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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20화 (20/122)

20화 살 놈은 산다(1)

제거 이유는 그가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세상에 드러나면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치안 부재로 혼란스러운 이라크에서 노동자 한 명 실종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

“내 입이군?”

“그렇지.”

“누구 뜻입니까?”

“여러 사람의 생각입니다. 굳이 한 사람만 지목한다면 유장풍 회장님이 가장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살아 있는 자의 입은 언젠가 열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시체는 절대 말을 못

한다.”

유태수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나타났다.

아버지 특유의 스타일이다.

화근은 절대 가만 놔두는 법이 없다.

- 내가 어떻게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냐고?

고등학교 일학년 때 식사 자리에서 불쑥 물은 적이 있었다.

막내아들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때까지는 말을 잘 들어서인지 유장풍은 망설이지 않고 말해주었다.

- 경쟁자는 따돌리고, 막아서는 자는 치웠다.

걸어가야 할 길을 닦는데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은 결코 가만 두지 않았다.

치워야 한다.

정을 두면 안된다.

인생은 앞을 보는 거지 결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다.

그때는 정확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당시 아버지 유장풍의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뜻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국정원과 은밀하게 교류하면서 두 명의 노동자를 없앤다.

그리고 납치범들이 죽였다는 발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유태수가 끼어든 것이다.

정민출 과장까지는 회사에 완전히 몸과 영혼이 묶였다.

- 그래도 계열사 사장 자리 하나 정도는 앉아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 한마디로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신입사원은 틀리다.

아직 조직 생활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알 수가 없고 협상하여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고 해도 언제까지 같은 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화악!

바로 그때 유태수의 오른손이 앞으로 뿌려졌다.

계곡 바닥에 있는 모래를 한 줌 쥐고 김평대를 향해 뿌려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뿌연 먼지와 모래가 앞을 가렸다.

탕!

타아앙!

김평대는 본능적으로 연거푸 두 번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 역시 온전할 수 없었는데 눈 속으로 모래 먼지가 들어가면서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이런 쓰빨 자식!”

그러면서 다시 연거푸 방아쇠를 더 당겼다.

들어간 모래로 인해 눈이 아프다.

어떻게 해서라도 눈을 떠보려 했지만 눈물까지 차오르면서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유태수가 앉아 있었던 위치를 짐작하여 마구 갈겼다.

타타타탕!

한편 죽은 오무철의 시신을 시신 백에 담아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실은 곽철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두 발의 총성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첫 발에 치명타를 먹이지 못했을 경우 확인 사살 차원에서 한 방 더 갈긴다.

하지만 지금의 총소리는 다르다.

사람 한 명 죽이는 데 열 발을 넘게 쏘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간파한 곽철종이 M4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와아아! 이런 씨바알!”

계곡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김평대의 욕설에 곽철종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꽈당!

너무 빨리 내려가다 바위에 발이 걸려 나동그라지면서 얼굴이 바위와 충돌했다.

“윽!”

광대뼈에 통증이 강하게 파고든다.

“이런!”

피다.

물컹한 붉은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온다.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감정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선배님!”

다시 일어나 계곡을 내려가자 김평대가 양손으로 눈을 감싸고 있었다.

“그 개새끼가 모래를 뿌렸어. 어어억!”

모래가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쑤신다.

홱!

곽철종이 고개를 돌렸다.

없다.

자신이 시신을 백에 담아 갈 때까지도 같이 있었다.

“그 자식 어딨어. 죽었지?”

“없어요!”

“뭐라고? 총에 맞았어.”

피다!

핏자국이 있다.

“아이고 눈이야. 아이고…….”

김평대는 고통스러워했다.

물로 씻어내야 한다.

그런데 물이 차 안에 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유태수를 쫓아가야 할지 아니면 몸부림치는 김평대부터 치료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망설이던 곽철종은 차가 있는 고갯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피를 흘릴 정도면 결코 멀리 가지 못할 것이며 흔적을 남기므로 뒤쫓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무조건 멀리 가야 한다.

피를 흘리는 도망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조건 달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철저히 불리했다.

총상을 입은 환자가 도망치기에 주위 숲이 너무 말라있다.

나무라고 해봤자 높이가 고작 2, 3미터로 자라는 가시나무와 가문비나무, 그리고 간간이 소나무가 있었지만 드문드문하며 몸을 숨기기에는 그다지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 40도가 넘는 작렬하는 햇살과 출혈로 인한 갈증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유태수의 도주는 더욱 더뎠다.

“척!”

어금니를 물며 가문비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훅훅!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후우우, 채석목이.’

유태수는 이를 갈았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채석목은 물론, 나머지 쫓기던 국정원 현장 요원 전주식도 결코 메해 부사 하라이 조직원들의 추격으로부터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이자까지 계산해서 돌려주지는 못해도 본전은 받아내야 하는 것 아니던가.

회사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으으음!”

눈 앞이 조금씩 흔들렸다.

과다 출혈로 인한 현상이다.

최대한 30여 분 안에 어떤 조치를 받지 못한다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를 깨문다.

