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49화 (49/122)

49화 불어오는 칼바람(2)

화면에 구급 차량에서 내리는 바르크의 모습이 나왔다.

기자는 검거과정에서 일어난 총격전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저자에게 우리는 물론 많은 한국 기업들이 돈을 가져다 바쳤습니다.”

“누구야!”

말한 사람 누구냐는 뜻이다.

그러다 맞은 편에 앉은 쉰 초반가량 되어 보이는 사내를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내가 언제 돈을 줘. 오 팀장!”

“예, 회장님!”

오도석이 대답했다.

“우리가 저놈에게 돈 바쳤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태천의 돈은 단 한 푼도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들었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난 절대 테러범들과 거래를 하지 않아. 그건 확고한 나 유장풍의 의지라고.”

그때 뉴스 화면이 바뀐다.

[자금난에 허덕이며 부도설이 끊이지 않던 크라운에 숨통이 트였습니다. 크라운 관계자는 투자회사 데브그루에게 일정 지분을 양보하고 1,000억 가까운 현금 지원을 받게 되었다면서

이제 크라운은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김민식 기자가 전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크라운이 살아나다니.”

유장풍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바로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고개를 내밀고 삐죽 고개를 들이민 사람은 뜻밖에도 유장풍의 수행비서 장민혁이었다.

“장 실장!”

장민혁이 많은 계열사 사장들이 바라보자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다가와 유장풍에게 귓속말로 뭔가 전달했다.

“크라운 자금난이 해결되었다는…….”

뉴스 화면은 이미 다른 소식으로 채워지고 있다.

“자세히 말해봐. 누가 그래?”

유장풍의 표정은 이미 납덩이가 되어 있었다.

“데브그루라는 회사에게 일정 지분을 넘겨주기로 하고 1,000억 가까운 투자를 받는 모양입니다.”

“확실합니까?”

조금 전 뉴스를 봤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오도석의 표정이다.

“오 팀장, 당장 알아봐. 지금 당장.”

“예, 회장님!”

오도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번호 하나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지 기다린다.

[크라운 회생 소식에 전화한 것이구만.]

A증권사 고위 간부이며 M&A 전문가다.

“뉴스의 진위를 묻는 거야.”

[아니, 국정원 뺨친다는 정보 왕국 태천 같은 곳에서 아직까지 그걸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맞아. 크라운은 다시 숨쉬기 시작했네. 데브그루에서 1,000억을 베팅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십 퍼센트 지분과 맞교환한 거지.]

“이십 퍼센트면?”

[크라운 최대 주주지. 물론 경영권은 크라운 측에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데브그루라고 했나?”

[맞아, 데브그루.]

“아는 것 있나?”

[특수 정찰, 대 테러전, 비 정규전, 마약 관련 작전, 탐색 구조, 요인 암살.]

어떤 회사냐고 묻는데 A증권회사 고위 간부인 친구는 미 해군소속 네이비 씰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데브그루의 임무와 역할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더 이상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알아낼 것이 없는데 전화기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유장풍을 포함한 계열사 사장들 전부가 쳐다보고 있다.

“왜 말이 없어?”

유장풍이 역정을 내듯 물었다.

“증권가에서 크라운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다고만 알려질 뿐 데브그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전무한 모양입니다.”

계열사 사장들이 각자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검색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데브그루란 이름을 치자 온통 미 해군 네이비 씰에 대한 것 말고는 없었다.

“오늘 회의 끝!”

유장풍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사장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나가고 오도석과 비서 장민혁만이 남았다.

유장풍은 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 시뻘건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꾸우욱!

탁자 위에 올려진 유장풍의 오른손이 강하게 말리면서 부르르 떤다.

크라운은 안전벨트를 만드는 회사다.

얼마 전까지는 안전벨트를 만드는 여타 회사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없는 중소기업이었다.

크라운이 만드는 안전벨트의 약 팔십 퍼센트가 태천자동차에 납품된다.

그런데 반년 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을 크라운이 저지른다.

‘클린 히트(clean hit)’ 라는 신개념의 안전벨트를 개발한 것이다.

일반 안전벨트는 매고 있는 승차자를 상당히 불편하게 한다.

안전벨트를 맨 상태에서 뭔가를 찾거나 허리를 돌려 뒷좌석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는 일체 불가능하다.

차 안에서 몸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안전벨트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옷차림이 가벼운 계절에는 안전벨트의 압박에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단점을 완전히 제거한 신기능 안전벨트가 바로 클린 히트다.

기존 안전벨트처럼 매지만 절대 조이거나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자동적으로 늘어나 풀지 않고서도 차 안에서의 움직임이 수월하다.

하지만 자동차가 사고를 당하면 0.02초 만에 온몸을 단단하게 고정해 버리는 것이다.

태천에서도 여러 차례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실험했지만 완벽 그 자체였다.

유장풍은 클린 히트를 개발하느라 크라운의 자금 사정이 무척 나쁘다는 걸 알고서 작전에 들어갔다.

크라운을 태천의 계열사로 만들 작정이었다.

주거래 은행에 압력을 넣어 대출을 막았고, 제2 금융권은 물론 사채시장까지 차단했다.

단 한 푼의 돈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봉쇄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크라운이 부도날 것에 대비해 인수 작업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놈이야?”

“삼왕 아닐까요?”

장민혁이 말했다.

재계에서는 태천과 삼왕을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표현한다.

