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승부는 맷집이다(2)
하나같이 그가 거머쥔 권력의 도움을 받으려는 자들이다.
지난 20여 일을 꾸준히 뒤를 따라다녔지만 아직까지 긴급 수배범 카드(most wanted playing card)에 있는 인물과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두를 건 없다.
분명한 건 이십여 일 살피는 동안 그는 닥치는 대로 달러를 쓸어 담고 있었다.
아편 단속을 봐달라는 부탁에서부터,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관계자들. 심지어 이 지역에서 공사하는 많은 외국 기업의 관계자들도 그의 주머니에 봉투를 꽂아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돈을 쓸어 담았다.
부우우!
코헨은 천천히 앞서가는 차량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차는 모술에서 해산물 요리로 가장 유명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생선이 귀하지는 않지만 워낙 뜨거운 사막의 나라이다 보니 유통과정의 문제로 내륙에서는 현지에서보다 대여섯 배에서 어떤 곳은 열 배까지 비싸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으면 해물 요리를 맛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부우웅!
경찰서장 다에이의 차가 들어가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눈에 익은 차량이 들어갔다.
태천자동차에서 북미 시장을 겨누고 야심 차게 내놓은 SUV 판도라였다.
이곳 모술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고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모술에서 다후크 국경도시까지 도로 공사 중인 현장사무실에서 세 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세 대 중 한 대가 틀림없다.
즉, 승차자는 한국인이란 뜻이다.
코헨도 한국 차량이라는 것에 유태수를 바라보았는데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느냐는 시선이다.
“글쎄!”
현장소장이 모술 최고의 해물 요릿집에서 식사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저번 근로자 납치 사고 이후 야간에는 현장소장까지도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자고!”
두 사람은 차를 몰고 넓은 식당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에서 내리는 두 사람에게 흰색의 다쉬다쉬(원피스처럼 생긴 옷)를 걸친 종업원이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식당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유태수의 짐작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별관에서 식사 중인 모술 경찰서장 다에이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도로건설소장 박진태였다.
현장 지휘자로서 치안 책임자를 만난다는 건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지금 모술 경찰서장은 막강한 권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장소장이 다에이와 식사하는 건 자연스러운 비즈니스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오늘 다에이를 잡기로 한 디데이(D-day)다.
다에이를 잡으면 그에게서 최소한 세 명 이상의 CIA 수배자가 나온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오늘 그물을 던지기로 한 것이다.
“어떡할 텐가?”
코헨이 묻는다.
다에이가 태천건설 관계자를 만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태천건설의 북한 보위부 음모에 희생된 유태수의 억울함을 알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칫하면 오늘 밤 박진태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릴 하는 것이오. 1,100만 달러가 눈앞에 있는데.”
다에이를 20여 일 쫓으며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바네사.
로버트 파우저.
벤 샤피로.
세 사람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바네사에게 500만 달러, 로버트 파우저와 벤 샤피로에게 각각 300만 달러가 걸렸다.
그래서 합이 1,100만 달러인 것이다.
바네사는 38년째 잡히지 않고 있는 은행 강도였다.
그는 웰스파고 은행 직원이다.
현금 수송차 경비였던 바네사는 1994년 9월 14일 현금 수송 중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여 동료 한 명을 죽이고 차 안에 있던 현금 700만 달러를 갖고 도주했다.
그는 전과도 없었다.
또한 학창 시절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으며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이자 성실함의 표본일 만큼 근무태도도 확실한 그가 이런 중범죄를 저지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게 은행 동료들의
증언이었다.
쫓다 쫓다 끝내 실패하여 FBI는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코빼기도 보지 못하자 결국 CIA의 사건 외 사건, 즉 적성국에 대한 동향 추적이 일반 업무인 CIA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현재 CIA, FBI 모두 그가 이슬람 강경테러단체 ‘알누스라 전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 수배자 로버트 파우저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복사판이다.
그는 해병대원이었다.
1999년에 동료 해병대원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고 결국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저 유명한 관타나모 수용소를 탈출해버린 것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 만에 설치된 미 해군 기지 내 교도소다.
파우저는 맨홀을 부수고 하수구를 250미터나 기어가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고무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유유히 사라졌다.
파우저는 콜롬비아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마약 밀매를 하다 현지 경찰에 잡혔다.
미국으로 이송될 위기에 처했던 그는 친분이 있는 마약상의 도움으로 두 번째 탈옥에 성공, 다시 종적을 감췄는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아편을 독점하고 있는 ‘걸프 카르텔’ 고위
간부로 나타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세 번째 벤 샤피로는 크레모아를 이용해 미군 장병 세 명을 폭사시킨 범인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미국인 대상 테러에 연루되어 추적을 받고 있는데 아직 흔적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 나타났다가, 갑자기 중국 상하이에서 그의 모습이 CCTV에 촬영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였고, 불과 2년 전까지 바그다드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아직 소득은 없다.
타탁!
유태수는 권총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뒤 허리에 꽂았고 MP5 기관단총의 개머리판을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옆구리에 숨겨 넣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드르륵!
자동소총이다.
