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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87화 (87/122)

87화 너와 나의 느와르(2)

맹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얼마 전 체포된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 데나로의 측근 중 한 명인 사랄리란 놈 말입니다. 2년 전 잡혀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잖습니까? 그는 항상 명품 스테파노 리치 정장을 하고

살인을 집행했다고 합니다.”

오래전 이탈리아 경찰의 검거 1순위에 오른 마피아 두목이 30년 만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란 인물로 예순 살이다.

미국이나 본고장 이탈리아나 마피아의 세력은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마피아 대부로 불리는 그가 도주 삼십 년 만에 무장 군인들이 포위한 가운데 체포된 것이다.

문제는 앞서 2년 전 체포된 데나로의 최측근 사랄리였다.

이탈리아 경찰은 데나로가 개입한 암살을 약 일백여 건으로 보는데 이중 50여 명이 사랄리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체포될 당시에도 스테파노 리치라는 고가의 명품 정장을 한 채 애인과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갸웃!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오하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갑자기 정장 차림으로 죽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장의 깔끔한 신사적 품행의 살인자는 국내에서는 없었다고 했다.

“정장이라, 그렇다면 전문가라는 뜻 아닌가?”

경찰에서 보낸 첨부 의견에 야쿠자나 마피아의 청부를 받고 움직이는 킬러들 상당수가 정장 차림이라고 했다.

“전문가?”

국정원 요원을 때려죽일 정도의 실력자라면 전문 킬러가 맞다.

“하면 그놈?”

또다시 떠오른다.

“데이브 유?”

앞서 죽은 김평대 역시 반항 한번 못 하고 죽었다.

범인에 대한 단서 또한 오리무중.

“동일범.”

뭔가 통하는 느낌이 온다.

데이브 유라면 용병 전력을 볼 때 가능한 살인 솜씨다.

“데려와!”

“네에?”

두 사람이 모두 놀라며 오하수를 바라본다.

“잡아 오라고.”

“무슨 혐의로? 영장도 없는데.”

“이 친구야, 언제 우리가 영장 받아 간첩 잡았어?”

“간첩!”

“당장 그놈 끌고 와, 그놈이야. 확실해!”

오하수의 목소리가 좁은 사무실을 쩌렁하게 울렸다.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때로는 길이다.

***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는 승용차 안은 조용했다.

내곡동을 빠져나와 남산 터널을 통과하는 데까지 20여 분 걸렸으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맹사성이 핸들을 잡았고 곽철종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스윽!

곽철종이 오른손으로 아랫목을 만진다.

‘돌아 버리겠군.’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 짚어 말한다면 전주식이 아들 입학식에 참석했다가 화장실에서 맞아 죽은 사건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손으로 자꾸 목을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만진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갈수록 여위어 가는 얼굴을 확인한다.

남에게 털어놓고 말은 못 하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에 놀랍고, 김평대와 전주식에 이어 보나 마나 자기 차례가 돌아올 것이기에 무섭다.

데이브 유.

의심만 할 뿐이지 그를 지목할 수는 없다.

만약 데이브 유라면 경이적인 살인 실력에 두려울 뿐이다.

“잠깐 차 좀 세우지.”

구기 터널 오른쪽으로 차량이 들어서자 말했다.

차가 길가에 멈추고 조수석 문이 열렸다.

차에서 내린 곽철종은 어둠에 덮인 북한산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딸칵!

“어디 편찮으십니까?”

맹사성은 오는 내내 운전을 하면서 곽철종의 눈치를 살폈다.

얼굴도 말라가고 갈수록 말이 없어진다.

“아파 보이나?”

“예전의 선배님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의 나?”

“가장 활기차 계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작전이든 항상 자신감을 갖고 뛰었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왕성한 힘.”

맞다.

놀라운 식욕을 갖고 있었다.

어떤 임무든 내려오면 망설이지 않고 선두에서 뛰었고 반드시 목표를 달성했다.

“꿈이 뭔가?”

홱!

역시 담배를 피우던 맹사성이 놀라 돌아본다.

예상 못 한 질문이다.

지금 꿈이 뭐냐는 질문이 나올 상황이 아닌 것이다.

“난 말이야? 꿈이 없었어.”

맹사성의 눈이 좁아졌다.

꿈이 없다는 말이 갑자기 처연하게 들린다.

어떤 형태든 사람은 자신만의 꿈은 있다.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하는 유아적 꿈에서부터 자식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하는 인간적인 꿈 말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었어. 그런 내게 얼마 전부터 꿈을 가졌지.”

“무엇입니까?”

맹사성의 눈이 빛난다.

어떤 꿈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죽지 않는 것.”

“네에?”

“가지!”

덜컹!

곽철종은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뭐해? 안 가?”

곽철종이 우두커니 내려다보는 맹사성을 향해 말했다.

퇴근한 뒤 아직까지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달라진 건 목에 걸고 있는 넥타이만 풀었다는 것인데 유태수는 손수 끓인 커피를 마시며 거실에서 챔피언스 리그 16강 경기를 보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있었는데 지금은 녹화 중계다.

딩동!

누군가 찾아온 듯 벨이 울린다.

현관 앞에 붙어 있는 인터폰으로 다가간 유태수는 방문자를 확인했다.

낯선 인물이다.

“누구세요?”

“데이브 유 씨 댁이죠? 경찰입니다.”

화면 속에 얼굴을 보이는 사람은 맹사성이었다.

철컥!

