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채무 회수(2)
그들이 타고 온 차 역시 다른 주차직원에 의해 주차장으로 사라졌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섰다.
화면이 식당 안으로 바뀌면서 두 사내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는 이도윤과 성낙수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쳐다볼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을 닫았다.
눈빛.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취재원들을 만났고 사람들과 충돌하면서 심지어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사람 보는 안목을 만들어 주었는데 다르다.
평범한 사내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내곡동(국정원) 사람인가요?”
“왼쪽 사람 보이죠?”
동영상이 멈춘 상태에서 두 사람은 재빨리 왼쪽 인물을 주시했다.
“아는 사람인가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서른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는 바로 곽철종이었다.
죽은 김평대와 같이 자신의 제거를 시도한 인물이다.
“잘 알죠. 지척에서 얼굴을 마주 보기도 했으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유태수의 얼굴에 멎는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는 질문이다.
“손에 총을 들고 날 죽이려고 했지. 하지만 내 잔머리가 한 수 빨랐죠. 총알보다 빠른 잔머리가 날 살린 것입니다.”
살고 죽는 생사의 위기를 말하는데 농담하듯 한다.
엄숙한 표정으로 사실은 말이야 하면서 목소리를 깔아도 모자랄 대목인데 볼수록 놀라운 사내다.
“진짜 누구시죠?”
이도윤이 묻는다.
유태수는 소주를 비웠다.
“배덕용 씨 아세요?”
“배덕용 씨를 어떻게?”
“그분과 날 한 식구로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한 식구라면 매우 가깝다는 뜻이다.
격의 없고 서로가 편하게 소통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것이 식구의 모습 아니던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배덕용과 친하다는 것은 같은 부류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더 이상 누구냐, 뭐 하는 사람이냐 따위의 질문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배덕용.’
정체가 모호한 사내다.
그에 대해 아무리 알아보려고 했지만 어려서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기록 말고는 없다.
그것도 그 배덕용이 지금의 배덕용인지 사진이 없어 알 수도 없다.
더욱 놀라운 건 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오싹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마치 비 내리는 밤에 공동묘지를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뿐 아니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의 특종을 터뜨리고 난 한참 뒤 전화를 걸었다.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신변이 걱정되었다.
- 오긴 했지만 무사히 잘 처리됐습니다.
잘 처리됐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재차 묻자 배덕용은 분명하게 말했다.
- 사람 손에는 죽을 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세요.
라고 말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태천그룹에서 자객들을 보냈다는 뜻이며 혼자서 그들을 물리쳤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 가지 거슬리는 말이 있다.
사람 손에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며칠 전 갑자기 생각났던 것처럼 과거에서 온 시간 여행자는 아닐까.
어쨌든 신비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배덕용과 식구라는 말에 이도윤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앞으로 엄청난 특종이 심심찮게 쏟아지게 될 것이라는 걸.
차가 멈췄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 갑자기 차가 멈췄으므로 미행을 하던 차는 당황했다.
부우웅!
미행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갈 곳은 없고 계속 올라가면 막다른 골목길이고 그 위쪽으로는 북한산이다.
딸칵!
뒷문이 열리고 유태수가 내렸다.
핸들을 잡은 사람은 대리기사다.
대리기사도 차에서 내렸는데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딸칵!
승용차 트렁크에 엉덩이를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열심히 운전을 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유태수가 중얼거렸다.
“열심히 쫓아오는군.”
그 말을 듣고서야 룸미러와 백미러로 뒤를 관찰하듯 살폈고 한 대의 승용차가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우웅!
예상대로 골목 위쪽으로 올라갔던 승용차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승용차가 옆으로 지나갈 때 유태수는 담배를 물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차 안에는 두 사내가 타고 있었는데 곽철종과 서른 초반 정도의 사내 맹사성이 타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맹사성이 말했다.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세워!”
곽철종이 단호히 말했고 맹사성은 브레이크를 밟고 멈췄다.
벌컹!
조수석 문을 열고 내린 곽철종이 뒤를 돌아보았다.
유태수는 여전히 트렁크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며 곽철종은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가까워졌고 대리기사는 운전석으로 들어가 있었다.
탁!
곽철종도 가까이 다가와 담배를 피워 물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제 용병 생활은 접은 거요?”
태천건설과 계약을 맺고 이라크 현장을 관리하던 때 두 번 정도 스치듯 만난 적이 있었다.
“난 지금도 용병이오.”
꿈틀!
곽철종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사람들은 용병이라고 하면 총을 쏘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공격하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요?”
비아냥 섞인 반문이다.
“미행 선에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할 얘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뉴스타도 기자들을 무슨 일로 만났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꼭 전해드릴 얘기가 있소. 여기는 이라크가 아니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날 체포할 수도 있다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오.”
툭!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자신의 차로 걸어간다.
탁!
차 문이 닫히고 곽철종이 탄 검정 승용차가 길을 내려갔다.
“정보 요원답게 감이 빠르군.”
곽철종은 김평대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증거는 없을 것이다.
단지 데이브 유가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에 의심을 품는 것이다.
악명 높은 용병 데이브 유가 아니면 김평대를 그런 식으로 해치울 사람이 국내에서는 없다.
‘거기에 뉴스타도 기자들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뒷좌석에 다시 올라탔고 차가 사라졌다.
***
회장실을 들어서던 유장풍이 인상을 썼다.
