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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74화 (74/122)

74화 정체불명(2)

아직 경영권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곧 거머쥘 것이다.

그리고 태천에너지 지분 매도 역시 최초 투자액의 절반은 건졌다.

중간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규모가 커졌지만 어차피 그 돈은 채무가 아니다.

손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장에서 떠드는 조 단위까지는 아니다.

두 건의 거래 모두 목적을 달성했는데 왜 실수라고 할까.

그건 유장풍만의 장사 방식 때문이다.

아무리 물건을 잘 팔았어도 유통과정의 한 단계에서 누군가가 자신보다 많은 이익을 남기면 그 사업은 실패다.

무조건 자신이 제일 많이 벌고, 밑으로 갈수록 적게 버는 피라미드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 유장풍의 소신인 것이다.

크라운의 주가가 오르면서 다섯 배가 어느새 세 배로 줄어들었다.

7조에서 2조는 이미 폭등한 주식으로 인해 만회가 된 것이다.

연말까지 까면 다섯 배 주고 산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고 자신도 그렇게 본다.

미래를 보던 유장풍의 시선이 근래에 들어 유난히 짧다.

변한 건가.

늙어서.

모두 떠나고 노기술만 남았다.

두 사람은 홍차를 놓고 마주 앉았는데 말은 없었다.

“태수가 살아 있다는 거야.”

확!

노기술의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천랑성(天狼星)이 갈수록 빛난다는군.”

오래전 노기술은 마존선생과 만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우연히 하늘의 별자리에 대해 말했다.

그때 마존선생은 천랑성은 마웅의 탄생을 예고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마웅(魔雄).

천문지리에서는 마웅을 잔인한 정복자라고 명명한다.

당시만 해도 천랑성이 누굴 지목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했었다.

“사실인가?”

“구십구 퍼센트.”

“일 퍼센트는 언제든지 아니다 싶을 때 도망갈 자리군.”

“믿을 수 없지. 난 정복자가 나타나면 하늘의 별자리들이 움직인다는 말을 말이야. 그래서 아는 사람을 통해 나사의 천문학자 몇 명에게 질문을 보냈지. 천랑성에 대해 말이야.”

“뭐라던가?”

쭈욱!

유장풍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다른 건 모르겠고 백오십 년 만에 가장 빛나고 있는 건 사실이라는 대답을 보내왔네.”

천랑성은 시리우스를 한문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빛나는 별이 꼭 늑대 눈빛 같다고 하여 붙여졌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암운(暗雲)의 별, 잔혹한 지배자가 탄생할 별이라고 했다.

“허허허!”

유장풍이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그놈이 천랑성이라, 지 형을 때려 죽인 그놈이.”

유장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조금 전 미소는 오간 데 없이 사라졌고 포박당한 죄수의 목을 치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회자수의 사이한 눈빛이다.

‘살기.’

노기술은 유장풍에게서 살기가 풍겨 나옴을 느낀다.

‘양립 불가라더니 이 부자(父子)야말로…….’

노기술은 찻잔을 들어 올린다.

중국의 천문학에서 천랑성은 반드시 스승을 벤다고 했다.

즉 자신을 가르친 사람, 여기에서 말하는 스승은 육신을 낳아준 부모도 포함된다.

유태수는 천상천하제일왕목(天上天下第一王木)이기에 불의 기운을 가진 유장풍으로서도 태우지 못한다.

거기에 죽음의 정복자로 불리는 천랑성이라니 이 집안에 무슨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는 것인가.

“그놈이 없으면 모든 건 조용해질 거야.”

“그 말 진심인가?”

“아들 목숨을 놓고 농담하는 아비도 있나?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유태수를 죽이겠다는 얘기다.

“크크킄!”

유장풍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운 좋게 아직 어딘가 처박혀 살아 있는 모양인데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을 못 벗어나는 손오공이지.”

유장풍의 입가로 핏방울 한 개가 떨어졌다.

