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재벌집 청소부-113화 (113/122)

113화 떠나는 기차(1)

유태수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졌고 탁 라디오를 틀었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멈칫!

흘러나온 노래에 유태수가 스피커를 잠깐 바라보았다.

잠시 듣고 있던 유태수가 어금니를 문다.

퀸의 Play the Game이다.

‘젠장.’

갑자기 왜 이 노래가 나올까.

하필 지금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야, 한 번만 들어봐 인마.’

싫다는데도 형 유기태가 자꾸 이어폰을 귀에 꽂아 준다.

‘어때? 죽이지?’

국내 가요 말고는 아는 노래가 전혀 없던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처음에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던 유태수의 얼굴이 점차 펴지자 유기태는 환하게 웃었다.

“이리 내.”

“기다려 봐!”

이번에는 거꾸로 달라는 유기태의 손길을 유태수가 거부했다.

처음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지금도 그 노래는 잊히지 않는다.

유기태가 가장 좋아했던 퀸의 노래 플레이 더 게임.

스윽!

음악을 끄기 위해 오른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듣기 싫은 음악도 듣자.

자신이 지금 듣기 싫은 이유는 Play the Game이란 노래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 사람, 지금은 없는 형 유기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싫기 때문인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라면 음악을 들어주는 것도 사과 아닐까.

음악을 틀어놓고 담배를 물었다.

차는 빗속을 빠르게 달린다.

지이잉!

블루투스다.

백기만이란 이름이 떴다.

수신을 누른다.

“예, 사장님!”

[양평입니다.]

백기만이 정확한 지리를 말해 주었고 유태수는 기억했다가 통화가 끝나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내비에 주소가 입력되고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작은 공원이다.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기 위해 지어 놓은 얄팍한 정자로 끌려갔다.

비는 억수로 쏟아졌고 저 멀리 보이는 건 필시 한강이리라.

정철산은 물리적인 신체 제재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지금 굉장한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걸 간파했다.

두 사내는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담배 하나 피웁시다!”

“그러쇼!”

정철산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니코틴의 효과인가.

담배가 들어가자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유종태가 시켰소?”

자신을 이렇게 납치해 올 사람은 유종태 말고는 없다.

“아저씨, 우린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거든. 그러니까 입 닥치고 가만 담배나 피우셔. 엉!”

짜증 난다는 듯 핸들을 잡았던 사내 심택춘이 말했다.

말단 하수인이다.

지금 윗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스윽!

왼손을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핸드폰 꺼내 이리 주세요.”

눈치를 챈 것인지 심택춘이 입을 열어 말했다.

주머니 속 핸드폰으로 112나 119에 신고를 해보려는 계획은 이로써 무산됐다.

탁!

머뭇거리자 심택춘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꺼내 가버렸다.

파악!

정자 바닥에 놓고 구둣발로 밟아 버렸다.

핸드폰이 깨지지 않자 빗속을 걸어가 커다란 돌멩이를 주워오더니 그대로 찍었다.

산산이 조각나는 핸드폰을 보며 정철산은 오늘 밤 자신의 삶이 저렇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때 강력한 라이트가 다가온다.

자동차다.

차는 점점 다가왔는데 빗속에 와이퍼가 정신없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승합차다.

덜컹!

문이 열리고 사내들이 내렸는데 하나 같이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모두 다섯.

자신을 납치해온 둘을 포함하면 일곱 명이다.

멈칫!

정자에 있던 정철산의 눈이 좁혀졌다.

한 사내가 받쳐준 우산을 쓰며 다가오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봤다.

죽음이 임박해서인지 다급함에 얼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처처척!

정자를 오르는 네 개의 나무 계단을 구둣발로 올라설 때서야 기억이 난다.

‘카지노!’

2년 전 아는 지인의 소개로 강남의 한 지하 카지노를 들어간 적이 있다.

강원랜드도 가봤지만 그곳 못지않은 화려한 시설에 놀랐던 기억과 그날 밤 이천만 원을 두 시간 만에 털리고 빠져나왔다.

이후 몇 차례 개인적으로 갔었는데 그때마다 업장을 돌며 손님들 시비를 해결하고 관리하던 사내가 있었다.

바로 오칠성이었다.

“왜, 날 알아요?”

오칠성은 강하게 쳐다보는 정철산을 보며 물었다.

“안다고 하면 날 살려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른다.

건달들의 냄새가 진득하게 풍기는 사내들에게 붙잡혀 있는데도 떨리는 것이라고는 없다.

나중에 모든 걸 버리고 포기하면 겁이 없어진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어차피 오늘 밤 죽는다면 구차하게 굴지는 말자고 마음먹어서인지 끌려올 때까지만 해도 서늘하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어쭈!”

오칠성이 제법이라는 듯 놀란다.

“아는 모양이죠?”

“카지노!”

“어, 당신이 거길 어떻게 알아?”

오칠성의 눈이 커졌다.

“가봤으니까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업소 손님이셨군요. 이런 인연도 없는데.”

오칠성이 가까이 다가와 앉아 있는 정철산을 내려다본다.

“뭣들 하냐? 어서 묻고 가자!”

사내들을 향해 외치듯 말했다.

그때 또다시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불빛은 점차 가까워졌는데 한 대가 아닌 두 대가 공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사내들 모두가 긴장하며 바라보더니 하나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승합차에서 연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 그리고 몇은 사시미 칼을 꺼내 들었다.

끼익!

차는 적당한 거리에서 멈췄고 라이트가 꺼졌다.

“이사님, 우산.”

덜커덩!

누군가 우산을 펼쳐준다.

저벅저벅!

세 명의 사내가 우산을 쓰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칠성 혼자만 정자 위에 있고 나머지 사내들은 전부 아래서 일렬로 막아서듯 하고 있다.

