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전쟁의 방법(3)
포드 익스플로러가 병원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유태수는 곧바로 바르잔이 있는 입원실로 향했다.
계단을 통해 3층을 올라간 유태수는 복도 한곳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화를 했다고 하여 자신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멋모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다 부비트랩에 걸려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피식!
잠시 망설이던 유태수는 실소를 지었다.
이번 작전은 굉장히 위험했고 누가 봐도 무리수라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큰 고기는 결코 잔잔한 물속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어를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파도가 거친 곳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저벅저벅!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
온몸의 세포와 털이 송곳처럼 일어서고 있었다.
문 앞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 주위를 살폈다.
피식!
자신도 두려운 것이다.
‘삶을 성공시키려면 한두 번 목숨을 걸어야 한다.’
손잡이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불덩이 속으로 몸이 들어간 느낌이다.
멈칫!
안쪽 침대에 누워 있던 바르잔이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뛴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로 쏟아지는 소방호스의 물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가급적 태연함을 가장하며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어떻소. 의사는 다리가 불편해질 건 자명하지만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들었는데?”
바르잔은 유태수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총을 겨누며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바르잔의 눈동자는 무척 고요했고 가라앉아 있었다.
“태천건설 직원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유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알 노아르 계곡에 있소. 내일 정오에 태천건설로 인질들의 몸값 협상에 대한 조건이 갈 것이오.”
조직본부에 자신들이 근로자들을 납치하여 알 노아르 계곡에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요구액은 얼마요?”
“1,000만 달러.”
“몇 명을 계획했는데?”
“다섯!”
“돈이 급했군.”
도심이라면 모를까 사막에서 무장한 세 명이 다섯 명의 인질을 끌고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드르륵!
유태수는 창문 한쪽을 열고 말보로 레드를 입에 물었다.
딸칵!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묻는다.
“라시드는 어딨소?”
라시드는 사막의 요람으로 불리는 메해 부사 하라이의 우두머리다.
메해 부사 하라이는 탈레반 초강경세력 하카니 네트워크의 하부조직이니 1,000만 달러를 받아낸다면 그들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일흔일곱 먹은 어머니가 있소. 난 상관없지만 그들이 양 열 한 마리와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을 가만 놔둘지…….”
“주소를 말해보시오. 어머니가 있는 곳.”
기기기긱!
바르잔은 오른손으로 침대 옆 핸들처럼 생긴 둥근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상체가 조금씩 일어난다.
상체를 세우고 유태수를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어 어머니가 있는 주소를 말하기 시작했다.
유태수는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찍었다.
그리고 곧장 사이먼에게로 문자 전송을 했다.
“지금 문자 한 통이 갔을 것입니다. 아미니란, 일흔일곱 살이오. 당장 안전조치를 부탁합니다.”
유태수는 전화를 끊었다.
쭈우욱!
유태수는 빨간 불이 도드라질 만큼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정확히 20분 후 전화가 걸려 왔는데 사이먼이다.
“잠깐!”
유태수는 핸드폰을 바르잔에게 가져다주었다.
핸드폰을 받은 바르잔이 입을 연다.
“여보세요.”
[바르잔.]
귀에 익은 어머니 음성이다.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넌 어디니?]
바르잔은 어머니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끊었다.
“라시드가 있는 곳은…….”
바르잔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라시드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1,000만 달러다.
유태수의 눈이 타오른다.
***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은 디지털 증거물을 분석하여 수사에 활용하고, 디지털 증거물의 증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 수사 기법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마치 부검하듯이 디지털 기록 매체에 복원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암호 등 보안을 해제하며, 메타데이터까지 활용하거나 하드디스크 내부에 삭제 로그를 저장하는 스왑 파일(스왑 폴더라고
하기도 한다)에서 삭제 로그를 복원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자나 이를 통해 오간 정보를 추적 조사한다.*
뜨고 떠도 없다.
유태수와는 군대 시절에 통화했던 것 말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핸드폰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던 육준기 상사의 표정이 어둡다.
꿀꺽!
목이 탄다.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에 모든 걸 걸었는데 어디에서도 자신이 명예스럽게 제대할 건수는 나오지 않았다.
분하다.
억울하다.
‘유태수.’
부드득 이를 갈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진급한 박준태 중사가 들어섰다.
“최호민 씨에게 핸드폰 돌려주고 오겠습니다.”
척!
박준태 중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말년에는 떨어지는 가랑잎도 조심하라고 했는데……. 씨발.’
육준기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외출을 했다.
구석진 창가에 낯익은 사내가 앉아 있는데 박준태 중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박준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호민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많은 걸 얻어 냈습니까? 거기에 지금은 헤어졌지만 전 여친과 키스하던 동영상도 있는데 감상은 하셨을 테고.”
스윽!
핸드폰을 내민다.
“불쾌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우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니.”
“불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안에 어린 시절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많이 저장되어 있는데 혹시라도 훼손되면 어쩌나 했을 뿐.”
“일체 훼손된 건 없습니다. 그럼.”
박준태 중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저벅저벅!