두 눈에 핏발이 섰고 타오르는 증오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죽는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아야 한다.

기어이 살아 한바탕 칼춤을 춰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그때였다. 다급하게 누군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 힘을 주고 돌아보았지만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만 들어올 뿐이었다.

타오르는 열기 속에 뭔가 아지랑이처럼 타오른다.

유태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지럽다.

세상이 흔들리고 땅이 좌우로 요동쳤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움직인다는 것이다.

“훗훗!”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껴서일까, 가슴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뿌드득!

계속 이를 간다.

이른바 손볼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씩 처절하게 밟으면서 피를 말려 죽일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삶이 꼬인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돌연 등 뒤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가는군.”

김평대의 목소리다.

목소리에 살기가 뚝뚝 묻어 나온다.

“저런 새끼는 총알도 아까워. 포를 떠서 산자르 산맥의 뜨거운 바위에 구워 버려야 해.”

“거참!”

곽철종이 침을 삼킨다.

“왜?”

“갑자기 바위에 포를 떠서 굽는다고 하자 맥주 한 잔 생각이 나지 말입니다.”

“저 새끼를 안주 삼아 못 마실 것도 없지.”

포위된 사냥감을 놓고 맛있게 요리할 것을 상상하며 떠든다.

쫓는 자는 즐기고, 도망치는 자는 악을 쓴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총소리가 산을 울린다.

드르르륵!

총소리다.

귓가에 총소리를 들으며 유태수는 의식을 잃었다.

“하아아아……!”

길게 뱉어내는 숨소리에 마사토가 흩어진다.

***

배석대의 실종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송만술은 물론이고 같이 발령을 받고 이라크 현장으로 왔던 동기들 모두가 안색이 변했다.

“과장님, 정오까지는 나와 함께 병원을 지키다 대사관에서 나왔다는 두 사람과 사라졌다니까요.”

송만술은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반응이 없다.

한편 정민출 과장은 유태수의 실종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장님!”

정민출이 깜짝 놀라며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정장 바지에 회사 작업복을 걸친 선글라스의 사내.

근로자 납치로 급거 서울로 불려 들어갔다는 지금 돌아온 박진태였다

“사무실이 왜 이렇게 덥나. 에어컨 좀 올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민출이 재빨리 에어컨 온도를 더욱 낮췄다.

“이놈의 더위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니까?”

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박진태는 정민출을 향해 물었다.

“찾았나?”

배석대의 실종에 대해 묻는 것이다.

“계속 수색하고 있습니다만.”

“회사 다니는 것이 싫어 도망친 건 아닐 테고, 사고가 끊이지 않는구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이라크 경찰에는 신고했나?”

“물론이죠. 그런데 소장님.”

정민출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유태수와 같이 온 송만술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얘기를 듣는 박진태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그 친구 오라고 해요.”

정민출이 바깥으로 나갔고 30분 정도 지나 작업모자를 쓴 송만술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송만술 씨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할 줄도 모릅니까?”

이름과 사진을 봐서 알고는 있지만 실물은 오늘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송만술은 재빨리 목을 숙여 인사를 했다.

“앉아요!”

송만술은 소파에 앉았고 박진태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다가왔다.

“유태수를 데리고 간 사람들이 대사관에서 나왔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 과장, 서류 가져와.”

정민출이 노트 한 권을 가져왔다.

“대사관 직원들 사진입니다. 그날 송만술 씨가 본 사람의 얼굴이 있는지 찍어 보세요.”

송만술은 사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20여 명 가까운 대사관 직원들 사진이 있었으나 유태수를 데리고 간 사내 둘의 얼굴은 없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보이지 않는다.

“없습니다.”

“한국 대사관 직원은 거기 있는 분들이 전부입니다.”

“하면 병원에 나타났던 한국 사람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를 일이죠. 뭐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테러 조직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소문에 의하면 북한 보위부에서도 활동한다던데.”

흠칫!

북한 보위부라는 말에 송만술이 깜짝 놀란다.

“그럼 그 두 명이 북한 보위부?”

“모르죠. 우리와 대사관이 합심해서 찾고 있으니 곧 뭔가 드러날 것입니다. 가봐요.”

송만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송만술 씨.”

송만술이 고개를 돌려 의자에 앉아 있는 현장소장을 돌아보았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 알아요?”

송만술의 표정이 변했다.

이른바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는 S대학을 나왔는데 어찌 모르랴.

입이 화근이라는 뜻이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입 관리 잘하라는 경고다.

즉, 자신이 이곳에는 북한 보위부원들의 활동이 있다는 귀띔을 해 주었는데도 어디 가서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 떠난 후 종적이 묘연해졌다는 말 따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온 송만술은 닫힌 사무실 문을 노려보았다.

“씨발, 기분 좆 같네.”

카악!

송만술은 기분 나쁜 가래침을 뱉고 사라졌다.

***

따뜻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부드러운 온기가 온몸을 감쌌고 정신은 맑고 깊다.

내가 살았을까.

살았다면 여긴 어디인가.

눈을 떴지만 캄캄할 뿐이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냄새도 없다.

저벅저벅!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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