, 유태수!”

소리가 쩌렁하게 울렸다.

2층 자기 방에 있던 유태수가 계단을 내려왔다.

“이게 뭐냐?”

“입영통지서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어떻게 네놈에게 이런 게 날아올 수가 있느냔 말이다.”

“지원했어요. 어차피 다녀올 군대 좀 일찍 가서 나쁠 것도 없고.”

“네놈이 왜 군대를 가?”

아버지는 당장 병무청장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유씨 집안에서는 누구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없다.

이후 아버지가 말렸지만 유태수는 입대했다.

“섭섭한데, 내 인상이 어때서 그러지.”

상념에서 깨어난 유태수는 방긋 웃으면서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기분 나빴다면 이해해라. 워낙 네가 말이 없다 보니.”

“나 말 많아. 얼마나 잘하는데.”

유태수는 히죽 웃었다.

표정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얼굴을 통해 드러나면 결코 좋을 것이 없다.

유태수는 좀 더 부드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마침내 왔다.

상상했던 그 이상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훅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불덩이 속에 뛰어든 것 같은 열기.

초록빛 나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도심지 바그다드는 온통 회색빛이었다.

“여깁니다. 여러분!”

입국장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한국말이 들려왔다.

푸른색 반팔 상의를 걸친 사내가 손을 흔들었는데 다른 손에 「태천건설 신입사원 5명 환영」이라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러면서 다섯 사람의 이름이 차례대로 적혀 있었다.

유태수 일행은 캐리어를 끌고서 사내 앞으로 걸어갔다.

“하하하! 원로에 얼마나 고생들이 많으셨습니까? 진심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난 태천건설 모술 도로건설본부 과장 정민출입니다.”

사내는 호탕하게 웃으며 유태수 일행과 악수를 나눴다.

“송만술입니다.”

모두가 악수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배석대입니다.”

“오오, 배석대 씨. 어서 와요.”

배석대에게만큼은 좀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유태수는 면접시험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 여기까지 전달됐다고 믿었다.

보나 마나 회장님께서 관심을 갖고 있으니 잘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모술 가는 국내선 비행기가 음, 딱 세 시간 후에 있으니 우리 어디서 간단히 배 좀 채울까요? 어때요?”

모두가 좋다고 대답했다.

“배석대 씨는?”

유태수 혼자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민출이 콕 찍어 물었다.

“저도 좋습니다.”

“오케이, 갑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아는 식당이 있어요. 자, 출발!”

정민출은 큰 소리로 말하면서 자신이 앞장을 섰다.

무척 명랑하면서도 소탈한 성격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일행이 청사를 막 벗어났을 때 앞서 걷던 정민출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 소장님! 네에에?”

정민출이 깜짝 놀랐다.

유태수는 놀란 정민출을 바라보았다.

예예, 하면서 계속 대답만 하던 정민출이 핸드폰을 내렸는데 표정이 심상찮다.

입국장에서 다섯 사람을 격하게 환영하며 큰 소리로 웃던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들 잠깐 저기서 담배 한 개비씩 피우고 있지?”

일행은 살을 태울 것 같은 뙤약볕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정민출이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걸 간파하고 어쩔 수 없이 20여 미터 떨어진 보행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딸칵!

유태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청사를 나오자마자 지체 없이 온 몸에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뭔 일이지?”

송만술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정민출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데.”

이승수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통화를 끝낸 듯 정민출이 걸어왔다.

딸칵!

자신도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붙을 붙였다.

정민출이 침묵했으므로 유태수 일행은 더욱 입을 열어 말할 수가 없었다.

“환승하여 오늘 모술까지 가는 일이 어렵겠는데. 바그다드에서 갑자기 볼일이 생겼어요.”

일행은 무슨 볼일이냐는 듯 일제히 바라보았다.

“곧장 대사관을 찾아가 회사의 메시지 한 통을 전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송만술이 물었는데 모술은 언제 가느냐는 질문이다.

“비행기는 어려울 것 같고 차로 이동해야겠죠. 일단 택시를 이용해 바그다드 태천건설 지사로 갑시다.”

일행은 두 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공항을 떠났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의 공식 채널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하기 때문에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가장 우선적으로 나선다.

유태수는 누런 이라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총알이 수시로 빗발치는 이라크다.

그러니만큼 신입사원 다섯 명을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회사로 데려가는 일보다 더 급할 건 없다.

‘뭘까? 신입사원 다섯 명의 안전보다 더 급한 일은.’

유태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

석양이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마지막 자신의 몸을 활활 태우며 스러지는 선홍빛 태양이 아니다.

태양이 뿌옇다.

갈색인 듯하면서도 붉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묻혀 가는 석양은 어딘가 삭막해 보이기조차 했다.

다섯 사람은 대사관 소파에서 30분째 대기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나올 것처럼 잠깐만 앉아 기다리라고 해 놓고서 들어간 정민출은 나올 기미가 없다.

그제서야 송만술을 포함한 네 사람은 뭔가 일이 제대로 터졌다는 것을 직감한 듯 표정들이 굳어졌다.

스윽!

기다리기 지친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딸칵!

바깥으로 나온 유태수는 한국에서부터 갖고 온 말보로 레드를 깊숙하게 빨아 당겼다.

땅거미가 대사관 앞마당까지 깊숙하게 들어왔다.

그린 존(green zone).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이 특별하게 관리하는 바그다드의 일부 지역을 말한다.

