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24화 (24/122)

24화 살인과 몰살(1)

오도석은 다음 날 출근한 유장풍에게 보고했다.

얘기를 가만 듣고 있던 유장풍의 표정이 돌덩이로 변했다.

“그놈이 이번 일을 어떻게 알아? 그것도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을?”

“글쎄요, 저도 그게 의아할 뿐입니다.”

“넘겨짚을 수도 있잖아. 아니지, 하고많은 일 놔두고 하필 이번 사건을 들먹인다는 건.”

유장풍이 눈을 빛냈다.

“배석대라는 친구도 정리됐다면서?”

“예!”

그렇다면 절대 바깥으로 흘러나올 일은 없다.

‘성당 관리인.’

유장풍의 어금니가 물린다.

불현듯 지나간 과거의 사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0년 후반 한 대학생이 경찰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생겼다.

경찰에서는 단순 쇼크로 인한 사망이라고 발표했지만 나중에 고문 끝에 숨졌다는 것이 폭로되어 결국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청와대는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결국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 경찰의 발표가 조작이라는 걸 폭로한 집단은 다름 아닌 가톨릭 신부들이었다.

‘성당 관리인.’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진다.

“잠시 대기해!”

기다려 보란 뜻이다.

“하필!”

그렇다.

하필 하고 많은 기관이나 단체를 놔두고 성당이란 말인가.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돈이라는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곳 중 하나가 성당이다.

“으흐흠!”

유장풍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형을 죽임으로써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이제는 회사로부터 팽(烹)당했다.

“하아아!”

말보로 레드 연기가 길게 뿜어 나온다.

넓은 마당이다.

하늘에는 그야말로 별들이 더 이상 들어찰 곳이 없을 만큼 빼곡했다.

푹푹 삶을 것 같은 낮 더위는 자취를 감추고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만큼 밤 기온이 떨어진다.

겉은 으스스하지만 속에서는 불덩이가 솟구친다.

그건 분노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뻑뻑!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며 화를 삭이기 위해 애쓴다.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엄청난 재앙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슴은 차갑게, 그러나 휘두르는 칼은 무자비해야 한다.

지이잉!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자 「배달부」라는 글씨가 떴다.

“여보세요!”

[거긴 밤이겠지?]

배달부 배덕용이다.

“10시가 조금 넘었군요.”

[뭐 하는가?]

유태수는 담배만 길게 빨아들였다.

배달부가 자신이 뭐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빠르더군. 오늘 왔다 갔네.]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배달부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이쪽 상황을 설명하고 유장풍의 측근인 오도석 팀장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도록 했다.

- 그런 내용이라면 편지보다는 문자가 더 빠르고 분명하지 않겠나?

- 모르는 소리, 이런 일은 문자보다 편지가 더 위협적인 것이오.

- 오호호.

배달부가 놀란다.

- 편지는 보내는 사람의 의지가 묻어나죠. 죽음, 피, 보복,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의가 전달되는 것이 편지입니다. 문자는 가볍습니다. 아무리 험악한 표현을 해도 상대가 그다지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 좋아. 아주 좋군. 자네 지시대로 하지.

배달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처럼 두 명이 왔다 갔지. 한 명은 오도석이란 친구고 다른 한 놈은 뭔 일 생길 때를 대비해 온 놈 같더군. 이제 어떡하면 되나?]

“당장은 어쩌지 못할 겁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단정하나?]

“아마 자식들을 포함해 주위 친인척, 측근 누구도 나만큼은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자신 있다는 뜻이다.

[날 함부로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건가?]

“당분간은!”

유태수는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뒤 전화를 끊었다.

드르륵!

그때 어둠을 뚫고 자동소총 소리가 들려왔다.

“이해가 안 되는 나라야.”

모술 어디에선가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코헨이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 나왔다.

총소리는 연이어 들려왔으며 코헨이 의자 한 개를 가져와 마당에 놓더니 앉는다.

“또 시작이군.”

들려오는 총소리를 향해 중얼거린다.

“석유를 빼앗으려는 미국, 그리고 미국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기독교가 판을 치겠지. 다시 말해 이들에게 미국은 결코 들어와서는 안 될 최악의 적대 국가지. 알라가 준 최고의 선물

석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공존할 수 없는 기독교와의 싸움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떠났지. 물론 일부 주둔 미군이 있긴 하지만 예전과는

달라. 그래서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보았는데 그게 아니야.”

코헨은 의자가 삐그덕 소리가 나도록 상체를 뒤로 젖혔다.

양팔까지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켠다.

“시아파, 수니파, 파벌 안에서도 강경파, 온건파. 도무지 싸움이 끊이지 않아. 그래서 누군가가 그러더군. 땅을 파면 물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중동은 석유가 나온다.

석유야말로 지상 최대의 흙탕물 아닌가.”

“종파와 종파가, 부족과 부족이 뒤엉켜 끊임없는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의미군요.”

“학술적 뒷받침은 없지만 완전히 빗나간 해석 같지는 않아.”

퍼어엉!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렸다.

“2B14(러시아제 82밀리 박격포)군.”

흘긋!

유태수는 코헨을 돌아보았다.

소리를 듣고 무기의 종류를 정확히 짚어 내는 일은 아무나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여러 국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네이비 씰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무기 지식이다.

“결정했소?”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다.

유태수는 자신의 처지를 일부 털어놓았다.

그러자 코헨은 빙긋 웃더니 툭 뱉었다.

“인생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놈은 무조건 죽여야 하는 법이오.”

