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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42화 (42/122)

42화 재입사(1)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윤기철의 목소리는 무척 헐떡거린다.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 그런 진술을 받아낼 정도면 이라크 현지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또한 그런 일은 아무나 못 한다.

최소한 현장 고위 간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해외에 진출한 태천그룹 소속의 현장 책임자들 중 상당수가 귀국하여 옷을 벗었다.

실적 부진이 원인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현재로서는 박진태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유장풍에게는 이유가 통하지 않는다.

군대 말로 좆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한다.

사고가 난 것도 능력 부족이고, 기상이변으로 일 처리가 늦어진 것도 실력이 모자란 탓이다.

지금까지 회사의 그런 관례에 비춰 본다면 이번 윤기철의 진술 녹음도 자신만은 힘없이 당하지 않겠다는 이곳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석유 시추 현장까지 포함한 누군가가 계획으로 볼

가능성이 백 퍼센트다.

“태천건설 직원이었던 당신이니 유장풍 회장에 대해 누구보다 소상하게 알겠군요.”

사이먼이 눈을 빛냈다.

“하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오?”

“거절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유태수는 환하게 웃었다.

어쩌면 이라크에 와서 지은 웃음치고 가장 밝고 맑았다.

사이먼 역시도 밝은 얼굴이다.

박진태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자신들의 정보원인 배석대가 태천그룹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코헨은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다.

물론 예상한 반응이다.

한 놈만 잡으면 최하 백만 달러를 버는 그에게 미화 20만 달러도 채 안 되는 연봉이 마음에 찰 리 없다.

오히려 코헨이 유태수에게 부탁 한 가지를 해왔다.

“추적은 나 혼자서 하겠네. 하지만 현장을 덮칠 땐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비록 태천건설 경비팀에 합류하더라도 언제든지 자신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면 흔쾌히 응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상사님!”

코헨이 네이비 씰을 제대할 당시 계급이 상사였다.

직책은 부소대장.

네이비 씰은 17명이 일개 소대를 형성하고 소대장은 대위고 부소대장은 상사나 중사가 맡는다.

“자주 연락합시다.”

유태수는 오른손을 들어 보인 뒤 문을 열고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코헨은 주방으로 걸어가 머그잔 가득 커피를 따라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코헨이 히죽 웃었다.

‘놀라운 친구야.’

유태수와의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지난 석 달여 유태수와 같이 보낸 시간을 돌아보면 놀랍고, 충격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격이었다.

아직 그토록 사격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미군에도 수색대(search party)는 있다.

한국과 같이 사단 소속의 수색대가 있고 함대에 있는 수색대도 있다.

사실 한국군에서 미군 편제를 보고 적당히 모방한 것인데 수색대는 항상 선견작전부대로 본진에 앞서 들어간다.

아무튼 네이비 씰은 물론 어느 작전, 어떤 전쟁에서도 유태수만큼 사격이 정확한 군인은 보지 못했다.

또한 두뇌 회전도 대단하다.

쿠르드족 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맘) 나와프를 만나 너무도 수월하게 거액의 달러가 걸린 사냥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자신은 꿈속에서조차 그런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 50만 달러를 아까워하지 마시오. 그 대신 우린 500만 달러를 벌었잖습니까.

나와프에게 너무 큰 돈을 주었다고 투덜거리자 유태수는 웃으며 말했다.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50만 달러를 투자해서 45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장사꾼 있으면 나와보라면서 큰소리를 쳤다.

또한 그 50만 달러는 앞으로 나와프와 쿠르드족이 더욱 적극적으로 강하게 우리 일을 도울 것이라는 확신까지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있다.

유태수의 모호한 정체성이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육감이라는 것이 있다.

유태수를 볼 때면 뭔가 커다란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 같다.

그건 비밀이 많다는 뜻인데 남 앞에 말하지 않을 것이라면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다.

‘유태수, 자네가 무엇을 하든 반드시 그 일이 성공하길 바라네. 이건 나의 진심일세.’

후루룩!

커피를 소리 내어 마셨다.

***

SUV 한 대가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근무 중이던 경비 조성동은 날카로운 눈으로 다가오는 차량을 바라보았는데 대낮이기 때문에 그다지 긴장한 빛은 보이지 않았다.

‘포드 익스플로러.’

차가 가까워져 오면서 차종을 알게 된다.

은색의 포드 익스플로러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국도에서 이곳 현장 사무실까지 오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수시로 쌓이는 모래로 인해 소용없었다.

먼지가 경비실 주위를 안개처럼 덮어버린다.

쏴아아아!

먼지가 사라지면서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한국인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박진태 소장님 만나러 왔습니다.”

박진태 소장이라는 말에 조성동은 깜짝 놀란다.

이미 연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박진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전쟁의 신이라고 했다.

“들어가시죠.”

재빨리 바리케이드를 들어 올린다.

부우웅!

유태수가 운전하는 포드 익스플로러는 사무실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용병이라고 했지?”

그때 안에 있던 경비 민철기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차량이 피워 올린 먼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용병이라더군.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얼마나 든든해. 처음 본 차량만 들어오면 모골이 송연해지니 원.”

유태수가 옴으로 인해 더 이상 공포와 불안에 떨 필요가 없어졌다.

얼마 전 근로자 납치 사건으로 서울 본사로 불려간 박진태는 전투 용병을 채용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납치 사건은 이어질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유장풍은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두 명의 근로자가 끌려갔는데도 현장 책임자의 간곡한 요청을 묵살해 버렸다.

