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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26화 (26/122)

26화 죽음의 비즈니스(1)

코헨은 마시던 버드와이저를 들고서 노인이 앉아 있는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실내의 모든 시선은 유태수와 코헨에게 쏠려 있었다.

“더 원 아이 리스펙트 더 모스트(The one I respect the most), 내가 제일 존경하는 형님입니다. 나와프 이맘.”

“코헨이오.”

그러면서 코헨은 주저하지 않고 윗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나와프는 코헨이 건네주는 명함을 보았는데 그럴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리비안 전기 이라크 현장 책임자’라는 명함이 필기체로 쓰여 있었다.

독립을 위해 터키와 싸우고 이라크와 총부리를 겨누는 쿠르드족이지만 한 가지에서는 그 적들과 공유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다.

미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공존할 수 없는 적이다.

적신월의 목걸이를 하고 코란의 내용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유태수를 만난 탓일까.

나와프의 코헨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믿을 수가 없다.’

코헨은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도 호탕하게 웃고 떠드는 유태수를 쳐다봤다.

‘친화력.’

누구라도 쉽게 뱉어내는 말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것만이 상대를 내 페이스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인 건 아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유태수의 코란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다.

‘이걸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 모르긴 해도 치밀하게 계획된 비즈니스가 틀림없다.’

유태수는 지금 어쩌면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연기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는 자신 역시 알 수 없다.

“나와프.”

유태수는 깊은 시선으로 비쩍 마른 노인을 바라보았다.

“튀르크인들의 땅은 여기가 아닙니다. 그들의 땅은 훨씬 북쪽인 중앙아시아죠. 그들은 나와프와 형제들의 땅을 강탈하고 있습니다.”

“옳다. 진정 맞는 얘기다.”

나와프는 물론 주위 사내들까지 주먹을 불끈 쥐더니 탁자를 쳤다.

쿵!

쿠우웅!

술집을 울리는 우렁찬 소리에 공기가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총을 들고 자신들을 살육하고 있는 튀르키예군을 향해 돌진하려는 기세들이다.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거든 잘 보아라. 그가 어렵다면 도와주고 아프다면 치료해 줘라. 나와프, 우린 친구이고 형제입니다.”

코란의 한 구절을 적절하게 찔러 넣는 순발력 있는 화술이다.

“나 또한 형제를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겠다.”

스윽!

갑자기 유태수가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나와프.”

노인, 나와프는 유태수가 건네준 사진을 받아 보았다.

흰색 터번을 둘둘 감고 있는 구레나룻의 사내.

대략 마흔 전후로 보였는데 유난히 코가 튀어나왔고 어깨에는 AK-74 소총을 거꾸로 메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와프가 사진을 내려놓았다.

“누군지 알겠습니까?”

“내가 알 리 없지.”

“라피끄라는 사람입니다.”

“형제와는?”

“원수입니다. 우리 직원을 죽였죠.”

그러면서 유태수는 라피끄가 회사 동료, 즉 리비안 전기 직원 라빕을 죽이고 도망쳤다는 설명을 했다.

한쪽에서 듣고 있던 코헨은 화들짝 놀랐다.

라빕이라는 직원이 있었고 얼마 전 전기사고로 죽었다.

공사 중 전선 연결을 하다 그만 실수로 1,200볼트 고압선을 건드려 숨진 것이다.

회사에 대해 간단히 말해 주었는데 완벽하게 끌어들여 타고 넘어간다.

라피끄는 CIA 수배 명단에 오른 강경 테러 조직 ‘무슬림 형제단’의 이라크 분파 우두머리다.

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오백만 달러.

코헨은 그를 쫓아 모술에 들어왔으며 그 와중에 유태수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2년 전 무슬림 형제단원들이 미군 병사 두 명을 급조폭발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로 죽였다.

미군은 즉시 추적에 나섰지만 좀체 흔적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네. 당장 형제들에게 알려 찾아보도록 하지. 형제여, 너무 염려하지 말게.”

쨍!

두 사람은 맥주를 부딪치며 잔을 비웠다.

***

술집을 나온 코헨은 너무 놀라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유태수를 쳐다만 보았다.

꿀꺽!

상상하지도 못한 일 처리다.

언제 이런 시나리오를 계획했을까.

흠결을 잡아 보려고 해도 너무도 완벽했고 진지한 설명이며 나와프에 대한 공경의 행동이었다.

“자네?”

“이왕 발을 담갔으니 제대로 담가야 할 것 아닙니까?”

유태수는 어두워 오는 모술의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갔다.

- 인생은 비즈니스야.

아버지 유장풍은 자식들을 모아 놓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 부모와 자식 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사랑도 비즈니스인 것이야. 어떻게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내 편으로 끌어오느냐.

유태수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아버지,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보니 모든 것이 비즈니스였습니다.”

툭!

피우던 담배꽁초를 튕겨 버린다.

“두 눈 뜨고 잘 보십시오. 태천그룹을 상대로 나 유태수가 어떤 비즈니스를 벌이는지.”

유태수는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따라오는 코헨을 향해 돌아섰다.

“코헨, 쿠르드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야 당연히 나라 잃은 떠돌이 민족이니 쿠르드 국가를 세우는 것이겠지. 자네, 설마?”

뭔가를 느낀 듯 코헨의 눈이 커졌다.

“한 개를 얻으면 최소한 반 개는 건네줘야 합니다.”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건 내 영역이 아닐세. 이건 정치적 문제야.”

