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맞짱(1)
재빨리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편집부장이자 회사 대표인 조망상에게 보고하기 위함이다.
“아이, 진짜 뭐 하는데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신호가 가는데도 받지 않자 인상을 구겼다.
전화를 한번 끊었다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고 이번에는 상대가 바로 받는다.
[어 뭔데?]
“전화 좀 빨리 받으세요.”
[빨리 받았잖아. 점심 먹었어?]
“됐구요. 나 벌교 내려갑니다.”
[벌교? 거기가 어딘데?]
“전라도 벌교도 몰라요? 주먹의 고장이라던데.”
[아 그 벌교, 거긴 왜?]
이도윤은 대충 제보 전화 내용을 설명했다.
[정말이야? 진짜냐고?]
“나도 몰라요. 일단 만나는 봐야죠.”
[당연히 만나봐야지. 그렇지 않아도 사형선고 받고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소식이 없어 취재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당장 출발해.]
“다녀와서 보죠.”
[돈 아끼지 말고 팍팍 써.]
“후우! 네!”
어차피 법인카드에 한도를 정해 놓아 절대 팍팍 쓸 수 없다.
잘못하여 오버되면 개인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사무실을 나와 건물 뒤에 있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벌컹!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시동을 걸었지만 마음만 급할 뿐 자꾸 멈춘다.
“이 똥차!”
인상을 쓰며 몇 번이나 키를 돌렸다가 풀기를 반복하고서야 차가 움직였다.
부우웅!
주차장을 빠져나간 승용차는 순식간에 차량들 속으로 사라졌다.
***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저녁 여섯 시.
종소리는 하루 세 번 울리는데 아침 여섯 시, 정오, 그리고 오후 여섯 시 세 번씩 아홉 번을 친다.
이도윤의 차가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
이도윤은 눈을 빛낸다.
오랜만에 듣는 성당의 종소리가 묘한 기분을 일으킨다.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님 영향으로 성당을 열심히 다닌 것 같은데 고등학교부터 이 핑계 저 핑계 도망까지 다니면서 이후 단 한 번도 성당 미사에 참례한 적이 없다.
아베 마리아 그라찌아 쁠레나(Avé María, grátia plén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도미누스 떼꿈 베네딕따 뚜 인 물리에리부스(Dóminus técum: benedícta tu in muliéribus: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가 불렀던 아베 마리아.
혼이 빠져나가는 듯 충격을 받았다.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우울함에 눈물을 흘렸던 노래가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끼이익!
차를 길가에 세웠다.
「오죽림」이라는 카페 간판이 보였는데 차에서 내린 이도윤은 눈을 크게 떴다.
카페 뒤로 쉽게 보기 힘든 오죽(烏竹)이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일반 대나무와 달리 검은 빛을 띠며 어른 손가락 굵기로 자란 오죽은 강릉 오죽헌에 가면 볼 수 있지만 여긴 차라리 오죽해(烏竹海)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대나무 숲이 때마침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쏴아아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드르륵!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커피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실내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이 벌교 오일장이란다.
대나무밭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도 사람이 많았는데 큰 목소리의 남도 사투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창가에 앉아 시간을 보았는데 약속 시간이 1분여 지났다.
자신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기로 하며 손님이 오면 그때 주문하겠다며 종업원을 돌려보냈다.
창밖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이도윤의 표정은 조금 전 오죽림을 보며 놀라던 것과 달라졌다.
어느새 현장 기자의 감정으로 돌아온 것인데 마음속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태수.’
당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친형님을 때려 죽이고 숙부를 병원에 입원시킨 그야말로 전형적인 막장 사건.
그런데 놀라운 건 당시 태천그룹 측의 태도였다.
부끄러운 집안일이라고 하여 보도 자제를 협조하기는커녕 전혀 그런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유태수는 결코 살려둬서는 안 되는 패륜아로 낙인이 찍혔고 군사법정에 국선변호사가 섰다.
- 무슨 낯으로 변호사를 선임한단 말인가.
국선변호사 선임으로 던진 기자들 질문에 회사 관계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부터 촉이 좋은 기자들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말썽을 피우긴 했지만 형제들과의 어떤 다툼이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사고가 일어난 뒤 유태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 싸가지가 없긴 해도 그 정도로 막 나가는 품성은 아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군사법원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항소 상고 모두 기각되며 사형이 확정됐다.
통상적으로 군인 사형수는 오래 살려두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수사님께서 외출을 하셔서 부랴부랴 내가 대신 종을 치느라.”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쉰 살가량의 수염 덥수룩한 배달부가 앉아 미소를 짓는다.
“성당분이세요?”
“아, 성직자는 아니고 관리인이죠. 월급 받고 일하는.”
“반갑습니다. 이도윤입니다.”
이도윤이 손을 내밀었고 둘은 악수를 했다.
그때 다가온 직원에게 배달부는 커피 두 잔을 시켰고 이도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배달부를 살핀다.
‘뭐지.’
처음 나타났을 때 가슴이 서늘했다.
