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사막의 칼(1)
“에이!”
정민출은 그러더니 차를 멈춰 세웠다.
“유리 올리고 상체를 최대한 숙여.”
정민출 입장에서는 이미 몇 차례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타고 있던 차 안에 있었는데 딱 한 번 자동차 유리가 깨진 적이 있었다.
모래보다 조금 굵은 자갈들이 날아와 유리를 박살 내버렸었다.
그 바람에 직원 두 명이 파편에 부상을 당했는데 그때 경험을 떠올리며 몸을 숙이도록 지시한 것이다.
유태수는 바짝 엎드렸다.
구구궁!
굉음이 더욱 가까이서 들린다.
도착하자마자 직원 납치 소식에 이어 모래 폭풍을 만났다.
유태수는 이라크에서의 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하면서 자세를 낮췄다.
콰아아!
차량이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둠이 덮였다.
모래가 부딪치는 소리, 두두둑 하며 둔탁한 울림은 아이들 주먹만 한 돌멩이가 차를 때리는 소리다.
어떤 차도 모래폭풍을 한 번 뒤집어쓰고 나면 벌집이 된다고 나중에 정민출이 말해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퍽!
자신의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유태수는 살짝 고개를 틀어 올려 보았다.
자동차 유리에 금이 가 있고 작은 구멍이 보였다.
구멍이 뚫렸다는 건 뭔가 차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는 것이기에 슬쩍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왼쪽 역시 똑같이 금이 가 있고 구멍이 뚫렸다.
화악!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모래폭풍이 강하다고 해도 작은 돌멩이가 자동차 좌우 창문을 동시에 뚫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두두둑!
바로 그때, 모래폭풍의 소음을 뚫고 분명하게 들려오는 건 총소리였다.
“총소리지!”
정민출이 약간 고개를 들어 올릴 때 퍼퍽 하는 소리가 들리며 조수석 창문 유리가 깨져 내렸다.
“내려! 반대쪽 문으로.”
모래바람이 오른쪽에서 불어오고 있으므로 왼쪽 문을 열고 내리라는 뜻이었다.
유태수는 왼쪽 문을 열고 내렸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행은 차를 엄폐물 삼아 바짝 자세를 낮췄다.
총알은 많이 날아오지 않았다.
간간이 자동차에 박히는 소리에 총알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 앞에 쭈그리고 앉은 송만술이 뒤를 돌아보았다.
“총알이야.”
유태수는 단정했다.
“우리 차를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경험 많은 정민출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말했다.
“달려!”
모래바람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그건 바람이 곧 끝날 징후였는데 그 너머에 총을 쏘는 사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쯤 예상보다 훨씬 차량과 가까운 거리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짐은!”
“사람부터 살고 봐야지.”
고주식이 묻자 정민출이 쏘아붙이듯 말하면서 모래바람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그 뒤를 유태수와 일행이 따라 달렸다.
차 트렁크 쪽에 한국에서 가져온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가득 담은 캐리어가 있다.
하지만 모래바람 뒤에 숨어 총을 쏘며 다가오는 무장 강도들이다.
자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사막을 횡단하다 그들의 습격에 목숨을 잃는다.
치안은 도심 일부에만 활개를 칠 뿐이다.
모래바람이 지나가자마자 일행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서버번과의 거리는 대략 사오백 미터 떨어졌다.
세 사람이다.
머리에 쓰는 캐피야로 얼굴을 가리고 헐렁한 칸두라(원피스 같은 옷)를 걸쳤는데 일행을 살피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차를 끌고 사라졌다.
“저런 개새끼들!”
그들이 떠나고 정민출이 길길이 날뛰었다.
“가방에 가족사진 들어있는데…….”
“나도.”
“엄마가 준 내 묵주반지!”
졸지에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을 빼앗긴 유태수 일행들은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
전화 연락을 받은 바그다드 지사에서 급히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를 추가로 보냈다.
일행이 포드 익스플로러를 타고 모술 현지에 도착했을 땐 밤 11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모술에는 두 곳의 태천건설 현장이 있었다.
한 곳은 원유 시추 현장이고 다른 한 곳은 도로 건설 현장이다.
이라크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인 만큼 도로 파괴가 가장 극심했다.
시내 주요 도로는 어느 정도 복구되었지만, 간선도로와 외곽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도로가 여전히 정비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바깥에서 일상 물품들이 제때 들어오지 못해 모술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또한 모술을 통해 시리아, 터키, 이란으로 나갈 수 있는 150킬로의 고속도로까지 뚫는데 이번 사고는 도로 건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유태수 일행이 도착한 곳은 도로공사 현장 사무실이었다.
현장 사무실은 2층 목조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여기서 숙식하는 한국인 근로자는 150여 명이다.
단순 노무직은 거의 없고 도로를 닦고 내는 데 필요한 측량기사에서부터 중장비 기술직들이 전부였다.
물론 그 안에는 관리직원도 포함되어 있다.
군부대처럼 사무실과 숙소 주위로 3미터 높이의 철책이 쳐져 있었고 위로는 원형 철조망을 깔아 웬만한 특수부대원이 아니면 넘어올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입구 또한 모래포대를 쌓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놨다.
비록 무장한 경비원들은 아니지만 그들의 확인을 거쳐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태천건설이라는 이름 찍 박힌 사막색 작업복을 걸친 마흔 초반가량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소장 전통수였다.
해외건설 현장의 부소장이면 부장급이다.
전통수는 다섯 사람과 악수를 했지만 표정이 밝지 못했는데 아마 납치사건 때문인 듯 보였다.
“김 대리!”
한쪽에 서 있는 서른 초반가량의 사내, 김용석 대리를 불렀다.
“갈아입을 옷부터 주세요.”
