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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집 청소부-98화 (98/122)

98화 작업(2)

그러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찡그리며 눈동자를 굴린다.

“저기!”

임동술은 살벌하게 말했지만 자신은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사…… 사무실로 잠깐 오시라고 합니다.”

유태수가 고개를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오칠성은 유태수를 데리고 돌아섰다.

도박장 안쪽으로 걸어가자 바닥에 자줏빛 양탄자가 깔린 복도가 나왔다.

복도 좌우 벽에는 세계적인 갬블러들의 게임 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왼쪽으로 굽어진 복도를 따라가자 굳게 닫힌 나무 문 하나가 나왔다.

딸칵!

오칠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멈칫!

사무실에는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내들 다섯 명이 미리 와 대기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기괴하다.

히죽!

임동술이 웃는데 넌 이제 죽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유태수였다.

“기천수 씨는 아직 안 왔군요.”

파팟!

임동술의 눈이 좁혀졌다.

기천수를 기다리기 위해 업장에서 구경하듯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또한 다섯 명의 사내들을 보고서도 시큰둥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기서는 금연입니다.”

오칠성이 말했다.

“저 재떨이는 뭐요?”

안쪽 책상 위에 유리 재떨이 한 개가 있는데 기천수가 사용하는 것이다.

기천수는 되고 유태수는 안 된다는 뜻이다.

덜컹!

문이 세차게 열리고 기천수가 들어섰다.

담배를 피우는 유태수를 발견한 기천수가 멈칫하더니 임동술을 바라본다.

임동술이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떨구자 기천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또한 직원들은 보여도 데리고 간 동생들 모습이 없자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지이잉!

기천수가 쥐고 있던 핸드폰을 받아 들었는데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잠시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다 통화를 시도한다.

“여보세요!”

“중앙병원 야간 응급실입니다. 김나성 박광도 지동식 씨 보호자 되십니까?”

거명된 세 사람은 유태수를 사냥하러 떠난 임동술의 부하들이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입니다. 와서 서명 좀 해주시죠.”

기천수는 굳은 얼굴로 몇마디 나누더니 전화를 끊었다.

“칠성이 가봐. 가서 사인하고 병원비 계산해!”

“예!”

오칠성이 밖으로 사라졌다.

후우우!

담배를 피워 문 기천수가 말했다.

“모두 나가서 일해.”

사내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나갔고 기천수는 임동술을 향해 말했다.

“너도 병원 다녀와.”

“괜찮습니다.”

“다녀와!”

임동술은 절뚝거리며 사무실을 나갔고 이제 둘만 남았다.

기천수가 자신의 자리에서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유태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다.

“누구십니까?”

자신을 공격하러 간 부하들을 칼로 회를 쳐 놓고 119를 불러들였다.

그건 사건을 공식화해도 자신의 신변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신들이야말로 힘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태수를 사람을 해친 피의자로 엮어 교도소에 처넣을 수도 있다.

그들이 유태수를 죽이러 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자신 있는 모양입니다?”

유태수가 가볍게 웃는다.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천수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다가오자 기천수가 긴장하며 서랍으로 손이 갔다.

서랍 안에는 자신을 언제든지 안전하게 지켜줄 치명적인 무기가 들어 있었다.

부우욱!

하지만 유태수는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유태수는 맞은편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무슨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살아 나갈 자신? 아니면 병원에 실려 간 세 사람의 가해자로서 법적 책임을 피할 자신을 말하는 겁니까?”

지이잉!

그때 유태수의 오른손이 아랫주머니로 들어갔다.

탁!

통화 버튼을 누른다.

“잡았습니다.”

“어떻게 잡았소?”

“자고 있는데 잡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죠. 가볍게 마취를 시켜 차에 싣고 나왔습니다. 잠깐만요. 마누라 가희경이 깨어나는 것 같은데요.”

워낙 조용한 사무실이었기에 통화 내용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와당탕!

기천수가 너무 놀라 일어나느라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가희경은 자신의 아내다.

전화 통화 내용대로라면 지금 아내와 아들이 유태수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 새끼!”

탁!

책상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는데 놀랍게도 권총이었다.

“리볼버로군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라크에서 총기를 다뤄본 경험이 적지 않다.

리볼버는 방범이나 호신용이면 모를까 전쟁 중 사용할 권총은 아니다.

어쨌든 한국처럼 총기 청정국가가 없는데 어렵지 않게 꺼내는 걸 보면 자동소총까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태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내게 권총을 겨누고 있소. 내가 죽고 내일 아침까지 연락이 없거든 둘 모두를 죽이세요.”

“그러죠.”

부르르르!

권총을 쥔 기천수의 오른손이 경련했다.

가희경.

비록 자신은 뒷골목 세계에서 몸을 담고 있지만 아내만큼은 양지에서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살아간다.

화가.

21세기 한국 화단을 이끌어갈 5인에 뽑힐 만큼 아내의 활동은 왕성했고 해외 화단에서도 굉장한 주목을 받고 있다.

청혼 당시 기천수는 금우철거용역 부장이었다.

금우철거용역은 태극동지회장이 운영하는 개인 회사다.

