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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67화 (67/122)

67화 인간의 눈(目)(2)

그야말로 초반 기선잡기다.

어느 중학교가 일학년 신입생들 잡느냐에 따라 향후 학교생활은 물론 등하굣길이 편해질 것이다.

물고 물리는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고 마침내 1학년 지배자 권좌를 놓고 오도석은 한 학생과 만났다.

상대는 자신보다 덩치도 작았고 걸치고 있는 교복도 헐렁하니 컸다.

아마 아는 선배에게 물려받은 모양이었고 특징이라면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것이다.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는 그냥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을 뿐인데 오도석의 두 다리는 얼어붙어 버렸다.

싸우고 싶은 투쟁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미 기세에 제압된 것이다.

주먹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출신 중학교 학생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얘기는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갔다.

농사를 짓지만 젊어 한주먹 한 성정이 절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20여 문항이 넘는 문답식 조사와 의사와의 대면 상담이 끝나고 내려진 병명은 없었다.

‘특별한 물건이나 사람에게 반응하는 트라우마성 발작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적으로 어떤 강렬한 충격이나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는데 사람에게는 기세라는 것이 있고 거기에 눌리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호랑이의 낮은 울음소리에 뭇 피식자들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도 저주파를 발산하고 그게 곧 기세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눈.’

도무지 눈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눈을 가진 사람을 알기 때문이었다.

‘태수의 눈이다.’

유장풍에게는 여러 명의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나무가 크면 그늘이 크다던가.

아버지만 한 그릇이 없었다.

있다면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한 진위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유태수뿐이다.

사실 그가 가장 두려웠다.

그런데 그가 형을 죽이고 군인 신분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써 후계 구도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오도석이 보는 지금 자식들은 오십보백보였다.

죽은 둘째 아들 유기태가 그나마 냉철했지만 동생에게 맞아 죽었다.

탁!

오도석은 다시 차에 올랐다.

오도석이 운전하는 차는 한적한 도로를 빠르게 달려갔다.

***

정말이지 궁상맞다.

좋은 집 한 채 사준다고 해도 싫다면서 자꾸 무너져 가는 달동네 단층 주택에 산다.

항상 그가 내려왔지만 오늘은 입장이 바뀌었다.

유장풍은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고 그 뒤로 장민혁 실장이 따른다.

헉헉헉!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고 했다.

칠십 후반에서 팔순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아직까지는 병원 신세를 져본 기억이 없지만 하루가 다름을 느낀다.

척!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걸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차도는 저 멀리 있다.

“일 킬로는 되지?”

장민혁에게 묻는다.

“조금 더 될 것입니다.”

일 킬로가 안 되는 거리지만 유장풍의 기분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더 붙여 말했다.

“그래!”

흡족해한다.

유장풍은 다시 구시렁거리며 골목을 올라갔고 저만치 을씨년스런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쌓은 낡은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청와대 뒤 인왕산 자락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집들이 허름해서 그렇지 봄이 되면 완전 딴 세상이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밀려 올라와 터를 잡고 살지만 조선시대에 수많은 화가들의 진경산수화 소재가 되었던 이곳이다.

쾅쾅쾅!

남색 철 대문 귀퉁이에 종을 칠 수 있는 줄이 늘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매직으로 「방문객은 줄을 당겨 종을 치시오」라는 글귀가 있지만 유장풍은 무시했다.

쾅쾅!

인기척이 없자 뒤에 있던 장민혁이 다가와 더욱 힘껏 두들겼다.

“뉘쇼!”

한참 만에 안쪽으로부터 늙수그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덜컹하며 대문이 열렸다.

대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사람은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잘한다.”

“아니, 자네가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산꼭대기라 추워, 저리 비켜!”

유장풍은 노인을 밀치듯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쯧쯧! 집안 꼬락서니 하고는.”

지저분하게 널린 마당의 쓰레기들을 보며 유장풍은 인상을 찌푸렸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이군. 무슨 일로 왔나?”

노인은 고개를 돌려 장민혁에게 재차 묻는다.

“대뜸 가자고 하셔서…….”

덜컹!

유장풍이 앞서서 낡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뒤를 노인이 따라 들어갔고 장민혁은 마당 가 담장 곁으로 다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 허름한 집들을 바라보았다.

주르륵!

“찻물은 옛날처럼 연탄불에 끓여야 하는데 이렇게 전기로 덥혀 버리니 차 맛이 옛날만 못해.”

노인은 끓는 전기주전자 물을 손잡이가 달린 다관에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다관을 내려다보며 노인 마존선생은 입을 열어 물었다.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자네가 왔군.”

멈칫!

유장풍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난 앉아서 땅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보는 사람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

“잘났군!”

“잘났지. 나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스르르!

봉지에서 녹차를 두 손가락으로 조금 집어 다관의 물속에 넣었다.

“그럼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겠군?”

“당연히 알지.”

“왜 왔는데?”

유장풍이 따지듯 묻는다.

마존선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고 다관 손잡이를 들더니 찻잔에 연분홍빛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태수 얘길 왜 내겐 숨겼나? 그 아이 눈이 제왕목이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마셔!”

그러면서 먼저 자신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의 향기를 코로 스윽 훑듯 한 번 맡더니 입으로 가져가 아주 조금 맛을 보듯 마신다.

