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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44화 (44/122)

44화 재입사(3)

“후쿠히키보초(ふぐ引き包丁).”

칼날을 살피며 중얼거리자 사내들이 깜짝 놀란다.

“복어를 손질하는 회칼이지. 아마 시중에 유통되는 회칼 중 날이 가장 얇을 거야. 살짝 대기만 해도 몸속으로 들어갈 정도.”

파르르!

어둠이 깊어 누구도 보지 못했는데 우두머리 사내의 눈썹이 떨렸다.

‘전문가다.’

자신들이 얼마든지 마음먹은 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골 촌구석 성당 관리를 해주며 살아갈 정도면 이미 정답은 나와 있었다.

그런데 단번에 자신들의 칼을 알아보고 쓰임새와 위력까지 정확히 말을 한다.

“사람을 잘못 봤군.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지.”

왼쪽 사내가 수평으로 찔러 들어갔다.

동료가 당하기 전까지는 이들도 칼을 뽑지 않았지만 이제는 분명한 의지를 다진다.

스르륵!

배달부는 자신의 복부를 수평으로 파고드는 칼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이동했다.

화악!

찔러가던 사내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주먹이든 칼이든 첫 방의 중요성은 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이름하여 선빵.

선빵은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노려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선빵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 싸움은 거의 이길 수 없다.

선빵 자체가 자신이 없는 쪽에서 즐겨 쓰는 전략이며 피했다는 건 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수를 훤히 읽고 있다면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하지만 사내의 판단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옆으로 몸을 피한 배달부의 오른손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배달부의 오른손에는 복어 회 뜰 때 사용하는 회칼 중 가장 얇고 끝이 뾰족한 후쿠히키보초가 들려 있다.

사내는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기 위해서는 공격에 쏟은 힘을 회수해야 하는데 지나칠 만큼 전력을 다했다.

모든 힘을 한 동작에 쏟아붓게 되면 다음 동작이 느려진다.

팍!

“끅!”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툭!

오른손에 쥐어진 칼을 떨어뜨렸는데 손이 금방이라도 팔에서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린다.

뚝뚝뚝!

엄청난 피가 지면으로 떨어지고 배달부의 손에 들린 칼이 바람을 가르며 오른쪽 사내를 파고든다.

슛!

짧은 바람 소리다.

“허헉!”

오른쪽 사내가 몸을 틀어 피하려는데 왼쪽 허벅지가 뜨끔했다.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 하나가 파고드는 느낌.

휘청!

허벅지에 한 방 맞은 오른쪽 사내가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오른쪽 사내는 온몸을 한 차례 강하게 떤다.

공포였다.

발은 주먹의 세 배 위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발의 공격은 주먹질에 비해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쪽 발을 들게 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상대에게 역습을 받는다.

지금 배달부의 칼질도 그런 성격이었다.

아무리 칼을 쥐었다고 해도 상체보다 하체 공격은 위험하다.

허리를 많이 숙여야 하기 때문인데 상대 칼 밑으로 자신의 뒷목을 밀어 넣는 자세가 된다.

그러나 성공하면 싸움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다리 부상은 스텝을 느리게 하고 중심을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슈슈슉!

채 중심을 바로잡기도 전에 배달부의 칼이 복부에 연달아 세 번을 박아 버렸다.

“우우우!”

길게 신음을 흘리더니 역시 주저앉았다.

스윽!

슥!

도신에 묻은 피를 자기 옷에 닦은 배달부가 실장이라는 우두머리를 돌아보았다.

“저들을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시오. 지체했다간 내년 오늘이 제삿날이 될 테니까.”

툭!

들고 있던 칼을 한곳으로 집어 던진 배달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꾸울꺽!

우두머리 사내 위백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태어나 처음 봤다.

믿고 싶지 않은 기이한 광경.

영화는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불현듯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미치도록 읽었던 무협 소설을 떠올린다.

그 소설 속 강호 무사라면 가능할 것이다.

“으으으!”

세 명의 부하들은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반쯤 일어났다가 털썩 쓰러지기를 반복했는데 위백수는 한 명씩 차량에 싣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내들은 연신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탁!

셋 모두를 차에 태운 위백수는 흙과 피가 범벅이 된 행색으로 핸들을 잡고 차를 몰고 산을 내려갔다.

***

벌교에는 큰 병원이 없다.

곧장 순천으로 달려간 위백수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세 명의 환자를 밀어 넣고 말했다.

“경찰에 연락하면 안 됩니다. 치료만 잘해주시면 선생님 할 일은 끝나는 겁니다.”

응급실 의사가 멈칫했다.

틱!

그리고 피범벅이 된 상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오만 원권 현금 한 줌을 꺼냈다.

“치료비가 아닙니다. 내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죠.”

그리고 위백수는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위백수가 나가고 의사는 돈을 셌는데 스무 장, 현금 백만 원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의사는 곧바로 간호사를 불러 세 사람에 대한 치료를 시작했다.

후우우!

담배 연기를 내뱉는 위백수의 얼굴이 굳어 있다.

사냥은 실패로 끝났다.

첫 단계에서 일이 우그러졌으니 모든 계획은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기존에 배덕용을 감시하던 팀은 정체가 노출되어 모조리 옷을 벗었다.

태천그룹의 일 방식이 그렇다.

자리가 어디든 실패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배덕용의 입을 열어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아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타도를 통해 방영됐던 내용과 배덕용의 편지는 둘이 아닌 하나의 원(圓)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상부, 즉 오도석의 판단이다.

