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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25화 (25/122)

25화 살인과 몰살(2)

그건 맞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들은 보이지 않는 배석대의 그 무엇인가에 눌려 버렸다.

꼭 집어 무엇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일 안 해?”

그때 정민출 과장이 나타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셋이 잠시 목청을 높이는 사이 휴식이 끝난 것이다.

“만술 씨, 잠깐.”

셋이 걸어 나가는데 송만술만 따로 부른다.

송만술이 잠시 멈칫하더니 걸음을 돌려 정민출 앞으로 다가왔다.

스윽!

정민출이 담배 한 개비를 내민다.

조금 전까지 담배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은 없지만 상사이기 때문에 받아 들었다.

딸칵!

정민출이 불까지 붙여주고 자신도 피웠다.

“어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은 됐나?”

흘끗!

돌아보는 송만술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무실에 있어야 할 정민출이 갑자기 현장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자신의 이라크 현지 적응을 알아보려면 차만오와 고주식도 불러 같이 물어봐야 했다.

“퇴근 후 외출이 잦더군. 시내에 이슬람 여자라도 숨겨두고 있나?”

송만술이 흘끗 돌아본다.

뭔 말을 하려고 지독하게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걸까.

“적당히 하지?”

“네에?”

“만술 씨 마음 모르는 건 아냐. 한국도 아닌 이라크로 발령받은 입사 동기가 납치되어 사라졌으니 미칠 노릇이겠지.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듯 사회 첫 출발을 같이한 동기가

사라졌으니 왜 가슴이 아프지 않겠어.”

“과장님!”

“알아, 알아. 그 마음 안다고. 북한보위부에 납치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찾아보려는 그 뜨거운 우정, 사실 회사에서도 놀고 있는 것 아냐. 지금도 사람들 동원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배석대 씨를 찾고 있어.”

처음 듣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배석대 씨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모술 시내를 자주 외출하는 것도 이해해. 그러나 만에 하나 송만술 씨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거야?”

“운명인 거죠.”

“운명? 자네는 운명으로 돌리겠지만 회사는? 그리고 가족들은 어떡하고?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

“그래서 이제 그만하라는 말입니까?”

“아니지, 시간 나는 대로 찾아보기도 하고 알아봐야지. 다만 지금처럼 너무 자주 외출하지는 말란 말이야. 그것도 혼자서. 송만술 씨가 외출할 때마다 우린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고, 돌아올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린다니까. 그런 말 있잖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누군가 외출했다 조금만 늦어도 덜컥한다는 뜻이다.

“후우우! 알겠습니다. 조심하죠.”

정민출 과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

어찌 됐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가족은 그렇다 치고 정민출을 포함한 현장소장까지 모두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부장, 이사, 더 올라가 계열사 사장 자리 정도는 앉아 보고 싶은 사람이야.”

분명한 표현은 없지만 더 이상 배석대를 찾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를 찾고 있는 송만술이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부탁 좀 하자고, 송만술 씨.”

그러면서 씨익 웃는다.

탁탁!

정민출은 어깨를 토닥이며 천막을 걸어 나갔다.

송만술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민출이 타고 온 승용차가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

가장 먼저 코헨으로부터 받은 건 글록 19 권총이었다.

이틀 동안 사람 없는 산속에서 실컷 방아쇠를 당기며 사격 연습을 했다.

권총은 소총과 달리 두 손이든 한 손이든 허공에 들고서 쏘는 총기다.

즉 지지하는 신체나 물체가 없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유태수는 다르다.

권총은 지근거리에 있는 적을 제거하도록 특화된 총이다.

표적이 10미터만 넘어도 치명적인 신체 부위에 총알을 박아 넣기가 힘들다.

거기다 권총은 급작스런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명중률이 떨어진다.

하지만 유태수의 총알은 처음 이십여 발을 쏠 때는 중구난방이었으나 50발이 넘어서면서 여지없다.

표적이 한가운데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었다.

“권총 쏴본 적이 없다고 했지?”

“군대에서 두어 번, 실내 실탄 사격장에서 친구들과 몇 번 쏜 경험은 있지만 정식으로 파지법에서부터 조준과 발사까지 제대로 훈련받은 적은 없소.”

철컥!

툭!

열일곱 발들이 탄창 이십여 개가 비워졌다.

그리고 열일곱 장의 표적지가 화투처럼 바닥에 쫙 깔렸다.

최초로 쏘았던 표적지에서부터 마지막 열일곱 장째 표적지의 탄착군은 천지 차이다.

