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죽다 살아난 사람들(1)
진흙 갯벌은 모래 갯벌과 다르다.
빠지면 나오지 못한다.
빠져나오기 위해 움직이면 늪에 빠진 것처럼 더욱 깊이 들어가고 끝내 온몸이 파묻힌다.
물살이 빠른 걸 보면 지금 썰물이 시작되고 있다.
넉넉잡고 30분이면 강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그 드러난 갯벌 속에 자신을 던져 버리겠다는 뜻이다.
물에 떠내려가면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지만 갯벌 속에 처박히면 영원히 그렇게 묻히는 것이다.
완벽한 매장이 되어 버린다.
까아악!
그때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기절한 여자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의식을 차린 여자는 문을 열고 나오다 흙탕물로 범벅이 된 차명춘을 발견하고 놀랐다.
“우리 여자분의 성함은?”
“왜요?”
여자가 싸늘하게 쏘아본다.
퍼어억!
여자에게 다가간다 싶었는데 어느새 유태수의 주먹이 뻗어나갔다.
“매를 벌어요.”
여자는 한 방을 맞고 차명춘이 있는 물구덩이로 처박혔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빗물에 쓸려왔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 자리에 버려진 것일까.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각목 하나가 길가에 나뒹굴고 있었다.
착!
물에 젖은 각목을 주워 들더니 흙탕물에서 일어서는 여자의 등짝을 후려쳤다.
“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쓰러졌다.
뻑!
뻐어억!
그냥 두들겼다.
각목을 휘두르는데 자비나 용서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닥치는 대로 때렸다.
퍽퍽퍽퍽퍽!
처음에는 저항하듯 일어나려던 여자가 흙탕물에 완전히 엎어졌다.
일어나려고 꿈틀거리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 자꾸 엎어졌고 흙탕물을 삼킨 듯 토악질을 했다.
빠악!
유태수가 엎어진 여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여자가 벌러덩 하늘을 보며 누웠는데 커피숍에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우며 요염하기까지 했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완전 진흙으로 만들어 놓은 굽기 전 도자기다.
“우리 여자분 이름이 뭐죠?”
여자는 헐떡거리며 더듬거렸다.
“진혜수, 올해 서른넷.”
묻지 않은 나이까지 가르쳐준다.
유태수는 핸드폰 번호 하나를 눌렀다.
“이름 진혜수, 올해 나이 서른넷. 빨리 알아봐 주시죠.”
가정 문제 상담소장 백기만이다.
30분도 되지 않아 백기만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문자를 살핀 유태수가 피식 웃는다.
“사기전과 4범이신데 그건 태천병원장 고무룡 박사님 말고도 여러 명의 남자들을 삶아 드셨다는 뜻이겠군요?”
진혜수라는 여자는 몸을 떨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에 절망하는 몸짓이었다.
“갯벌이 드러났습니다. 보시죠!”
츠으으으!
유태수는 두 사람을 질질 끌어다 다리 아래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골이 파인 곳으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작은 언덕처럼 시커먼 진흙 갯벌이 나타났다.
휘익!
유태수가 주먹만 한 돌멩이 한 개를 집어 던졌다.
돌은 퍽 소리를 내며 진흙 깊숙이 묻혀 사라졌다.
“으으!”
“사, 살려주세요!”
차명춘은 신음만 토했고 여자는 혹시라도 집어 던질까 봐 유태수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조용히 살게요! 두 번 다시 고 박사를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내가 나빠요.”
히죽!
유태수가 웃었다.
그건 살려 주겠다는 말도 아니었고 죽이겠다는 말에 가까운 반응이었기에 여자를 더욱 다리를 붙들었다.
“제발!”
유태수의 발을 붙든 여자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고무룡 박사는 기겁했다.
차명춘과 진혜수가 태천의료원에 입원한 것이다.
심지어 차명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고무룡 박사는 서둘러 차명춘이 입원한 병실을 찾아갔다.
시체를 걸어서 나가도록 할 만큼 의술이 뛰어난 곳도 아니고 서울 시내의 하고많은 병원 놔두고 하필 태천의료원이란 말인가.
필시 자신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
입원했다는 자체가 자신에게는 무자비한 고문이고 협박이다.
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제대로 그들의 덫에 걸린 자신의 잘못이다.
애써 쌓아 올린 명예를 돈 십억에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멈칫!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로 입원을 했을까.
이제 와 후회를 해봐도 너무 늦었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죽일.’
자신에 대한 꾸지람인지 아니면 차명춘을 향한 것인지 모를 욕을 뱉으며 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반응이 없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루 이용료가 50만 원이 넘는 특실이다.
‘개자식.’
이번에는 분명하게 차명춘을 향해 욕을 했다.
필시 자신을 믿고 고가의 특실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들어서던 고무룡 박사가 멈칫했다.
혼자 누워 있는 줄 알았는데 보호자로 보이는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화악!
침대 있는 곳으로 다가간 고무룡은 소스라쳤다.
누워 있는 사람을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차명춘이 아니다.
당신 누구냐고 물으려는데 차명춘이 말했다.
“박사님 오셨습니까?”
목소리는 차명춘이다.
“어어엇!”
자세히 보니 차명춘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데 얼굴이 만신창이다.
멍이 들고 붓고 여기저기 살점이 너덜거리기까지 하는 처참한 몰골에 할 말을 잊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박사님.”