카지노 사업이 확장되면서 이곳 대표를 맡고 있는데 아내의 아버지 가청목은 교육부 차관까지 지낸 고위 공무원이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아내와 자식 목을 따서 보내드릴까요? 택배로 받아 보시고 싶으면 말씀하시고.”

무자비한 말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뱉는다.

적지 않은 피를 양손에 묻히고 살아왔지만 자신도 아직 이 정도 섬뜩한 말은 뱉어본 기억이 없다.

“기 대표님.”

유태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도 그 자리까지 오르는 데 숱한 위험을 헤쳐야 했겠죠. 경쟁자는 밟고 선후배 등 뒤에 무수한 칼을 꽂아가며 한마디로 인정은 사치고 도리는 술안주일 뿐이라는 야수의 심정으로

살았기에 지금 그 자리에 앉았을 거요.”

유태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당신만 그렇게 죽이고 회 치고 살아간다는 생각 하지 마세요. 당신보다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 의외로 많습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기천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독기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두 눈에서는 새파란 광채가 톡톡 소리를 내며 튄다.

“날 죽이라고 한 인물이 누굽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데이브 유 제거 작전은 철저히 자신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잡혀 있는 아내와 아들이 죽는다.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는 건 조금 전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유태수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 많다.

하지만 가족을 인질로 잡고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용병 출신이라는 정보는 이미 얻었다.

전쟁터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인 경험은 풍부할 것이다.

살인 경험이 넘친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나도 내려오는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입장이오. 태천그룹에서 의뢰가 들어왔다는 것 정도 말고는 아는 것이 없소.”

가족을 살려야 한다.

아내도 살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존경한다는 아들이다.

- 우리 가문에 이혼은 없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인사를 하러 갔는데 장인어른이 대뜸 말했다.

그건 비수가 되었고 지워지지 않는 신념으로 오늘까지 자신을 지배해 오고 있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던 유태수가 일어섰다.

“오늘로 우리의 거래를 깔끔하게 마무리합시다. 병원에 있는 부하들 문제는 당신 선에서 정리하고.”

유태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가 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유태수는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탁!

문이 닫혔다.

기천수는 들고 있던 권총을 내렸다.

지이잉!

핸드폰에 가희경이란 이름이 뜬다.

아내 전화다.

“여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꿈이었나. 어디론가 끌려간 것 같은데 깨어보니 다시 집이야. 당신 뭔 일 없지?”

후우우!

길게 안도의 숨을 쉰다.

“여보, 그래. 철무는?”

“지 방에서 자!”

“조금 이따 들어갈게.”

아내를 달랜 뒤 전화를 내린 기천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배신이다.

뒷골목 생존술 첫 번째가 배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됐든 배신은 그 바닥에서의 종지부다.

누군가 인생을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이라는 것이 온다고 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얘길 들었다.

기천수는 자신에게도 그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흥하느냐 망하느냐.

사느냐 죽느냐.

기천수의 이마가 갈수록 좁혀진다.

***

설태왕이 귀국했다.

데브그루의 투자자 모집에 관한 일로 몇 개월 뉴욕에 머무른 것이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유태수의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와락!

다짜고짜 유태수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내가 사람은 제대로 봤습니다. 이사님은 최고입니다.”

태천물산을 적대적 M&A로 몰아갈 것 같은 냄새를 진하게 풍기면서 주가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고 일거에 빠지면서 천육백억이라는 거액을 가뿐하게 챙긴 것이다.

물론 유태수의 오늘이 있기까지 자신의 적지 않게 가르치고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이든 최종 판단은 당사자 몫이다.

그 당사자 몫을 분명하게 보여주며 뉴욕의 언론에까지 대서특필되었다.

“로버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태천그룹을 어떻게 보십니까?”

설태왕은 커피를 훌쩍 마시며 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죠. 우리가 그들을 상대로 거둬들인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아십니까? 구십억 달러에 이릅니다.”

맞다.

한화 십조가 넘는다.

그러니 당연히 고마운 존재 아니냐는 뜻이었다.

“태천그룹을 공중분해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설태왕이 깜짝 놀란다.

태천그룹의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기업이다.

포브스가 작성한 전 세계 기업 인지도에서 35위를 차지할 만큼 대내외에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 막강한 기업을 공중분해라니.

“불가능할 건 없죠. 하지만 잘못 공격했다간 깡통 찰 수도 있습니다.”

“말했잖소. 알짜배기 몇 개만 건드리면 어떻겠냐고?”

“미스터 배.”

설태왕의 눈이 빛난다.

“사실 미스터 배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물어봐요.”

“진실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우린 전우(戰友)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설태왕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전우(戰友).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정하는데 이보다 더 빼도 박지도 못할 만큼 단단한 결속력을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친구(親舊).

형제(兄弟).

인간관계를 가깝게 만드는 표현은 많다.

우린 친구다.

앞으로 우린 형제라는 선언이 이어지면 양측의 관계는 비장해진다.

전우는 그런 의미의 단어 중 가장 뗄 수 없는 단어다.

용병이었다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설태왕은 우린 전우라고 규정해 버렸다.

전장에서 생활을 함께하는 동료를 말한다.

전장은 공인된 살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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