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105화 (105/122)

105화 머슴들의 반란(1)

태천그룹에 다소 비판적인 칼럼니스트는 「전극준 일어나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고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당장 누구든 재벌집 자식으로 만들어준다면 있는 회사 굴리는 것 정도는 어느 재벌 자식 못지않을 만큼은 할 수 있다는 말로 재벌 2세를 폄훼했고 전극준을 높인 것이다.

한국 재벌집 자식이면 개든 소든 경영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뭐?”

유상주가 눈을 치켜떴다.

“뭐라고 했어요, 지금?”

결재가 끝나고 차 한잔 마시는데 양성국이 들어와 보고를 했다.

“아시아 카드 대표 자리에 전 사장님이 유임됐습니다.”

유상주는 이마를 찌푸렸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더니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듯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다시 말해봐요. 그 사람이 대표직을 맡았다니?”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조금 전 흘러나온 소식입니다. 지금 인터넷 판에는 떴습니다.”

유상주는 재빨리 켜놓은 노트북 화면을 뉴스 기사에 맞췄다.

「(속보) 전극준 아시아 카드(구 태천카드) 대표이사 선임.」

「(속보) 전극준 나는 죽지 않는다.」

「(속보) 전극준…….」

모든 언론이 속보로 기사를 올렸다.

한참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기사를 읽던 유상주는 피식 웃었는데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야?”

그러면서 흘긋 서 있는 양성국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런 차돌을, 그 사람들 제정신 맞아?”

“글쎄, 저도 좀 놀랐습니다.”

“아시아 카드 대표가 미국인이라고 했지?”

“마이클 무어라고 헤지펀드 매니저였습니다. 정확한 정보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 진짜 웃기네. 뭐가 이래.”

유상주는 깔깔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버크셔 헤서웨이 투자와 워렌 버핏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치솟던 아시아 카드 주가가 전극준의 재임용 소식에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기세를 꺾지 못했다.

며칠 숨 고르기 하듯 관망세가 이어지더니 아시아 익스프레스의 주가는 다시 뛰기 시작하였다.

버크셔 헤서웨이와 워렌 버핏이란 이름은 브랜드다.

그것도 중저가 따위가 아닌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다.

명품 브랜드의 물건을 큰돈을 주고 아낌없이 구매하는 건 그만한 가치를 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이름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매수해도 괜찮은 무게를 갖고 있었다.

팔자는 없고 사자만 이어지는 시장이다 보니 오르고 또 올랐다.

인수합병 전 주당 7,500원 하던 주가가 아시아 카드로 탈바꿈하면서 지금은 88,000원을 유지했다.

약 12배가 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소폭 상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

승용차 한 대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맨 마지막 골목길에 멈춰 선 승용차는 천천히 안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더니 이층 단독주택 앞에 멈춰 섰다.

딸칵!

운전석 문이 열리고 송만술이 내렸는데 깔끔한 정장이었다.

뒤이어 오른쪽 뒷문에서 전극준이 내렸는데 상당히 긴장한 듯 보였다.

탁탁!

옷의 먼지를 털고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살피면서 송만술을 바라보았다.

“가시죠!”

송만술이 앞장을 섰다.

딩동!

송만술은 대문의 벨을 눌렀다.

딸칵!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대문이 열린다.

송만술이 앞서고 그 뒤를 전극준이 따라 들어갔는데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을 둘러보던 전극준의 눈이 빛난다.

왼쪽 담벼락 가까이에 샌드백 하나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복서 백.’

전극준은 샌드백의 크기와 생김새를 보고서 단번에 발차기 단련보다는 복서들이 치는 샌드백임을 간파했다.

“뭘 보십니까?”

앞서가던 송만술이 현관 앞에서 몸을 돌렸다.

“샌드백 보시는군요. 이 집 주인이 그것 좀 칩니다. 한 번 봤는데 흔히 하는 말로 자세 나오더군요.”

“아, 네!”

전극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앞치마를 한 유태수가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탁!

유태수를 본 전극준이 순간 휘청하며 왼손으로 벽을 짚었다.

“왜 그러세요?”

송만술이 깜짝 놀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겨우 몸을 바로 세운 전극준은 실내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실로 들어섰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녁 다 되어 갑니다.”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유태수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전극준은 어금니를 물었는데 뭔가 놀란 것 같았다.

거실을 스윽 살펴봤지만 특이한 것이라고는 없고 그 흔한 그림이나 조그만 인테리어 소품 하나 없다.

현관 유리 귀퉁이에 있는 화분 몇 개가 전부였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시선이 멎는다.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십니까?”

송만술이 전극준을 의식한 듯 존댓말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부엌 식탁에는 반찬 예닐곱 가지가 차려져 있고 유태수는 소고기를 넣어 끓인 뭇국을 뜨고 있었다.

“야, 뭇국 냄새 좋습니다. 그런데 아침인데 완전 풀밭이군요.”

김치와 나물 종류가 전부였고 국에 들어간 소고기가 유일한 육류였다.

송만술은 아침을 잘 먹어야 한다며 건강을 위해 어쩌니저쩌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쉬이익!

밥솥에서 수증기가 빠지며 다 됐음을 알린다.

“모셔 와!”

송만술이 웃으며 돌아나갔다.

잠시 후 송만술이 전극준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식탁에 김이 피어나는 공깃밥까지 차려져 있었다.

화락!

앞치마를 벗어 의자 위에 건 유태수가 말했다.

“앉아서 식사합시다!”

유태수는 전극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잠깐!”

송만술이 앉으려는 두 사람을 제지했다.

