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레프트 훅(1)
원자력 발전으로 발생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10만 년 동안 인간과 격리해야 하는 무서운 쓰레기다.
- 그게 쉬울 것 같아?
10년 전 태천에너지를 차리면서 유장풍이 못마땅해하며 뱉었던 말이다.
석유와 석탄의 지배는 향후 일백 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에 진출하는 현실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이다.
유장풍의 말처럼 태천에너지는 아직까지 계속 적자였다.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급기야 폐업 얘기가 나돌고 있다.
주가도 거의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형편없었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긴 해도 달갑지 않다.
삼천이백 원 언저리에서 놀던 주가가 요즘 두 배인 육천오백 원까지 올랐다.
워낙 수면 아래서 오랫동안 잠을 자다 보니 두 배가 올랐지만 그다지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다지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는 건 우리에게 다행스런 일이죠.”
유태수는 설태왕과 마주 앉아 있었다.
“헤지펀드들은 어딜 가도 절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타깃 대상이 된 기업이나 주주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판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업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의 걸 빼앗아 가는 건데 어쩌란 말인지.”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설태왕이 태천에너지에 관심을 보이는 건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한국은 탄소 배출국 세계 6위다.
물론 1위는 중국이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 모두가 강제성 짙은 법을 통과시키고 만드는 데 반해 한국만은 어떤 움직임도 없다.
나중에 탄소를 배출하고 만들어낸 제품에 대한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의 높은 세율과 법적 조치에 일순간 몰락하게 될 국가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한 산업발전이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 일본은 빠르면 2030년, 늦어도 2035년까지는 탄소배출을 지금보다 80퍼센트 이상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도 계획은 있다.
다만 계획서가 책상 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설태왕은 유장풍의 낡은 기업경영론을 파고들어 태천에너지를 인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M&A(인수 합병).
지잉!
갑자기 핸드폰 진동 같은 소리가 들렸다.
스윽!
아랫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검은색 케이스 하나를 꺼냈는데 불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건 또 뭡니까?”
“아무도 없는 빈집에 도둑이 들어온 모양이군.”
센서 감지기다.
이라크에서 코헨에게 배운 기술이다.
부비트랩과 원리는 비슷하다.
단지 차이라면 부비트랩은 줄을 건드려야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건 지면에 깨알보다 작은 가루를 뿌린다.
인체 무선 감지기다.
단지 체온에 반응하지 않고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야전에서 체온에 의한 감지는 야생동물에게도 반응한다.
적인 줄 알고 공격했다가 오히려 이쪽의 위치만 오히려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체온 감지 시스템은 사용하지 않는다.
SP(sole press), 솔 프레스.
넓은 면적의 신발이 밟을 때 감지 센서가 작동하는 것이다.
침입자 감시용이기 때문에 대문보다는 주로 담벼락 아래 현관 입구에 뿌려 놓는다.
침입자가 대문을 열고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보통 담을 넘는다.
떨어지면서 밑에 깔린 작은 알갱이들을 발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담을 넘어왔다면 현관을 통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누구죠? 밤도 아닌 대낮에?”
“글쎄, 대도(大盜)는 한낮에 움직인다는 말을 얼핏 들긴 했는데.”
유태수는 잠시 감지기를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근처 파출소에 연락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래도 파출소 순경들 힘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인물들일 가능성이 크고.”
유태수는 뭔가를 아는 듯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
조금 일찍 퇴근했다.
집안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유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어떤 이상한 흔적도 없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살림살이들이다.
하지만 유태수는 한곳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아침에 나갈 때 현관 미닫이문 사이에 끼워놓은 가정용 바느질용 쥐색 실 30수짜리다.
이 역시 코헨에게 배운 것인데 누군가 들어왔다면 문이 열리고 실은 그 순간 제 위치를 벗어난다.
거실 쪽으로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보다 약간 굵은 5센티 정도 길이의 회색 실 조각이 보인다.
허리를 구부려 실 조각을 주워 든 유태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왼쪽 구석에 향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데 그중 맨 오른쪽 나무로 걸어갔다.
스윽!
파란 잎사귀가 수북하게 몰린 곳을 헤집자 휴대폰 크기의 카키색 카메라가 나타났다.
야생동물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무인 감시 카메라다.
야생동물이 카메라 앞을 지나가면 찍히는 것으로 흔하지 않은 보호종이나 멸종 위기종들의 서식 상태를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다.
침입자들은 주위에 CCTV가 없다는 걸 알고 조금은 여유 있게 들어왔을 것이다.
카메라를 열고 안에서 작은 칩을 하나 꺼낸 뒤 곧장 노트북에 연결했다.
곧 화면이 나온다.
두 사람이 담을 넘어 들어왔다.
‘그럴 줄 알았지.’
낯익은 얼굴들이다.
곽철종과 맹사성, 즉 며칠 전 자신을 미행하다 들킨 두 사람이 들어왔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까지 찍혔다.
유태수는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 골목에 주차된 승용차 문을 열었다.
글러브 박스를 열어 손바닥 크기의 무전기를 꺼내 들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청 장치 탐지기다.
