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살인의 꿈(1)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온 사람은 송만술이었다.
십여 분 정도 지나 고주식이 가죽 재킷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수술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창문 위로 「데이브」란 이름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설태왕에게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둘이 저녁에 식사 겸 술좌석을 가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미국 국적을 가진 그가 와 봤자 도움이 될만한 일은 전혀 없다.
두 사람은 병원 산책로 한쪽에 숨어 몰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참지 못할 만큼 골초는 아니지만 심장이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데이브의 교통사고에서 살인의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꿀꺼억!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라크에서부터 이어져 온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면 결코 평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중에서 데이브의 하루하루는 거의 줄을 타는 곡예사 수준이다.
조금만 삐끗하면 떨어지고 추락하는 곡예사의 삶처럼 불투명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는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불꽃 같은 전사였다.
투툭!
둘은 꽁초를 튕기고 산책로를 빠져나왔다.
콱!
수술실 앞으로 온 두 사람은 불안한 얼굴로 서성거리고, 두 주먹을 강하게 거머쥐기도 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모르지만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타오른다.
아침이 되었다.
하지만 수술실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술이 끝난다고 해도 우리가 할 일은 없잖아.”
아침까지 단 한마디도 뱉지 않던 고주식이 입을 열었다.
“가자!”
두 사람은 수술실 복도를 걸어 나와 병원 앞에 있는 해장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른 아침의 해장국집은 한산했다.
두 사람은 해장국과 소주를 시켰다.
해장국보다 소주가 먼저 나왔으므로 두 사람은 빈속에 소주를 삼켰다.
도수가 낮다고 하지만 빈속으로 들어가는 소주는 목구멍을 쌔 하니 갈라놓는다.
“그 사건의 연장일까?”
경찰도 누구도 만난 적이 없지만 고주식은 계획된 사건으로 보고 있었다.
그 연장이란 이라크를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기관에서 데이브를 죽이려 한다는 건 자신들도 이미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술아.”
연거푸 소주를 비운 고주식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장국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마셨다.
“데이브 유 말이야. 뭔가 느껴지는 것 없냐?”
후루룩!
송만술은 해장국에 들어 있는 선지를 입 안에 넣었다.
“뭐가?”
“나보다 눈치는 네가 한 수 위인데.”
모를 리가 있느냐는 뜻이다.
“난 말이야. 데이브 유를 볼 때마다 한 사람이 생각나.”
뚝!
국물을 떠 마시던 송만술이 고개를 들었다.
“배석대!”
“배……석대!”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너도 이미 느끼고 있었구나.”
“외모는 아냐, 하지만 말투와 행동거지는 완벽한 배석대야.”
지이잉!
그때 송만술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번호만 찍혔을 뿐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부터 스팸이 걸려 올 리도 없고 더구나 일반 전화번호다.
“여보세요?”
“데이브 유 보호자님 되시죠? 여기 병원입니다. 지금 수술 끝났어요. 교수님께서 잠깐 뵙고자 해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죠.”
송만술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 끝났대.”
두 사람은 먹던 술과 해장국을 그대로 둔 채 계산을 한 뒤 나갔다.
외과 과장 선부출 교수는 아직 수술복을 벗지 않고 있었다.
급히 들어선 두 사람을 향해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아직 몰라요. 수술은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 2, 3일이 고비입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까?”
“몰라요. 사람의 손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운명에 맡겨 봐야 하지 않겠어요.”
수술 집도의가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말 앞에 더 이상 뭘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의사도 생사를 모른다는데 더 이상 무슨 대답을 듣는단 말인가.
“아, 잠깐.”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선부출 교수가 불렀다.
“원무과에는 이미 통지했습니다만 데이브 유라는 사람, 교통사고는 치명타가 아니었어요. 칼을 맞았어요.”
칼이란 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
“나도 깜짝 놀랐어요. 교통사고 환자로 생각하고 몸을 들여다봤는데 웬걸 분명히 칼에 맞은 자창이었어요.”
“하면 누가 교통사고를 당한 데이브에게 칼질을 했단 말입니까?”
“칼이 먼저인지 아니면 교통사고가 먼저인지는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일이지만 분명한 건 스무 군데 이상이라는 겁니다.”
몇 마디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밤을 새우며 수술을 한 의사의 피로를 생각하여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로 나온 두 사람의 안색은 굳었다.
칼을 맞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째앵!
그때 복도의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명의 뚱뚱한 사내가 원무과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나왔다.
똑똑!
원무과 직원은 문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들어오시죠, 교수님. 경찰입니다.”
채 닫히지 않은 틈 사이로 원무과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조용히 복도에서 멀어져 갔다.
***
병원에서 회사로 곧장 출근했다.
설태왕도 소스라쳤고 최근 입사한 여직원 고수향도 들고 있던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송만술의 설명을 들은 사무실은 완전 초상집으로 변해 버렸다.
“이건!”
“어떻게!”
아무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하나 답답한 건 회사 사람 중 누구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지만 지켜보는 것 말고는 도움을 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딸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차림새의 사내가 들어섰다.
