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81화 (81/122)

81화 살인의 꿈(2)

“돈 좀 놓고 가요.”

송만술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무슨 돈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유태수의 눈이 강하게 지시하고 있어 거절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어머니 용돈을 드리기 위해 어제저녁 오만 원권 현금을 찾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있는 현금 전부를 뽑아 환자복 속에 슬며시 찔러 넣어주었다.

송만술은 태연하게 사람들과 함께 걸어 나갔다.

면회복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눈에 익은 사내가 다가왔다.

“데이브 유 보호자님?”

오십을 전후로 보이는 대머리에 배가 툭 튀어나온 뚱뚱한 사람은 아침 일찍 데이브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를 만나고 나오던 중 스쳤던 인물이다.

“경찰입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한참 뒤척이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넨다.

「경사 백도태」

라고 쓰여 있다.

송만술이 백도태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경찰이 명함을 갖고 다닌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놀라시는군요. 이제 우리 경찰도 명함으로 분명한 신분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 네!”

“명함 어떻습니까? 괜찮죠?”

송만술이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데이브의 보호자를 찾아온 걸 보면 강력계 형사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사건에 대해서 묻지 않고 자기 명함 자랑을 늘어놓자 당황스럽다.

“저와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송만술은 백도태 경사를 따라갔다.

송만술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리 짜게 본다고 해도 쉰 초반이다.

거기에 계급이 경사인 걸 보면 그 흔한 진급 시험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음이 분명했다.

더욱 놀라운 건 커피다.

자신이 얘기 좀 하자면서 들어와 놓고 전화기만 붙들고 20분째 씨름 중이다.

세상 눈치 백 단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짭새 월급 얼마나 된다고 인마 네가 가서 좀 사 오라는 뜻이다.

결국 커피를 송만술이 사 왔는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전화 통화가 즉각 종료되었다.

“아메리카노와 친해지기 위해 나름 많은 고생을 했는데.”

후루룩!

뜨거운 커피를 소리 내어 마신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믹스 커피를 마셨단다.

달짝지근한 그 맛은 지구상의 어떤 커피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면서 하나 있는 딸이 제발 믹스 커피 마시지 말라고 했단다.

한마디로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마시고 또 마셔 기어이 겨우 입에 습관을 들였다면서 후루룩 마셔댄다.

“물어볼 것이 있으시다고?”

“아, 맞아!”

이제 생각났다는 듯 왼손을 들어 올렸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 사람?”

“데이브.”

“그렇죠.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총기가 하늘을 뚫었는데 오십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많은 걸 잊어먹는군. 데이브 그 사람 한국인 맞죠?”

“네, 미국 국적도 갖고 있다고 들었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악명 높은 용병이었다더군요.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하고?”

“글쎄요. 전쟁 용병이었다면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자세한 건 난 모릅니다. 용병이었다는 것이 전부죠.”

“그렇지. 회사 윗분이라고 하여 그의 과거를 모두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을 많이 죽였다면 심성이 무자비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멈칫!

송만술의 눈이 좁혀졌다.

칭찬인가 비아냥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젯밤 사건과 과거 용병 시절의 연관 관계를 찾으려는 시도인가.

만약 그렇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시도다.

경찰이라고 하여 피해자인 데이브 유와는 어떤 관계냐.

회사의 상사로서 마음에 드느냐.

칼을 맞았다는 건 평범한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보는데 혹시 근래에 원한을 맺은 일을 했다거나 누군가와 크게 싸운 적은 없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헌데 던지는 질문이 인격모독이고 명예훼손을 넘어 욕설에 가깝다.

- 이빨로 사람 혼을 빼는 기술자들이거든.

데이브가 병상에 누워 그 말을 했을 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았다.

격장지계에 의한 유도신문에 말려들면 안 된다.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조조는 강동의 손권에게 유표가 지배하고 있는 형주의 땅을 나누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군사를 일으켜 강동을 거머쥐겠다며 항복을 요구한다.

조조의 막강한 군사력에 두려움을 느낀 손권의 신하들은 조조에 대항하기보다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유비의 군사 제갈량은 손권을 찾아가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조조에게 투항하는 것이 그나마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라고 권한다.

이 말을 들은 손권은 “왜 유비는 투항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갈량이 말하길 “조조는 천자를 핍박하고 조정을 농락하는데, 어찌 한실의 후예인 유비가 역적에게 투항할 수 있겠느냐.”며 손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손권의 부인과 대도독 주유의 부인을 취하겠다는 조조의 시구를 전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손권은 마침내 조조와의 일전을 결정하고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로써 저 유명한 적벽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장수의 감정을 자극해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을 이르는 ‘격장지계(激將之計)’의 유래인데 사람을 흥분시켜 놓고 유도신문을 하려는 수작이 틀림없다.

씨익!

송만술이 웃었다.

만약 데이브가 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목소리가 높아졌고 백도태의 심문에 말려들어 갔을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인상을 쓰며 분노하려던 얼굴이 갑자기 미소를 짓자 백도태가 놀란다.

“백 경사님!”