- 죽을 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는 거야. 내 말 알겠어!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대신 근로자들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납치를 당하는 불상사가 생겼냐면서 ‘박 이사, 배가 부른 모양이지?’ 하며 노려보았다.

국내가 아닌 해외 건설현장 소장은 이사급이다.

박 이사가 배가 부른 모양이지, 라는 말은 당신 그만두고 싶냐는 말이다.

그런데 유장풍의 면담이 끝나고 회장실을 나오는데 누군가 불렀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뒤따라 나온 한 명의 노신사가 있었다.

“사장님!”

노기술. 태천자동차 사장이자 유장풍과 창업 동기다.

유장풍과는 달리 무척 꼼꼼하면서 아랫사람에게 자상하여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나 좀 보세!”

노기술은 박진태를 데리고 사옥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카페로 들어갔다.

대낮의 카페는 손님 한 쌍이 전부였다.

“사장님, 뭐 드시겠습니까?”

“아니야. 먼 데서 온 사람인데 내가 대접해야지.”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노기술은 자신이 직접 가서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회장님 말씀 마음에 두지 말게. 원래 기분 내키는 대로 뱉어내는 사람 아니던가?”

어찌 마음에 두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흔히 말하는 쌍팔년 때도 아니고 2030년을 향해 달려간다.

헌데도 여전히 아래 직원을 집안 머슴으로 보는 시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회장님 모르게 내가 몇몇 유명한 민간 군사 기업 관계자들과 이메일을 통해 알아본 것이 있네. 용병들의 몸값이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지.”

“전쟁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보험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현장에 나가 이틀 만에 죽은 사람도 있고 운 좋으면 5년을 넘긴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분명한 건 용병들의 복무 기간이

평균 3년이 채 안 된다는 겁니다.”

절반은 3년 안에 죽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들었지. 그래서 더 몸값이 높다는 것도.”

“미국의 네이비 씰이나 영국의 SAS 출신들이 가장 몸값이 세더군. 그중에서도 실전경험에 따라 또다시 분류되고.”

커피는 박진태가 가져왔고 노기술이 한 모금 마신다.

“이 집 커피가 이상하게 내 입에는 맞아.”

“글쎄요. 전 커피 맛은 잘 몰라서.”

“열 명을 데려오는데 2,000만 달러를 달라더군. 그중 30퍼센트는 회사 몫이라면서.”

2,000만 달러에서 회사가 600만 달러를 챙기고 나머지 열 명에게 1,400만 달러가 차등 분배된다.

“그보다 한 단계 떨어진 몸값의 용병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총을 들고 있다는 것만 해도 안심이죠.”

“그래서 내가 자네를 불렀네. 지금 상태라면 자네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유 회장이야.”

“저도 압니다.”

“나에게 내 통장이면서도 내 돈이 아닌 돈이 조금 있네.”

“회장님 비자금?”

“그 돈으로 뛰어난 용병들을 고용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분명한 사람들을 채용하도록 하게. 또한 그에 따른 경비내역을 정확히 짜서 내게 보내게.”

“사장님!”

“다시 말하지만 유 회장의 말 너무 가슴에 두지 말게. 젊어서는 그래도 부드러웠는데 사람하곤.”

노기술이 한숨을 쉬었다.

***

남자 직원이 시원한 냉수 한 잔을 가져다 놓고 돌아갔다.

탁탁!

박진태는 책상 위에서 서류 뭉치를 가지런히 챙기더니 유태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일단 이것부터 한 번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유태수는 박진태가 넘겨준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직원이 가져다준 냉수를 마시며 서류를 살피는 유태수를 박진태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어느 한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느낌이 다른 모양이다.

‘거참.’

유태수를 한참 동안 보고 있으니 한 사내가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사내.

비록 회사가 기획하고 국정원이 연출한 작전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그 사내를 떠올린다.

직원들 중 일부는 북한보위부에 끌려갔다는 발표를 믿지 않는 눈치다.

나름대로 최대한 작전을 가로막으려고 했으나 회사에 몸이 묶인 처지로서 어떤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팔랑!

마지막 장을 넘기는 소리에 퍼뜩 옛날 생각에서 깨어났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내 나름대로 만들어본 기획안입니다.”

유태수는 다시 한번 빠르게 넘기며 훑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상당히 탄탄하군요.”

즉, 준비를 많이 했다는 칭찬에 박진태가 살며시 웃는다.

“모자란 부분은 데이브 유가 보완해 주십시오.”

데이브 유.

박진태에게 새롭게 제시한 유태수의 이름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주저하는 박진태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는 뜻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총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박진태가 내민 자료에는 근로자들 중 가장 최근에 군을 제대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두 여덟 명을 선발했다.

여덟 명 중 가장 빡센 곳을 제대한 근로자가 해병대였고 나머지는 전부 육군 보병들이다.

거의가 제대한 지 6년에서 10년이다.

군대라는 곳이 워낙 강렬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사격에 관해서는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총구를 떠난 총알이 얼마만큼 표적을 제대로 맞히느냐다.

“총기를 구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 있습니까?”

“모술 암시장에 가면 AK 정도는 지천이더군요.”

AK는 구소련에서 시작된 총이다.

값이 싸고 악천후에서도 잔 고장이 없어 오늘날 테러의 총기로 불린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순간 AK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대척점에 있는 대표적 무기가 되었다.

“나도 AK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눈치 하나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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