“AK.”
두 사람은 재빨리 문을 열고 뛰쳐나가 별관으로 달려갔다.
전후 무너지고 주저앉은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사는 사람은 잘 살아간다.
지금 이 식당이 그러했다.
물이 귀한 곳인데도 곳곳에 정원수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웬만한 나무보다 크고 우람한 덩치의 사구아로 선인장 사이로 낯선 사내들이 다에이가 식사 중인 별관 건물 입구를 공격하고
있었다.
현역 경관들이면서 다에이의 경호원인 경찰들의 응사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던 유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자들의 숫자가 많다.
어두워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족히 열 명은 넘어 보였다.
터번을 두른 사내, 캐피야를 쓴 사내도 보이는 등 복장이 각양각색인 걸 보면 정규 군인들은 아니다.
즉 다에이를 노리는 반대자들로 보였다.
그에게 득을 보는 테러 조직도 있겠지만 손해를 본 조직도 있을 것이다.
“욱!”
“커헉!”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건물의 현관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RPG!”
코헨이 소리쳤다.
구소련이 만들어 낸 대전차 로켓이다.
튼튼하고 값싸고 위력이 좋아 전 세계 전쟁과 테러 현장에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사용량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연달아 비명이 터지면서 공격자들이 식당 현관을 향해 돌진했다.
파팟!
유태수의 눈이 반짝거린다.
누구도 다에이를 건드리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천백만 달러일 가능성, 즉 세 사람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 나와프의 귀띔이다.
또한 지난 이십여 일간의 조사가 분명하게 뒷받침했다.
누군가 힘들게 찾아낸 내 사냥감을 해치려 든다.
‘안 될 일이지. 암, 안 되고말고.’
총소리에 식사하던 손님들 모두가 탁자 밑으로 엎드렸다.
탁자와 기둥을 엄폐물 삼아 저항하던 다에이 경호원들의 저항은 미미했다.
다섯 중 셋이 사망하고 둘이 남았지만 그중 한 명은 중상을 입고 쓰러져 겨우 숨만 헐떡거렸다.
콰아앙!
경호원 한 명이 끈질기게 기둥 뒤에 숨어서 저항하자 급기야 수류탄 한 발이 날아들어 실내는 파편과 먼지로 가득 찼다.
“찾아!”
“쥐새끼들!”
탕!
타탕!
다에이를 찾기 위한 수색을 하면서 단발의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식당을 출입할 손님들이라면 나름대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진 자들은 결코 자신들 편이 아니다.
탕!
얼굴을 확인했다가 아니면 바로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탁자 밑에 엎드린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살아나갈 가능성이라고는 없다.
드르륵!
그때 식당 입구에서 기관단총 소리가 들렸다.
“컥!”
“으억!”
방심하고 있던 사내 둘이 총격을 받고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긴 사내들이 입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자신들 말고 또 다른 집단이 나타났다.
다에이 쪽은 아니다.
입구 좌우 벽에 유태수와 코헨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MP5를 단단히 거머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인을 한 뒤 번개처럼 식당 안을 향해 돌아섰다.
두두두두!
둘의 사격은 냉정했다.
특히 유태수의 사격은 경이적일 만큼의 정확도를 보였다.
뻐억!
식당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둥근 대리석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사내의 머리통이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코헨 역시도 냉장고 뒤에 숨어 있던 사내의 오른쪽 어깨를 날려 버렸다.
휘익!
다시 벽으로 붙어선 두 사람은 호흡을 조절하는데 안으로부터 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유태수는 눈을 빛냈다.
“영리한 놈입니다.”
“그런 것 같군. 우리도 다에이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야.”
코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다에이를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금방 찾아낼 것은 확실했다.
“몇인가?”
“셋!”
“넷 아닌가?”
유태수 감각에는 셋으로 느껴지지만 코헨은 넷이라고 했다.
셋과 넷은 큰 차이다.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다.
맨주먹 싸움이라면 4대2는 해볼 만하다.
하지만 총알은 주먹이 아니어서 맞는 순간 골로 간다.
즉, 한 명 차이로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
“칩시다!”
유태수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을 끌면 손해다.
즉 다에이를 찾게 되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그 전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판을 내야 한다.
“하나, 둘!”
두 사람은 나직하게 숫자를 셌다.
“셋!”
그와 동시에 뛰어들며 총을 난사했다.
두두두두!
드르륵!
기관단총 MP5.
일 분에 800발을 쏟아붓는다.
거기에 기관단총의 최대 약점인 명중률이 높아 근접전에서 이 무기를 당할 소총은 없다.
쏟아지는 총알이 실내의 탁자와 벽, 천장을 때리면서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어난 듯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빠르다.
유태수는 어느새 안쪽에 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요리기구와 여러 설치물들이 있어 사람이 숨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본 것이다.
‘없다.’
복잡한 주방은 조용했다.
홀에 있는 코헨으로부터 어떤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방을 나온 유태수는 에어컨과 화장실 쪽을 찾아보고 나온 코헨을 발견했다.
쉿!
유태수가 일체 말을 하지 말라고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