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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82화 (82/122)

82화 누구지(1)

덜컥!

좌우 앞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는 송만술이고 조수석에서 내린 이는 유태수였다.

유태수는 손전등을 켰는데 사고 장소로 다가가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경찰이 정확한 사고지점을 알아볼 수 있도록 흰색의 락카 스프레이를 뿌려 놓았다.

“이건 벤츠 바퀴 위치인 것 같고.”

송만술 역시 손전등으로 흰색의 락카 스프레이를 비췄다.

“이건 위를 덮친 관광버스 양쪽 앞바퀴 위치인 모양입니다.”

둥그렇게 칠해 놓고 관이란 글씨를 갈겨 써놨다.

유태수는 한참을 서서 스프레이 자국을 살피고 비교하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

“기억나는 것 있으십니까?”

“있지. 생생해.”

유태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관광버스 앞부분이 중앙선을 밀고 들어오자 대리운전사 김낙길은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런데 관광버스는 앞부분만 중앙선을 넘어 온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관광버스는 벤츠를 길가 배수로와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세운 옹벽으로 밀어붙이며 위로 올라탔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 하면서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신을 잃지 않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신은 있는데 왜 그렇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는지 병원 신세를 지고서야 턱뼈가 어긋났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다.

이윽고 두 사내의 주고받는 소리와 문을 넘어온 손에 쥐어진 사시미 칼이 자신을 찔렀다.

이를테면 확인 사살인 셈이다.

즉, 교통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하에 발생했고 사내들의 등장도 각본이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두 간호사는 무척 긴장한 듯 유태수가 들어오자 귓가에 안도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크게 쉬었다.

“돈 벌기 힘들죠?”

유태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천만 원 그저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권희수 선임 간호사가 뽑았던 링거를 다시 팔에 꽂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는 뜻이면서 한 마디가 더 담겨 있었다.

‘돈 천만 원 주었다고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생각 마라.’

경고가 담긴 말이었다.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이미 처음부터 권희수 간호사가 선임이긴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나갔다 오겠다면서 씨익 웃자 권희수 간호사가 말했다.

- 간호사 짬밥도 배부르라고 먹는 것 아니에요.

군대 짬밥 배부르라고 먹는 것 아니라는 뜻과 같은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그 말은 유태수를 훨씬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두 간호사가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다면 안될 일이다.

그렇게 될 경우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간호사 일보다 더 적성에 맞은 건 없을 것이다.

그건 매우 미안할 일이기에 천만 원씩이란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으나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배짱 있는 멘트에 훨씬 앞으로의 거래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회진 시간이다.

수술했던 의사 선부출이 들어오더니 여기저기 살피고 간호사에게 몇 마디 물었다.

“어때요?”

마지막으로 환자인 유태수에게 묻는다.

유태수는 빙긋 웃었다.

웃음이야말로 어떤 말보다 더 환자의 상태를 솔직하게 보이는 기능을 갖고 있다.

선부출은 유태수를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권희수 간호사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한 뒤 사라졌다.

“난 이제 퇴근해요. 조금 있다 교대하는 간호사가 알아서 해줄 거예요.”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 간호사와 차이점이 뭡니까?”

“그건 왜 묻죠?”

“내가 퇴원할 때까지 내 병실을 좀 맡아 달라는 뜻입니다.”

“중환자실을 벗어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유태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야간 근무로 권희수 간호사가 나타났다.

그런데 중환자실이 아닌 유태수가 입원한 병동에 떡 하니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누구죠?”

혈압을 재기 위해 병실로 들어온 그녀가 묻는다.

“중환자실 간호사를 단 몇 시간만에 일반 병실로 이동시키는 건 아무나 못 해요.”

유태수는 가볍게 웃기만 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 과장님!”

마흔 중반가량 되어 보이는 안경 낀 사내가 들어섰다.

뚱뚱한 체격에 키가 작다.

원무과장 전동칠이다.

“불편하신 데는 없습니까?”

키가 작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허리가 넙죽 휘어진다.

원무과장이 직접 올라와 허리를 숙일 정도면 자신이 없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권희수 간호사님!”

“네, 과장님!”

서로의 업무 영역이 다르긴 해도 나이도 많고 과장이라는 것에 권희수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여기 계시는 데이브 유 씨를 잘 부탁합니다. 권 간호사님만 믿습니다.”

“과장님, 염려 마세요.”

권희수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당신은 얼마 먹었기에 여기까지 쫓아 올라와 길 가다 정승 만난 상놈처럼 허리를 숙이냐고 묻고 싶었다.

“불편한 사항 있으면 곧바로 연락해 주십시오.”

“네, 걱정 마세요.”

다시 한번 이마가 바닥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이고 돌아갔다.

“나도 돈에 약하지만 저 인간은 소문이 파다한데?”

어떻게 구워삶았냐는 뜻이다.

“너무 미안하군. 백만 원밖에 주지 않았는데 쫓아 올라와 인사를 하다니.”

액수를 밝히는 건 권희수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다.

지금 나에게 당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질투나 시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였다.

뒷구멍으로 받은 액수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고 파워를 계산하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외출인가요?”

역시 눈치가 빠르다.

난 그런 사람 아니라는 식으로 툭 뱉어 묻는다.

“당분간은.”

서둘러 볼일이 있다.

퇴원할 때까지 기다리면 늦다.

아무리 뛰어난 강력계 형사들일지라도 사건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해버리면 절망적이다.

