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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46화 (46/122)

46화 전쟁의 방법(2)

마치 두더지 게임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구멍에서 무작위로 툭툭 튀어나오는 두더지처럼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살폈다.

한 사람이 살피면 정확히 조준될 수 있지만 둘이서 교대하듯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 이쪽에서 누구를 노려야 할지 헷갈릴 것이라고 계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놓고 있었다.

같은 위치와 각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잠깐이면 모를까 1, 2분 이상 지속되면 올라오고 내려가는 시간을 이쪽에 귀띔하는 꼴이 된다.

한 사람의 머리가 올라왔다가 살피고 내려가는데 평균 5.2초였다.

탕!

총성이 또다시 뜨거운 사막에 울려 퍼진다.

붉은 핏물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사사삭!

유태수는 재빨리 자리를 이동했다.

‘적과 일대일로 맞섰을 때는 절대 다가가는 것이 아니지. 돌아가는 거야. 시곗바늘처럼.’

10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유태수는 빙 돌기 시작했다.

일단 산을 내려가고, 불타고 있는 도요타 SUV 근처를 지나 작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이제 정광기가 지키고 있는 나끼윤산을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온다.’

한 사내가 자세를 낮추고 허겁지겁 갈지자로 뛰어온다.

군대에서 은폐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를 지날 때는 가급적 빠르고, 한 방향이 아닌 지그재그로 뛸 것을 가르친다.

사내는 혼신을 다해 거의 잿더미가 되었지만 도요타 SUV를 주차해 놓던 높이 30미터가량의 거대한 바위에 도착했다.

학학학!

거친 숨을 몰아쉰다.

터번을 벗어 이마와 얼굴에 묻은 땀을 닦던 사내가 갑자기 움찔했다.

뒷덜미에 딱딱한 뭔가가 닿는다.

보지 않아도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사내는 옴짝달싹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양손 머리에 올리고 무릎 꿇어.”

사내는 멈칫할 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타앙!

유태수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내의 오른쪽 다리 오금쟁이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커헉!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무너진다.

유태수는 사내의 몸을 수색했다.

툭!

미국제 담배 윈스턴 한 갑과 라이터, 그리고 아래 주머니에서 이라크 화폐 10만 디나르(원화로는 십만 원이 조금 넘는다)와 미화 120달러가 나왔으며 손때 묻은 아이폰도 보인다.

유태수는 사내가 세워 놓은 AK 소총을 주워 들더니 탄창을 빼고 약실에 박힌 한 발까지 공중으로 발포하여 없앴다.

툭!

총을 가져가도 좋다는 듯 던졌다.

털썩!

바위가 만든 그늘에 주저앉더니 말보로 레드를 한 개비 피워문다.

후우!

연기를 뿜으며 바위에 등을 기댄다.

스물스물!

사내의 무릎은 관통이 되어 앞뒤로 계속 피가 흘렀다.

“그대로 방치하면 30, 40분 안에 엑생궈네이션(exsanguination:실혈사) 당할 것이오.”

과다출혈로 죽는다는 것이었다.

움찔!

사내의 안색이 변하고 어깨를 떤다.

유태수는 다리까지 앞으로 쭉 뻗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있으나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듯 잇새로 신음을 흘렸다.

틱!

꽁초를 멀리 튕겨 버린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내려다보며 벌겋게 피가 밴 주위 모래들을 살펴보더니 윗주머니에서 압박붕대를 꺼냈다.

“다리를 뻗어 보시오.”

사내는 멈칫거렸다.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시오.”

사내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드러눕는다.

유태수는 상처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고 압박붕대를 감았다.

“정광기 씨, 현장에 있는 내 차를 끌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곳으로 오시오.”

한참을 돌아야 하지만 차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다.

홱!

유태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사내의 핸드폰이 움직인다.

사내가 눈치를 살핀다.

“받아요.”

사내는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었는데 유태수가 주워 건넨다.

“여보세요!”

통화를 하면서 자꾸 유태수의 눈치를 살핀다.

유태수는 마음껏 통화하라는 듯 저만큼 거리를 두었다.

사내는 뭐라고 목소리를 낮춰가며 1분여 통화를 했는데 조곤조곤한 말투를 보아 가족의 전화로 보였다.

유태수는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있지만 자신의 포드 익스플로러라는 걸 알 수 있다.

폭풍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 포드 익스플로러에서 정광기가 내렸는데 부상을 당한 사내를 보며 깜짝 놀란다.

“도와주시오.”

유태수가 사내를 부축해 일으켰고 정광기도 재빨리 손을 보탰다.

정광기는 사내와 같이 뒷좌석에 올랐고 유태수는 곧장 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

병원 의사는 머리에 쓰고 있던 파랑 수술 모자를 벗고 마스크를 한쪽 귀에 걸었다.

“다리는 평생 불편할 겁니다.”

“그러겠죠. 아무튼 최선을 다해주어 고맙습니다.”

지갑을 열어 백 달러짜리 지폐 열 장을 세어 준다.

화악!

의사의 눈이 커졌다.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유태수는 돌아서서 병원 복도를 걸어 사라졌다.

***

오늘도 공사는 평소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주야간 12시간 맞교대이다.

이번 주 주간 현장 경비는 양성칠과 정광기다.

그들은 어제의 경계 초소에서 사막 저편을 향해 수시로 쌍안경을 돌리고 있었다.

[광기 형!]

무전이 왔다.

양성칠이 두 살 아래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유 팀장 말이야. 왜 그놈을 죽이지 않고 병원까지 데려다줬을까.]