스위치를 켜고 구석구석 다니면 신호가 들어오면서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파파파팟!
켜자마자 빨간 불빛이 쏟아지듯 번쩍인다.
거실 구석에 놓인 남천이라는 공기정화식물이 있는데 그 잎사귀 뒤에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얇은 단추가 붙었다.
잠시 잎사귀 뒤에 붙은 장치를 살피다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곳곳을 다녔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실로 들어서자마자 불빛이 미쳐 날뛴다.
파파파파!
코헨과 찍은 사진을 넣어둔 사진틀 뒤에 붙었다.
1층 거실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도청기를 달았다는 건 자신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건 자신을 김평대 살해범으로 강력히 의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한 것이다.
백 퍼센트 원한에 의한 사건이다.
김평대를 그렇게까지 죽여 보낼 만큼 증오할 정도라면 가장 최근에 자신들이 벌인 작전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작전이라고 하면 이라크에서 일어난 사건 말고는 없다.
“팀장님!”
일곱 시가 넘었지만 사무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오하수는 들어선 곽철종을 보았다.
“일단 데려와 보는 것이 어떨까요?”
국정원 요원을 죽일 만큼 배짱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면 데이브 유 말고는 없다.
문제는 자신들과 데이브 유는 직접적으로 얽힌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일 만큼 데이브 유와 맺은 피바람이 없었다.
데이브 유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다가 애먼 최만오와 이승수가 자신들 손에 죽었다.
그렇다고 데이브 유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기관인 국정원을 상대로 칼을 뽑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전장에서 능숙한 살인의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한 국가의 정보기관과 정면으로 맞선다는 건 누가 봐도 자살행위인 것이다.
피를 나눈 부모 형제도 아니다.
설혹 피를 나눴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미친놈이 아닌 이상…….”
오하수는 여전히 반신반의다.
사실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데이브 유의 짓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7대3으로 우세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 쪽 얘기가 자꾸 흘러나온다.
고정 간첩.
이라크 태천건설 배석대의 실종과 그 이외 몇 건의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모두 북한 보위부 소행으로 몰아갔다.
피해를 당한 남한 정부의 발표에 국제사회는 당연히 북한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으로서는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유엔을 통한 비난 성명까지 나오자 화가 날 법도 했고 그들 또한 그쪽에서 치열한 정보공작을 하고 있으므로 전혀 아니라는 걸
국제사회가 믿어주지 않는다.
가뜩이나 유엔의 경제봉쇄로 경제난에 빠진 북한으로서는 충분히 보복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놈의 집에 감시장치를 설치해놨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오하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정장의 사내가 들어섰다.
이라크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했던 전주식이었다.
“지금 막 이승수의 어머니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수.
자신들 손에 죽은 태천건설 직원이다.
***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송만술이었다.
유태수는 전화를 끊고 2층 침실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탁!
거실의 불을 밝힌 뒤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딸칵!
라이터 불을 켜고 말보로 레드에 불을 붙인다.
후우우우!
푸른색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유태수는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승수는 외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생기지 않아 절에서 살았다.
그렇게 고생하며 마흔이 넘어 가까스로 얻은 혈육이다.
그나마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딸도 없고 오로지 자식이라고는 이승수 하나인데 그런 아들이 죽었으니 충분히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자식이 죽고 없는데 어머니에게 인생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죽는 것 말고는 어머니가 선택할 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으음!”
갈수록 아버지가 왜 대한민국 악인 서열 1위에 올랐는지 실감한다.
자사 직원이 죽었는데 달랑 말단 과장 하나 보낸 것이 유족에 대한 회사의 성의였다.
- 천만 원을 위로금으로 지불했다고 합니다.
송만술이 했던 말이다.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그랬을까.
- 인간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하죠.
기억 속의 송만술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툭!
담뱃불을 끄고 거실로 들어온 유태수는 곧장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새벽의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택시에서 유태수가 내리자 송만술과 고주식이 다가왔다.
“이사님!”
둘 모두 잠결에 연락을 받았는지 부스스한 행색이었다.
“유족도 아니어서 이렇게 급하게 오긴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부터 만나 봅시다.”
세 사람은 장례식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모자를 쓴 점퍼 차림의 사내가 세 사람을 맞이했다.
“이조숙 씨 말입니다. 어제저녁 119에 실려 오신 분.”
“아, 예!”
“저기 VVIP는 뭡니까?”
장례비용이란 액자가 걸려 있고 맨 위에 쓰인 글자를 가리켰다.
그 밑으로 VIP와 일반에는 장례 상품에 대한 가격이 적혀 있는데 VVIP는 어떤 내용도 없다.
“재벌 회장급으로 모신다고 보면 됩니다. 고인 전용 벤츠 리무진이 제공되며 선두 차 역시 리무진이고 리본과 꽃으로 단장한 영정사진을 전면에 걸죠. 또한 관은.”
“상품 저걸로 하세요.”
“네에?”
직원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탁!
유태수가 지갑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 놓는다.
아멕스 그린카드다.
장례식장 직원의 눈이 커지며 퉁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유태수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늦어서일까 사정없이 허리를 구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