“작설(雀舌)이 왜 작설인지 이해가 돼. 일 년을 묵은 차인데 아직도 이렇게 향기가 좋다니.”

차를 삼킨 뒤 잠시 맛과 향기를 즐기듯 잠시 멈췄다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사실대로 말하면 자네가 가만 놔뒀을까?”

파팟!

유장풍의 눈에서 섬광이 쏟아졌다.

“가만 안 놔두기라도 했을 것이란 말인가. 어찌 부모가 자식의 뛰어남을 시샘한단 말인가. 보자 보자 하니 못 할 말이 없군.”

“흐흐흐! 이런 걸 보고 지랄한다고 하지.”

“닥쳐!”

“내가 자네를 모르는 줄 아는가? 내 손바닥에 우주 삼라만상이 들어 있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마존선생일세.”

극악할 만큼 상대의 미래와 사주팔자를 잘 짚어낸다고 하여 마존(魔尊)이라고 불린다.

일부에서는 재수 없는 사람, 악마의 영혼을 지닌 자라고 배척하고 경계하기까지 했다.

“자네는 불(火)이야. 벼락같은 사람이지. 마음먹으면 태우지 못할 것이 없고 불같은 성격에 그 누구도 항명할 엄두를 못 내는 지독한 권위로 뭉친 불덩이.”

알고 있다.

사주 관상에 대해 조금 안다 싶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그런 얘길 했다.

“그러나 불도 태우지 못하는 것이 있지.”

“그게 뭔가?”

“태울 나무가 너무 커버리면 불가능한 것 아니던가? 그것도 마른 나무가 아닌 생나무라면 더욱.”

옳은 말이다.

아무리 뜨거운 불이라고 해도 물기를 가득 머금은 어마어마한 거목이라면 결코 태우지 못한다.

살아 있는 거목.

“관상이나 사주에서 거목이란 절대 죽지 않고 벼락을 맞아도 타지 않고, 108명이 양팔을 뻗어야 겨우 둘레가 닿는 천상천하제일왕목(天上天下第一王木)을 의미하네.”

천상천하제일왕목이라는 말에 유장풍의 두 눈이 기타 줄처럼 떨렸다.

들어본 기억이 있다.

불사의 나무, 모든 나무의 으뜸이라고 하여 제왕목(帝王木)으로도 불린다.

눈동자가 그 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제왕목(帝王目)인 것이다.

“내 입으로 태수가 제왕목이라고 했다면.”

잠시 말을 끊은 마존선생이 어금니를 물었다.

“필시 자넨 태수를 죽였을 걸세.”

유장풍이 버럭 소릴 질렀다.

“가…… 감히!”

와당탕!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현관문이 열렸다.

비명에 가까운 유장풍의 목소리에 장민혁이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듯 이내 문을 닫고 나갔다.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 왜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존재할 수 없는 줄 아는가? 얼마든지 같이 살 수 있지. 그런데 쉽지 않은 이유는 경쟁자기 때문이지. 독존군림하고 싶은데

또 하나의 왕이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지.”

쪼르륵!

유장풍이 이미 식어 버린 다관 속 찻물을 잔에 따라 마신다.

휘익!

술 마시듯 연거푸 두 잔을 더 마시더니 말을 하는 마존선생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후계자로 죽은 유기태를 점찍었지. 둘째 아들을 선택한 이유는 학교 다니면서부터 그가 단 한 번도 자네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둘째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줘도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자네가 수렴청정할 수 있거든. 자네는 태천이란 제국의 종신집권을 꿈꿨어. 그러기 위해서는 리모컨만 누르면 착착 알아서 화면이 바뀌는 텔레비전 같은 아들이

필요했고 그가 유기태지.”

“그렇다 치세.”

“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잖아. 그런데 막내아들이 제왕목이라고 내가 했어 봐. 누구의 도전도 허락하지 않는 자네의 그 더러운 심보가 가만있었겠어? 그야말로 삭초제근 했을 거야.”

삭초제근(削草除根).

후환이 될 것을 우려하여 미리 없애거나 하는 일을 말한다.

마존선생이 말하는 여기서 삭초제근이란 제왕목이라는 걸 알았다면 유태수를 철저히 경계하고 회사의 모든 일에서 치밀하게 따돌리고 배제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권력을 쥐는 순간 그가 곧 왕이 되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자신의 한 마디면 자식들은 물론 태천의 모든 임직원들이 허리를 구부리게 만들고 싶었다.

대외적으로는 유기태가 태천그룹 차기 총수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중대사안은 자신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제왕목의 아들이 있다면 절대 자신의 그런 욕망을 못 본 체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태천그룹을 창업했지만 주인은 엄연한 직원들입니다.’

하며 유태수는 자신과 각을 세울 것이다.

21세기다.

임원들을 마름으로 보고, 아래 직원들을 소작농으로 보는 아버지의 그 지주적 시선과 생각은 옳지 않다고 형제들을 부추기고 직원들을 자극할 것이다.

제왕목의 사내는 원래 그렇게 타고나는 것이다.

제왕목이 달리 제왕목인가.

***

긴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태천에너지는 바람과 태양열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연구 개발 회사였다.

탄소중립.

더 이상 지구 온난화를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 선진국이다.

특히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아예 법으로 금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기근에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어차피 산업 전반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원자력도 녹색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녹색에너지는 쓰기 전에도 쓰고 나서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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