자신은 이제 막 출근하는데 태천자동차 사장으로 있는 노기술이 소파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들여보냈어?”
뒤따라 들어오는 비서실 직원들이 멈칫한다.
“아침부터 무슨 어깃장이야. 그럼 나가? 나가지 뭐.”
노기술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자 유장풍이 혀를 찼다.
“쯧쯧! 늙은이 소갈머리하고는, 그런다고 진짜 가냐?”
“가라며!”
“구경났어? 차나 가져와!”
입구 비서실 직원들을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며칠 전 시체 배송 사건을 입에 담았다.
“어찌 보나? 국정원 요원을 죽인 것도 충격인데 시체를 택배로 보내기까지 하다니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보통 놈이 아니야. 죽인 놈만 미운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그 라인 책임자까지 겨누고 벌인 일이지.”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상대는 국가 정보원일세.”
“증오가 넘치면 뒷일 생각은 하지 않지. 일단 자신의 끓는 복수심부터 달래는 거야.”
“설마 제5의 과일과 관련된 사건은 아니겠지?”
“입 조심해.”
그러면서 출입구 쪽을 바라본다.
“청와대도 듣는 귀가 있었다는 것 몰라?”
박 대통령 시절 CIA는 청와대에 도청 장치를 하여 한국 정치의 극비내용을 훔쳐 들었다.
나중에 중앙정보부의 탐지기에 걸려 도청 장치가 제거되긴 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끙끙 앓아야 했다.
랭글리에게 동맹국 심장에 칼을 박아 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강력한 항의를 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사건은 유야무야되었고 이후 경호실에서는 수시로, 부지불식간에 도청 탐지를 조사했다.
“파리똥만 한 장치가 설치되어도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어.”
프로젝트 제5의 과일이 시작되기 전 이스라엘에서 전문가들을 데려와 어떤 도청 장치도 설치될 수 없도록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 놨다.
슥!
노기술이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놓았다.
“뭐야?”
“보면 알 것 아냐.”
권총을 차고서 환하게 웃는 데이브 유의 정면 사진이다.
“뭐 하는 놈이야?”
“얼마 전까지 이라크 건설 현장을 경호하던 데이브 유인가 하는 친구지.”
“박진태 자살하고 난 이후 그만뒀다고 했던가?”
툭!
사진을 던지듯 탁자 위에 놓았다.
“잘 봐!”
“뭘 잘 봐!”
“자세히 다시 한번 봐봐!”
“뭘 자꾸 보라 그래.”
“봐봐!”
노기술이 하도 재촉하자 유장풍은 다시 사진을 들어 자세히 보았다.
“한국 놈이라면서?”
“다른 건?”
“다른 것 뭐? 싸가지 더럽게 없이 생겼구만.”
“정말로 보이는 게 없나?”
툭!
유장풍은 귀찮다는 듯 다시 사진을 던져 버렸다.
스윽!
노기술이 사진을 들어 빤히 바라보며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놈 눈이다.”
“누구?”
“자네 자식들 중 내가 가장 신뢰하는 자식 유태수 말일세.”
흠칫!
유장풍이 깜짝 놀란다.
“얼굴은 아니야, 틀려. 그런데 눈은 완전히 태수란 말일세.”
“미친,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그만 가봐.”
“태수의 눈이 뭐던가? 사람의 눈(目)은 해와 달 같아 태양이나 태음으로 불리고, 일신의 빼어난 기관이자 인체의 본(本)이 된다고 했네.”
“또 잘난 척.”
“태수의 눈은 선이 가늘고 약간 깊은 듯하다. 거기에 흑과 백이 분명하고 광채가 사람을 쏘는 듯하여 굉장히 크게 될 인물이다. 내 말이 아니라 자네가 그토록 믿고 존중하는 마존선생
말일세.”
마존선생이라는 말에 유장풍이 움찔했다.
“그의 말이라면 돌덩이도 금덩이라고 믿던 자네 아닌가? 그가 말했어. 유 회장 자식들 관상이 전체적으로 좋아 가문은 끝없이 부흥하겠지만 막내 태수만큼은 천하제일목이라 할 눈을
지녔다. 무조건 세상을 다스릴 제왕목(帝王目)이라고.”
“나는 왜 그 말을 듣지 못했는가?”
“자네가 너무 둘째 기태를 총애하니까 혹시 눈 밖에 날까 봐 나에게만 살짝 말을 했던 거야.”
“이 늙은이가 어디서 구라를 치고 있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유장풍이 자신의 윗도리를 걸어놓은 옷걸이를 향해 걸어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 하나를 꾸욱 눌렀다.
하지만 신호가 가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을 더 눌렀지만 역시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말에 유장풍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눈은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각과 포부는 물론 사상까지 담겨 있다고 했어. 태수가 바로 그런 눈을 갖고 있어. 이 눈이 바로 그 눈이라고.”
다시 사진을 내밀고 손가락으로 데이브 유의 얼굴을 가리켰다.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태수의 눈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을 거라고 했네.”
유장풍은 굳은 얼굴로 사진을 보았다.
조금 전과 달리 뚫어져라 눈을 보더니 어금니를 문다.
“아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마존선생을 오래 겪다 보니 나도 좀 배웠어. 이건 흔하디흔한 음목(陰目)이야. 음탕하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 혈안이 된 눈구멍.”
“쯧쯧쯧!”
노기술이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