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17화 (17/122)

17화 제대로 맞은 뒤통수(1)

웬만해서는 총알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여섯 명이 한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갈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딱!

총알이 바닥났다.

유태수가 내려다보자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던 사내가 30발들이 탄창 두 개를 뽑아 건네주었다.

툭!

빈 탄창을 버리고 재빨리 새 탄창을 끼운 유태수는 전방을 향해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

소낙비처럼 쏟아낸 유태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서기관님을 부축하세요!”

명령하듯 말하고 자신은 다시 돌아서서 추격해오는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사내가 채석목을 부축하여 계곡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파팟!

피융!

총알이 난무하고 돌조각이 튕기면서 그야말로 계곡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훅훅!

유태수는 호흡을 다스리며 중얼거렸다.

‘왼쪽 11시 방향, 검은색 터번.’

휘익!

재빨리 바위 밖으로 무릎쏴 자세를 취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세 발의 점사.

11시 방향 아카시아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검은색 터번의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파파팍!

유태수는 번개처럼 달렸다.

채석목을 부축한 사내가 계곡의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추격해오는 적에게 둘 모두 완전하게 노출되고 있다.

투툭!

어느새 탄창을 바꿔 낀 유태수가 엄호하듯 조준사격을 못 하도록 무차별로 갈겼다.

그사이 두 사람은 길 위로 올라서 모습을 감추었다.

유태수는 전력을 향해 뛰었고 번개처럼 언덕을 달려 올라갔다.

파파팟!

주위로 AK 총탄이 박히면서 흙먼지가 피어난다.

유태수는 채석목을 데리고 가는 사내를 보았다.

그는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뭐라고 떠들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컸다.

이 깊은 산속에 핸드폰이 시원하게 터질 리가 없으니 더욱 핏대를 올리는 것이다.

여긴 이라크다.

한국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기지국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을 턱이 없고 한국의 산보다 훨씬 골이 깊다.

“적당히 하시죠.”

유태수가 차갑게 말했다.

홱!

사내가 화난 얼굴로 쏘아본다.

“이봐! 지금 내게 한 소린가?”

“쫓아오는 놈들한테 나 여깄다고 알려주는 거요?”

저쪽도 이쪽도 모두 사격을 멈췄다.

총소리 없는 깊은 산속에서 사람의 목소리야말로 가장 분명한 방향지시등이다.

“으음!”

사내는 어금니를 문다.

면전에서 무안을 당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보다는 숨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무슨 개소리야.”

유태수가 사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금 전 일로 자존심이 상한 듯 사내의 입이 거칠다.

“채 서기관님을 버리고 당신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겠죠. 두 다리가 튼튼하니 말이오.”

사내는 팔을 다쳤으나 채석목은 다리를 다쳤다.

즉 채석목을 버리고 간다면 충분히 살 수는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사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금방이라도 한 대 갈길 듯 오른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신을 의리도 모르는 놈으로 판단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도망자는 본능적으로 멀리 가려 하죠. 마찬가지로 사냥꾼 또한 사냥감이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이 어떻습니까? 지금 그 몸으로 쫓아오는 그들을

피할 자신 있습니까?”

“그래서 그냥 잡히자고?”

“오래 속이지는 못할 겁니다. 내가 적을 유인할 테니 그때 떠나십시오.”

다다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태수는 곧바로 맞은편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두두두두!

맞은편 산으로 들어간 유태수는 계곡 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반응은 즉각 왔다.

드륵!

드르륵!

산길을 가운데 두고 양측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가시죠!”

사내는 채석목을 부축하여 산길을 내려갔다.

전화는 터졌고 마침내 포드 익스플로러가 왔다.

정민출이 핸들을 쥐고 있었다.

“뭐해, 출발하지 않고!”

채석목을 부축해 태운 사내 전주식이 소리쳤다.

“배석대 씨는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서기관님 상태가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어요. 빨리 가자니까.”

질끈!

정민출이 입술을 물더니 차를 돌렸다.

부우웅!

차는 먼지를 날리며 떠나갔다.

***

밤이다.

정민출은 저녁 식사도 걸렀다.

입맛이 없다.

배석대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부소장 전통수와 서기관 채석목, 그리고 국정원 요원 전주식까지 모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지이잉!

손에 들고 있는 현장 무전기가 울렸다.

[과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경비실이다.

“누군데요?”

[미국 대사관에서 나왔다는데요.]

미국 대사관이라는 말에 정민출은 깜짝 놀라며 돌아섰다.

밤이면 군부대처럼 야간 등화관제를 철저히 하므로 경비실을 밝히는 건 으스름한 야광 반사 띠만 보일 뿐이다.

정민출은 이마를 찌푸리며 걸어갔다.

서버번 한 대가 라이트를 끈 채 바리케이드에 막혀 있었다.

정민출이 다가가자 운전석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백인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조수석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의 사내가 있다.

“소장님 되십니까?”

현장소장은 지금 본사의 호출을 받고 급히 서울로 날아갔다.

“계시지 않습니다만, 미국 대사관에서 웬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

정민출이 차단기를 올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차단기가 올라가고 서버번은 천천히 경비실을 통과했다.

정민출은 이마를 찡그리며 차 뒤를 따라갔는데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미국 정도면 아무리 쉬쉬해도 근로자 납치 사건을 알 것이다.

탁탁!

두 명의 백인 사내가 내리더니 어둠 속에 있는 현장 사무실을 스윽 살피듯 보더니 말했다.

“부소장님입니까?”

“정민출 과장입니다.”

“부소장님은 어디에 있죠?”

