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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48화 (48/122)

48화 불어오는 칼바람(1)

오도석은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위백수를 바라보았는데 지그시 숨을 내쉬었다.

위백수는 평범한 사내가 아니다.

특수부대 출신일 뿐 아니라 무술에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백제의 전통 검도 본국검(本國劍)의 고수다.

본국검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전통 검법이다.

이 검법이 신라인에게 전해졌고 화랑들에게 퍼져나갔다.

이후 신라검(新羅劍)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이어졌지만 원줄기는 백제인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의 기마전과 긴 병기를 흉내 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늘 대륙으로 진출을 꿈꿨기 때문에 중국식 병법에 능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백제인들은 물 위에서(水戰), 또는 땅을 밟고서 칼을 휘두르는(步戰) 것에 능했다.

‘호랑이들끼리 충돌할지도 모른다.’

엄청난 말이다.

재계에서는 유장풍 회장을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태천그룹 안에서는 붉은 제국 소비에트연방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대통령 관저로 쓰는 크렘린이라고 빗댄다.

독재자란 뜻이다.

오도석은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고서 아파트 입구 담벼락에 기대어 조금씩 서쪽으로 넘어가는 둥근 달을 바라보았다.

‘뭐지. 이 서늘한 느낌은.’

후우!

연기를 내뿜는 오도석의 얼굴이 더욱 딱딱해진다.

중천의 달을 보며 담배만 빨아들인다.

필터 가까이 담배가 빠르게 타들어 간다.

툭!

오도석은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고 구둣발로 짓이긴다.

‘그렇다면 일단 이라크 쪽부터 한 번 훑어야겠군.’

6실 팀이 실패했다면 섣불리 달려들 상대가 아니다.

배덕용의 출국 기록이 없는 걸 보면 1차 진원지는 이라크다.

이럴 때는 칼끝의 방향을 바꿔 보는 것도 괜찮은 계책이다.

부우웅!

오도석은 차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후미진 골목이다.

군데군데 무너진 담벼락과 방치된 쓰레기 더미, 머리에 뭔가를 이고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히잡의 여인들 속에서 바람 없는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다.

벽돌로 골대를 만들어 놓고 세 명씩 편을 나누어 차는데 모두가 맨발이다.

아이들의 축구하는 모습을 검은색 후드티를 걸친 사내가 구경하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사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고 잠시 후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아이들이 축구를 끝마칠 기미가 없는데.”

표적이 나타날 시간이 다 되어 간다.

필시 치열한 총격전이 있을 텐데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된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을 차는 아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킬 수도 없다.

“그러죠.”

전화를 끊은 사내가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얘들아!”

낯선 목소리에 일고여덟 정도 먹어 보이는 아이들이 돌아본다.

“축구 그만하고 가서 과자 사 먹을래?”

그러면서 5,000디나르를 꺼냈다.

한화로 오천 원이 조금 못 되는 돈이다.

돈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무척 빨랐고 경쟁이라도 하듯 달려왔다.

“공 그만 차고 가게에 가서 맛있는 것 사 먹어라.”

그들에게는 큰돈인 듯 멈칫하며 눈치를 본다.

사내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아저씨가 주는 거야.”

“나중에 다시 달라고 그러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앗쌀라 알라이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앗쌀라 알라이쿰!”

후다다닥!

혹시라도 달라고 할까 봐 아이들은 먼지를 날리며 골목 저편으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지켜보던 사내는 씨익 웃으며 전화기를 다시 꺼냈다.

“아이들 보내는 데 성공.”

[어떻게 했나?]

“돈이죠.”

[그렇지. 돈은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들지.]

충격적이었다.

사막의 요람 메해 부사 하라이를 이끌어가는 우두머리 라시드는 모술 시청 공무원이었다.

그의 직책은 사회복지과장.

라시드는 메해 부사 하라이에서 불리는 이름이며 공무원으로서의 진짜 이름은 알 바르크였다.

결혼하여 일남일녀를 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출발했네.]

코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코헨은 지금 시청 정문에서 알 바르크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퇴근하여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나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거나 할 땐 재빨리 유태수도 합류할 예정이다.

“승차 인원은 몇입니까?”

[글쎄, 검정 선팅이 되어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네.]

퇴근길이라고 혼자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이른바 우리의 카풀처럼 방향이 같은 동료들을 태웠을 수도 있다.

또한 시청 동료 역시 사막의 요람 조직원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분명한 건 아직까지 누군가를 태운다거나 하는 행위는 없다는 것이네.]

알 바르크는 세 개의 길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자택을 출발해 마할 키르도 고개를 넘어가는 길과 리알 3번가를 이용해 시청으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세 번째는 티그리스강 쪽으로 빠지는 46번 도로를 타고 가다 10번 도로로 갈아타며 시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묘하게도 세 방향의 길 모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전후로 엇비슷했다.

[니칼 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있네.]

한참 후 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유태수는 주위를 살핀 뒤 옆구리 옷 속에 감춰둔 MP5를 꺼내 살폈다.

탁!

타탁!

30발들이 탄창도 이상 없고, 노리쇠를 당겼다가 다시 밀어 보며 교전 준비에 이상은 없는지 살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네. 집으로 바로 들어갈 모양이네.]

유태수는 알았다는 대답과 더불어 오른쪽 2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맞은편 골대 쪽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 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알 바르크 자택이다.

집안에는 아이 둘과 아내만 있다.

「준비하게」

코헨의 문자가 왔다.

