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22화 (22/122)

22화 그 사내(1)

그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고 소파에 앉았다.

“처음 내 집에 오는 손님이어서 신경을 썼는데 커피가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코헨이 커피 두 잔을 머그컵에 담아 가져왔다.

후루룩!

한 모금 마셔보는 유태수를 향해 물었다.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이런 커피를 마셔본 기억이 없습니다. 최곱니다. 코헨!”

진심이다.

재벌 아들로 살다 보니 어려서부터 삶은 풍요로웠다.

재벌가는 최고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고 먹지 않는다.

나름대로 커피를 마셨고 향과 맛으로 생산지를 구별할 정도는 된다.

지금 코헨이 내려 준 커피는 향이 깊고 맛이 그윽했다.

“감사합니다.”

코헨이 환하게 웃더니 리모컨을 들어 전면 벽에 걸린 거대한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눌렀다.

팟!

텔레비전이 켜지면서 화면에 터번을 두른 사내가 나타났다.

탁!

채널을 돌리듯 리모컨을 누르자 이번에는 캐피야를 쓴 다른 아랍 사내가 보인다.

탁!

탁!

한 번씩 리모컨을 누를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유태수의 표정이 변했다.

직감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사람들의 면면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코헨이 보여준 사람들은 이십여 명 정도 되었다.

“누군지 알겠습니까?”

“미안한데요. 난 불법 밀렵꾼이라고 믿었는데.”

유태수가 가볍게 웃었다.

“맞습니다. 사냥꾼이긴 하지만 짐승이 아닌 사람만을 쫓아가 잡고 있죠.”

이어 코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짐작한 대로 텔레비전 화면 속에 있는 인물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정보기관들이 쫓고 있는 이슬람 강경 무장세력들의 우두머리급들이다.

“지금 본 사람들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만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1억2천만 달러입니다. 현상금의 최고 메리트가 뭔지 알아요? 세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 목에 현상금을 내건 기관은 그럼 CIA?”

“그들도 있고 영국의 해외정보국(Military IntelligenceV 6) MI6, 그리고 러시아 SVR(Sluzhba Vneshney Razvedki).”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은 테러 조직의 두목급들을 쫓는다지만 러시아에서는 누구를 잡으려는 겁니까?”

“배신자?”

“누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죠.”

“기업인!”

“맞습니다. 하나둘 푸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급기야 러시아를 탈출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죠. 이들 중 몇 명은 푸틴의 스위스 계좌까지 알고 있는 최측근들로, 미국으로 정보가

넘어가기 전 제거하기 위해 러시아 해외 정보국 요원들이 그들을 쫓고 있죠. 그러면서 나에게도 의뢰가 들어온 겁니다.”

지이잉!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코헨은 커피잔을 놓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코헨이오. 네에?”

코헨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전화를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3분여 듣기만 하던 코헨이 마지막에는 가볍게 웃었다.

“난 죽지 않는 사람이오.”

코헨은 자신 있게 말하더니 핸드폰을 내렸다.

잠시 통화 내용을 복기하는 듯 꼼짝하지 않고 서 있던 코헨이 유태수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배 형, 혹시 프리고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봤소?”

“글쎄, UFC 선숩니까?”

“핫핫!”

코헨이 웃음을 빵 터뜨렸다.

그는 원래 핫도그 판매상 출신의 레스토랑 사장이었다.

요식업에 몸담고 있던 그의 인생을 바꾼 건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의 만남이었다.

1996년 프리고진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란 회사를 세우고 모스크바 등지에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어 98년부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상 레스토랑 '뉴 아일랜드'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장사수완이 좋았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2008년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은 ‘96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당시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을 포함한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이 내 식당을 자주 방문했다.’라고 말했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식당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푸틴은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프리고진의 식당을 찾았다.

이듬해 프리고진은 푸틴의 생일과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도 맡아 어느샌가 그에게는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이 붙었다.

푸틴과 인연을 맺은 뒤로부터는 프리고진의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는 2010년부터 러시아의 학교와 군대 급식 공급 계약을 따냈다.

그해 프리고진은 급식 공급 식품 공장을 열었는데, 푸틴이 직접 개장식에 방문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2011년 그의 회사가 방부제가 든 가공식품을 학교 급식으로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있었지만, 그는 끄떡없었다.

2012년 그의 회사는 2년에 17억 달러(당시 환율, 약 2조 500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러시아 군인 급식의 90% 이상을 공급했다.

러시아 비영리 단체 반부패 재단은 그의 회사가 정부 기관에 음식을 납품하며 손에 넣은 계약금만 최소 33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프리고진의 회사는 시리아의 유전(油田)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로부터 지키는 대가로 석유 수익 일부를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2022년 기준 그의 재산은 공개된 것만 3억 달러(약 4,000억 원)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족이 소유한 전용 제트기와 호화 요트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건 2014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창업하면서부터다.