사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정문 경비를 서는 사람들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아 세 사내는 백 퍼센트 태천건설 근로자 납치를 목적으로 접근해 온 것이 분명했다.

결정적인 증거가 AK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총이 흔한 이라크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전쟁의 뒤끝은 크고 작은 범죄 조직을 양산했고 바그다드에서는 이미 서너 차례 은행 무장 강도 사건이 있었다.

모술에서도 무장 강도 사건은 흔하게 발생한다.

그들이 무장 강도였다면 돈과 사람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술 시내로 들어와야 하는데 외진 공사 현장으로 접근했다는 건 목숨을 인질로 돈을 노리는 테러범들이다.

그들이 인질 테러를 목적으로 왔음이 더 분명한 건 유태수의 손에 두 명이 죽었다.

테러범이라는 백 프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제거한 것이다.

- 병원은 왜 데려다주었죠?

정광기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질문에 유태수는 그저 빙긋 웃고 말았다.

***

유태수는 천막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 통화 중이었는데 상대는 미국에 있는 설태왕이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제법 많이 불렸군요. 수익에서 이십 퍼센트는 당신과 동료들 보너스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설태왕의 비명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보내준 돈은 정확히 이것저것 다 합해 900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그런데 지금 1,500만 달러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어들인 600만 달러의 이십 퍼센트인 140만 달러를 설태왕을 포함하여 동료들에게 보너스로 준 것이다.

딩동댕!

마이크 소리가 울린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음악 소리다.

일을 하던 근로자들이 일제히 현장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유태수도 식사를 하기 위해 막 일어나는데 전화가 울렸다.

꿈틀!

액정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유태수는 잠시 벨이 울리는 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반 강도들과 달리 종교적 정치적 테러범들은 고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는 건 그들에게 곧 순교이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전(聖戰)인 것이다.

경찰은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그 일대 동일 수법의 전과자부터 뒤진다.

그런데 묘하게도 동일 전과자의 범행으로 결론 나는 사건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 역시 의심받고 잡힐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건 그나마 그 분야가 가장 자신 있기 때문이다.

테러도 그렇다.

어떤 테러 조직이든 자신들만의 고유 수법이 있다.

사망한 윤기철과 고도춘은 외출을 했다가 납치되었다.

이후 한동안 일체의 외출이 금지됐다가 얼마 전부터 다섯 명 이상씩 팀을 이뤄 나갈 수 있었다.

다섯 명.

납치에 목적을 둔다면 굉장히 많은 인원이다,

더욱이 납치 같은 일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두 명이면 모를까 세 명 이상이면 주위의 눈들을 피할 수 없다.

어쨌든 태천건설의 자구책은 통했다.

사막의 요람은 자신들의 테러 자금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은 태천건설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납치를 시도하다 걸린 것이다.

즉 유태수는 처음부터 세 사내가 윤기철과 고도춘을 납치했던 메해 부사 하라이, 즉 사막의 요람 소속의 조직원이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두 명을 한 방에 보낸 것처럼 마지막 사내도 죽어야 정상인데 왜 병 주고(총을 쏘아 부상을 입히고) 약(병원으로 데려가는 것) 주는 것인가.

“몸은 좀 어떻습니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놀랍게도 어제 유태수가 입원시킨 사내 바르잔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물론 그를 치료한 의사에게는 일부러 가르쳐 주었다.

혹시 무슨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연락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대비해서였다.

셋 모두를 죽이는 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들도 피해를 입었으니 더욱 증오를 불태우며 공격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술에서 활동 중인 사막의 요람 본거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말로 해서 바르잔이란 사내가 고분고분 입을 열 리 없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장담 못 한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늘에 해와 바람이 살고 있었다.

바람은 거만하고 자신이 최고라며 으스대며 다녔다.

그날도 바람은 해를 찾아가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때마침 한 남자가 두꺼운 코트를 단단히 잠그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바람은 해에게 누가 저 남자의 윗도리를 먼저 벗게 하는지 시합을 제의했다.

바람은 사정없이 사내 쪽으로 불어 옷을 벗기려 했지만 그럴수록 사내는 더욱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반면 해는 따뜻한 볕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지자 남자는 단단히 여미고 있던 코트를 벗어 손에 들었다.

이솝우화 해와 바람 이야기다.

강하면 분질러지지만 부드러움은 휘어질 뿐이다.

‘때로는 햇빛이 되어.’

가만두지 않을 듯 부상까지 입혀 놓고 손수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리는 모습은 누구의 눈에도 절대 평범할 수가 없다.

[할 얘기가 있소.]

“지금 가죠.”

“데이브, 식사해야죠?”

송만술이 다가오며 묻는다.

“난 급히 볼일이 생겨서 나중에 먹겠습니다.”

유태수는 곧장 자신의 차로 다가갔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가 현장을 떠나고 송만술은 한참 서 있었다.

“송, 밥 안 먹어?”

입사 동기 차만오가 다가왔다.

“저거 데이브 차량 아냐?”

“야, 차만오. 넌 데이브 유를 어떻게 보냐?”

갑작스런 질문에 차만오가 송만술을 돌아보았다.

“설마 너도?”

“얼굴은 약간 비슷하긴 했지만, 세상에 닮은 꼴이 한둘도 아니니 넘어가지만 분위기는 완전 석대야.”

“내 말이, 어제 아침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완전 배석대더라니까.”

두 사람은 식당을 향해 걸어가며 데이브 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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