“그래서 못하겠다는 얘깁니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유태수가 방긋 웃었다.

“중동 CIA 책임자가 사이먼이란 친구죠?”

“자네가 그걸 어떻게?”

“내가 한 번 만나잔다고 연락해 주시죠.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면서 유태수는 아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걸어갔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어둠이 떨어지는 모술의 뒷골목으로 유태수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

싸악!

삭!

낙엽을 쓰는 배달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다.

벌써 열흘째, 동네 주민 또는 길 가는 행인인 것처럼 하여 사내들이 성당 정문 앞을 지나다닌다.

아무리 감추고 또 숨겨도 잘 벼려진 칼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 같이 독기와 살기를 뿜어내는 사내들.

낙엽을 쓸어 한쪽에 있는 마대에 담아 꼭 눌러 묶은 뒤 성당 입구에 내어놓았다.

내일 아침이면 청소차가 싣고 갈 것이다.

‘아직 날 죽이기 위해서는 아닐 테고.’

낯선 사내들이 성당 주위에 얼씬거린다는 말에 유태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 당장 공격하거나 해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어떻게 장담하나?

- 우리 아버지가 한 말이 있어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돈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더군요.

- 그게 어딘데?

- 성당이죠. 함부로 일 벌였다가는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공격해 오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배달부는 지그시 웃음을 지으며 골목 맞은편 전봇대 아래서 빈 담뱃갑을 구겨 버리는 두 사내를 향해 말했다.

“담배가 떨어진 모양이군요. 여기 있소.”

두 사내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배달부가 왼손에 빗자루를 쥐고 오른손에 보헴 시가를 갑 째 내밀었다.

사내들은 당황했다.

대저 담배나 술은 아는 사이일 때 권하고 받는다.

물론 갑자기 담배가 떨어졌을 때 주위 사람에게 안면몰수하고 한 개비 빌릴 수는 있다.

하지만 두 사내는 지금 배달부의 선의를 그런 상황으로 연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움찔한 것이다.

“무슨 남자들이 그렇게 쑥스러워하는 거요.”

배달부는 더욱 가까이 담배를 내밀었다.

두 사내는 멈칫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본 뒤 담배를 뽑아 들었다.

슥!

배달부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하자 말린다.

“불은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라이터를 꺼내 켜고 불을 붙였다.

딸칵!

배달부도 한 개비 피워 물며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장에 일 보러 나오셨나 봅니다.”

오늘이 벌교 오일장이다.

배달부는 자신을 감시하는 사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

“아, 예!”

사내들은 재빨리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추동리 뒤쪽으로 폐기물 처리장이 생긴다는데 어디 사십니까?”

“추동리.”

배달부는 두 사내가 거짓말을 할 수 있도록 동네 이름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예상대로 제대로 걸려든다.

“두 분께서는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오늘 오후 2시쯤에 대규모 읍민 반대 시위가 있다는 것 같던데?”

“참, 참석해야죠.”

“저도 참석할 생각입니다. 아름다운 우리 벌교에 쓰레기장이 들어온다는 건 안 되죠. 특히 고읍 들판은 호남 남동부 최대 곡창 지역입니다. 폐기물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물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임기응변에 제법 능하다.

“아주 좋은 말씀이군요.”

두 사내는 점점 배달부의 대화 페이스에 말려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두 사내는 본의 아니게 배달부와 읍민 반대 시위에 참석까지 하고야 말았다.

***

빡!

퍼어억!

두 사내의 턱이 돌아갔다.

“야 이 새끼들아! 사람 감시하라고 보냈더니 폐기물 처리장 반대 시위를 하고 와!”

팀장 육동춘의 두 눈에서 한기가 쏟아진다.

육동춘을 포함한 팀원 11명이 교대로 두 명씩 배달부를 감시하는데 오늘 근무를 선 오명환과 김용민이 시위에 참석했다는 말에 화를 참지 못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고…….”

“무슨 개소리야!”

육동춘이 주먹을 부르르 떤다.

“인마, 감시받는 놈이 담배를 권한다고 덥썩 받아 피우면 어쩌자는 거야?”

“담배 가게도 서울과 달리 드물어서.”

빠악!

오명환의 턱을 돌린다.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냐. 엉!”

“죄송합니다.”

오명환이 재빨리 차렷 자세로 서서 고개를 떨구었다.

태천 티원(T1)은 국내 최대 방범전문회사이다.

회사 특성상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다양한 무술 유단자들을 우선 특채한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직장일 수는 없었다.

이른바 자기들 방식, 즉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찌검이 예사로 나간다.

회사에서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모르는 체한다.

당하는 부하 직원들도 워낙 고액의 연봉이다 보니 꾹 참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지금 오명환도 그런 상황이다.

“나가봐!”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버럭 소릴 질렀다.

오명환과 김용민이 나가고 털썩 소파에 앉은 육동춘은 담배를 물었다.

“어이가 없네.”

후우우!

담뱃불을 붙인 뒤 연기를 뿜었다.

“감시하라니까 같이 담배 나눠 피우면서 폐기물 처리 반대 시위를 하고 와?”

거칠게 몇 번 담배를 빨던 육동춘이 멈칫했다.

‘가만!’

육동춘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벌떡!

용수철마냥 튕겨 일어나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야, 얌마!”

밖을 향해 소리치자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예, 팀장님!”

“가서 오명환과 김용민이 데려와.”

잠시 후 두 사람이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들어섰다.

육동춘은 당시 상황을 다시 말해보라고 했으며 오명환이 눈치를 살피며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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