유태수는 골목 구석에 몸을 숨기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오른쪽 골목을 바라보고 있는데 빛줄기가 상하로 움직인다.

자동차 라이트다.

이윽고 라이트는 점점 밝아졌고 잠시 후 승용차 한 대가 단층 짜리 벽돌집 앞에 멈췄다.

라이트가 꺼지고 시동까지 꺼지면서 운전석 문이 열렸다.

딸칵!

손에 검정 숄더백을 든 한 사내가 내렸다.

멈칫!

숨어 지켜보던 유태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예상대로라면 조수석이나 뒷문이 열리면서 경호원 한둘쯤은 같이 내려야 했다.

그런데 달랑 혼자다.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정장 차림이었는데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시커먼 구레나룻이 턱을 완전히 덮었는데 주위를 살핀다거나 하는 경계도 하지 않는다.

피식!

유태수는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정체의 은밀성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직속 부하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이 테러단체 사막의 요람 우두머리라는 걸 알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분명했다.

“과장님!”

유태수가 다가가자 바르크가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그때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 속으로 바르크의 오른손이 슬며시 들어가는 걸 유태수는 놓치지 않았다.

“아아아! 더 움직이면 죽습니다.”

하지만 바르크는 유태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손을 쑥 집어넣었다.

드르륵!

총성이 울렸다.

“우욱!”

하는 비명이 들리며 바르크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양쪽 다리가 유태수의 사격에 완전히 부서져 내린 것이다.

“으으음!”

그 와중에도 바르크의 오른손은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유태수는 총을 겨누며 다가갔고 바르크의 오른손에 권총 한 자루가 쥐어져 나오고 있다.

파아악!

유태수가 가방에서 나오는 바르크의 오른손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손에 잡힌 권총을 빼앗았다.

끼이익!

그때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멈추고 코헨이 내렸다.

“뭐야. 벌써 끝난 건가?”

“서두르죠.”

“사냥감을 잡았는데 급할 것 뭐 있나?”

유태수가 주저앉은 바르크를 단번에 어깨에 둘러멨다.

“총소리를 듣고 보나 마나 마누라와 아이들이 나올 텐데 마주치면 어떡할 생각이오.”

코헨은 깜짝 놀라며 재빨리 차 트렁크를 열었다.

쿵!

유태수는 바르크를 짐짝 놓듯 내리고 문을 닫았다.

탁탁!

두 사람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는데 대문이 열리며 히잡을 쓴 여자가 나타났다.

뒤이어 10여 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아이가 모습을 보였다.

부우웅!

차는 가족들 앞을 스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뭘 그렇게 훔쳐보는 거요?”

운전을 하는 코헨이 자꾸 쳐다보자 유태수는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코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퓨플 해즈 비컴 더 마스터(The pupil has become the master).”

홱!

유태수가 고개를 돌렸다.

한 마디로 청출어람이라는 뜻이었다.

“스승은 당신을 말하는가?”

“난 미스터 유보다 더 뛰어난 남자를 보지 못했어. 이건 진심일세. 이번 상금도 7대3일세. 난 한 일도 별로 없고, 대신 조건이 한 가지 있지.”

“뭡니까?”

“그동안 불면의 나날을 보냈지.”

“무슨 고민 있습니까? 파트너 사이에는 숨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태수!”

무척 부드러운 목소리다.

“나도 자네가 하는 일에 밤을 담그면 안 되겠나?”

피운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려던 유태수가 멈칫했다.

“데브그루에 투자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유태수는 씨익 웃으며 꽁초를 마저 던져 버렸다.

“얼마쯤 투자할 생각이오?”

“내가 가진 전부.”

유태수의 눈이 커졌다.

코헨이 가진 전부, 즉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남의 재산에 관심 가져봤자 내 속만 쓰리다.

단지 사이먼의 얘길 빌리면 오천만 달러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통장에 오천만 달러 정도 있지. 런던의 부동산과 도쿄에 있는 건물까지 포함하면 칠천만 달러는 될 거야.”

유태수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사이먼이 오천만 달러 얘기를 할 때도 아무리 CIA 용역 요원 레드 배저라지만 지나치게 부풀린 액수라고 생각했다.

누구든 CIA와 손을 잡으면 그런 거금을 만질 수 있다는 은연 중의 광고라고 판단한 것이다.

‘칠천만 달러면 한화로 얼마야?’

얼른 계산이 서지 않는다.

“코헨!”

“말하게!”

“내가 뭘 하는지는 알고 있소?”

“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재벌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누군지나 알고 있습니까?”

“누군데 그러나?”

“나와 매우 가까운 사람이오.”

“친구와의 전쟁, 인류 역사 이래 이런 멋진 드라마 제목은 없었네.”

그러면서 히죽 웃었다.

“대답하지 않았네. 내 투자를 받겠나? 참고로 난 생각 좀 해 봅시다, 뭐 이런 식의 대답을 제일 싫어한다네. 그 자리에서 예스냐 노냐 이런 부류의 인간을 친구로 두지.”

“나는 얼마를 투자할 테니 지분을 어느 정도 달라 마라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과는 손잡지 않습니다.”

유태수도 맞받아쳤다.

“난 아무런 조건이 없네.”

“나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맞으면 두들겨 맞아도 아프지 않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는데 내가 지금 그런 심정일세.”

“당신은 행운아요.”

유태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이라크 모술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메해 부사 아라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미 중앙정보국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저놈인가?”

회의실에서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하던 중 비서가 달려와 속보라면서 텔레비전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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