두 기업은 끝없는 경쟁과 견제를 하면서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 왔다.

처음에는 삼왕이 앞섰지만 이제는 태천이 완전히 추월해버렸다.

하지만 포기할 삼왕이 아니다.

영원한 1등이 없다는 전제로 본다면 언젠가는 삼왕에게 붙잡힐 것이다.

쫓기는 자의 초조함이 유장풍에게 있었다.

다만 주위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 크라운의 클린 히트가 개발된 것이다.

‘이것이다.’

짧게 잡아도 20년은 전 세계 자동차 안전벨트 시장을 거머쥘 것이 뻔했다.

크라운이 유동성 위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크라운의 하대수 대표가 백기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 얼마면 되겠소?

마침내 찾아온 하대수 대표에게 물었다.

- 당장 급한 자금이 150억입니다만…….

- 아니, 우리 하 대표님께서 고작 돈 백오십억에 이렇게 얼굴이 반쪽이 되었단 말이오.

- 도와만 주시면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 허허허!

그것이 끝이었다.

대화의 흐름을 보면 금방 빌려줄 것 같았던 유장풍은 얼굴을 싹 바꿨다.

이미 오도석의 머리에서 계산기가 두들겨졌고 잡아먹기로 결정이 내려진 기업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

두 번 더 하대수 대표가 찾아왔지만 출타 중이라며 피했다.

전화는 수십 번 왔었지만 아예 비서실에서 차단을 시켜 버렸다.

“왜 이렇게 더워!”

유장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크라운을 잡아야 해. 당장 크라운을 이 자리에 가져다 놔.”

오도석과 장민혁을 바라보는 유장풍의 눈이 새파랗게 빛난다.

“왜 대답이 없어?”

“알겠습니다.”

오도석과 장민혁이 같이 대답했다.

***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회사 정문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M4를 거꾸로 맨 백골 부대 출신 구용모가 나왔다.

“어디 있습니까?”

“싸가지 없는 새끼들, 지들이 서울에서 오면 온 거지, 졸라 후까시 잡는데 콱 쏴버릴까 했어.”

구용모가 잔뜩 화난 표정이다.

터널 공사 현장에 있는데 구용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 서울 본사에서 왔다고만 말하고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고 들어갔다니까?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본사에서 온 놈들 맞다 그러는데.

본사에서 온 손님은 현장 근로자든 책임자든 암행어사와 같은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다.

스윽!

유태수가 구용모에게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건네고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준다.

“한 대 피우면서 속 달래세요. 그놈들 이런 데서 후까시 한 번 잡지 언제 잡겠어요.”

“그건 그래.”

구용모가 금방 웃었다.

부웅!

유태수의 차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린 유태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소장 박진태와 낯선 세 명의 사내들.

분위기가 서늘하다.

에어컨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유태수는 구석에 있는 정수기 통으로 걸어가 종이컵에 냉수 한 잔을 받아 마셨다.

꺼억!

크게 소리 내어 트림을 한 뒤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경비팀장이라는 이곳에서만의 직함을 받았고 책상도 놓였다.

물론 책상 위에는 각종 총기 다루는 영문으로 된 책이 있었는데 사이먼이 준 것이다.

“유 팀장.”

“예!”

“이리와요. 본사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인사해요.”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진태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퍼억!

유태수는 박진태 옆으로 앉았다.

“데이브 유라고 합니다.”

유태수가 먼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여긴 최두순 씨.”

스포츠머리에 광대뼈가 불거지도록 마른 얼굴이다.

“이쪽은 민공철 씨.”

서른 후반으로 보이는데 살짝 웃는다.

“그리고 이 분은.”

박진태가 이름을 말하려 하자 사내가 먼저 말했다.

“오하수입니다.”

오하수를 보며 유태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본사에서 갑자기 무슨 일로?”

박진태를 돌아본다.

“그것이 말이야. 날 시작으로 해서 관리직원들 면담을 하겠대.”

“그럼 저도?”

“아닙니다. 데이브 유는 면담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무슨 면담입니까?”

사내들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박진태가 말했다.

“데이브 유는 늦게 들어와서 모르겠지만 사실…….”

그러면서 뉴스타도란 한국의 독립 언론에서 이곳의 인질 사건의 전모를 폭로했다고 했다.

“아, 나도 그 소식은 알고 있죠. 뉴욕 타임스에도 실렸던데.”

뉴욕 타임스란 말에 세 사내 모두 놀라 돌아본다.

사실 데이브 유에 대한 보고는 이미 본사에 올라갔고 유장풍으로부터 사인까지 받았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곧바로 미국의 ‘앤드라인’이라는 글로벌 머린 시큐리티 시스템즈 컴퍼니(Global Marine Security Systems Company), 테러 공격으로부터

해상 운송의 안전을 지켜주는 보안회사에 취직을 했다.

바다의 용병인 셈이다.

이후 3년 만에 미국의 보안회사 USIS(United States Investigations Services)와 계약한다.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활동해왔다는 것이 태천건설에서 파악한 데이브 유에 대한 신상이었다.

데이브 유를 고용하고 경비팀이 만들어지는 데 총대를 맨 사람은 노기술이었다.

중동지역에서 유명한 한국인 용병 데이브 유를 채용하여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순으로 여덟 명을 선발하여 경비팀을 만들었다.

그런데 노기술의 보고에 유장풍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 이런 것이 선조치 후보고라는 거지.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약간 우려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제대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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