중간에 강도를 만나 모든 걸 털렸다는 보고를 받고 속옷 몇 가지와 작업복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강도를 만나 털렸다는 얘긴 하지 말고 필요한 옷가지와 생필품 좀 보내달라고 한국으로 전화해요.”
그러면서 전통수는 손목시계를 본다.
시계가 열한 시 삼십 분을 지나고 있는데 서울은 지금 아침 여섯 시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전화하면 되겠네. 김 대리, 얼른 안내해요. 그리고 정 과장은 나 좀 봅시다.”
전통수는 정민출을 데리고 사무실로 사라졌고 김용석 대리는 유태수 일행을 관리직 사원 숙소로 데려갔다.
관리직원 숙소로 들어선 유태수는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군대 생활관을 떠올렸는데 너무 똑같았다.
차이라면 각각 독립된 침대가 있고 관물대 대신 벽에 문이 잠긴 캐비닛이 하나씩 있었다.
“이름 붙여 놓은 침대로 가면 됩니다.”
유태수는 침대 머리 쪽을 보며 걸어갔다.
「사원 배석대」 라는 이름표가 걸려 있는 침대를 발견했다.
유태수는 캐비닛을 열었는데 옷걸이 다섯 개가 문이 열린 진동으로 흔들거렸다.
멈칫!
유태수의 눈이 빛났다.
남자 팬티 석 장과 반팔 러닝 세 개, 그리고 사막색 군복 바지 한 벌에 태천건설 이름과 로고가 찍힌 회사 작업복 두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현장 근무 규정에 의하면 하의는 정장 바지 또는 면바지를 입어야 한다.
상의는 선택의 폭이 여유 있는 하의와 달리 반드시 회사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작업복)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스윽!
유태수는 사막색 군복 바지를 들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떠나면서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 중 가장 많은 것이 전투복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스륵!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군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놀랍도록 허리가 맞다.
줄이고 늘릴 필요도 없이 달라붙었다.
기장이 조금 길었지만 접어 올리거나 아니면 작업화 속으로 집어넣으면 될 것이다.
그에 반해 다른 동료들을 바라보던 유태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허리와 바지통, 길이 모두 포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컸다.
“급히 준비하다 보니…… 우선 입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모술 시내로 나가 사이즈가 맞는 바지를 구입하도록 합시다.”
거울 앞에 선 자신들의 모습에 모두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
눈을 떴다.
꼭 아침 다섯 시면 눈을 뜨는 버릇이 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형수들은 모두 다섯 시면 눈을 뜬다.
‘집행일이 되면 아침 다섯 시에 데리고 나간다.’
육군교도소 사형수들에게 아침 다섯 시는 생과 사가 교차하는 시간이다.
스스로 눈을 뜨면 그날까지는 살아 있는 것이고, 교도관이 깨우게 되면 마침내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스르륵!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유태수는 어젯밤에 받은 군복 바지에 회사 작업복 상의를 걸친 뒤 밖으로 나갔다.
움찔!
밖으로 나간 유태수는 깜짝 놀랐다.
사막의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는 걸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았다.
그런데 냉기를 느낄 만큼 공기가 차다.
이런 새벽 기온이 한낮에는 40도를 훌쩍 넘어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철판 구조물로 만들어진 2층 계단을 내려갔다.
딸칵!
입에 문 말보로 레드에 라이터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워문 유태수는 축구장 절반 크기의 현장 사무실 터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정문에 사람이 어른거리는 걸 발견하고 다가갔다.
마치 군부대를 방불케 할 만큼 바리케이드가 촘촘했다.
장갑차 정도가 아니면 밀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두꺼운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접이식 바리케이드와 흔히 A형 바리케이드로 불리는 스틸 바리케이드, 바퀴 달린 차량은 반드시 펑크가
나도록 육중한 철판에 말뚝 같은 못이 박힌 철심 바리케이드가 빼곡하다.
민간 기업 현장 사무실 출입구 바리케이드가 엄중하다는 건 그만큼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안녕하십니까?”
유태수가 다가가며 알은체하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며 모자를 쓴 사내가 고개를 내밀더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듯 위아래를 훑었다.
“어젯밤에 온 신입입니다. 배석댑니다.”
“아, 연락받았죠. 조성동입니다.”
“민철기라고 합니다.”
두 명의 경비 모두 문을 열고 나와 유태수와 악수를 했다.
유태수는 두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고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받아 입에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주는 유태수의 씀씀이에 두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경비부서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엔지니어 분야가 아닌 계약직 일반 노동자로 온 사람들이 돌아가며 선다.
“뭐지?”
그때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더니 민철기는 안으로 들어가고 조성동은 차량 차단기 앞에 섰다.
속도를 줄이며 승용차는 바리케이드를 따라 천천히 들어왔다.
이윽고 차단기 앞에 멈춘 승용차 운전석 유리가 내려가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은 어제 대사관에서 봤던 2등 서기관 채석목이었다.
“대사관에서 왔어요.”
“통과하십시오.”
안에 있던 민철기가 스위치를 눌러 차단기를 올렸다.
유리를 올리려던 채석목이 한쪽에 서 있는 유태수를 발견하고 알은체를 했다.
“석대 씨.”
후배라고 바로 반말이 나온다.
“잠이 안 온 모양이군. 하긴 시차도 있고, 언제 식사 한번 하자고.”
“감사합니다.”
차는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무실 앞에는 정민출과 부소장 전통수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 문이 열리고 채석목 말고도 두 명의 사내가 더 내렸다.
멀리서도 매우 건장한 체격임을 알 수 있었는데 머리에 사막색 터번을 둘렀고 통이 넉넉한 검은색 바지에 반팔 점퍼를 걸쳤다.
‘한국인 같은데.’
탁!
일행은 곧바로 사무실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