서너 걸음 걸어가던 박준태 중사가 돌아섰다.
“서기관님, 유태수 씨와 친구 아닙니까?”
“친굽니다.”
박준태가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친구 맞죠?”
“그럼요.”
“사건 이후에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더군요. 그런데 법무부 기록을 보면 육군교도소에 면회를 간 것이 무려 네 번이던데.”
그 정도 친한 사인데 어떻게 사형 실패 사건 이후 단 한 번의 연락이 없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연락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겁니까?”
박준태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서 나갔다.
최호민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돌아온 핸드폰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태수야, 비행기표 끊어놨다.’
***
태천 티원(T1) 사장 전재망은 아침 회의를 끝내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위백수가 들어섰다.
“자네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아무리 토요일 일요일이 중간에 끼었다고 이래도 되는 거야? 보고도 없고.”
벌교 갔던 일에 대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자네가 하는 일이 얼마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건데?”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품에서 흰색의 봉투를 한 개 꺼내 내민다.
“어.”
사직서라는 글씨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자네 뭐 하는 거야?”
“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윽!
내용물을 꺼내 펼쳐 들었다.
「내 능력으로는 이번 임무를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능력이 안 되면 빨리 그만둬야 회사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끼친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존중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나직한 소리로 읽은 전재망이 이마를 찡그렸다.
“이봐 백수, 뭔 개소리야?”
“그만두겠다는 얘깁니다. 제가 이 회사에 하루라도 머물면 머물수록 손해입니다. 회사에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사람은 간첩보다 나쁘다고 하셨죠.”
“잘해보자고 한 소리지 이 사람아.”
“진심에서 우러난 얘깁니다. 오늘부로 나 위백수는 태천 티원을 퇴직합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일로 앉아봐. 위 실장.”
탁!
문이 닫혔다.
***
티원 사장 전재망이 갑자기 오늘 점심 같이 할 수 있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오도석은 회장님 모시고 다녀올 곳이 있다면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자 전재망이 그럼 잠깐이라도 휴게실에서 보자고 한다.
오도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나갔다.
오도석의 표정이 굳어진다.
배달부를 작업하기 위해 태천 티원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제6실을 움직였다.
6실은 회장 유장풍 일에만 나서는 그야말로 정예들이다.
그런데 우두머리인 실장 위백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오도석은 뭔가 굉장한 사고가 생겼다는 걸 직감하고 곧바로 위백수를 부르라고 했다.
전재망이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멘트가 나왔다.
한 번 더 걸었지만 역시 상황은 그대로다.
휴게실을 들어서던 직원들이 두 사람의 서늘한 표정에 화들짝 놀라며 돌아가 버린다.
콱!
오도석은 위백수의 사직서를 움켜쥐었다.
티원 소속이지만 6실만큼은 자신이 직접 움직인다.
배달부 납치는 자신이 지시한 것이다.
***
달은 중천이다.
밤 10시가 지나고 있다.
피운 담배만 해도 반 갑이 넘는다.
피곤이 몰려와 의자를 뒤로 눕히고 누워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사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팟!
오도석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물다 말고 재빨리 문을 열고 내렸다.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위백수가 내렸기 때문이다.
부우웅!
택시는 위백수를 내려놓고 빠르게 사라졌다.
“위 실장님!”
위백수가 고개를 돌렸다.
승용차에서 문을 내리고 다가오는 오도석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늦으셨습니다?”
“팀장님 같은 분이 저희 집을 찾아오시고.”
약간의 비아냥이 들었다.
“어디 가서 차나 한잔합시다.”
“아뇨. 난 할 얘기가 없습니다.”
“난 있어요.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하죠. 전재망 사장님을 통해 얘긴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아주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위백수가 정색했다.
“팀장님, 우리같이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고 살벌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기세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딱 보면 내 상대인지 아닌지 압니다.”
“왜소한 체구였소.”
“맞습니다. 속된 말로 한주먹감도 안 돼 보였죠. 쉽게 정체를 벗겨 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었는데 우린 제대로 저항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신 있었다면서?”
“육식귀원(六息歸元)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섯 호흡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육식은 60년, 즉 갑자(甲子)로 시작해 다시 갑자가 되는 데까지 60년이
걸리죠. 그래서 환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육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귀원(歸元), 육십 먹은 노인이 다시 태어날 때의 모습?”
“그렇죠.”
오도석 같이 영민한 사람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혹의 표정으로 본다.
육십 년을 살았으니 늙었다.
그런 사람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면 무얼까.
화악!
오도석의 눈이 커졌다.
“배덕용이 평범한 성당 관리인이 아니었다는 얘깁니까?”
“칼을 제대로 배운 직원 셋이 거덜 났소. 난 불쌍한 듯 살려주었고.”
위백수가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한테는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가 호랑이란 말인가?”
“부디 내 눈에만 호랑이길 빌죠. 팀장님이나 나아가 회장님에게까지 호랑이가 되면 서로 피가 튀는 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그럼.”
위백수는 아파트 안으로 걸어갔다.
*해당 설명은 https://namu.wiki/의 디지털 포렌식 문서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