마치 커다란 얼음덩어리 하나를 끌어안은 듯 몸의 기운이 쏴아 하며 가라앉은 것이다.
꿀꺽!
수많은 사람을 만나 취재를 했다.
‘이게 무슨 느낌일까. 분명히 마주 앉아 있는데 흔적이 없는 것 같은 분위기라니.’
그때 커피가 왔다.
배달부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도윤은 그러는 배달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유태수 씨가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고 했나요?”
“그렇소. 오래됐죠.”
“그런데 왜 언론에 한 줄도 보도가 없죠?”
“죽이지 못했으니까?”
그러면서 배달부는 히죽 웃었다.
“죽이지 못하다뇨.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고 했잖아요?”
“실패했어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당시 두 명이 집행됐죠. 박낙진은 사망했는데 유태수를 맞추지 못한 것이오.”
“누가요?”
“누군 누구요. 집행군인들의 총알이 빗나간 거지.”
멍!
이도윤은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총을 쏘는 사격수들이 죄수를 맞추지 못했다는 말은 아직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거리가?”
“15미터쯤 될 거요.”
“다른 사람도 아닌 집행 사격수가 15미터 밖에 있는 죄수를 맞추지 못했다는 건…….”
“더 놀라운 사실이 있소. 유태수가 사라졌다는 거요.”
“사라졌다면……?”
“자세한 사정은 나도 알 수 없지만 도망을 쳤소. 군사경찰이 뒤를 쫓았지만 결과가 시원치 않자 국정원까지 나섰소.”
“잡혔나요?”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후루룩!
목이 마른 사람처럼 이도윤은 커피를 단숨에 반쯤 마셔버렸다.
***
배달부는 떠나는 이도윤의 승용차를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석양이 떨어지고 읍내는 차츰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멀리 승용차의 모습이 사라지고 배달부는 천천히 돌아섰다.
카페 바로 옆으로 작은 개천이 흐른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개천 둑방에 조성된 산책로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헛헛! 대한민국이 제대로 한 번 뒤집히겠군.’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들이 꾸벅할 때마다 마주 미소를 짓고 인사를 했다.
어젯밤 이라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배달부는 이쪽 한국 상황을 설명했는데 유태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언론에 불을 한 번 지르죠.]
“어떤 식으로 말인가?”
[유태수의 사형 집행이 실패했고 그의 종적이 사라졌다고 언론에서 떠들면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해서 말이오.]
“상대가 입질이 없으니 우리 쪽에서 미끼를 던져보자?”
[불이 붙어야 사람들이 몰려들 것 아니겠소.]
그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유장풍을 비롯한 태천그룹 입장에서는 유태수의 보도가 나간다면 굉장한 폭풍에 휩쓸릴 것이다.
그런데 유태수는 거기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적당한 시간을 두고 이라크 사태의 전모를 터뜨리는 거죠.]
정신이 없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서두르고 당황할 때 실수가 나온다.
그 실수를 파고들겠다는 뜻이었다.
‘대단해.’
처음 네오의 선택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반드시 피가 중심이 되는 대청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건 얼음보다 차가운 감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태수는 차가운 듯하면서도 마음에 깊이가 있었다.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향해 덤벼들 줄 알았다.
불의를 보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과연 자기 아버지를 죽일 수 있을까.
그런데 모든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그는 이 전쟁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누구나 사냥꾼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나 대호를 잡는 사냥꾼이 될 수는 없다.
대호는 배짱이 있어야 잡는다.
이판사판.
때로는 무모함이 대호를 잡는다.
지금 유태수가 그렇다.
***
성당으로 들어서던 배달부가 멈칫했다.
한 사내가 성모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기도하는 자세로 보이지는 않았다.
배달부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헛기침 소리에 돌아선 사내는 바로 최호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배달부?”
배달부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날 아는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 같았다.
“난 최호민이란 사람입니다. 태수가 만나보라고 하여.”
“오오!”
배달부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유태수와 통화를 했기 때문에 최호민에 대해 알고 있다.
“들어가시죠!”
배달부는 최호민을 성당 한편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드르륵!
사무실 창문을 열더니 의자 한 개를 최호민 앞으로 내밀었다.
최호민은 건네준 의자에 앉았는데 배달부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시골 성당 살림이라는 것이 이렇소.”
길 건너에 커피 자판기가 있는 걸 봤는데 거기서 믹스커피 두 잔을 빼 온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최호민은 종이컵에 들어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유태수 씨에게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소.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소?”
최호민은 알았다는 듯 눈을 빛내더니 입을 열어 박준태와 있었던 일을 말했다.
배달부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듣기만 했다.
“다른 건 괜찮습니다. 문제는 태수와의 통화 내역이죠.”
배달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통화 내역을 복구하는 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더군요.”
서둘러야 한다.
국가기관에서 움직이는 만큼 일이 잘못되면 아버지 병원은 물론 자신의 자리도 위험해진다.
인정사정없이 모든 걸 짓밟을 것이다.
반대자에게는 무자비한 곳이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