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사막의 칼(2)
찐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유태수가 근무하는 구간은 모술에서 국경도시 다후크까지 뚫리는 고속도로 제2공구 15킬로 구간이다.
유태수가 하는 일이라고는 설계 도면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살피는 것인데 주로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가끔 현장 근무도 나갔다.
모술에서 다후크까지 뚫는 고속도로는 시멘트 포장이다.
아스팔트가 소음이 적고 방수도 잘되면서 무게에 견디는 힘도 좋지만 문제는 수명이 10년에서 길어야 20년이다.
반면 시멘트는 포장도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들며 수명이 30년에서 40년 가까이 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덤프가 자갈을 쏟아 놓는다.
불도저가 덤프가 쏟아 놓고 간 자갈을 골고루 펼치고 무거운 롤러가 다지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한국 사람들이지만 일반 근로자 중에는 이라크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인 근로자들과 약간의 감정싸움이 발생한다.
우월한 위치를 이용한 한국 근로자들이 은근슬쩍 그들의 일을 간섭하기 때문인데 그게 간단하지 않다.
이라크 노동자들 역시 자기 나라라는 이유로 이른바 목에 힘을 주고 게으름을 피우며 설렁설렁 넘어가려 든다.
- 명령하지 마.
- 똑바로 못 해?
유태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다가가 화해시키며 다독였다.
“뭐라구요?”
2공구 작업반장 동반송이 큰 목소리로 핸드폰 통화를 했다.
유태수는 자연스럽게 동반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재빨리 전화를 끊은 동반송이 유태수를 향해 손짓했다.
“배석대 씨, 잠깐.”
유태수는 급한 일이라는 걸 직감하고 뛰어갔다.
“당장 타고르 마을로 가보게. 저기 차 있으니까 어서.”
“무슨 일입니까?”
“부소장님께서 빨리 차를 갖고 오라는 거야. 조수석에 있는 지도 보고 B34번 도로 타면 될 거야.”
유태수는 뿌연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은색의 포드 익스플로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공사장을 빠져나온 유태수는 조수석에 접힌 채 놓인 지도를 펼쳤다.
“B34번 도로!”
손가락으로 더듬듯 찾더니 눈을 빛낸다.
“5킬로 정도 달리다 오른쪽 길로 빠지면, 여깄군. 타고르 마을.”
타고르 마을이라고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는 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
B34번 도로를 벗어나 타고르 마을로 들어서는 길로 접어들었다.
비포장길이다.
도로 왼쪽으로는 마른 개천이 이어지는데 오른쪽은 밭이다.
그런데 장미를 닮은 형형색색의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화악!
유태수의 눈이 커진다.
자신도 모르게 차량 속도를 떨어뜨리며 침을 삼켰다.
“설마 양귀비!”
미군이 주둔할 때까지만 해도 양귀비 재배는 발견하는 즉시 불태웠고 갈아엎어 버렸다.
하지만 미군이 떠나고 불안한 정정이 이어지며 북부 고원지대에서는 골짜기 마을마다 양귀비로 생계를 잇는다고 들었다.
옥수수나 감자와 같은 농산물에 비해 소득이 세 배나 높은 양귀비다.
농민들도 양귀비가 나쁘다는 걸 알지만 옥수수나 감자처럼 많은 손길이 가지 않으면서 소득은 세 배 이상이 되므로 악착같이 감시를 피해 재배하는 것이다.
“틀림없다. 양귀비다.”
5, 6월이 되면 꽃이 피는데 색깔은 백색을 비롯해 여러 가지다.
꽃이 질 때쯤이면 줄기 끝에서 씨앗(열매)이 맺히는데 표면에 살짝 칼로 긁으면 흰색의 물이 나오는데 이게 곧 아편이었다.
갈수록 길은 험해졌고 차는 뒤집어질 듯 좌우로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세 번째 고개를 넘어설 때 유태수는 소스라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탕!
드르르륵!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는 포드 익스플로러의 엔진소음을 뚫고 분명하게 들리는 건 총소리였다.