그런데 첫 단추인 배덕용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사실 배덕용에 대한 공격작업을 놓고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천주교.

대한민국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교가 있다.

그 많은 종교들은 한 가지에서 분명한 일치를 추구하는데 바로 양심과 정의다.

배덕용을 어떻게 한다고 하여 종교탄압 운운할 일은 없겠지만 성당 관리인이라는 것이 자꾸 거슬렸다.

성당 관리인이 갑자기 실종됐다면 결코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 증거가 없는데 제까짓 것들이.

아무리 범행이 의심스러워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는 것이 오도석의 얘기였고 그래서 바로 작전에 나선 것이다.

두 번째는 사표를 내는 것이었다.

‘솔직히 두렵다.’

배덕용의 얼굴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한번 상대에게 겁을 먹어버리면 절대 싸워 이기지 못한다.

‘피했다기보다는 그냥 이동했다.’

부하직원 오창길의 특기는 쾌도(快刀), 즉 찔러가는 칼의 속도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런데 지척에서 찔러 오는 칼을 배덕용은 피했다.

아니,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가는 듯 옆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마치 차원과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 같았다.

‘태천에서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능력에 벅찬 일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욕심에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는 돌아오는 건 비참한 말로뿐이다.

***

여덟 명의 근로자들이 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나이가 젊고 군에서 제대한 지 5년에서 10년 차까지의 사람들이다.

“설마 진짜 총을 주는 건 아니겠지.”

나름대로 서류와 체력 측정을 하여 선발한 경비팀이다.

과거 군 시절 얘기를 무슨 무공훈장이나 받은 듯 거품을 물고 떠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에 일말의 두려움을 지우지 못한 이도 있었다.

테러가 됐든 단순 사건 사고이든 이라크에서 시신을 구경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총소리 듣는 건 일상이 되었지만 막상 직접 총을 잡는다는 사실이 가슴을 떨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저 차인가.”

멀리서 SUV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다가왔다.

차는 회사 경비실의 검문을 받으며 들어섰고 곧장 일행 앞에 와서 멈췄다.

딸칵!

운전석 문이 열리고 뉴욕 양키즈 로고가 박힌 야구모자를 눌러쓴 유태수가 내렸다.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들을 향해 다가간 유태수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데이브 유라고 합니다. 소장님을 통해 자세한 얘긴 들었을 테니 생략하기로 하고.”

유태수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양성칠 씨.”

“예!”

서른 가까이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가 대답했다.

“나이 스물아홉? 7사단 제대?”

“맞습니다.”

“마호판 씨.”

“예!”

작달막한 체구에 어깨가 떡 벌어져 힘깨나 써 보인다.

“스물아홉, 1사단 제대하셨죠.”

“그렇습니다.”

본인들의 자필로 작성된 서류를 보며 사실과 맞는지 비교하는 것이다.

여덟 명 모두를 확인한 유태수는 서류를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회사 여건상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 총을 잡고 경비를 서지만 임금을 포함한 모든 건 다른 근로자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습니다. 오히려 위험수당 50만 원이

따로 지급되죠.”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약간의 긴장을 하고 있던 사내들까지 얼굴이 환해진다.

역시 돈은 만병통치약이다.

***

도로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막에 일단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산이라고 하지만 나무라고는 앙상한 가지를 뻗고 있는 가시나무 말고는 온통 암석이다.

선글라스를 낀 채 맨 선두에서 걸어온 유태수가 말했다.

“군대에서처럼 사거리가 멀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50, 100, 150미터의 표적을 만들어 놓고 사격할 것입니다.”

야전이 아니다.

테러범들과의 싸움은 도시 게릴라전이다.

유태수는 미리 만들어온 표적을 각 거리마다 두 개씩 세웠다.

실제 사람 키 높이의 각목에 상반신 표적만 붙인 것이다.

사람들 얼굴에 긴장이 감돈다.

사용하는 총기는 M4이다.

누구도 군 시절 만져보지 못했기에 오전 내내 분해 조립 과정을 반복 연습했다.

총의 구조라는 것이 엇비슷하여 의외로 빠르게 습득했고 이른바 사격술 예비 훈련도 마쳤다.

사격은 두 명씩 이뤄졌다.

30발들이 탄창을 꽂아 유태수의 신호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첫 탄창 30발을 비우고 확인한 표적지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유태수는 빙긋 웃으며 신경 쓰지 말도록 했다.

자신은 그래도 수색대 출신이어서 일반 보병부대 병사들에 비해 사격량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말년 휴가 나올 때까지 결코 300발 이상 쏴본 것 같지는 않았다.

사격처럼 정밀함이 생명인 분야도 없다.

그것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쏘는데 더구나 제대를 한 지 최소 5년 이상이 지났다.

두 번째.

세 번째 30발들이 탄창이 들어가면서부터 총알들이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격 끝, 약실 확인.”

“약실 확인!”

일제히 노리쇠를 당겼다가 밀고 방아쇠를 당긴다.

딱!

따악!

빈 방아쇠 소리만 들리고 이상 무를 외친다.

유태수는 표적지로 걸어갔다.

명치를 중심으로 그럭저럭 탄착군이 형성되어 있다.

“좋습니다.”

7사단 전역을 한 양성칠이 씨익 웃는다.

본인도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오른쪽에서 같이 사격을 한 1사단에서 군 생활을 보낸 마호판은 좀 더 오밀조밀 총알들이 몰렸다.

사격 시 일체 흐트러짐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마 병장님 대단하십니다.”

“핫핫! 뭘!”

마호판이 어색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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