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불어오는 칼바람(3)
유장풍은 민간 군사 기업(PMC)의 용병들과 비교했다.
“상대가 안 되지. 데이브 유라면 모를까. 대신 무장을 했다는 거지. 총이 있다는 것에 상대는 굉장한 부담을 느끼겠지.”
“그렇군. 무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겠군.”
타 회사들은 적게는 오륙 명, 많게는 10여 명의 용병을 쓰는데 1인당 50만 달러 전후의 몸값을 준다고 들었다.
그런데 태천은 근로자들이 받기로 한 월급에 약간의 위험수당이 더 지급될 뿐이다.
이름하여 가성비가 좋다.
유장풍은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노기술을 칭찬했다.
“많이 필요 없어. 한 명만 똑똑하면 돼.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 한 명으로 월드컵 우승했고, 만년 꼴찌 나폴리를 우승시켰잖아.”
데이브 유를 마라도나에게 비유했다.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는 것이 장사꾼이다.
하지만 손해가 나더라도 투자를 해야 할 것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간의 목숨이다.
지금 중동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 모두 테러에서 시설물과 근로자들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다.
언뜻 용병회사만 배를 불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안전을 지켜주므로 인해 공사 기간이 단축되고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궁극적으로는 회사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용병 생활을 하려면 영어는 필수라고 들었지만 뉴욕 타임스 영문판을 읽을 정도면 영어가 부족해 번번이 진급 점수에 마이너스가 찍히는 자신들 눈에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어느 부서에서 오셨습니까?”
오른쪽 두 사람, 최두순과 민공철은 놔두고 맨 왼쪽에 앉은 오하수를 향해 묻는다.
“티원(T1)입니다만.”
민공철이 대답했다.
그러자 유태수는 오하수를 향해 말한다.
“나이는 있어 보이지만 태천 직원다운 기세가 없는 것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유태수는 웃으며 걸어갔다.
오하수는 무척 당황한 표정이다.
‘태천 직원다운 기세가 없다.’
오하수의 눈이 좁혀지면서 표정이 굳어진다.
사무실 분위기가 그 한마디로 묘하게 흘러간다.
***
짐작은 했지만 이건 완전 죄수 취급이다.
장소도 그렇다.
사무실 옆으로 자재 창고가 있다.
자재 창고는 에어컨도 들어오지 않는데 구석진 곳으로 박진태를 몰아넣고 같은 질문을 천 번도 넘게 묻는다.
“소장님이 아니면 누가 죽은 귀신과 인터뷰를 한단 말입니까? 전번 사건 때 서울로 불려와 회장님께 무슨 말을 들었죠?”
“근로자 납치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였죠? 그래서 회사가 자르면 그때를 대비해 안전장치로 인터뷰한 것 아닙니까?”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요?”
“박진태 소장님, 정말 이럴 겁니까?”
오하수가 앉아 있는 의자 앞으로 다가와 묻는다.
박진태는 눈을 감았는데 파르르 떤다.
그리고 눈을 뜨고 말했다.
“사표 쓰겠소. 날 쫓아내기 위해서라면 당장 사직서 쓰고 태천건설을 내 발로 나가겠소. 그래도 한때는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너무하는군.”
씨익!
오하수가 웃었다.
“늦었소.”
“무슨 소리요? 뭐가 늦었다는 것이오?”
“사표도 이제는 당신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건 우리가 결정하고 선택합니다. 당신은 철저히 협조만 하면 되죠.”
파르르!
박진태의 눈이 떨렸다.
이제야 상황이 그려진다.
회사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회사 처우에 불만을 품고 납치된 현장 노동자들을 구하기는커녕 테러 조직과 은밀하게 소통하여 죽였다.’
엄청난 함정이고 음모다.
“후후! 눈치 빠르시네. 뭔가 느끼셨군요.”
유장풍 회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만들고도 남을 사람이다.
바로 그때였다. 바깥에서 누군가 투덜거렸다.
“쇠 파이프가 좋은데.”
그러더니 잠겨 있는 자재 창고 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안에서 잠겨 열리지 않는다.
“김용석 대리님, 자재 창고 키 좀 주세요.”
“난 키 모릅니다. 자재과장님에게 물어보세요.”
“양성칠 씨, 자재과장님에게 창고 열쇠 좀 달라고 하세요.”
“김현욱 과장님 급한 볼일이 있다면서 조금 전 외출하셨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
“표적 기둥을 쇠 파이프로 만들어야겠습니다. 각목으로 하니까 자꾸 부러지잖아요.”
“내가 만들 테니 팀장님은 그만 쉬세요.”
“맡길 게 따로 있죠.”
쿵!
이번에도 문을 잡아당겼지만 흔들거릴 뿐 열리지 않았다.
“자재과에 뭐 훔쳐 갈 것이 있다고 빌어먹을.”
콰아앙!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문 걸림쇠가 통째로 떨어지면서 누군가 들어섰다.
창고로 들어선 사람은 유태수였다.
“어엇!”
창고 안 상황에 유태수는 깜짝 놀랐다.
“소장님!”
비록 경찰에 붙잡힌 범죄자처럼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이진 않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현장 소장 박진태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잘 왔네, 데이브. 여긴 회사가 아니라 경찰서 취조실이오. 난 중범죄자이고.”
박진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말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자재 창고에서 지금 뭣들 하는 것입니까? 문까지 걸어 잠그고.”
“어이, 데이브 씨. 여긴 신경 쓰지 말고 나가 보시죠.”
스포츠머리에 강퍅한 인상의 최두순이 낮게 말했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덮칠 기세였다.
“여기서 뭐 하는 것인지 물었소. 당신들 말처럼 조사할 것이 있다면 사무실에서 하면 될 것을.”