바그너 그룹은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러시아군을, 돈바스에선 친러 세력을 도왔다.

이후 시리아, 리비아 내전을 비롯해 수단, 말리, 콩고민주공화국,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내전이나 분쟁에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 그룹은 학살, 고문 등의 잔혹 행위를 저질러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탐사보도전문매체 벨링캣의 편집국장 흐리스토 그로제프는 전직 바그너 용병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바그너 용병의 10~15%는 단지 사람을 해치고 싶어서 그곳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바그너'란 이름은 이 그룹 설립에 관여한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지휘관 출신 드미트리 우트킨이 붙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좋아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왔다고 한다.

히틀러를 닮고 싶어 한 것이다.

서방 정보 당국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일명 트롤 팩토리(댓글 부대)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명단에도 올랐다.

뉴욕타임즈는 프리고진은 (푸틴 덕에) 부와 특권을 거머쥔 대가로 크렘린궁이 필요로 하는 '어두운 서비스'를 열심히 제공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시리아, 리비아 내전 개입, 크림반도 강제 병합, 미국 대선 개입 등등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마다 '빌런(악당)'으로 등장한 친구죠.”

그때 코헨의 핸드폰이 움찔 떨었다.

코헨이 핸드폰을 살피더니 곧장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백인 사내가 시가를 물고 있는 사진이 나타났다.

“저 친구야. 지구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러시아의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1).”

유태수의 눈이 빛났다.

전혀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첫 느낌은 남자답게 생겼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투입된 바그너 용병은 대략 8,000명이고 이 가운데 3,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더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러시아의 중범죄자들이라는 것이지. 살인,

강간, 인신매매, 마약범 등 세상을 바르게 살기를 죽는 것보다 더 거부한 종(種)들이지. 그런데 조금 전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어요.”

코헨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프리고진의 목을 가져오면 1억 달러를 내놓겠다는 거요.”

대충 헤아려도 1,300억이 훌쩍 넘는다.

누굴까.

누가 이런 천문학적인 거액을 현상금으로 내걸었을까.

꿀꺽!

유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

인사팀장 오도석은 퇴근하여 집에 들어섰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아내 김유민이 말했다.

“여보, 탁자 위에 놓인 편지 당신에게 온 거야.”

거실 탁자 위에 가방을 놓고 자신이 읽던 「건널목 의자」 위에 편지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를 확인하기 위해 좌상단으로 시선을 올렸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배덕용」

꿈틀!

오도석이 이마를 찡그렸다.

전라남도 쪽으로는 전혀 연고가 없다.

친인척은 물론 지인들도 있긴 해도 절친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나마 소수다.

몇 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봉투를 찢었다.

안에서 A4용지 하나가 접혀 있었고 오도석은 반듯하게 펼쳐 들었다.

「구출을 빙자해 회사에서 근로자들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파르르르!

A4용지를 든 오도석의 손이 심하게 떨린다.

‘구출을 빙자해 회사에서 근로자들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근로자들을 죽이다니, 그건 얼마 전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의미하고 있었다.

“여보, 식사해요.”

아내가 식탁에 저녁을 차려 놓고 부른다.

“여보!”

덜덜 떨고 있는 남편을 보며 아내 김유민은 깜짝 놀라 다가왔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그러다 손에 들린 편지 내용을 읽게 된다.

“회사에서 근로자들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착!

오도석은 재빨리 종이를 빼앗아 접어 버렸다.

“무슨 뜻인데 그래요?”

“아냐, 여보. 잠깐 나 혼자 좀 있을게.”

“네네!”

아내가 눈치를 보며 부엌으로 돌아간다.

‘배덕용.’

입으로 수십 번 중얼거렸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오도석은 아내를 향해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

“식사하고 가요.”

탁!

오도석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닫고 사라졌다.

김유민은 잠시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얼음같이 냉철한 사람이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

요즘 이라크 현장에 문제가 생겨 골치 아프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일까.

***

양재동 뒤쪽으로 돌아가면 조용한 단독주택 단지가 나온다.

높은 담장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했고 집집마다 첨단 방범 장치가 되어 있다.

그곳도 모자라 거의 다 입구에 경비실을 두고 출입자를 지키게 하고 있는데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추고 오도석이 내렸다.

탁!

자동차 문소리에 경비가 창문을 열고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작은 대문을 열고 나왔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회장님 계시죠?”

“연락드리겠습니다.”

경비는 재빨리 인터폰으로 오도석이 왔다고 보고하더니 수화기를 내린다.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오도석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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