위험한 곳이라는 레드 존과 반대되는 의미로 대통령궁을 포함해 이라크 정부청사 건물들이 밀집된 지역인데 당시 각국의 외교관계자, 언론사들이 몰려 있었다.

지금은 이라크 정부가 관할하지만 한국 대사관은 그때 그린 존이었던 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뭔가 있는 것 같지?”

송만술이 다가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글쎄!”

송만술에 이어 나머지 세 사람도 사무실을 나와 같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늘 가긴 가는 거야?”

차만오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이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유난히 눈썹이 짙은 고주식이 히죽 웃었다.

그는 은근히 돌아갔으면 하는 빛을 감추지 않았다.

“저기 온다!”

정민출이 정장을 한 사내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일행은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껐다.

“많이 기다렸죠. 미안합니다.”

정민출이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이분들입니까?”

정민출과 나란히 온 정장 사내가 바라보았다.

서른 중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격이 머리를 짧게 쳤다.

“인사들 하죠. 채석목 2등 서기관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유태수 일행은 고개를 꾸벅했다.

채석목이 다섯 사람을 스윽 훑는다.

정민출에게 신입사원 다섯 명과 동행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을 것이다.

멈칫!

일행을 살피던 채석목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유태수는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채석목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는데 채석목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태천건설에 입사할 정도면 SKY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즉 공부에만 매달려왔으니 부드럽고 온순한 눈빛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서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

그냥 사물을 바라보는 그런 눈이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배석대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대학은? 별 뜻 없습니다. 내가 H대를 나왔는데 혹시 후배가 아닐까 싶어서 묻는 것입니다.”

채석목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도 H대학 나왔습니다.

“정말입니까? 난 14학번인데.”

“19입니다!”

채석목은 반갑다면서 악수를 청했다.

타국에서 만난 동문은 혈육 이상이라며 유태수를 한껏 치켜올리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유태수는 좋아하는 채석목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CIA를 보면 대사관 서기관급이 주로 화이트 요원이던데.’

CIA 구조를 알고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2, 3등 서기관들이 랭글리 소속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이 사람도 그럴까?’

그걸 그대로 KCIA(국정원)에 대입해 본 것이다

***

밤에 이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결국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검정 서버번 트래버스를 타고 떠났다.

워낙 덩치가 있는 차량이기 때문인지 여섯 명이 탔지만 불편한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부우웅!

바그다드 시내를 벗어난 차량은 본격적으로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곳곳이 패어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간 바람에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아스팔트지만 마른 비포장 길처럼 모래 먼지까지 심하게 휘날렸다.

길 위 모래는 바람에 실려 온 것들이다.

심할 때는 어디가 도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모래가 쌓일 때도 있다고 정민출이 말해 주었다.

“대충 느꼈겠지만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났어요. 나도 공항에서 전화를 받고 알게 된 거고.”

“무슨 사고?”

송만술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현장 근로자 두 명이 사라졌어요. 납치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지고 있는데.”

차 안에 찬 바람이 분다.

일행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중동의 테러 조직에게 끌려가 살아 돌아온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 그들이 태천건설에 입사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영국이나 프랑스 또한 미국과 같은 방향이다.

단지 일본은 반반이다.

겉으로는 미국의 협조를 받으면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지만 뒤로는 은밀하게 협상하여 돈을 주고 자국민을 데려오기도 한다.

결국 대사관에서 만난 서기관 채석목은 국정원 직원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미리 말하는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개인적으로 고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군대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절대 밖에 나가 떠들면 안 됩니다.”

채석목은 협박에 가까운 엄포를 늘어놓았다.

“담배 하나 피워도 됩니까?”

차 안에 에어컨을 틀어 문을 꼭 닫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정민출이 룸미러를 통해 맨 뒤에 앉은 유태수를 보며 말했다.

“배석대 씨, 진짜 왜 이러십니까? 그냥 피워요.”

유태수는 씨익 웃으며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우우!

가급적이면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으려 노력했다.

유태수가 피우자 그동안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듯 송만술이 재빨리 피워 물고 문을 열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민출이 여자 얘기를 꺼냈다.

여자 얘기에 피로에 젖어가던 일행의 잠긴 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종교적 율법에 의해 옷차림을 강요당하고 혼인 전까지는 가족을 제외한 어떤 남자와의 사랑도 철저히 통제받는다는 것 때문에 비이슬람권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이곳 여성들.

하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너무 쉽게 맺고 말았다.

정민출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여자가 있긴 한데 한 번도 데이트는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트를 못했으니 여자와 잠자리는 더욱 요원했을 것이다.

구구궁!

돌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이런 염병할!”

핸들을 잡고 있던 정민출이 버럭 소릴 질렀다.

유태수는 정민출의 시선을 따라갔다.

차량이 달리고 있는 오른쪽 3시 방향 저 멀리 거대한 갈색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저거 뭐야?”

“그거 아냐? 모래 폭풍?”

부아아앙!

정민출이 자동차 속도를 높였다.

모래 폭풍이 닿기 전에 위험지역을 벗어나 보려는 것이다.

유태수는 다가오는 모래 폭풍을 보며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던 것과는 느낌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거대한 산악에 더 가까웠다.

모래 폭풍이 태양을 가리면서 주위가 어두컴컴해졌다.

도로 상태가 나빠 거대한 덩치의 서버번이 금방이라도 전복될 듯 기우뚱거렸다.

핸들을 움켜잡고 있던 정민출이 버럭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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