마지막 열일곱 번째 표적지.

그곳의 10센트짜리 동전 크기 안에 열일곱 발이 모두 박혔다.

네이비 씰이다.

전역할 때까지 자동소총은 20만 발, 권총은 5만 발 이상을 쏜다.

전역 직전의 씰 대원에게 권총을 쥐여주고 쏘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아름답다.

하늘에서 총신(銃神)이 재림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코헨을 더욱 기겁하게 하는 일이 일었다.

모술 외곽 쿠르드족 주거지역에 술집이 있었다.

거기서 술을 먹다 쿠르드족 남성 세 명과 시비가 붙었다.

술에 취한 코헨이 과거 군 시절 쿠르드족 여성과 성관계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는데 그게 불씨가 된 것이다.

세 사내.

하지만 그들은 정확히 5초도 되지 않아 모두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유태수의 주먹이 전광석화와 같이 터진 것이다.

술집에 있는 사내들 대부분이 쿠르드족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보다 더 강한 전사들로 맹위를 떨치는 그들이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아연한 표정이다.

스윽!

스스슷!

결국 참지 못한다.

술집에 있는 쿠르드족 사내 이십여 명이 유태수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유태수는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잔잔한 웃음을 짓더니 오른쪽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등 뒤로 벽이 있기 때문에 뒤에서 공격당할 일은 없다.

전면 최대 시야각 180도인데 양쪽 시선에 모두 잡힌다.

즉, 누구도 자신의 눈을 피해 공격해 올 수 없다.

“컴 온!”

유태수는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슉!

퍼퍽!

빠르다.

달려드는 사내들의 턱에 강력한 스트레이트가 꽂혔고 거구의 덩치들이 나가떨어진다.

“마우톤(죽어랏)!”

강한 아랍어 악센트를 쏟아내며 유난히 키 큰 사내가 주먹을 뻗었다.

슥!

가볍게 상체를 낮춰 피한 유태수의 오른손 훅이 사내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크후후훅!”

괴성을 토하며 사내가 고꾸라졌다.

“그만, 그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린 목소리가 울린다.

쓰러진 동료들로 인해 흥분해 달려들던 사내들이 멈칫하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구석진 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비쩍 마른 노인.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할 만큼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인데 그가 말했다.

“우리의 형제다.”

“이맘!”

노인은 이슬람의 성직자 이맘(기도회를 이끄는 사람)이다.

“잘 봐라. 저 형제의 목에 걸린 것을.”

사내들이 일제히 유태수를 향해 돌아섰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가 옷 밖으로 드러났다.

핏물에 담갔다 막 꺼내 놓은 듯 시뻘건 초승달 펜던트가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다.

“붉은 초승달(Red Crescent)!”

모두가 놀란다.

초승달은 이슬람의 상징이다.

또한 초승달은 점점 차오르는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이슬람 국가들 국기에 유난히 초승달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거기에 붉은 초승달 일명 적신월은 기독교 문양을 떠오르게 하는 국제 적십자 십자 모양을 거부하여 만든 이슬람들만의 적십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사내들의 표정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태수를 죽일 듯한 얼굴들이었는데 달라졌다.

온유하고, 친근한 미소까지 보인다.

한편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지켜보고 있던 코헨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네이비 씰에서도 이름하여 백병전을 대비한 주짓수를 비롯한 레슬링 등 몇 가지를 배우지만 주로 무성 무기 사용법에 집중한다.

총격전이라면 모를까 맨주먹으로 하는 싸움에 자신은 없었지만 끼어들어야 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유태수가 꼼짝하지 말고 앉아 있으라는 말에 그냥 구경꾼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그가 놀라는 건 한 가지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유태수는 길가 이슬람 성물(聖物) 가게로 들어갔다.

한참을 이것저것 살피더니 지금 차고 있는 목걸이를 구입해 목에 걸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일이 일어나고 보니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유태수는 이런 일을 예상하고 미리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목적으로 적신월 목걸이를 구입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시빗거리도 조금 애매하다.

비록 자신의 입이 화근이었지만 난투극을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

유태수는 술도 그다지 마시지 않았는데 자신이 먼저 흥분하고 주먹을 뻗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보는 유태수는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었다.

“코리아!”

유태수는 이미 비쩍 마른 노인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치밀한 계산에 의한 놀라운 친화력.

“코헨!”

유태수가 갑자기 혼자 앉아 있는 코헨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이리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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