차명춘은 몇 번을 일어나 앉으려 했지만 자꾸 넘어졌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저승사자처럼 굴던 차명춘이 눈물까지 보이면서 잘못을 뉘우친다.
딸칵!
그때 문이 열리고 백기만이 들어섰다.
“진혜수에게는 제가 따로 여자 한 명을 붙여 놨습니다. 진혜수 정도는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는 여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백기만이 병실을 돌아나갔다.
“박사님, 앉으세요.”
사내, 유태수가 자리를 권했다.
고무룡은 머뭇거리다 유태수와 마주 앉았다.
유태수는 맞은편에 앉은 고무룡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진혜수 같은 여자가 꼬리를 치는데 넘어가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죠.”
“누, 누구십니까?”
“영미가 의대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흠칫!
고무룡이 놀란다.
고영미는 자신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자식을 더 낳기 위해 많은 노력과 의학적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딸 하나로 끝내야 했다.
그런 자식의 이름을 알아서 놀랐고 아울러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병원 직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잘 알고 있다.
대학 가기 전 병원에서 봉사활동도 했으며 워낙 붙임성이 좋아 귀여움을 받았다.
꿀꺽!
협박은 아닐 듯싶다.
사내의 목소리에 온화함이 배었다.
마치 잘 아는 사람을 부를 때의 그럼 정감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긴장을 놓을 단계는 아니고 고무룡은 유태수를 살폈다.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이다.
환자로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가족 얘기를 할 리는 더욱 없는데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부탁 하나 하죠.”
고무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부탁(付託).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관건은 관계다.
부탁을 할 만큼 상대와 소통하고 지근거리에서 교류하는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부탁은 할 수도 없고 해도 상대가 받아 주지도 않는다.
부탁은 아무에게나 하는 일이 아니다.
무리한 부탁은 역효과를 낳고 그나마 얇은 관계까지 단절시킬 수가 있다.
처음 본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신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장풍 회장님의 건강 상태를 나에게 수시로 귀띔해주시죠.”
콜록!
너무 놀란 고무룡이 기침을 했다.
“어렵습니까?”
“이보시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아직도 내가 누군지를 모르신단 말입니까? 무너지기 직전인 박사님의 인생을 다시 세워주었잖습니까? 그 정도면 그런 부탁쯤은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유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병원에 있는 유장풍을 대신해 유종태가 중요 의사 결정권을 인계받았다.
회장직무대행.
그가 1순위로 손을 댄 건 유장풍 회장의 입원 소식이 바깥으로 흘러나간 일에 대한 조사였다.
엄청난 비밀이 새어 나간 것이다.
며칠 사이에 시총에서 80조가 사라졌다.
기업 총수의 건강은 그만큼 시장에 주는 파장이 큰 것이다.
국가로 본다면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적성국에 알려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유동풍을 비롯해 인사팀장 오도석과 태천자동차 사장 노기술과 법무팀장 오만철이 모였다.
형제들 중에서도 유장풍의 입원 사실은 큰아들인 자신밖에 모른다.
물론 밖으로 새어 나가면서 동생들도 알게 되었고 형님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아무리 입단속이 중요하다지만 우리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것이 어딨냐는 항의를 받았다.
증권시장에 퍼지기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유 사장!”
유일한 창업 동기로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노기술이 입을 열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어. 이제 와 누가 흘렸는지 찾아내서 뭘 하겠다는 건가. 자칫 서로 의심하다 보면 안으로 곪을 수가 있네.”
“사장님, 그게 아니죠.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합니까? 안으로 곪는다고 덮을 것이 있고 곪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누군지 찾아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팔십조가 하루아침에 날아갔습니다. 그걸 덮자고요?”
“좋네. 회장님 와병 사실이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 흘러나갈 수가 없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찾아낼 생각인가? 설마 초등학생 시절처럼 눈 감고 조용히 선생님이 용서할
테니 친구 돈 훔쳐 간 사람 손들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비록 유장풍 회장의 창업 동기이지만 상대는 큰아들이다.
그것도 나이가 쉰에 다가서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태천그룹의 이인자다.
“못할 건 또 뭐 있습니까?”
유종태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누군지 자수하지 않으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해서라도 반드시 잡아낼 것입니다. 왜요? 내가 못 할 것 같습니까? 나 유장풍 회장의 아들입니다. 뚜껑 열리면 보이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자자! 진정하시죠. 두 분 다.”
오도석이 자제하라는 듯 양 손바닥을 밑으로 누르는 시늉을 했다.
“노 사장님,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입니까? 당신이 아직까지 옷 벗지 않고 현역에 남아 있는 게 누구 덕인 줄 알고나 계십니까? 그만 쉬게 해줘야겠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말렸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일이 아닌 건강을 위한 운동이다. 아버지 말벗이 될 만한 분이 어디 있냐? 마음을 털어 놓을 분이 노 사장님 말고 또 있냐며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해준 사람입니다.”
“잠……!”
오도석이 잠깐 하며 뭔가 한마디 하려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닫는다.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다른 사람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노기술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분노를 애써 누르는 듯 수시로 얼굴색이 변했고 눈자위가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당신.
아버지 친구를 면전에서 당신이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를 한다……. 기가 막힐 일이군, 기가 막힐 일이야. 헛헛!”
노기술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걸어 나가 버렸다.
탁!
문이 닫혔다.
숨이 막힌다.
덥다.
모든 시선들이 유종태를 주시했다.
그는 책상 위에 올린 양 주먹을 말아 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