벌컥!
재빨리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탕탕탕!
우두두두!
단발의 총성과 자동 화기 소리가 엉킨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총소리였다.
유일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건 현역으로 복무할 때 사용했던 K2 소리다.
드르륵!
드르륵!
자동소총을 십여 발씩 갈길 때 나타나는 패턴이다.
그런데 우두두두 하며 쏟아내는 것과 드르륵 하는 총소리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우두두가 약간 두껍게 울린다면 드르륵 하는 소리는 가늘고 차갑다.
칼과 창.
우두두 하는 소리가 묵직한 칼이라면, 드르륵 소리는 매섭게 찔러 들어오는 창 같다는 느낌이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유태수는 총알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타고르 마을」
길가 숲에 엎드려 내려다보는데 저 멀리 30여 가구가 몰려 사는 마을이 나타났다.
지도는 차에 있지만 유태수는 직감적으로 목적지라는 걸 알아차리며 좀 더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휘익!
재빨리 길가 바위 뒤로 엎드렸다.
뭔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귀를 세웠다.
“미친놈들!”
분명 우리 말이다.
“부소장님, 부소장님! 이거 안 되겠는데, 엠병할 동 반장은 왜 연락이 없어.”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틀림없는 정민출 과장의 목소리다.
유태수는 재빨리 소리가 들려오는 길 아래쪽을 향해 자세를 낮추고 내려갔다.
멈칫!
혹시 몰라 오른손에 주먹만 한 돌멩이를 쥐었다.
무성무기 훈련을 받았다.
20미터 내외의 거리라면 원하는 부위에 정확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과장님!”
약간 비탈진 도로 언덕에 한 사람이 헐떡대고 있었는데 정민출 과장이다.
다른 한 사람은 비스듬히 누운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배석대 씨!”
유태수는 재빨리 다가갔다.
등을 돌린 채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은 부소장 전통수였다.
오른쪽 어깨 쪽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작업복을 찢어 묶었지만 피가 배어 넘쳐흐른다.
“배……석대 씨.”
전통수 부소장이 힘없는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확!
유태수는 재빨리 자신의 상의 작업복을 벗었다.
이어 안에 입고 있던 반팔 러닝셔츠를 훌렁 벗더니 길게 찢었다.
찌이익!
그리고는 전통수의 오른쪽 어깨를 감고 있던 작업복을 벗겨 냈다.
“뭡니까?”
“총 맞은 상처 응급처치는 잘해야 합니다.”
유태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물 있죠?”
정민출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수통을 건네주었다.
주르륵!
상처 부위를 씻어냈다.
생리 식염수가 있으면 좋지만 일단 생수로 씻는 것도 상처 부위가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스슥!
유태수는 찢어진 러닝셔츠로 상처 부위를 감기 시작했다.
지혈을 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탄력이 있는 압박붕대다.
하지만 압박붕대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탄력이 있는 러닝셔츠로 감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어 유태수는 바지 혁대를 풀더니 오른쪽 팔이 흔들거리지 않도록 몸에 붙여 가볍게 채웠다.
“가시죠.”
우두두두!
드르륵!
총소리는 여전히 들려왔고 유태수는 전통수 부소장의 왼팔을 자신의 어깨 뒤로 돌려 부축하더니 언덕을 올라갔다.
정민출은 놀란 표정이었다.
응급처치를 하는 유태수의 행동이 전문가 수준으로 보인다.
믿을 수 없게도 아무리 지혈해도 흘러내리던 어깨의 피가 더 이상 옷 밖으로 스며 나오지 않는다.
지혈이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다닥!
길 위로 올라선 정민출이 재빨리 차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유태수는 조심스럽게 전통수를 뒷좌석에 앉힌 뒤 말했다.
“과장님, 뒤에 앉으시죠.”
조수석으로 타려던 정민출이 멈칫하더니 유태수의 말뜻을 알아차린 듯 뒷좌석으로 올라갔다.
전통수의 옆에 앉아 간호하라는 뜻이다.