“대표님께서는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이사님께서는 소중한 분만 집으로 모셔 와 식사 대접을 합니다. 특히 아침 식사 대접은 굉장히 까다롭죠.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아침을 대접받은 분이 대표님 포함 단 두 분뿐입니다.”

전극준은 깜짝 놀라며 허리를 구부렸다.

“영광입니다.”

이미 송만술로부터 데브그루와 소믈리에의 돌아가는 사정을 설명 들었다.

이사 직함이지만 회사에서의 입김이 장난 아니라고 했다.

그랬기에 더욱 허리가 깊이 숙어졌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말이 없다.

어쭙잖은 표현은 오히려 자신의 감동을 폄훼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떠올린 말이다.

엄청난 자리다.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정몽주의 단심가 정도 되는 말로 충성을 맹세하겠지만 그럴 능력은 안 된다.

어쭙잖은 것보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 낫겠다 싶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것이다.

유태수는 빙긋 웃어넘겼다.

고심하여 뱉어낸 이쪽의 인사를 대답 한마디 없이 넘기자 약간 머쓱하기도 했지만 유태수는 칼을 쥔 주인이다.

칼날은 전극준 자신이고.

“들어오자마자 날 보고 놀라던데 왜 그랬습니까?”

유태수가 뭇국을 떠먹으며 묻는다.

“아닙니다. 그냥!”

“아는 사람을 닮기라도 했습니까?”

화들짝!

정곡을 찔렀다.

“대표님 표정을 보니 진짜 그런가 보네요. 누굴 닮았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해봐요. 괜찮으니까.”

유태수의 거듭된 질문에 전극준이 입안에 든 밥을 꿀꺽 삼켰다.

국물 한 숟가락을 떠 마시며 입안을 정리한다.

“사실 진짜 놀랐습니다. 너무 한 사람을 닮아서 말입니다.”

“누굴 닮았습니까?”

송만술이 호기심을 담아 묻는다.

“놀라지 마십시오. 유태수라는 사람을 빼닮았군요.”

“유태수?”

그가 누구냐는 듯 송만술이 묻더니 갑자기 눈이 커졌다.

“그…… 그 사람 유태수? 태천그룹?”

전극준이 살짝 입술을 비튼다.

“얼굴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분위기라는 것이 있죠.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들어서는 순간 상당히 놀랐습니다.”

“하고 많은 사람 놔두고 하필 자기 형님을 때려 죽인 친구를 닮았다니 기분이 조금 으스스합니다.”

“잘 아십니까?”

유태수가 물었다.

“잘 알죠. 그래도 제가 한때 그 친구 자형이었잖습니까?”

법적으로는 아직 이혼 상태가 아니므로 지금도 자형이다.

하지만 전극준의 말속에는 서류상으로는 부부지만 가슴속에는 오래전에 이미 유상주를 떠나보낸 것 같았다.

“그 친구도 날 좋아했죠, 물론 나는 더 좋아했고. 유씨 집안에 유일하게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였으니까요.”

“사실입니까? 군사 형장에서 방아쇠를 당겼는데 격발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 말입니다.”

송만술은 가족이었으니까 잘 알지 않겠느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현장에는 없었으니 모르죠. 발사는 됐지만 총알이 헌병의 조준대로 날아가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어쨌든 집행되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유태수의 과거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아침 식사 자리가 갑자기 스산해졌다.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무슨 말이냐는 듯 송만술이 눈을 빛냈다.

그때 유태수는 식사를 끝내고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기 위해 일어나고 있었다.

“유태수는 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아니죠, 죽이긴 했죠. 직접 주먹을 휘둘렀으니까. 하지만 난 믿지 않습니다. 우리 처남이 얼마나 술이 빡센데 고작 발렌타인 두 병에 망나니로

변하다뇨. 누군가 우리 처남을 없애기 위해 덫을 놓은 겁니다.”

움찔!

설거지통에 그릇을 놓던 유태수의 눈이 얼어붙었다.

등 뒤로부터 전극준의 말이 이어진다.

“난 내 두 귀로 분명히 들었습니다. 태수는 너무 큰 인물이다. 아무리 아들이 똑똑해도 아버지의 그늘이 크다 보면 가리기 마련인데 유태수는 아니다. 유장풍도 거목이지만 유태수는

하늘이 내렸다.”

“누가 한 말입니까?”

“우리 장인어른께서 유일하게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인 마존선생이 그러더군요.”

“마존?”

송만술의 눈이 가늘어졌다.

“천마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송만술은 중국무협소설 속의 마도대종사 천마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저도 어떤 분인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그 흔한 언론에 한 번도 보도된 걸 본 적 없고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하더군요.”

유태수는 설거지통에 빈 그릇을 놓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와 앉았다.

자신도 마존이란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다만 두 번인가 아버지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걸 들은 적은 있었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만사무불통(萬事無不通).

당시 아버지 곁에는 온갖 사람들이 끓었다.

대학 교수, 정치인, 인간문화재, 운동선수, 영화배우는 물론 하다못해 여기저기 지방 축제를 찾아다니며 입담을 파는 이른바 각설이도 우글거렸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전극준이 숟가락을 놓았다.

유태수는 전극준이 놓은 빈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내가 가져다 놓겠습니다.”

“손님은 앉아 있는 법이죠.”

유태수는 괜찮다면서 전극준의 빈 그릇도 설거지통에 넣었다.

송만술도 식사를 끝낸 듯 자기가 비운 그릇을 가져갔다.

유태수는 식탁 위 반찬 그릇의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커피는 내가 맡겠습니다.”

스스로 바리스타라고 불러달라고 할 만큼 송만술의 커피 내리는 솜씨는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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