“업무차 나가셨습니다.”

“어디? 바그다드? 아니면 모술?”

표정은 부드럽지만 질문은 집요하다.

‘CIA군.’

두 사내는 이마를 찡그리며 정민출을 쏘아보았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뭘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그때 경비실에서 다시 무전이 걸려 왔다.

[과장님, 배석대 씨가 왔습니다.]

“뭐어!”

정민출은 깜짝 놀라며 경비실로 달려갔다.

다다다닥!

태어나 이렇게 미친 듯 달려보기는 처음이다.

신입사원이 오자마자 시체로 발견된다면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고 일은 일파만파 커질 것이다.

그것도 동료들을 구하려다 죽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대책 없다.

신입사원이 무슨 일로 총에 맞아 죽었냐며 파고들면 오늘 작전에 대한 비밀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석대 씨!”

딸칵!

유태수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정민출이 황급히 말보로 레드 연기를 내뿜는 유태수를 재빨리 살폈는데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

단지 왼손에 M4소총을 들고 있었다.

“하아! 왔군. 잘 왔어요.”

정민출은 흥분했다.

탁!

정민출이 재빨리 총을 빼앗아 경비에게 건넨다.

“빨리 숨겨요.”

경비는 총을 받아 책상 아래에 감췄다.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두 명의 백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국 대사관에서 왔다는데 무슨 냄새를 맡은 것 같아. 혹시 뭘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 이제 막 온 신입사원이라면서.”

정민출이 빠르게 말을 뱉었다.

척!

두 사내가 다가오더니 유태수의 위아래를 훑었다.

미군이 던져 놓고 간 사막색 전투복 바지에 태천건설 작업복 상의를 걸쳤는데 땀에 흠뻑 젖은 초췌한 행색이었다.

“직원인가요?”

“당신들은 누군데?”

유태수는 유창한 영어로 물었다.

거의 본토에 가까운 발음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했다.

“사이먼.”

“폴입니다.”

유태수는 두 사람과 악수를 했다.

“배석댑니다.”

“이 밤에 힘든 일을 했을 리는 없고, 어딜 다녀왔기에 그렇게 땀을 흘리시죠? 왼쪽 옷소매도 찢어졌고, 신발에 묻은 건?”

그렇게 캐묻더니 코를 벌름거린다.

“그렇군요. 양의 배설물 맞죠?”

***

쫓기는 도중 추적자들의 인원은 갈수록 늘어났다.

자칫 포위될 위험에 직면하자 유태수는 도망 대신 오히려 타고르 마을로 들어갔다.

적의 둥지 속으로 진입한 것이다.

태풍의 핵은 오히려 잔잔하다.

마을 주민들의 눈에 띄어도 안 되기에 그들이 잠들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는데 마땅한 장소라는 것이 양 우리뿐이었다.

한밤중의 양들은 낯선 사람이 자신들 틈에 숨어들었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유태수는 봐서는 안 될 상황 하나를 목격하고 말았다.

일이십 분도 아니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양들의 배설물 냄새가 너무 심했다.

할 수 없이 조용히 빠져나와 창고로 들어갔다.

양들에게 먹일 건초가 쌓여 있었는데 창고 안으로 들어간 유태수는 소스라치고 말았다.

건초더미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숨이 끊어져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들이댔던 총구를 재빨리 거둔 유태수는 두 사람을 살피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엇!’

둘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태천건설 작업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사내는 온몸을 떨었는데 총을 들고 있는 유태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태수는 한눈에 납치된 태천건설 소속 두 명의 노동자라는 걸 알아보았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윤기철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은 고도춘.

두 사람은 모술에 일을 보기 위해 외출 나왔다가 납치당했다

납치범들은 스스로를 ‘매해 부사 하라이(사막의 요람)’라 칭했다.

그들은 두 사람의 몸값으로 천만 달러를 요구했으며 그동안 태천건설 측과 몇 번의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합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어제 사막의 요람 쪽에서 그동안 태천건설이 내놓은 오백만 달러의 몸값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오늘 만났다.

그런데 수월하게 잘 흘러가던 판이 갑자기 깨졌다.

인질 교환을 위한 회담이 벌어지고 있는 타고르 마을 앞 혀타알 계곡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시 두 사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에 대기하고 있었다.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진 걸 보고 앞이 캄캄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을 때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던 두 명 중 아브칸이란 사내가 푹 쓰러졌다.

총을 맞은 것이다.

이윽고 자신들을 향해서도 엄청난 총알이 쏟아졌다.

부랴부랴 도망쳐 왔지만 오는 도중 고도춘이 총을 맞았고 과다출혈로 숨졌다.

자신도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점점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놀라운 건 자신들을 데리고 온 다이에란 사막의 요람 소속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 한국 쪽에서 먼저 공격했다.

인질을 데려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쨌든 총격전은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윤기철은 유태수의 알뜰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쇼크사로 숨을 거두었다.

인질 두 명 모두가 숨진 것이다.

유태수는 핸드폰에 윤기철이 남긴 말을 모두 녹음했고 죽은 두 사람의 시신을 몇 컷 찍었다.

***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사이먼이라는 자의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다.

유태수는 말보로 레드를 입에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아 당겼다.

“당신이 질문을 하면 난 대답해야 합니까?”

후우!

뿜어낸 말보로 레드 연기가 사이먼 얼굴을 덮었다.

사이먼과 폴이란 사내들이 떠났다.

멀리 깜빡거리며 사라지는 차량의 미등을 바라보는 정민출의 눈이 좁혀진다.

CIA 요원들이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