의지다.

절대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는 살려두지 않겠다는 혈심인 것이다.

***

태천에너지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삼천억에 매도한 지분이 마침내 5조에 육박하고 있었다.

와그르르!

아침 신문을 갖고 들어간 유장풍의 방에서 뭔가 뒤집히고 엎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던 채무령이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채무령은 소스라쳤다.

탁자가 엎어져 있고 그 위에 항상 놓여 있던 문방사우(文房四友)가 구석에 처박혀 있다.

신문을 쥐고 있는 유장풍의 손이 떨린다.

“죽일!”

휘익!

신문을 집어던진다.

팔랑!

신문이 채무령의 발아래 떨어졌다.

채무령은 신문을 주워 들고 바라보다 반짝 눈을 빛낸다.

「데브그루, 태천그룹을 봉으로 보나.」

라는 타이틀 기사와 함께 골칫거리 태천에너지 주가가 이십만 원을 넘어서면서 데브그루가 챙길 수익이 한화 5조에 가깝다는 기사였다.

한 마디로 전번에는 태천이 노리고 있는 크라운과 합작하면서 폭등한 주가로 엄청난 수익을 챙겼는데 이번에 또 태천에너지다 보니 태천을 봉으로 보느냐는 뜻이다.

슥!

채무령이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유장풍을 내려다보았다.

자신도 헤지펀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단기 이익을 노리는 철저한 투기자금이다.

자금을 주무르는 펀드 매니저들의 성향에 따라 기업의 인수 합병으로 이익을 얻기도 하고, 외환시장을 노리기도 하며, 한 국가의 환율을 상대로 베팅을 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92년 검은 수요일로 불리는 영국의 파운드와 조지 소로스 사건이다.

한 마디로 대량의 파운드 공매도로 환율폭락을 불렀다.

영국 정부는 폭락하는 파운드화를 방어하기 위해 부지런히 사들였지만 환율을 방어하지 못하면서 조지 소로스는 엄청난 환차익을 얻는다.

그러다 보니 조지 소로스가 파운드화에 강하다는 말이 만들어졌고 이후로도 크고 작은 파운드화를 상대로 하는 투기에 성공한다.

어쨌든 헤지펀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민간 기업을 상대로 공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돈을 벌고 남긴다.

순환출자의 고리로 이어진 한국 대기업의 특성상 어느 한 계열사를 찍어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수는 있다.

“이딴 기사에 뭘 그렇게 흥분을 하세요? 당신 그런 말 자주 사용하잖아요. 장사 한두 번 하냐? 정말 장사 한두 번 해요. 사업하다 보면 남 좋은 일 시킬 때도 있는 거지,

언제까지 내 건 일 원 한 푼도 안 주고 남의 것을 빼앗아 오기만 할 생각이에요.”

“할망구, 무슨 개소리야.”

“이런 일에 흥분하다니 늙었군요.”

탁!

채무령이 문을 닫고 나갔다.

한참을 닫힌 문을 노려보던 유장풍은 채무령이 탁자 위에 던지듯 놓고 간 신문을 다시 쥐어 펼쳤다.

한 번 다 기사를 읽고 난 유장풍의 눈이 살벌하게 타올랐다.

유장풍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리의 속담 하나가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젊어서나 지금이나 곱씹어 볼수록 무서운 말이다.

전혀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거푸 데브그루에게 10조가 넘는 이익을 불과 육 개월 사이에 건네준 꼴이 됐다.

***

“네, 아버지!”

큰아들 유종태다.

[지금 이리로 와.]

“예!”

유종태는 무슨 일로 식전 아침에 부르냐고 물으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무슨 전환데요?”

차를 마시고 있던 아내 구혜주가 서재 문을 열고 나오는 유종태를 보며 묻는다.

유종태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지금 잠깐 오라는데.”

“이 새벽에?”

“뭐 해? 얼른 가자고.”

“나까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때가 어느 때인데.”