구레나룻을 했는데 얼룩무늬 군복 바지에 낡은 작업화를 신었다.
사내는 사무실을 스윽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싸하군.”
“누구십니까?”
송만술이 물었다.
“아, 나는 배덕용이라는 사람입니다. 내 친구가 다쳤다고 해서.”
“친구라면?”
“이곳 데브그루 이사로 있는 데이브 유.”
네 사람은 소스라쳤다.
데이브가 다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경찰과 병원 의사, 그리고 자신들뿐이다.
그렇다고 어젯밤 교통사고가 아침 뉴스에 보도된 건 절대 아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송만술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배덕용은 빙긋 웃었다.
“그냥 알지요.”
“네?”
“마음 깊이 교감하는 친구라면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이것 좀 받아 주시오.”
배덕용이 조그만 대나무 한 토막을 내밀었다.
50센티 정도 되는 길이로 마디가 촘촘한 것이 뿌리 근처를 잘라 낸 것 같았다.
“며칠 전 날 찾아왔는데 이걸 놓고 갔더군요. 앞으로 쓸 곳이 많을 텐데.”
송만술은 일단 받았다.
한 번 본 기억이 난다.
구기동 데이브의 집에 놀러 갔을 때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물론 당시는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았고 흥미로운 물건도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에서야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데이브가 일어나면 내가 왔다 갔다고 좀 전해 주시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더 이상 손에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전달해요. 그럼 수고들 하시고.”
배달부 배덕용은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배덕용, 배덕용!”
송만술이 건네받은 대나무를 들고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이름 같기도 했지만 분명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닫힌 문을 계속 바라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데이브의 사고 소식을 알고 왔다는 것이다.
데이브가 전화를 했을 리 없다.
사고 순간 이미 의식을 잃을 만큼 대형 사고였다.
거기에 집도의는 칼까지 맞았다고 말했다.
“뭐지.”
대나무를 이리저리 살펴도 특이한 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팡이라고 하기에는 짧고 그렇다고 지휘봉이라고 판단하기에는 길다.
지이잉!
송만술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러자 모두가 시선을 모았는데 송만술이 놀라며 말했다.
“병원이야! 여보세요?”
“데이브 씨 보호자 되시죠.”
“예!”
가슴이 격렬하게 뛴다.
‘유감입니다. 우리 병원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으나 환자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이런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나올까, 아니면 살았다는 얘기를 할까.
빠르면 일 초, 늦어도 이 초가 걸리지 않을 그 짧은 순간인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의식을 차렸습니다. 면회는 아직 이르지만 일단 좀 오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전화를 내린 송만술이 소리쳤다.
“살았어. 데이브가 깨어났대.”
“오 마이 갓!”
설태왕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그럼 그렇지.”
고주식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데이브는 우리와 종(種)이 달라. 그냥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날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고.”
너무 기쁘다 보니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슥!
고수향 역시 휴지로 눈가를 찍는다.
참을 수 없는 격한 뜨거움이 가슴을 적시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이사님!”
워낙 비밀이 많은 남자다.
자신뿐만 아니라 송만술과 고주식도 가끔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우리 이사님 볼수록 신비해.’
무엇이 신비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딘가 항상 안개에 가려진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죽음을 거의 기정사실화 했다는데 이렇게 또 살아난다.
이것이 신비스럽지 않고 뭔가.
중환자실은 저녁 다섯 시부터 십 분간 면회가 허용된다.
오전에 병원에 들렀을 때는 대면 면회는 어렵고 창문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놀라울 만큼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직접 중환자실로 들어가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호자는 한 명만 허용이 되었다.
대표로 송만술이 들어가기로 하고 면회복으로 갈아입었다.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과 그 상태로 5분여 정도 대기하다 마침내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송만술은 다소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는데 이름표를 보고 환자를 찾는다.
데이브는 맨 왼쪽 구석진 곳에 누워 있었는데 놀랍게도 산소마스크까지 벗고 있었다.
송만술을 먼저 보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사님!”
유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려다보는 송만술을 올려다보았다.
“기적이라고 합니다.”
유태수는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시.”
“말해요!”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칼을 맞았다고 합니다.”
“알아요.”
알고 있다는 말에 송만술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고 싶었고, 사건의 자초지종도 묻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 보였다.
“배덕용이라는 분이 다녀갔습니다. 이사님께서 놓고 가셨다면서 오십여 센티쯤 되는 대나무를 가져왔더군요.”
“죽포자(竹包刺).”
송만술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단지 데이브가 반색하였으므로 귀하게 여기는 물건 정도로 생각했다.
송만술이 말하고 유태수는 듣기만 했다.
눈을 깜빡이며 대답하거나, 아니면 약간 짙은 미소로 반응했다.
“송 과장.”
면회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유태수가 불렀다.
“모른다. 아는바 없다라고만 대답해, 경찰이 묻거든 말이오. 이빨로 사람 혼을 빼는 기술자들이거든.”
경찰이 찾아와 이것저것 질문하면 자신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