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재입사(2)
유태수의 표정에서 AK에 대한 부정적인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일단 내 계획이 그렇다는 것이고 모든 건 데이브 유가 알아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인원은 여덟이면 충분합니다. 이곳 현장 사무실에 네 명, 공사현장에 네 명이면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어찌 됐든 이쪽이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테니까.”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기는 내가 알아보죠. 미군 제식소총인 M4가 무난할 것입니다. M4도 시내에 적지 않게 굴러다니고 있다고 들었지만 무장 경비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중고를 쥐여줘서는 안
되죠.”
총기 분해 손질에 대해 가르치긴 하겠지만 적과 교전 중에 고장이라도 나면 대책 없다.
***
태천자동차의 신형 SUV 판도라 한 대가 정문을 통과해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정민출 과장이 내리고, 이어서 운전석에서 송만술이 내렸다.
두 사람은 날씨 징그럽게 덥니 마니 하면서 재빨리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들 와요.”
박진태가 에어컨이 켜져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으와! 오늘은 진짜 덥네. 겨울에 접어들었는데 38도가 뭐야?”
이곳도 겨울이 있다.
겨울이면 이 지역도 기온이 내려가는데 더워 봤자 27도, 아주 가끔 30도를 웃돌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역도 기후 온난화를 피하지 못하고 12월 초순인데 낮 최고 기온이 38도를 찍은 것이다.
“과장님.”
송만술이 재빨리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꺼내 정민출에게 건네주었다.
“땡큐!”
딱!
송만술이 마개를 따고 한 모금 마신 후 박진태와 마주 앉아 있는 유태수를 바라보았다.
흠칫!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물병을 놓칠 뻔했다.
“왜 그래?”
정민출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민철도 송만술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였는데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두 사람의 시선은 유태수의 얼굴에 박혔다.
유태수의 얼굴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당시와 다르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박진태와 얘기를 나누는 자세가 백 퍼센트 유태수, 즉 배석대였다.
그런 것이 있다.
얼굴은 닮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분위기나 행동이 거의 닮은 사람, 그래서 그를 보면 항상 그 사람이 떠오르는 일 말이다.
‘완전 판박이네.’
두 사람 모두 놀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유태수는 박진태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고 있었다.
박진태와 마주 보며 얘길 하지만 두 사람이 무척 놀라는 걸 놓치지 않고 본다.
송만술은 북한보위부에 끌려간 배석대가 생각났을 것이고, 정민출은 자신들이 죽여 없앤 배석대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진태와 악수를 나눴다.
“아, 잠깐!”
돌아서려는 유태수를 박진태가 불러세운다.
“정 과장, 송만술 씨. 인사해요. 앞으로 우리 현장의 안전을 맡아줄 데이브 유.”
“안녕하십니까? 데이브 유입니다.”
유태수가 미소를 살짝 머금고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정민출 과장입니다.”
“송만술입니다.”
콱!
유태수는 유난히 송만술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동기 중 그래도 가장 배짱이 있고 똑 부러진다.
송만술은 잃어버린 자식의 얼굴을 살피는 엄마의 시선처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틀린 듯 맞은 듯 혼란스러울 것이다.
유태수는 송만술을 향해 깊은 웃음을 지어 보인 뒤 사무실을 나왔다.
***
사이먼은 유태수로부터 넘겨받은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꼼꼼하게 읽고 난 사이먼은 내용상 큰 문제 될 건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M4 여덟 자루를 지원해 달라는 건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총이라고 해도 언제 방아쇠가 멈춰 버릴지도 모르죠.”
고장을 대비해 예비로 몇 정 더 달라는 뜻이다.
“열 정이면 되겠나?”
“이왕이면 방탄조끼도 지원해 주시오.”
사이먼이 눈을 치켜떴다.
“최소한 쌍안식 야간 투시경은 있어야 할 듯싶소.”
사이몬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굶주린 강아지 고기 한 점씩 주듯 하지 말고 필요한 건 모두 말해보게.”
유태수는 기다렸다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거기에는 필요한 물건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전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부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장비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냐는 건가?”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전쟁에서 장비 빨이 이기고 지는 걸 결정한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사이먼은 유태수로부터 건네받은 종이를 한참 읽었다.
“장비만 보면 무조건 네이비 씰이군.”
약간은 비아냥거리듯 하며 종이를 놓았다.
“언제까지 필요한가?”
“빨라서 나쁜 건 없습니다.”
“내일까지 모두 준비하겠네.”
“내일?”
유태수는 깜짝 놀랐다.
앞으로 자신의 통제하에 전문적인 경비 업무에만 매달릴 사람은 모두 여덟 명이다.
현역 제대했다는 병역기록부의 잉크는 이미 마르다 못해 퇴색되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즉, 완전 생초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장비를 요구하여 종류가 제법 많았다.
열흘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내일까지 준비하겠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우리 국정원에 종이에 적힌 장비를 요구하면 과연 내일까지 해 줄 수 있을까.
‘흐흠!’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차가 덜컹거리는 걸 보면 비포장도로이며, 엔진 소리가 크다는 건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한참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데 차가운 무언가가 목을 파고들었다.
