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90화 (90/122)

90화 달의 노래(3)

남정욱은 침을 삼켰다.

얘기한다고 해도 큰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데리고 오라고 했소.”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단 말입니까?”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그 여자라 호칭했다.

“예!”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 여자의 청소부입니까?”

어둡다.

그러나 남정욱이 무척 놀라는 모습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소!”

유태수는 착잡한 얼굴을 했다.

파팟!

찢어진 옷자락들이 밤바람에 펄럭거린다.

부르릉!

유태수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안 갈 거요?”

자동차 라이트에 비치는 풍경이 바다를 끼고 도는 산속이다.

인적이 없는 것을 보면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꽤 어렵고 힘들 것으로 보인다.

타라는 말에 남정욱은 망설였다.

차량에 동승한다는 건 동료나 우군의 개념이다.

최소한 적은 아닌 것이다.

자신은 조금 전까지 유태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좋을 대로 하시죠.”

“잠깐!”

차를 돌려 가려는데 남정욱이 재빨리 다가왔다.

탁!

조수석 문을 열고 옆자리에 앉는다.

부우웅!

차는 현장을 떠나갔다.

차량은 통일로를 달린다.

유태수는 자신이 끌려간 곳이 적성 인근이라는 걸 알았다.

출발하고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 칼자루를 쥐었다고 할 수 있는 유태수가 침묵하자 남정욱은 더욱 입을 열지 못했고 가끔씩 슬쩍 눈치를 살피는 것이 전부였다.

“아들은 잘 큽니까?”

차가 구파발 근처 신호등에 걸렸을 때에야 유태수가 입을 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책을 많이 읽어야 할 텐데.”

홱!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남정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아들 남기남의 장래 꿈이 소설가다.

학교 공부도 줄곧 잘하지만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히 독서량은 많은데 얼마 전 일일교사가 되어 갔을 때 담임 선생도 글재주가 좋다는 칭찬을 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무녀독남 아들의 꿈이 소설가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 중3 정도 됐을 텐데.”

남정욱의 눈이 더욱 빛났다.

자기 아들도 중3이다.

“여기서 그만 내리시죠.”

유태수가 오른쪽 길가로 차를 세웠다.

톡!

문의 잠금장치를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남정욱이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물어왔다.

“어떻게 내가 대리기사로 올 줄 알았습니까?”

유태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선수들끼리 왜 이러십니까?”

“그렇다면 저희 이사장님께서 날 보내리란 것까지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씨익!

유태수가 따지듯 묻는 남정욱을 돌아보았다.

“내리시죠. 그만.”

딸칵!

문을 열고 내렸다.

하지만 남정욱은 문을 닫지 않고 허리를 구부린 채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소설가 꿈을 갖고 있다는 지인의 성이 뭡니까?”

“남 씨요!”

탁!

차가 급출발하면서 문이 닫혔고 남정욱은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남 씨.’

자신도 남 씨다.

딸칵!

남정욱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

목숨을 놓고 싸움을 벌일 때도 그렇고 차 안에서 소설가가 꿈이라는 아는 사람 아들 얘기를 하는 데도 목소리에 전혀 적의를 느낄 수 없었다.

‘설마 나를.’

갑자기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숨을 몰라도 패한 사람은 사지 하나 정도는 충분히 잘라버릴 수 있는 살벌한 전투였다.

그런데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차까지 태워다준다.

‘어떤 메시지가 있다.’

흐지부지될 일이 아니다.

상대방은 자신에게 분명 어떤 메시지를 남겼다.

그걸 알아야 한다.

자신을 향해 던진 메시지.

목숨을 살려준 것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남정욱은 삶의 중대한 시기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

뉴욕을 갔던 일은 생각보다 더 좋은 효과를 얻었다.

가장 앞서간다는 테슬라와 전기차 협력 및 로봇산업 교류를 위해 양측이 만나 서로 만족하는 효과를 얻어 냈다.

사실 이번 뉴욕 방문은 유종태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고 심각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 유장풍이 아닌 자신이 나선 첫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어떤 결과를 얻어 내느냐에 따라 호시탐탐 아버지 뒤를 노리는 다른 형제들을 따돌리느냐 마느냐가 결정됐다.

“고생 많았어.”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학창 시절부터 장남이라는 이유로 꾸중과 질책이 다반사였다.

잘했어도 결코 잘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속이 상할 때마다 재벌가 큰아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 여기며 애써 분노와 서운함을 삼켰다.

“어제 아침에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머스크.”

흠칫!

테슬라 대표 일론 머스크가 전화를 했다는 말에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무슨 말을 했을까.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이것저것 얘길 나누었는데 갑자기 축하한다고 하지 뭐냐. 축하받을 일이 없어 무슨 축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너 얘길 하더구나. 회장님을 직접 보는 것 같았다고 말이다.”

“으음!”

유종태는 끓어오르는 감동을 눌렀다.

유장풍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 전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아들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

학업 성적도 뛰어나지만 주위 친구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면서 무척 훈훈한 심성을 가졌다는 칭찬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자식에 대한 칭찬은 바로 그런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한 기분에 온몸이 붕 떠 버리는 느낌이다.

