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제대로 맞은 뒤통수(3)
이곳 모술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평균 일주일이면 두 번 정도 테러가 일어난다.
전쟁이 끝난 뒤 한동안은 정치적 테러가 거의 전부였지만 지금은 테러를 빙자한 금품을 노린 무장 강도 사건이 상당하다.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테러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자금(資金).
테러도 돈이다.
한 방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규모가 커야 한다.
그 한 방의 폭탄을 준비하는 데 적게는 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들어간다.
폭발의 위력이 클수록 고가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러시아의 유명한 무기상 드라모포프가 1억 달러면 인구 50만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알카에다가 강력한 테러 조직으로 부상한 데에는 빈 라덴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부호가 있었다.
이슬람극단주의(IS)는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를 팔아 테러와 전쟁 자금을 충당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세는 달라졌다.
석유로 인한 돈줄이 막히자 테러 조직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쫓기 시작했다.
그중 테러 집단들의 가장 큰 사업은 아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튀르키예 동부, 파키스탄 북부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된 엄청난 양의 아편이 헤로인으로 제조되어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 중 한 곳인 걸프 카르텔로
넘어간다.
그다음이 인신매매, 납치, 청부살인이다.
IMF는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하는 데 5,00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지금 중동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기업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고, 테러 조직들은 이들 국가의 근로자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민간군사기업 PMC(Private Military Company)에게 생명과 재산 보호를 맡겼다고 들었습니다만?”
송만술이 물었다.
“그들은 든든하지. 숙련된 전쟁 기술자들인데, 죽인다고.”
“왜 우리 회사는 그들을 쓰지 않죠?”
“돈, 모든 건 돈이야.”
돈을 아끼려다 애먼 노동자들만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병원 안으로 들어갔던 유족들이 유태수와 같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바탕 크게 울었는지 유족들 눈자위가 빨갛고 일부는 아직까지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정민출은 숙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정민출은 봉고차에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김용석 대리와 같이 떠났다.
“내일 떠난다고?”
봉고차가 사라지자 송만술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딸칵!
유태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회사 아냐?”
송만술이 돌아보았다.
“그렇잖아. 일하는 근로자 두 명이 납치되어 죽었는데 고작 과장 따위가 유족들을 안내하다니, 회장은 몰라도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이사급 정도가 나와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장소장은 무슨 일인지 급히 서울로 돌아갔고 부소장은 총상까지 입고 치료 중이다.
“우리도 잘못되면 저 꼴 나는 것 아냐? 석대야?”
송만술이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
그 시간 서울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라기보다는 유장풍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이 오도석과 마주 앉아 있었다.
둘 모두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 뭔가 심각한 사안을 놓고 얘기 중인 듯했다.
“확실한 거야?”
유장풍의 목소리에 냉기가 깔린다.
“예! 모든 걸 알고 있죠. 본인이 개입한 일이어서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배석대!”
유장풍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놈 마음에 들었던 녀석인데.”
자신의 눈은 아직까지 틀려 본 적이 없다.
배석대의 눈은 살아 있었다.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을 의지와 기백이 담겨 있었다.
첫눈에 대단한 물건이라는 걸 간파했다.
“흐흠! 아무리 아까워도 할 수 없지. 녀석과 나의 인연이 닿지 않음이니.”
진주라고 해도 때로는 돌멩이 하나만도 못할 때가 있다.
즉 찬란한 진주라고 해도 버릴 땐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유장풍이 말했다.
***
“배석대 씨!”
여전히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유태수는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한국인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넥타이를 하지 않은 정장 차림이었다.
유태수는 다가오는 두 사내를 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유태수는 대추 야자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았다.
“전해 듣기에 사막의 요람 조직원들과 총격전까지 벌였다던데?”
“그렇습니다!”
“혹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유태수의 눈이 빛났다.
사실 유태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날 아침에 분명 서기관 채석목 외에 두 명의 사내들이 더 차에서 내렸다.
그중 한 명은 전주식으로 지금 병원에 있다.
나머지 한 명,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그 한국인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들 역시 대사관에서 나왔다고 했지만 국정원 요원이고 돌아오지 않는 남은 사내의 행방을 묻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냥 죽은 시신 한 구 못 봤냐고 물어도 될 걸 어떻게 해서라도 감추려 든다.
“이상한 점?”
유태수는 모른 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두 사내는 잠시 당황했다.
그럴 것이다.
자신들의 질문이 너무 핵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던 사내가 다시 물었다.
“돌아온 그 날 작업화에 양의 배설물이 묻어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다.”
끝내 한국인 시신에 대한 얘기는 접는다.
유태수는 속으로 흥미를 느꼈다.
“신발이 양의 배설물 냄새를 풍길 만큼 젖으려면 양의 우리 정도는 들어가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날카롭게 파고든다.
“워낙 추적자들이 많아 따돌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오히려 추적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해 마을로 들어갔다는 것이군요?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
“나름대로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 적중했고 그래서 살아 돌아온 것 같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질문은 없다.