이번 일 또한 청소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청소를 하기 전에 단서를 잡아야 하기에 무리하지만 움직여야 한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유태수가 병원을 걸어 나왔다.

주차장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잠시 후 지하에서 검정 승용차 한 대가 나오더니 유태수 앞에 섰다.

벌컹!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고 차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부우웅!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서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의경이 바리케이드를 올려주었다.

부르릉!

오토바이는 곧장 경찰서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본관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오토바이가 멈추고 배달부는 뒤에 실린 배달통을 들고 계단을 빠르게 올라간다.

현관문을 들어서더니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사무실이 나온다.

“식사요!”

모두가 저녁 식사하러 간 듯 살내는 조용했고 안쪽 귀퉁이에서 누군가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아저씨, 식사 왔어요.”

“내가 아냐 인마.”

“아저씨뿐인데요.”

“저 안으로 가져다줘.”

배달부는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을 관통하여 또 하나의 복도가 보인다.

복도 끝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아 진짜 바쁜데, 아 몰라요. 나 여기다 놓고 갈 테니 알아서 하세요.”

“야, 이 자식아! 어른이 말을 하면 예 하고 들어야지. 좀 가져다줘. 나 바빠 인마.”

백도태 경사가 눈을 부라렸다.

“돌아 버리겠네.”

배달부는 투덜거리며 통을 들고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왼쪽으로 휘어져 들어가자 쇠창살로 된 유치장이 나타났고 한 사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식사요, 씨팔!”

배달부는 배달통 문을 열고 안에서 자장면을 꺼냈다.

“왜 이제 와 인마, 시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사내가 일어나 다가오며 인상을 쓰자 배달부 또한 와락 눈썹을 구긴다.

“아이 씨팔, 아저씨는 한 시간 전에 시켰는지 몰라도 난 10분 전에 전화 받았거든요. 그리고 언제 봤다고 초면에 인마야 개씨파아알!”

“이런 어린놈의 자식이 말하는 것 좀 봐!”

툭!

배달통 뚜껑을 닫자 사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단무지?”

“기다려요.”

배달부가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철사 두 개를 꺼냈다.

끝이 기역 자로 휘어진 두 개의 철사를 잠긴 자물쇠에 넣고 만지작거리자 철컥하며 열렸다.

“뭐…… 뭐야?”

사내는 단무지를 들고 들어서는 배달부를 보며 놀란다.

“설마 배달부가 유치장 문을 열고 들어오리라는 건 절대 생각하지 못할 테고.”

툭!

들고 있던 단무지 접시를 던진다.

사내는 얼떨결에 받았고 배달부가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더니 타임을 맞춘다.

“5분!”

그러고 나서 품속에서 대나무 한 개를 꺼냈다.

슥!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눈부신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헉!”

사내는 소스라친다.

“당신은 어차피 죽어. 교도소로 들어가면 당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을 거요.”

“사, 사람!”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배달부로 변장해 들어온 유태수의 주먹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빠악!

스트레이트다.

보통 선수들의 훅보다 강해 스훅으로 불리던 주먹이 오랜만에 나온 것이다.

관광버스 운전기사 박소봉은 신음을 흘리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턱!

유태수는 박소봉을 끌어안아 조용히 눕혔다.

푹!

칼끝으로 침을 놓듯 뒤통수 한 군데를 찌르자 파르르 눈썹을 떨면서 눈을 떴다.

타악!

왼손으로 박소봉의 입을 막더니 오른손 칼을 무릎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바지 위로 파고들어 간 칼은 정확히 무릎뼈 사이를 파고들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고통은 가장 강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박소봉의 비명은 유태수의 왼손에 막혀 흘러나오지 못했다.

“듣기만 해요. 얼마 받고 벌인 일이오?”

후확!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유감스럽게도 그날 밤 난 당신의 통화를 거의 들었소.”

흔들흔들!

눈동자가 좌우로 춤을 춘다.

그건 누구냐는 질문이다.

“대답만 하시오.”

그러면서 왼쪽 손목시계를 본다.

1분 지났다.

5분이 최대치다.

그 전에 볼일을 보고 나가면 더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어쨌든 서둘러야 한다.

박소봉은 눈을 감았다.

그건 죽을지언정 입을 열 수는 없다는 단호한 결의다.

고통의 강도라는 것이 있다.

병원에 가면 10을 최고로 봤을 때 당신의 고통 강도는 몇이냐는 질문을 한다.

환자마다 참고 인내하는 성향이 차이가 있어 누구 고통이 더 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단언컨대 지금 박소봉이 겪는 아픔은 인간의 의지로서는 불가능할 만큼이다.

쏙!

유태수는 칼을 뽑아 묻은 피를 박소봉의 바지에 닦았다.

탁!

칼을 대나무 집에 꽂아 넣고 핸드폰으로 박소봉의 얼굴 사진을 찍더니 등을 돌려 나왔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빈 배달통을 들고 복도를 빠져나온다.

“가는 거냐?”

백도태는 뭐가 바쁜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있다.

송만술을 찾아온 이번 교통사고의 담당 형사다.

나이 쉰두 살인데 아직 경사라는 건 두 가지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경찰로서의 능력이 일천할 정도거나 아니면 윗사람에게 절대 고개를 숙이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퇴근 시간이 넘어서도 저토록 일에 매진하는 걸 보면 능력이 없어서 진급이 더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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