꿈틀!

가까이 다가오지만 어두워서 얼굴을 볼 수 없다.

파팟!

갑자기 다가오는 사내들 쪽에서 랜턴이 켜지면서 정면으로 얼굴을 비쳤다.

“불 꺼!”

정철산을 납치한 차량을 운전했던 심택춘이 소릴 질렀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고 사내들을 일일이 확인하듯 쭈욱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정자의 오칠성을 정면으로 비춘다.

피식!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고 랜턴이 꺼졌다.

“오늘 처음 입은 슈트인데.”

유태수가 아깝다는 듯 자신의 양복을 내려 살피더니 우산을 한쪽으로 던졌다.

쏴아아!

쏟아지는 비가 금세 양복을 적신다.

“말로 하면 듣지 않을 것이 뻔하고.”

쉬이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가운데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사내는 야구 방망이를 쥐고 있었는데 유태수가 다가오자 힘껏 내려쳤다.

쉬이악!

야구 방망이를 직도양단(直刀兩斷), 즉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듯 했다.

스으으!

제대로 맞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대비 속으로 유태수의 얼굴이 약간 옆으로 비킨다.

푸우욱!

그리고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촥!

유태수는 사내의 복부에 박힌 대나무 칼을 뽑았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쏘악!

왼쪽 사내가 역시 야구 방망이로 머리통을 갈긴다.

머리를 노리는 건 작은 공격, 즉 빗맞아도 가장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둡고 폭우까지 쏟아지는 이런 날씨에는 짧고 간단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사내들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빙글!

어느새 돌아선 유태수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 떨어지는 방망이를 피하며 파고들었다.

‘위빙!’

지켜보고 있던 오칠성이 놀란다.

위빙이란 권투에서 상대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머리와 상체를 좌우로 흔드는 기술이다.

복싱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술로 뛰어난 위빙 능력을 가진 선수들은 크게 맞지 않는다.

지금 유태수가 보여준 야구 방망이를 피하는 동작은 틀림없는 위빙이다.

학창 시절 싸움을 잘하기 위해 복싱을 배운 적이 있다.

당시 위빙이라는 동작이 얼마만큼 중요한 건지 알게 되었으며 웬만한 상대의 펀치는 모조리 피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자신은 그 정도 수준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나온 유태수의 동작을 보며 오칠성이 침을 삼킨다.

뻐억!

파고들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사내의 옆구리에 훅을 먹인다.

“크우우!”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무너졌다.

정확히 옆구리 급소, 간에 주먹이 적중한 것이다.

제대로 맞으면 숨도 쉴 수 없다.

촤아아!

유태수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빙글 돌아선다.

넷.

여섯 명에서 두 명이 강한 비로 질퍽해진 땅바닥에 처박혀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스으으!

유태수가 들어온다.

아니, 미끄러진다고 봐야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았다.

취릭!

한순간 섬광처럼 은빛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쏟아지는 장대비가 잘려 나간다.

그리고 터지는 비명.

욱!

세 번째 사내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춤인가.

결코 억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드럽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동작이 리드미컬했다.

빙판 위의 춤.

아이스 댄스라도 저토록 흘러 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싸악!

오른손에 쥐어진 칼이 작은 원을 그렸다.

피가 검다.

어둠으로 인해 칼을 맞은 사내의 얼굴에서 먹물 같은 피가 튄다.

사내는 이내 빗물 속으로 흩어지며 고꾸라졌는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몸부림친다.

두 명.

서 있는 둘 모두 손에 사시미 칼을 들었다.

전문 칼잡이들은 아니다.

그냥 뒷골목에서 살아가자면 누구나 한 자루씩은 신체 일부처럼 지녀야 할 그런 무기일 뿐이다.

두 사내는 선뜻 공격하지 못했다.

네 명의 동료가 유태수의 머리털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썩은 집단처럼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유태수의 칼은 경이로웠다.

스으으!

온다.

유령인가.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온다.

사내들은 있는 힘껏 칼을 내리쳤다.

‘됐다.’

사내는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칼이 다가오는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우욱!

그런데 비명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유태수는 지나갔다.

자신의 칼이 얼굴을 찔렀다고 여겼을 땐 뭔가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고 칼이 오히려 자신의 뺨을 베어버렸다.

흠칫! 하면서 뺨을 만질 때 등이 뜨겁다.

얼굴을 베고 지나간 칼이 그대로 후진을 하며 등을 파고든 것이다.

칼을 거꾸로 쥐고 지나가면서 날로 얼굴을 베고 그 칼을 후진시켜 등에 박아 버린 일본 칼법 형태의 칼질이다.

얼굴에 칼을 맞고 주춤하는 사이 등에 깊이 박혀 버린 칼.

상체가 쪼개지는 것 같다.

칼에서 시작된 고통이 거미줄처럼 온몸으로 퍼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박힌 칼을 뽑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은 더욱 크다.

쑤욱!

유태수가 칼을 뽑았다.

퍼어억!

사내는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등에 구멍을 낸 상처는 온몸의 힘을 빼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정철산을 데려올 올 때 승용차 운전을 했던 심택춘이다.

물론 정자 위에는 여전히 오칠성이 서 있지만 데리고 온 부하들이 전멸을 앞둔 상황에서 그의 눈은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에이, 씨발!”

심택춘이 강하게 씹어 뱉는다.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듯 달려든다.

빠악!

칼이 아니다.

눈앞으로 불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심택춘은 빙글 한 바퀴 돌면서 엎어졌다.

‘차라리 신기로군.’

가정 문제 상담소장 백기만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데이브의 주먹을 제대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싸움이 아니다.

저건 분명 도(道)이며 예(藝)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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