대신 두 사내는 유태수를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릴 안내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날 배석대 씨의 동선을 말입니다.”
“회사에는 우리가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정 과장님, 배석대 씨와 잠시 미팅을 해야겠는데 시간 좀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사내가 정민출 과장이 오케이 했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면 안 갈 수도 없다.
CIA 사이먼의 말에 의하면 타고르라는 마을이 사막의 요람의 본거지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지역 주민들 모두 그들 편에 서서 아편을 재배하며 먹고 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했다.
***
혼다 SUV가 멈추고 사내들이 내렸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내린 대사관 직원 김평대와 곽철종의 손에는 M4가 들려 있었다.
뒷좌석에서 빈손으로 내리는 유태수를 보더니 김평대가 잠시 머뭇거렸다.
덜컥!
결국 콘솔 박스를 열어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글록-19다.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다.
다만 현존하는 권총 중 가장 내구성이 좋고 잔고장이 적어 많은 국가에서 사용 중인 대중적인 권총이다.
“권총 사격 해봤어요?”
“군대에서 두어 번.”
“수색대대 출신이라고 했던가.”
그러면서 권총을 건네준다.
툭!
권총을 받자마자 유태수는 탄창부터 빼서 실탄을 확인했다.
기본은 17들이 탄창이라고 들었는데 손가락으로 총알을 눌러 본다.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그건 열일곱 방이 만땅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탁!
슬라이스를 당기고 탄창을 끼운 뒤 앞으로 밀었다.
철컥!
슬라이스가 전진하며 실탄 한 발을 약실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이제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된다.
능숙하게 권총을 다루는 유태수를 보는 김평대와 곽철종의 눈이 빛났다.
두어 번 만졌다고 했는데 아니다.
유태수는 둘을 데리고 고개를 넘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타고르요.”
“여기서 교전을 벌인 건 아닐 것 아닙니까?”
유태수는 조금 내려가다 왼쪽 계곡으로 내려갔다.
멈칫!
김평대가 놀란다.
계곡 바위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보인다.
핏자국을 발견한 두 사람의 자세가 재빨리 낮아지면서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유태수가 앞장섰다.
빠르다.
두 사람은 혹시라도 매복이 있을까 봐 잔뜩 긴장해 보였지만 유태수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대낮에 매복할 탈레반은 없다.
숲이 한국의 산처럼 우거졌다면 모를까, 나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마사토로 뒤덮인 민둥산이다.
더욱이 타고르 마을은 그들의 본거지가 아니라 태천건설 노동자들을 납치하면서 잠시 협상의 지역으로 이용한 것 뿐이다.
또한 한국의 특수부대가 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 주둔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구출부대가 오니 마니 하는 말들이 있었으니 계속 남아 있을 이유는 더욱 없다.
그래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멈칫!
타고르 마을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비가 올 때 계곡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는데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화악!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시신 한 구가 구더기에 덮여 있다.
입고 있는 옷을 발견한 유태수는 그날 아침 채석목이 타고 온 차량에서 내렸던 두 명 중 한 명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고약한 냄새에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윗도리를 벗어 코를 막으며 다가온 김평대가 막대기 하나를 주워 신발을 살폈다.
그날 작전에 투입될 당시 신었던 신발은 만에 하나 사망하거나 했을 때를 대비한 신분증이다.
붙잡히거나 사망해도 한국인이라는 신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울버린!”
유명한 미국의 아웃도어 신발 브랜드.
맞다.
시신의 주인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오무철이다.
촤라라락!
곽철종이 가져온 알코올을 시신에 뿌렸다.
그러자 구더기들이 일제히 굴러떨어지면서 시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더운 날씨에 시신은 내장까지 완전히 부패했고 얼굴도 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알코올로 대충 씻어낸 시신의 품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곽철종이 준비해온 시신 백을 가져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수습해 담았다.
지이익!
지퍼를 잠근 곽철종이 시신 백을 들고 계곡을 걸어 올라갔다.
딸칵!
유태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총 회수합니다.”
김평대가 손을 내밀었다.
유태수는 글록 19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권총을 돌려주는 것과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탕!
“크훅!”
담배를 피우고 있던 유태수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물고 있던 담배는 저만치 나가 떨어졌고 총알이 왼쪽 어깨를 뚫으면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김평대의 손에는 유태수가 돌려준 글록 19가 쥐어져 있었다.
“뭐 하는 짓입니까?”
김평대가 왼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 지포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후우우!
5, 6미터 떨어져 계곡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유태수를 바라보며 김평대가 말했다.
“미안하군!”
“날 죽이려는 것입니까?”
유태수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뭘까.
‘설마?’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김평대는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다.
사실 병원에 있던 서기관 채석목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다.
「배석대를 없애 버리게.」
배석대를 죽이라는 채석목의 명령.
그건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