눈을 떠보자 어둠 속에서 사내들 둘이 목에 희끄무레한 사시미 칼을 겨누고 말했다.
“가만 있으면 안 죽습니다.”
배달부는 가만히 있었고 사내들은 능숙하게 손을 묶고 포댓자루를 씌워 앞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하여 끌려온 것이다.
덜컹!
차가 멈췄다.
사내들은 끌어 내린 배달부 머리에 씌웠던 포댓자루를 벗겼다.
예상대로 불빛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산속이다.
차에 오를 때 발판이 높아 SUV일 것으로 판단했는데 맞다.
판도라 검정 SUV.
태천자동차에서 독일 차 SUV들과 겨루기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차량이다.
네 명의 사내 모두 낯설다.
자신의 후각은 조향사(調香士)를 앞선다.
끌려오는 차 안에서 과거 성당 근처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사내들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
그건 새로운 사내들이라는 걸 의미했다.
멈칫!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배달부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구덩이 하나가 파여 있었다.
필시 오늘을 위해 미리 파 놓은 것이다.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 깊이 파인 구덩이를 본다면 공포에 빠지면서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털어놓을 것이다.
구덩이는 끌려온 자에게는 어떤 것보다 무서운 위협일 수밖에 없다.
“이것 좀 풀어 줄 수 없소?”
손목이 나일론 끈으로 단단히 묶였다.
“그쪽은 네 명이나 되고 사시미 칼까지 있던데, 차 안에 또 무엇을 숨겨 놓고 있는지 모를 일이고.”
사내들은 반응이 없다.
“담배나 하나 빌립시다.”
넷 중 두 명의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더니 다가와 담배를 물려주고 불까지 붙여 준다.
“고맙소!”
묶인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며 배달부는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좋다!”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온통 별들의 천지다.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저 많은 별들이 빛을 뿌리는데 왜 보름달만큼도 세상을 밝히지 못하지.”
순간 사내들이 멈칫했다.
누구도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배달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저 별들을 다 합치면 달보다 수십 배 크다.
그런데 지금 주위는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어둡다.
가까이 있는 동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별이 저렇게 많은데 왜 달빛보다 더 빛을 내지 못하는지 말이오.”
갑자기 사내들에게 묻는다.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저 구덩이가 전혀 겁나지 않는다는 건가?”
한 사내가 다가온다.
단번에 우두머리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는데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에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로 보인다.
‘노랑 이빨.’
앞 윗니 하나가 누런 금색이다.
“구출을 빙자해 회사에서 근로자들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우두머리 사내가 어둠 속에서 탁한 목소리로 낭독하듯 말했다.
배달부의 눈이 좁혀진다.
자신이 오도석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이다.
- 배달부 당신을 찾아갈 것이오. 아마 배후를 털어놓지 않으면 죽일 확률은 99.99퍼센트요.
- 빠져나갈 구멍이 없단 말이군.
- 나는 없지만 배달부 당신은 있잖소.
이틀 전 유태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쯤 배달부 당신을 잡아 정리하기 위해 태천그룹에서 사람들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엇!”
그런데 3미터 정도 가까이 다가와 있던 우두머리 사내가 소스라쳤다.
배달부가 모두 피운 담배꽁초를 튕겨 버렸는데 오른손이었다.
즉 묶어 놓은 나일론 끈이 어느새 풀어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고 두 손이 자유스러운 것이었다.
“왜요, 실장님!”
우두머리 사내가 주춤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뒤에 있던 세 사내가 다가왔다.
“이런!”
가까이 다가왔고 오랫동안 어둠에 적응된 눈은 배달부의 손이 자유롭다는 걸 발견했다.
아무나 풀 수 있게 대충 묶은 것이 아니다.
네 사람 모두 특수부대 출신들로 전시에 적의 포로나 중요 인물들에 대한 압송 상황을 대비해 끈을 이용한 포박 훈련을 받는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절대 혼자 풀 수 없도록 제대로 묶었다.
“실장님이시면?”
배달부가 사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사악!
우두머리 사내 앞으로 세 사내가 가볍게 다가온다.
그러자 우두머리 사내는 가볍게 뒤로 빠지는 형국이 된다.
휘익!
맨 오른쪽 사내의 오른발이 배달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헉!”
그런데 구둣발로 배달부의 옆구리를 찍어가던 사내가 소스라쳤다.
발이 채 옆구리에 닿기도 전에 배달부가 파고들었다.
뻐억!
신발도 신기지 않고 끌고 왔다.
그래서 배달부는 맨발이었는데 다리가 일자로 뻗어 올라가며 발바닥 뒤꿈치 부분이 사내의 턱을 쳤다.
“크훅!”
사내가 비명을 터뜨리며 뒤로 휘청 물러났고 배달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내의 사타구니를 정확히 갈겨 버린다.
파악!
“욱!”
짧은 비명이다.
그리고 사내는 앞으로 엎어졌는데 조용해졌다.
툭!
그러면서 사내의 품에서 칼 한 자루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사시미 칼이다.
수중에 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수적으로도 우세인데 칼까지 사용한다는 건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과신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슥!
배달부는 허리를 구부려 사시미 칼을 주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