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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72화 (72/122)

72화 먹구름(2)

한 번 뽑은 칼이라고 보는 듯 분명하게 말했다.

- 백 퍼센트 확실하면 한 번 더 미쳐 봐.

데이브 유의 주식을 매수하여 크라운의 경영권을 거머쥘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바가지를 쓰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크라운의 현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것이다.

요즘 크라운의 주가는 십삼만 원을 오르내린다.

물론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상 폭등이라는 것에 전문가들도 동의하며 적정 주가로 오만 원대로 본다.

아무리 21세기의 혁명이라는 안전벨트 클린 히트를 개발했다고 해도 회사 규모나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춰 그 이상은 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딸칵!

오도석은 연거푸 담배를 피운다.

웬만해서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물지 않지만 요즘은 부쩍 늘었고 하루하루 피워대는 담배양도 늘어나고 있다.

흡연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건 고민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 그렇다면 매수하지 맙시다.

며칠 전 깊은 밤 꼼장어에 소주를 마시던 장민혁이 뱉어낸 말이다.

둘은 손을 잡았고 오도석이 발등에 떨어진 일을 털어놓자 장민혁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렇게 말했다.

유장풍으로부터 매수하라는 사인이 났는데도 장민혁은 포기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오도석이 도저히 다섯 배를 주는 매수는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해도 한 번 결심한 유장풍은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민혁까지 합세해 반대하면 천하의 유장풍도 멈칫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두 직원의 반대라면 한 번쯤 보류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민혁도 오도석도 왜 유장풍으로부터 다섯 배를 주고 매수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도 이행하지 않는 것인가.

그건 순전히 육감 때문이었다.

육감은 신이 부여한 인체의 감각기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육감은 냄새 맡거나 만지거나 듣고 보는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철저히 정신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확성은 육체적 감각, 즉 오감보다 훨씬 예리하고 신비스럽다.

데이브 유의 지분을 매수한다고 하여 지분 소유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위임장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고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주주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 어떤 변수가 숨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주주총회에서 이쪽에서 미는 사장이 표결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타격은 치명적일 것이다.

***

“매수하지 않았다고?”

유장풍이 다소 놀란 얼굴로 본다.

오도석은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고 난 유장풍은 고개를 갸웃했는데 그 정도로는 매수 포기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회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장민혁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오도석 팀장의 얘기에 무게를 실으면서 확실하지 않은 만큼 잠시 지분 매수를 미루자고 했다.

장민혁의 얘기가 더해지면서 날카롭게 일어선 유장풍의 시선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느 정도 설득력 있고 자신이 판단하기에도 일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 이번 주주총회는 어찌할 건가?”

“급한 사정이 생겼다면서 취소하는 거죠.”

“하긴 총공격을 위해서는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 좋지.”

유장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내가 크라운을 포기하는 건 아냐.”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때 인터폰이 울린다.

“회장님, 유종태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유종태는 유장풍의 장남이다.

현재 그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차기 총수이지만 아버지에게 그다지 신뢰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딸칵!

문을 열고 들어선 유종태는 장민혁과 오도석을 발견하고 빙긋 웃었다.

“장 실장, 오 팀장.”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은 유종태를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린다.

“아버지, 계약할까 합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소파에 앉아 있는 유장풍 앞에 놓는다.

“우리가 가진 지분 51퍼센트를 3천억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장민혁과 오도석의 눈이 빛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얘기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주당 만 천 원씩 계산했습니다.”

유장풍은 서류를 대충 넘기며 살피더니 상체를 뒤로 젖혔다.

“주변 의견은 어떠냐?”

“우리가 언제 주위 눈치 보고 사업했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오도석이 물었다.

“아, 오 팀장 몰라요? 재생에너지 사업 접기로 했어요. 벌써 7년째 적자인데다 조금 앞서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향후 20, 30년간은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보고서를 받았고 나 또한 동감하죠.”

“누가 그런 보고서를?”

장민혁이 유종태를 향해 다그치듯 물으면서 마지막 시선은 유장풍에게 멈췄다.

나한테 그런 얘기 일절 없었지 않았냐는 질문이다.

“이 사람들 진짜.”

유종태가 피식 웃는다.

“장 실장!”

“예, 사장님!”

“아니, 적자 나는 회사 정리하는데 장 실장한테 보고해야 합니까?”

“사장님, 그게 아니라…….”

“아버지가 신뢰하니까 이제 경영에까지 끼어드는 것이에요? 이제 보니 무척 웃기는 분이셨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은 고전을 해도 반드시 빛을 볼 날이 올 사업인데 접었다고 하여 놀란 것입니다.”