지금 아버지 유장풍도 그런 심정일 것이다.

맏아들의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볼 때마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 넌 아무리 봐도 아니야.

후계 순위에서 한참 밀린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 마음에 들까.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닥치는 대로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자신이 맡은 회사의 매출이 높아졌고 주위로부터 칭찬이 들려왔다.

그런데도 아버지 입에서는 잘했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손에 피를 담그기 시작했다.

아버지 마음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다.

물론 이번 일은 피를 담그는 일이 아니었지만 기어이 면전에서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

“이제 뭣 좀 알겠냐?”

“아직 멀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그래야 소자가 좀 더 많은 것을 배우지 않겠습니까?”

“헛헛헛!”

오래오래 건강하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말에 감정이 고조됐을까.

유장풍은 호탕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큰아이는 지금 뭐 하고 있어?”

아내 구혜주를 지칭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미술관에 출근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에이! 줄 것이라면 냉큼 줘버리지.”

아내는 무척 조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어머니 채무령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점심 약속 없으면 아비와 먹자.”

“감사합니다, 아버지!”

선약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식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절대 없었기에 흔쾌히 대답한 것이다.

비서 정준구는 들어서는 유종태를 보며 일이 잘됐음을 직감했다.

유종태가 웃을 일은 한 가지뿐으로 아버지 유장풍에게 칭찬받는 일이었다.

“회장님으로부터 꾸중은 없었나 봅니다?”

털썩!

유종태가 소파에 주저앉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점심을 먹자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아버지와 점심 좀 같이 하는 것이 뭐 그렇게 좋을 일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벌가는 다르다.

재벌 총수는 아무나하고 같이 식사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식이 적지 않은 유장풍으로서는 자식들과의 거리를 무척 냉정하게 둔다.

어느 아들과 거리를 좁히면 다른 자식들이 곧바로 반응을 한다.

심지어는 뭔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그 아들을 경계하고 감시한다.

태천그룹은 아니지만 어느 재벌가에서는 둘째 아들이 해외 출장 중 강도를 만나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말이 강도이지 실상은 위험을 느낀 자식들 중 누군가가 갱단을 동원해 죽였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둘째 아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 범죄였던 것이다.

재벌가는 피를 나눈 형제는 절대 없다.

면전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칼을 꽂는 무자비한 적일 뿐이다.

“드디어!”

정준구가 후계 구도가 세워지는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본다.

유종태는 왼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섣부른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알아보라는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아, 예. 데이브 유는 장례식이 끝난 이후 평소처럼 정상적인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며칠 전 태천미술관에 들른 것 말고는…….”

“태천미술관?”

유종태가 깜짝 놀란다.

“그냥 전시회 관람이었습니다. 이번 바로크 초대전이 어디 보통 전시회입니까? 워낙 거장들의 작품이 걸리다 보니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보냐 하며 전국에서 밀려들고 있습니다.”

데이브 유의 전시회 관람을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아직도 불편하신지?”

정준구가 눈을 빛냈다.

유종태는 다리를 바꿔 꼬며 이마를 약간 찡그렸다.

“그게 말이야.”

유종태는 이마를 찡그렸다.

‘상주.’

가족도 친지도 아니고 지인은 더욱 아닌 데이브 유가 죽은 칼잡이 장례식 상주로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세워진 조화들의 면면.’

데이브 유가 상주로 나타난 이유와 뒷골목을 노니는 사내 한 명 죽었을 뿐인데 세계적인 헤지펀드 보스들과 글로벌 기업들의 총수가 보낸 조화를 세워 놓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해석이

되지 않는다.

사망한 채석교를 잘 아는 동료들에 의하면 자신들도 도무지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라고 했다.

채석교는 데이브 유를 죽이려다 역으로 당한 사내다.

피해자가 가해자 장례식장에 나타날 수는 있다.

그러나 상주로 등장하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들어 본 바 전혀 없다.

거기다 미국 대사까지 채석교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조화를 보냈다.

좋다.

데이브 유가 미국인이기도 하고 어찌어찌 현 미국 대사와 아는 사이라고 치자.

자기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죽은 곳에 조화 하나 보내달라는 부탁이 가능한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의 죽음이다.

그리고 부탁한다고 낼름 보내줄 수 있는가.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유종태의 고개가 돌아간다.

정준구는 한쪽에 서 있었다.

“그냥 짧은 제 견해인데.”

“편하게 말해.”

“깡패들은 동생이 죽으면 문상을 가는 의리를 보입니다.”

“그렇겠지.”

“상주가 되면 채석교의 직계 족보들을 쭈욱 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팟!

유종태의 눈이 빛난다.

“그렇게 되면 채석교의 배후에 누가 있고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죠.”

“문상객으로 와도 그건 가능한 일 아냐?”

“상주가 되어 맞절을 하며 통성명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상당히 이유 있는 추론이다.

“좋아. 그렇다 치고 조화들은 그럼 뭐야?”

“경고로 봅니다.”

“무슨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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