유태수는 버튼을 눌러 대문을 열어주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두 명의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는데 유태수의 눈이 짧게 빛났다가 가라앉는다.

맹사성의 뒤를 따라 들어선 사내는 낯이 익다.

곽철종.

자신의 데스노트에 올라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데이브 유, 당신을 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타탁!

맹사성이 다가왔다.

전광석화와 같이 오른팔을 낚아 쥐었고 어느새 수갑이 채워졌다.

철컥!

유태수는 채워진 팔목의 수갑을 보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가시면서 설명 드리죠.”

슥!

유태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유태수는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할수 없다는 듯 맹사성을 따라 대문을 나섰다.

심문은 밤새 이어졌다.

분명 집에서 체포해 올 때는 간첩 혐의라고 했는데 던지는 질문은 전주식이 죽었던 시간을 중심으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캐고 있었다.

- 그 시간에 난 출근 중이었다.

유태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유태수의 발언을 뒷받침할 증거 추적에 나섰다.

전주식이 죽던 그날 데이브 유의 벤츠 차량이 집 앞 도로를 나오는 것이 인근 방범 CCTV에 찍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는 추적이 용이하지 않았다.

출근 시간대였기 때문에 워낙 많은 차량이 도로를 메웠고 같은 차종의 벤츠가 길가 택시만큼이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어쨌든 정확히 9시 45분에 회사 주차장 CCTV에 데이브 유가 찍혔다.

자신의 차를 세우고 내리고 있는 정장 차림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중간이었다.

오는 도중 어디서 무얼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중간에 살짝 빠져 전주식을 죽이고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회사로 출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깜빡한 것이 있었습니다. 데이브는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했습니다.”

심문으로는 원하는 소득을 얻지 못하자 고문을 지시하는 오하수에게 곽철종이 말했다.

멈칫!

오하수도 미국 시민권이란 말에 움찔하며 놀란다.

너무 서두르다 보니 미처 걸러내지 못한 일이다.

경찰도 아닌 국가정보원이 필요에 의해서 영장 없이 긴급 체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심문과 물리적 고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체포 당시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고?”

“협조까지는 아니었지만 몸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군. 한국인이면서 미국 시민이라는 것 때문에 고분고분했었어. 교활한 놈.”

창밖을 보았다.

먼동이 밝아 온다.

아침까지는 돌려보내야 한다.

당장 연락이 두절되면 회사에서 찾아 나설 테고 곧바로 미국 대사관에 실종 사실이 보고 될 것이다.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 선에서는 절대 막을 수 없고 백 퍼센트 징계를 받거나 옷을 벗게 된다.

퍼억!

오하수는 앞에 있는 의자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개지랄이군.”

분노를 참지 못한 오하수가 씩씩거렸다.

백전노장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일 처리는 용의주도하고 깔끔했다.

그래서 팀장이라는 직위까지 올라갔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데이브 유의 일 만큼은 꼬인다.

‘개지랄.’

뭔가 허둥대고 있다.

차분하지 못하니 연거푸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고 속 시원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오하수의 입가로 조금씩 거품이 물린다.

승용차 한 대가 이른 새벽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끼익!

차는 골목 중간에서 멈췄고 조수석 문이 열리며 곽철종이 내렸다.

그는 잠시 뒷좌석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딸칵!

문이 열리고 유태수가 내렸다.

스윽!

차에서 내린 유태수를 향해 곽철종이 담배를 건넸다.

그런데 유태수가 즐겨 피우는 말보로 레드였다.

유태수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자 라이터 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한 개비 피워문다.

후우우!

곽철종이 빨아들인 연기를 뱉었다가 다시 힘껏 빨아 당긴다.

“오늘 보니 경치가 좋습니다.”

곽철종이 주위 산세를 둘러보며 말했다.

“북한산을 제2의 금강산이라고 한다더니 여기서 보니 실감 나는데요.”

온통 소나무다.

북한산에 이토록 수령 백 년은 될 것 같은 소나무들이 많았는지 오늘 알게 되었다.

“저런 소나무는 엄청난데요.”

50여 미터 왼쪽 등성이로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자란 십여 그루의 소나무를 보며 놀란다.

유태수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서서 담배를 피우기만 했으며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데이브 유.”

곽철종이 정색하여 바라본다.

“솔직히 난 데이브 유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입만 아플 얘기지만 정확한 정체가 뭡니까? 물론 데브그루라는 회사의 이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른 신분을 묻는 것이다.

곽철종의 질문 속에는 절대 데브그루라는 투자회사 이사 직함만 지니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당신을 불편하게 했던 우리 식구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팟!

유태수의 눈이 빛난다.

당신을 불편하게 했던 우리 식구 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유태수를 자신들이 죽이려 했음을 고백하는 놀라운 발언이다.

비밀을 목숨보다 소중히 간직하는 정보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누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모를 만큼 곽철종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렇군. 솔직히 서로의 패를 까자는 제안이군.’

나도 털어 낼 테니 당신도 있는 그대로를 좀 보여 달라는 뜻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그런 엄청난 사건을 인정하고 고해하듯 말하는 데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들어 있었다.

당신이 김평대와 전주식을 죽인 것이라면 나에게도 칼을 겨눌 텐데 접을 수는 없겠냐는 용서를 바라고 있었다.

‘겁을 먹긴 했군.’

죽음 앞에 당당할 사람은 없다.

어느 교회 목사님은 걸핏하면 우린 죽어 하늘나라 천국을 갈 것이라며 할렐루야를 외쳤으면서도 막상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처하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며 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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