“장사꾼은 미래도 봐야 하지만 지금 당장도 중요합니다. 7년 동안 난 적자가 오천억이 넘어요.”

“이대로 해!”

유장풍이 서류를 덮는다.

그건 아들 유종태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은 좋지만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물론 유장풍이 두 사람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충성심이 간섭으로 변질되면 그건 반란의 씨앗이 될 수가 있다.

“두 분 언제 식사나 한번 합시다.”

유종태가 서류를 들고 빙긋 웃으며 걸어갔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탁!

유종태가 나갔다.

“개나 소나 신재생에너지 운운하는데 화석연료를 밑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경제야. 에너지의 패러다임이 완전 백팔십도 바뀌는 혁명적인 일인데 그게 쉽게 될 것 같아. 물론 언젠가는

지구를 달구는 석탄 연료 사용을 끊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무슨 수로.”

“제약회사들은 20년 후를 내다보고 신약에 투자를 합니다.”

“난 약장수가 아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잖습니까?”

“나더러 백 년 후에 이익을 보기 위해 지금 투자하란 말인가?”

장민혁은 입을 다물었다.

두 번 다시 입에 담으면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입을 닫았다고 머릿속까지 비울 수는 없었다.

전 세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아는 EU가 합의한 탄소 국경세는 먼 미래가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에서 만든 물건은 일반 관세 말고 탄소 세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뭐든지 시작이 복잡하고 더디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버리면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미래 먹거리는 완전한 탈석탄이다.

비록 오천억의 적자가 났다고 하더라도 7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는 적은 것이 아니다.

가다 중지하면 아니 가는 것만 못하다고 했는데 장민혁이 오도석을 바라본다.

신재생 분야에 대한 투자 및 발전에 매년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게 국제적 추세다.

더욱이 코로나19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재생에너지 성장 속도를 한층 더 높인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 뻔했다.

지금 유럽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중국과 일본도 아차 하면 뒤차를 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쏟는데 지금 발을 뺀다는 건 너무도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하긴 손을 댄 것마다 성공했던 회장님의 사업 수완에서 7년의 적자는 무지하게 인내한 것이다.’

분명한 건 워낙 자금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아차 싶으면 상상을 초월한 투자로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특기를 지닌 사람이 유장풍이다.

‘하긴 언제라도 신재생에너지가 돈이 된다 싶으면 무자비한 베팅으로 어느 회사를 삼키겠지.’

***

동시에 사인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쪽은 설태왕이고 맞은편은 유종태 태천에너지 사장이다.

정확히 51퍼센트의 지분을 데브그루에게 넘기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둘은 악수를 나눴다.

“나머지 지분도 언제든지 원하면 우린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나머지를 매수하도록 노력하죠.”

설태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두 사람은 힘차게 악수를 했고 설태왕이 가방을 들고 돌아섰다.

탁!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설태왕은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지분 인수 끝났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표정이더군요. 그럼 회사에서 뵙죠.”

설태왕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씨익!

웃으면서 다시 한번 자신이 나온 사무실을 돌아본다.

***

유태수의 벤츠가 공항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대를 유태수가 직접 잡았고 뒷좌석에는 백인 사내가 앉아 있었다.

유태수는 유창한 영어로 백인 사내와 얘기를 나눴고 가끔은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백인 사내는 영국의 세계적인 원유회사 BP( The British Petroleum Company)의 투자총괄 이사 브룩스다.

BP는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사업을 활기차게 벌이면서 신재생에너지 선점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으로 태천에너지의 경영권을 인수한 데브그루와 합작회사(Joint Venture)를 설립하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태천에너지가 미국 곳곳에 시설해 놓은 태양광 사업과 풍력발전 시설에 자신들의 기술을 조금 더 하면 미국 시장을 어느 기업보다 더 확실하게 선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데브그루가 인수한 태천에너지에 대한 것이었다.

“태천은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아니더라도 다방면의 미래 먹거리 사업에 진출하고 있잖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국제시장에서 이기며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래서 미련 없이 매각한 것 아니었겠냐는 유태수의 말이다.

“하긴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죠.”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각국의 탄소세 도입과 장벽이 높아지면서 BP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 기업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분명한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쪽보다는 회사 이익의 거의 백 퍼센트를 가져오는 기존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중추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태천에너지가 선제적으로 구축한 사업역량과 BP의 자본력을 결합하면 어떤 기업보다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차가 건물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로 올라갔다.

설태왕이 기다리고 있다가 서로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투자 분야와 발전 용량 등에 관한 양사의 준비된 자료를 꺼내 놓고 얘기가 시작되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내일 다시 세분하여 정리하기로 하고 브룩스는 호텔로 돌아갔다.

유태수는 곧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들어선 유태수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한 곳에 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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