코헨은 전장의 논리로 단순 명쾌히 인생을 정의했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직접 죽이는 살인,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죽이는 몰살.”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살인과 몰살은 다르다.

살인은 그냥 한 사람을 죽여 없애는 것이지만 몰살은 당사자와 관련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코헨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살인자는 쇠고랑을 차지만 몰살은 벤츠를 타고 달리는 거요.”

유태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었다.

격렬하게 울리던 총소리와 박격포 소리가 잦아들었다.

***

“유 병장!”

운동시간이 되어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는데 바람피운 마누라를 때려죽이고 징역 30년 형을 받은 조충선 상사가 다가왔다.

“왜 웃으십니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유태수를 보며 조충선 상사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난 유 병장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놈이 운동을 한다? 상사님이 보기에도 내 꼬락서니가 조금 불쌍틱하죠.”

“결대로 살아.”

“예?”

“흘러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내가 다가온 운명대로 사는 거지. 내게 오는 삶을 거부하고 외면할수록 힘들어지고 상처 입고 다치는 거야.”

사형수가 되고 장기수가 되면 하나 같이 도달하는 곳이 있다.

깨우침.

득도.

해탈.

그래서 죄수들 사이에서는 왕왕 그들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무엇이 됐든 내게 오는 걸 거절하지 마. 불행이건 행복이건 말이야. 받아들이는 것이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하는 거야.”

***

유태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코헨을 바라보았다.

히죽!

갑자기 미소를 짓자 코헨이 움찔했다.

“콜!”

“동업하는 거요?”

유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의 복수는 칼이지만 오늘의 복수는 돈이지요.”

와락!

코헨이 다가와 유태수를 끌어안았다.

“태수!”

성형한 사실은 빼고 본 이름은 가르쳐 주었다.

코헨이 유태수를 슬며시 밀어내며 눈을 빛냈다.

“블루 배저(Blue Badger)란 말을 들어 봤소?”

유태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처음 듣는 말이다.

“CIA 정식 요원임을 지칭하는 닉네임이지. 그리고 레드 배저(Red Badger)가 있네.”

“혹시 블랙 요원?”

어느 나라건 정보요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화이트(White) 요원과 블랙(Black) 요원이다.

화이트 요원들은 대사관 직원으로 상대국 정부에 신분을 드러내고 공개적 활동을 한다.

굳이 첩보적 업무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과 외교 문제까지 관여하는 데에 반해 블랙 요원은 철저히 숨어 활동한다.

기밀을 탐지하고, 요인을 감시하며, 때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위장한 암살 임무도 서슴지 않는다.

“약간 다르지. 조금.”

코헨이 살짝 웃었다.

“레드 배저는 민간기업으로 본다면 정직 직원이 아닌 계약직이라고 할까. 가장 큰 특징은 화이트 요원은 외교관의 면책 특권을 지니고 블랙 요원은 위기에 빠지거나 할 때 CIA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 심지어는 국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지만 레드 배저는 전혀 그렇지 못한다네. 국가라는 조직 안에서 활동하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지.”

“철저히 각자도생이군.”

코헨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빙고!”

두 사람은 본격적인 동업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

살인적인 뙤약볕 속에서도 도로는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식!”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서 작업반장 동반송이 휴식할 것을 지시했다.

중간중간 그늘막을 만들어 놓았지만 워낙 햇빛이 뜨겁다 보니 노동자들은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 그늘을 찾는다.

털썩!

송만술은 사막색 천막이 만드는 그늘에 주저앉더니 가래침을 뱉었다.

“그 새끼들 절대 북한 보위부 놈들 아냐.”

송만술이 담배를 피워 물며 거칠게 투덜거렸다.

“단 한 마디도 북한 사투리 비슷한 걸 쓰지 않았어. 완전 서울 말씨였다고.”

“야, 그만해 이제. 회사가 거짓말하겠냐.”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동료 고주식이 이마를 찡그렸다.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우리 동기 중 한 명이 납치되어 사라졌는데 아무렇지도 않냐?”

“누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냐? 나도 인마 안타까워. 너만 걱정하는 것 아냐. 자식이 좀 적당히 할 일이지.”

“뭘 적당히 해 인마, 사람이 사라졌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단 말이야. 한국이라면 신경도 안 써. 씨발, 이라크까지 와서 한국 놈들에게 끌려갔다고.”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라잖아. 우리나라 국정원 같은 개살벌한 기관.”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라는 증거가 있냐고, 증거를 보여주지도 않고 믿으라고?”

“그만들 해라. 우리로서는 회사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잖아.”

조금 떨어져 생수를 마시고 있던 차만오가 중재하듯 말했다.

“나도 마음이 쓰여. 굉장히 안타깝다.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을 테고,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싸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잖아.”

딸칵!

송만술이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더니 불을 붙였다.

“이상해.”

“뭐가?”

차만오가 돌아보았다.

“그냥 좆 같애. 기분이 그렇다고, 볼일 보고 밑 안 닦은 것처럼 말이야.”

송만술은 담배를 벅벅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석대 그 자식은 우리와 조금 달랐어. 너희들도 왠지 가까이 가기가 망설여진다고 했잖아. 저기 현장에서 일하는 김세웅 씨가 그러더라고, 그런 걸 기세라고 한다고.”

“기세?”

처음 듣는다는 듯 차만오와 고주식이 눈을 빛냈다.

“단지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일 뿐인데 초식동물들은 얼어붙어 버리잖아.”

차만오와 고주식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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