“가라면 가지 그래요!”
이번에는 민공철이 말했다.
히죽!
유태수는 웃음을 지었다.
“난 이곳 현장의 경비책임자죠. 우리 근로자들이 어떤 위험에 처하면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단 얘깁니다. 무슨 조사를 하는지 알고 싶지 않지만 음산한 창고 구석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현장 소장을 가둬놓는 이 상황을 당신들 같으면 외면하겠소?”
순간 셋 모두 표정이 싸악 변했다.
뜨거운 물이 갑자기 얼음물로 식어버린 듯한 모습인데 유태수는 한마디 더 했다.
“소장님, 말씀해주십시오. 저와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에 갇혀 조사를 계속 받으시겠습니까?”
“난 더 이상 태천건설에 미련이 없어요. 지금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오. 데이브.”
그건 구해달라는 간절한 애원이었다.
“세 분 들으셨습니까? 당장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합니다. 가시죠.”
척!
유태수가 다가가려 하자 최두순이 앞을 막아섰다.
“이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본사에서 진행하고 있소.”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유장풍 회장이 시키던가요. 아니면 오도석 팀장이 조지라고 합디까. 박진태 소장님이 의심스러우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될 일이지 회사에서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휘익!
말을 하는 순간 최두순의 주먹이 뻗어왔다.
하지만 부드러운 더킹으로 어느새 최두순의 주먹을 피한 유태수의 왼 주먹이 최두순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뻐억!
“허걱!”
한 방.
그걸로 끝이다.
최두순은 호흡을 멈추며 얼굴이 붉게 변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딱 한 번에 엎어지는 최두순을 보며 민공철과 오하수가 놀란다.
“소장님!”
빨리 가자고 부른다.
박진태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데이브 씨, 당신도 태천건설의 피고용주요. 지금 당신의 행동은 회사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행위라는 것을 압니까?”
히죽!
유태수가 웃으면서 박진태를 부축하여 돌아설 때 민공철이 옆에 있는 각목으로 내려쳤다.
사악!
유태수는 돌아선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옆 걸음(側步).
- 가장 먼저 눈이 빨라야 하고 두 번째로 발이야. 발이 얼마만큼 빠르냐에 따라 위력적인 공격을 할 수가 있어.
수비가 완전해야 이어지는 공격이 강하다는 네오의 말이었다.
각목을 피한 유태수는 벼락처럼 돌아섰다.
끈을 단단히 조여 맨 미군 사막화가 민공철의 오른쪽 턱을 그대로 찍어 버린다.
빠악!
민공철은 가득 쌓아 놓은 철판 더미 위로 나동그라졌는데 꿈틀거리기만 할 뿐 일어서질 못했다.
슥!
유태수의 시선이 오하수에게 멎었다.
“너무 티가 납니다. 낮에 사무실에서 말했죠. 태천그룹 직원에게는 그들 고유의 향기를 갖고 있다고, 그런데 오하수 씨에게서는 전혀 그런 게 없어요.”
오하수의 눈이 빛난다.
“당신도 윗사람들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겠지만 끼어야 할 때, 끼어서는 안 되는 자리를 잘 선택해야 할 것이오. 아무나 장수하는 것 아닙니다.”
유태수는 박진태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데이브 씨.”
창고 문을 나서려는데 등 뒤에서 오하수가 불렀다.
유태수가 돌아섰다.
피식!
오하수가 웃는다.
그건 유태수가 자신의 정체를 이미 간파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맞소. 난 태천그룹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문득 한 사람이 당신과 겹쳐 오버랩되는군요?”
유태수는 그게 누구냐는 듯 가만 바라보았다.
오하수는 눈을 좁혔다.
“절대 그럴 리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그 사람의 기세와 분위기를 갖고 있소. 유태수.”
“유태수? 그게 누구요?”
“세상에는 닮은꼴의 사람이 많소.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당신은 완벽한 유태수요.”
유태수가 박진태 소장을 바라보았다.
누군지 아느냐는 눈빛이다.
“유장풍 회장의 막내아들이죠.”
픽!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유태수는 박진태와 자재 창고를 나왔다.
***
사건은 즉시 보고되었다.
“데이브 유.”
오도석의 표정이 차갑다.
맞은편에는 유태수 사형 실패 때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작전을 벌여온 국정원 국내 담당 3팀장 오하수가 있었다.
오하수는 소리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 있습니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처럼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묻는다.
“활로(活路)는 하나뿐입니다. 박진태 소장.”
오도석의 말에 오하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공감합니다. 윗선에서도 팀장님의 전략이 매우 탁월하다고 감탄하더군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으니, 그런데 팀장님.”
오하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유태수에 대해 아십니까?”
유태수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느냐고 묻는 줄 알고 오도석은 대답했다.
“어디에서도 생활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바닥에 오랜 세월 활동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눈썰미죠.”
정보원이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가 인상착의에 대한 구별력과 기억력이다.
한번 본 사람은 가급적 잊지 않아야 한다.
특정 사건을 수사하다 만나거나 스친 사람은 대부분 뇌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에게서 유태수의 모습을 봤습니다.”
“데이브 유?”
“물론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내 감각은 99.99퍼센트 유태수라고 확신합니다.”
“한국 내 흔적도 분명하게 조사한 인물 아닙니까?”
데이브 유라는 사람이 경비팀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국정원과 태천그룹에서는 국내에서 데이브 유, 한국 이름 유억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는 한국 출신이 맞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는 없다.
부모님이 보육원 출신이다 보니 친척이 있을 리가 없고 유억수 또한 친인척은 없었다.
해병 수색대를 나온 건 사실이었고 선박 경호회사에 취직해서 지금까지의 기록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