차를 돌리기 위해 후진을 하려는데 갑자기 무전기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정 과장, 어딥니까?]
채석목 2등 서기관의 목소리다.
정민출 과장이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받았다.
“서기관님!”
[비…… 빌어먹을…… 우욱.]
“왜 그러십니까?”
[나…… 나 좀.]
살려달라는 목소리다.
무전기를 통해 신음이 들릴 정도인 걸 보면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정민출 과장이 머뭇거린다.
가기 싫은 모양이다.
“석대 씨가 좀 다녀오면 안 될까? 난 부소장님을 모시고 빨리 병원으로 가봐야 하는데.”
유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렸다.
“무전기 주세요.”
무전기를 받아든 유태수는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갔고 정민출은 차를 돌려 사라졌다.
길 아래로 이어지던 개천은 이제 폭이 좁아지며 계곡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바위투성이인 계곡을 따라 백 미터쯤 내려갔을 때 총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두두두!
드르륵!
커다란 바위를 돌아 나가려던 유태수는 멈칫했다.
채석목이다.
계곡 옆 커다란 가시나무 아래 앉아 있었는데 땀을 뻘뻘 흘린다.
유태수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다시 무전에 대고 정민출을 찾았다.
멈칫!
다가가던 유태수는 채석목의 손에 있는 권총을 발견했다.
‘그럼 아까 들었던 단발의 총성은 저 권총.’
드르륵!
창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총소리가 목전에서 들리고 있었다.
칼처럼 두껍고 묵직한 우두두 하는 총소리는 들리긴 했지만 처음과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즉 우두두 하며 내는 총 쪽이 밀리고 있다.
타타타탁!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탁!
유태수는 재빨리 채석목의 손에 들린 권총을 빼앗아 몸을 숨겼다.
파팟!
하마터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터번을 두른 이 지역 복장의 사내였기 때문인데 가까이 다가오고서야 방아쇠에 손을 뺐다.
‘아침의 그 사내다.’
일찍 현장 사무실을 찾아온 채석목의 차량에서 내리던 둘 중 한 명이었다.
통이 넓은 검은색 바지에 반팔 점퍼, 그런데 사내의 손에는 낯익은 총이 보인다.
‘M4.’
사격해보지는 않았고 언젠가 미군과 함께했던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 때 만난 미군들 손에 들려진 자동소총.
미군 보병의 제식무기다.
M16A2에서 파생된 소총으로 이라크전에서 분명한 위력을 보였다.
HK416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가장 강력한 서방의 소총으로 이용되고 있다.
드르르륵!
엄청난 사격이 쏟아졌다.
한두 명이 아니다.
유태수는 재빨리 사내를 끌어당겨 바위 뒤로 숨겼다.
사내의 왼쪽 소맷자락 아래로 피가 흘러내린다.
학학!
사내는 바위 뒤로 주저앉으며 헐떡거렸다.
“이리 주시오!”
유태수는 권총을 건네주고 사내의 손에 들려 있는 M4를 쥐었다.
유태수는 조심스럽게 바위에 앞가슴을 밀착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때마침 4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 뒤에서 터번을 쓴 사내가 AK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좀체 맞지 않는 것이 총알이다.
월남전에서는 십만 발 당 한 명 죽였고 이라크 전쟁에서도 그와 비슷할 만큼의 확률 낮은 명중률을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과 교전할 때 머리를 엄폐물 밖으로 내밀고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각도를 맞추고 거리를 계산해 그냥 당기는 것이다.
꿩처럼 머리를 엄폐물 아래로 숨긴 채 말이다.
-그런 사격에 맞을 놈 있겠냐.
수색대 시절 중대장이 말했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조준 사격을 한다고 해서 적의 총에 맞아 죽을 일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뜻이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사내가 쓰고 있는 터번을 훌러덩 벗겨지며 핏발이 튀는 모습이 보인다.
파파파팟!
유태수가 숨어 있는 바위를 향해 집중적으로 총알이 틀어박혔다.
‘다섯, 여섯.’
한두 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