후계자 지목이 머지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아버지 마음에 백이십 퍼센트 들어야 한다.

“당신 소원이 뭐야? 어머니가 갖고 있는 태천문화예술원 아냐. 아버지가 불렀지만 이럴 때 슬그머니 같이 가서 어머니에게 인사하면 나쁠 것 없잖아.”

“알았어요.”

재빨리 일어나며 주방을 향해 말했다.

“아줌마, 우리 아침 아버님 댁에서 해결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구혜주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화사한 복장을 갖추고 내려왔다.

딸칵!

두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

문이 열리고 유종태와 구혜주가 들어섰다.

가정부가 문 앞에 나와 있다 두 사람을 보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사모님.”

“어머니!”

구혜주가 거실 입구에 서 있는 채무령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밥 안 먹었지?”

“어머니와 같이 먹으려구요.”

“별일이다.”

같이 식사하기 위해 일부러 안 먹고 왔다는 구혜주의 말에 채무령이 피식 웃는다.

똑똑!

유종태는 노크를 한 뒤 안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저희 왔습니다.”

구혜주는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 들어선다.

“아버님!”

유장풍은 펄펄 끓어오른 마음을 다스리기라도 하려는 듯 방바닥에 화선지를 깔아 놓고 한쪽 무릎을 굽힌 채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사아악!

마지막 글씨를 쓰고 난 뒤 붓을 들어 올렸다.

한참 동안 자신이 쓴 글씨를 내려다볼 때 옆으로 다가온 유종태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어 말했다.

“참초부제근맹아의구발(斬草不除根萌芽依舊發).”

뜻을 알 수 없다는 듯 유장풍을 바라본다.

구혜주는 두 사람이 얘기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전자 1분기 목표 매출의 60퍼센트를 벌써 넘어서고 있다고?”

“예, 아버지. 지금 추세로 나가면 가장 좋았던 2018년 1분기 기록을 깰 것 같습니다.”

당시 태천전자 1분기 매출이 87.56조 원을 기록했고 영업 이익은 16.77조 원을 달성했다.

그런데 올해 1분기는 그보다 20퍼센트 앞서가고 있다.

지금 추세로 나간다면 1분기 100조 매출이 꿈은 아니다.

태천전자는 태천그룹의 중심이다.

그룹 매출의 약 50퍼센트를 전자가 채우고, 20퍼센트를 자동차가 메운다.

전자와 자동차가 그룹 매출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다.

유종태는 태천전자 부사장이다.

물론 사장은 없다.

태천전자 사장은 곧 그룹의 지휘관, 회장으로 통한다.

“뜻을 아느냐?”

“글쎄요.”

잘 모르겠다는 듯 유종태는 바닥에 화선지 위에 쓰인 글씨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거의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하지만 이른 새벽 자신을 불러 저 글씨를 써놓고 뜻을 아느냐고 묻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데브그루 대표를 한 번 만나 보거라.”

“데브그루!”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구혜주가 얼굴을 내민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당신도.”

잠시 웃으며 바라보다 살며시 문을 닫는다.

“만나서?”

“가자, 밥 먹자.”

유장풍이 일어나 앞장서 방을 나갔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데 밥 먹자고 일어난다.

말없이 식사에 열중이다.

“애미야.”

침묵하던 채무령이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

“오늘 바쁘니?”

구혜주는 본능적으로 옆에 앉은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종태가 눈을 찔끔 감으며 신호를 보냈다.

“아녜요. 바쁜 일 없습니다.”

“그럼 한 시까지 미술관으로 좀 나오거라.”

“미술관은 왜? 큰 애 할 일도 많은데?”

유장풍이 국을 떠서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채무령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 자리에 앉기에는 너무 늙었어.”

구혜주에게 태천문화예술원 이사장 자리를 물려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는 당신은요?”

홱!

유장풍이 고개를 벌떡 쳐들고 밥을 떠먹는 채무령을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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