“허심탄회하게 말해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사님 밑에서 일한 지 반년이 채 안 됐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만술은 덜 마신 커피잔을 들고 카운터로 걸어가 일회용 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직원이 종이컵에 담아 건네자 송만술은 백도태를 향해 꾸뻑 묵례를 하고 커피숍에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백도태 경사는 오른쪽 귀를 만진다.

어이가 없다.

경찰 생활 2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격장지계로 상대의 감정을 흔들어 놓고 부드럽게 접근하는 유도신문에 백이면 백 모두 걸려든다.

일반적인 유도신문은 알아차리고 피하는 피의자들이 있긴 해도 격장지계까지 동원하면 아무리 노련하고 닳고 닳은 사람이라도 백 퍼센트 걸려든다.

“허어…… 참!”

연신 허어 참을 중얼거렸다.

이번 사건이 경위로 진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

제대로 해결한다면 퇴직을 앞둔 만큼 배려 차원에서라도 무궁화 한 개 어깨 위에 거는 건 쉽다.

경위 백도태.

경위 계급과 백씨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너무 쉽게 생각했을까.

첫판을 보기 좋게 뒤집기 당했다.

훌쩍!

완전히 식지 않은 커피를 원샷으로 비운다.

경위로 퇴직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비가 내린다.

두 명의 중환자실 간호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둘은 30분 간격으로 교대를 하면서 수시로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간호사님!”

들려오는 소리에 후임 이태미 간호사가 고개를 돌렸다.

이태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유태수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었는데 이태미는 깜짝 놀랐다.

유태수가 자신의 두 손으로 산소 호흡기를 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이브 환자님, 산소마스크를 마음대로 벗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우리에게 책임을 물어요.”

이태미는 싸늘하게 말했다.

토톡!

하지만 유태수가 거칠게 링거까지 뽑아 버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비명을 질렀다.

“어…… 언니!”

선임 권희수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유태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환자복 속에서 현금을 꺼냈다.

“25만 원씩 오십만 원이오.”

오만 원권 다섯 장씩을 침대 끝내 놓는다.

“핸드폰 좀 빌립시다.”

움찔!

이태미 간호사가 놀라며 옆에 있는 권희수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난 지금 약간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니까.”

“이 간호사, 당직 수간호사님께 전화해.”

권희수 간호사가 말했다.

“두 분 통장으로 지금 당장 천만 원씩 입금해 드리죠. 그렇다고 어떤 범죄를 저지르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밤이면 잠깐씩 외출을 좀 해야 할 듯싶은데 두 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죠. 거래라고 해도 좋고.”

천만 원이란 말에 전화를 하기 위해 걸어가려던 이태미 간호사가 멈칫한다.

“자, 우리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내게 핸드폰을 조금 빌려준다고 하여 두 분 신변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분이 사직서를 써야 할 일은 더욱 없습니다.

아주 쉽고 간단한 일입니다. 난 일방적으로 두 분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지금 제안하는 것입니다.”

스윽!

권희수 간호사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죠. 두 분 계좌번호 부르세요.”

핸드폰을 주었지만 섣불리 계좌번호를 부르지는 못했다.

“그럼 하는 수 없군요.”

번호를 누른다.

잠시 후 신호가 가는 듯 입을 열어 말했다.

“송 과장, 놀랄 것 없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사무실 내 서랍에 보면 아멕스 카드 있어요. 당장 오만원권 현금 이천만 원을 찾아서 가져오세요. 이곳

병원으로.”

“좋아요. 말하죠.”

권희수가 자신의 계좌를 말했다.

그러자 이태미는 기다렸다는 듯 줄줄 털어놓는다.

“아니요. 됐어요. 내가 처리할 테니 쉬어요.”

전화를 끊고 난 유태수는 두 사람의 계좌로 송금을 하기 시작했다.

송금하는데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권희수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거래 은행 뱅킹을 눌러 확인하더니 소스라쳤다.

“허걱!”

진짜로 천만 원이 입금되었다.

“옴마야!”

이태미는 비명까지 질렀다.

두 사람은 너무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원하시는 게 뭐죠?”

선임답게 권희수가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유태수는 조용히 웃었다.

“갈아입을 옷 한 벌만 제공해 주시죠.”

“이 간호사, 체육실에 가면 남자 직원들 입은 추리닝 있을 거야. 한 벌만 가져다줘.”

“네, 언니!”

이태미가 빠르게 중환자실을 걸어 나갔다.

“뭐 하실 건가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침 6시까지는 완벽하게 들어올 테니까.”

권희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그건 불안이었고 숨길 수 없는 긴장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날 도와주었다가 피해를 입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죠.”

하는 걸 보면 거짓말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나 현금 천만 원을 이체해주지는 않는다.

천만 원은 큰돈이고 전화 한 통으로 계좌를 이동할 만큼 가벼운 액수는 더욱 아니다.

***

사람도 차량도 통행이 없다.

부우웅!

아래로부터 라이트가 비추더니 승용차 한 대가 교통사고 현장에 멈췄다.

탁!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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